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둠칫둠칫 두둠칫, 웃음이 넘쳐나는 ‘몸치’들의 ‘연대’기

[2015.12 제26호 지역에서 현장에서]

두둠칫, 웃음이 넘쳐나는 ‘몸치’들의 ‘연대’기

 

김세현|두둠칫 단원

 

 

 

엄혹한 시대이다. ‘가정맹어호()라 하였던가. 수많은 사람들이 남한사회의 모순 속에서 고통 받고 있다. 세상을 바꾸지 않는 한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 그렇기에 우리가 살아가는 바로 이곳에서 우리의 삶을 바꾸는 정치가 필요하다. 세상을 바꾸기 위해 우리는 이곳, 노동당에 모였다. 많은 당원들이 사회의 곳곳에서 노동당의 가치를 실현하고자 밤낮없이 노력 중이다.

하지만 모든 당원들이 당의 이름 아래 모이고, 당의 이름으로 활동하지는 않는다. 당의 역량이 축소되고 당원들이 유실되는 과정에서 당 조직과 당원들 사이에 괴리가 발생했다. 각 당원들이 진행하는 운동의 성과가 당으로 모이기 위해서는 ‘당원인 운동가’들이 ‘당 운동가’가 되어야 한다. 무엇이든 좋으니, 나부터라도 당의 이름을 걸고 당과 함께 활동하고 싶었다.

나에게는 ‘몸치패 두둠칫(이하 두둠칫)’이, 내가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일을 하면서 동시에 그것이 곧 당의 활동이 되는 실천을 할 수 있는 곳, 다시 말해 당의 이름을 걸고 우리의 정신과 가치를 실천하는 방법이었다. 두둠칫의 활동은 당 깃발 아래에서 이루어진다. 덕분에 당 활동이 더 즐거워졌고, 내 활동의 기반이 당이 되었다. 두둠칫에서의 활동은 우리의 연대가 곧 당의 연대가 될 수 있음을 보여주는 값진 경험들이다.

 

열정으로 뭉친 이름값 하는 ‘몸치’패

 

두둠칫은 올해 초 서울시당 대의원대회 사전행사를 위해 조직되었다. 청년당원들의 대화방에서 반쯤 농담 삼아 당에 몸짓패가 있었으면 좋겠다고 한 말이 현실이 되었다. 한 명 한 명 단원을 모아 일곱 명의 청년당원들이 함께 <바위처럼>과 <새물> 두 곡의 춤을 추었다. 나는 학교에서 몸짓패를 해보았다는 이유로 ‘춤 선생’으로 발탁되었다.

그 후 반년, 그동안 두둠칫은 당 행사와 문화제, 집회현장 등 많은 연대공연에서 열심히, 그리고 즐겁게 춤을 추었다. 시간이 맞는 날에는 단원들끼리 모여 연습을 하고, 공연이 끝나면 반드시 그날의 공연을 찍은 영상을 돌려보며 잘못한 점을 고쳐나갔다. 덕분에 춤 실력도 늘었다. <바위처럼>은 이제 다들 능숙하게 출 수 있게 되었고, 아예 동작이 맞지 않았던 <새물>의 춤 실력도 일취월장했다. 래퍼토리도 많이 늘었다. 집회의 성격에 맞는 공연을 하기 위해 <진짜사장이 나와라>나 <단결투쟁가> 등의 춤을 배웠고,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는 <진실은 침몰하지 않는다>의 춤을 배우기도 했다. 단원도 열 세 명으로 늘었다. 단원의 면면도 다양하다. 많은 단원들이 지역운동에서, 부문운동에서, 그리고 당직자로서 활동 중이다.

공연 준비를 위해 모인 두둠칫 단원들 (사진: 백상진 두둠칫 매니저)

공연 준비를 위해 모인 두둠칫 단원들 (사진: 백상진 두둠칫 매니저)

공연을 많이 하다 보니 해프닝도 있었다. 4월 4일 명동 서울중앙우체국 전광판 아래에서 열기로 한 SK브로드밴드와 LG유플러스 비정규직 연대문화제가 취소되었다. 두둠칫도 공연을 약속했는데, 공연 장소에 도착해서야 문화제가 취소됐음을 알았다. 당황도 잠시. 두둠칫은 그날 두 분의 고공농성자만을 위해 전광판을 올려다보며 춤을 추었다. 두둠칫의 역사적인 첫 연대공연이었다. 약속한 재능교육 투쟁 연대공연이 해고노동자들의 복직합의가 성사되어 취소된 기쁜 기억도 있다.

서울중앙우체국 전광판에서 고공농성 중인 강세웅(LG유플러스 비정규직지부 조합원) · 장연의(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지부 연대팀장)씨를 위한 공연을 마치고, 전광판을 향해 "강세웅 장연의 투쟁"이라고 쓴 손팻말을 들어 보이는 두둠칫(사진: 백상진 두둠칫 매니저)

서울중앙우체국 전광판에서 고공농성 중인 강세웅(LG유플러스 비정규직지부 조합원) · 장연의(SK브로드밴드 비정규직지부 연대팀장)씨를 위한 공연을 마치고, 전광판을 향해 “강세웅 장연의 투쟁”이라고 쓴 손팻말을 들어 보이는 두둠칫 (사진: 백상진 두둠칫 매니저)

그 모습을 전광판 위에서 찍은 사진 (사진: 강세웅 조합원)

그 모습을 전광판 위에서 찍은 사진 (사진: 강세웅 조합원)

연대요청이 들어올 때마다 매번 공연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부득이하게 공연이 취소돼는 때고 있고, 바쁜 단원들이 시간을 내어 공연을 하다 보니 시간이 맞지 않아 요청에 응할 수 없을 때도 있다. 그래서 우리는 서로에게 부담을 주지 않도록 “여건이 되면 춤춘다”라는 원칙을 세웠다.

이렇듯 넘치는 열정과 더불어 치밀함까지 지닌 두둠칫이지만, 아직까지는 ‘몸치’패로서의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는 듯하다. 두둠칫의 공연은 여전히 감탄사보다 웃음을 더 많이 자아낸다. 날카롭고 정확한 동작, 일사불란한 멋은 없을지라도 두둠칫의 공연장에는 항상 웃음이 있다. 지치고 힘든 농성장에서, 많은 분들이 두둠칫을 보고 웃으며 좋아해주시니 큰 보람을 느낀다.

 

두둠칫, 콜트콜텍 기타노동자의 친구가 되다

 

모든 연대공연이 소중하지만, 특히 공연이 잘 되었다고 느껴질 때가 있다. 춤을 추면서도 즐겁고, 동작이 평소보다 잘 맞는 것 같고, 무엇보다 관객들의 표정이 밝을 때다. 지난 11월 3일에 진행한 콜트콜텍 연대공연이 그랬다.

11월 3일은 ‘콜트콜텍 기타노동자 친구들의 집중행동의 날’이었다. 이날은 콜트콜텍의 노동자들이 ‘미래에 있을지도 모르는 경영위기’ 때문에 해고된 지 3200일 가까이 지난 날이자, 새누리당의 노동개악 추진과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투쟁에 대한 김무성의 근거 없는 비방에 맞서 방종운 콜트악기 지회장이 단식 노숙농성을 시작한 지 30일이 지난 날이었다. 많은 당원들이 연대하기 위해 농성장이 있는 여의도 새누리당사 앞에 모였다.

콜트콜텍 투쟁을 지지하는 두둠칫의 캐릭터 '냥아치' (캐릭터 제작: 쥰쨩 두둠칫 단원)

콜트콜텍 투쟁을 지지하는 두둠칫의 캐릭터 ‘냥아치’ (캐릭터 제작: 쥰쨩 두둠칫 단원)

남한에서 가장 오래된 정리해고 투쟁사업장. 한 노동자의 30일의 단식. 듣기만 해도 가슴이 먹먹해지는 문구들이다. 사람으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존재들이 사람이 되기 위해 싸워온 시간이었다. 자본과 정권에 대항하는 노동자가 목숨을 걸고 차지찬 아스팔트 위에 앉아있었다.

두둠칫은 오후 일곱 시부터 시작되는 ‘연대의 밤 문화제’에서 공연을 했다. 무거운 싸움의 현장에 우리 같은 몸치패가 어울릴까 걱정하기도 했지만, 걱정과 달리 현장의 반응은 뜨거웠다. 여섯 명의 두둠칫이 무대에 올라, <바위처럼> <새물> <단결투쟁가>에 맞춰 연달아 춤을 추었다. 문화제 참가자들은 곳곳에서 웃음을 터트리면서도, 노래를 함께 다라 부르며 우리를 응원해주었다. 현장의 분위기는 점점 더 달아올랐다. 환호를 받으며 무대를 내려올 때에는, 몸이 뜨거워진 만큼 마음도 뜨거웠다. 엄청난 일을 한 것은 아니었지만, 우리의 연대가 여기 모인 이들을 웃게 만들고, 투쟁하는 노동자들의 얼굴에 웃음꽃을 한번 피웠다는 사실만으로 충분했다. 우리는 멋진 춤 동작을 보여주지도, 일사불란한 단결력을 보여주지도 못하지만, 우리의 춤에는 콜트콜텍 노동자들의 투쟁을 응원하는 마음이 담겼다. 두둠칫의 이런 마음이 투쟁하는 노동자들에게 전달되었다는 것만으로도 이날의 공연은 성공적이었다.

'콜트콜텍 기타노동자 친구들의 집중행동의 날' 문화제에서 공연 중인 두둠칫. 이날도 두둠칫은 '몸치'패라는 이름값을 톡톡히 했다. (사진: 나동혁 두둠칫 단원)

‘콜트콜텍 기타노동자 친구들의 집중행동의 날’ 문화제에서 공연 중인 두둠칫. 이날도 두둠칫은 ‘몸치’패라는 이름값을 톡톡히 했다. (사진: 나동혁 두둠칫 단원)

두둠칫이 춤을 춘다고 세상이 바뀌지는 않는다. 민중의 삶은 여전히 고단하고, 지금도 수많은 사람들이 사회의 착취와 차별, 배제와 사우고 있다.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두둠칫은 춤을 멈출 수 없다. 두둠칫의 춤을 보며 누군가가 웃을 수 있다면, 더불어 노동당의 이름을 한 번이라도 더 떠올릴 수 있다면, 우리는 여건이 되는 한 즐겁게 춤을 출 것이다. 우리의 춤이 이 사회를 바꾸는 데에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기를, 그래서 노동당이 꿈꾸는 세상을 향해 한걸음 더 내딛을 수 있기를, <새물>의 노랫말처럼 우리가 “조금씩 내딛는 한걸음”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걸음이 되기를 바란다. 두둠칫은 노동당의 당원으로서 기꺼이 그 길에 함께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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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원하는 마을을 위하여

[2015.11 제25호 지역에서 현장에서]

우리가 원하는 마을을 위하여

상가임차인권리상담소와 함께 ‘다시 시작하는’ 서울 마포당협

나동혁|서울 마포 당원

 

 

 

지역.

그래 지역이었다. 전국위원에 당선되고 마포당협 대의원이 된 후에 계획표를 짤 때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은 단어가 ‘지역’이었다. 지역에 누가 살고 있으며 그/녀들은 무엇을 원하는가. 누구와 함께 무엇을 바꿀 것인가? 당선 후 1년. 스스로 이 답을 얻으려고 달려온 시간이었다.

당원 수는 많지만 여러 우여곡절을 겪은 탓에 마포당협은 사실상 활동이 중지된 상태였다. 최소 2년 동안 마포에는 노동당 이름으로 현수막 한 장 걸리지 않았고 당원모임도 열리지 않았다. 일단은 마포당원들의 욕구부터 알아야 했고, 그러자면 당원들을 알아야 했다. 흩어져있는 욕구를 모아 다시 에너지를 생산하는 일이 시급했다.

정당에는 학교처럼 당원들이 모이는 특정한 오프라인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방법은 전화뿐. 지난 연말과 올해 초에 걸쳐 있었던 당직자 선거 기간 동안 쉴 새 없이 전화를 돌렸다. 어느 지역이나 그렇겠지만 당원들의 기운이 많이 빠져있었다. 냉소적인 반응이 돌아오기도 했다. 그래도 그냥 처음 목표한대로 투표독려 전화까지 최소 3번 이상씩, 500명에게 전화를 돌렸다. 그제야 한두 마디라도 말을 거는 사람이 생겼다.

그리고 당원모임을 다시 시작했다. 당원모임은 술자리가 아니라 지역과 관련된 주제를 선정해 공부하고 토론하는 자리로 만들었다. 최대한 많은 당원에게 행사를 알리고 싶었다. 문자로 일정을 공지하는 것으론 부족해 보여 텔레그램, 페이스북메시지 등 개인적으로 접촉할 수 있는 모든 공간을 활용했다. 그러다 말이라도 걸어오면 대화를 시도했다. 직접 만나기도 했다. 인터뷰 형식을 빌리기도 했다.

 

내가 몸으로 느끼는 지역

 

마포는 지역활동이 매우 활발한 곳이다. 진보정당 활동가들이 선구적으로 지역정치 모델을 선도했던 곳이고, 그 성과 또한 적지 않았다. 이런 성과를 봐왔기 때문에 나 역시 마포로 이사 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골목골목에서 강정티셔츠를 입고 콜트콜텍 에코백을 맨 사람들을 만날 때면 이사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수시로 이사를 다녀야 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지역공동체라는 느낌은 막연하다. 그래도 이 동네에 있으면 밤길에도 마음 편히 걸어 다닐 수 있을 것 같은 편안함을 준다”고. 마을은 오랜 시간을 거쳐 복합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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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수 싸이가 명도소송 중인 테이크아웃드로잉 카페를 강제철거하려 한 데 항의하는 집회에 함께한 김한울 부대표(왼쪽)와 박종만 마포당협 위원장 (사진 : 나동혁)

그런데 3년 반 전, 합정으로 이사 왔을 때부터 시작된 빌딩 공사들이 마무리되면서 지금 합정은 내가 이사 올 때와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되었다. 길이 바뀌고 지나다니는 사람이 바뀌고 가게가 바뀌었다. 그냥 말 그대로 다른 동네가 되었다. 이 장소에 YG사옥이 있다는 사실은 하나의 상징이다. 불과 3년 만에 일어난 일이다.

결국 집값이 조금 싼 망원동으로 이사를 왔다. 지금 망원동은 골목마다 ‘맛집’들이 늘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대형체인점들이 늘고 건물이 올라가고 주택을 개조한 가게들이 늘어나는 형국이다. 망원역 근처에는 WM엔터테인먼트라는 기획사 건물도 들어왔다. 망원정 사거리에는 한강으로 통하는 공원이 생겼다. 망원유수지 일대에는 한강시민공원으로 드나드는 자전거로 인해 자전거 문화가 복합된 공간이 형성되었다. 자주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는 입장에서는 이 변화들이 당연히 반갑다.

그런데 동시에 불안하다. 동네가 살기 좋아지고 속된 말로 ‘힙해’질수록 집값이 올라갈 것은 뻔하다. 하루하루 늘어가는 맛집을 보며 행복하다가도 집값이 올라가면 여기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고민이 따라온다. 여기에 한층 더해 서울시는 신촌-홍대-합정을 잇는 일명 ‘신홍합 밸리’를 만들어 관광객을 유치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했고, 한강공원 망원지구에는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공연무대를 설치하겠다고 발표했다. 건설자본과 기업이 들어온 이후 일어날 변화들은 자명하다. 동네가 살기 좋아진다는데 많은 이들은 미리부터 떠날 걱정을 한다.

 

다시, 왜 지역인가?

 

왜 지역이냐고 묻는다면 그 답은 아주 간단하다. 지역은 세상을 “어떻게”와 “어디서” 바꿀까 고민하는 정당이 내린 답 중에 가장 기본이 되는 한 축이었다. 더군다나 진보정치 토양이 가장 풍부한 지역 중 하나인 마포에서 지역을 고민하지 않는다는 것은 진보정치세력으로써 자신의 존재 이유를 포기하는 일과 같다. 시작할 이유는 이미 충분했다.

그 다음 답은 6월 4일 당원모임에서 얻었다. 행사 제목은 <마을/지역+노동당>이었는데, 두 명의 연사를 모셨다. 먼저 김상철 서울시당 위원장으로부터 ‘상가임차인권리상담소’ 운영사례를 들었다. 기본적으로 건물주-부동산-임차인으로 이루어진 생태계가 어떻게 유지되고, 그 안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이 무엇인지 밑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두 번째 연사는 정문식 마포당원이었다. 정문식 당원은 밴드 ‘여섯 개의 달’ 보컬이면서 동시에 ‘뮤지션 유니온’과 ‘홍우주 협동조합’ 활동을 지속적으로 해왔다. 지역과 예술을 접목시킨 여러 활동을 하면서 예술인도 노동자라는 관점을 일관되게 유지했다. 강연주제는 ‘우리가 원하는 마을이란 무엇인가’. 서울시가 추진하는 마을공동체사업과 도시재생사업의 현황을 설명하면서 그 안에 빠져있는 핵심적인 문제를 지적했는데, 이 강연이 내게는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한마디로 지금의 지역사업에는 노동이 빠져있으며, 이 관점에 대해 숙고하지 않으면 결국 살기 좋은 마을이란 기업과 자본이 좋은 마을, 건물주가 좋은 마을이 된다는 내용이었다. 여기서 얻은 답은 자명했다. 마을이란 균질한 집단으로 이루어져있지 않다. ‘모두를 위한 마을’이라는 표어를 내걸어도 진정으로 누구를 위한 마을이 되어야 하는지 세심하게 고려해야 한다.

처음 이 행사를 기획할 때는 아는 게 너무 없었다. 궁금증을 꼭 해소하고 싶은 것이 있었으니, ‘젠트리피케이션’이란 단어의 의미를 정확히 알고 싶었다. 직역하자면 어떤 지역이 젠트리(영국 중산층을 이르는 말)화 되는 현상을 이르는데, 실질적인 의미로는 마을이 외부에 알려지고 상업지구가 형성되고 대형유통자본과 기업들이 들어오면서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고 마을공동체가 붕괴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지금 마포 곳곳은 극심하게 젠트리피케이션이 진행 중이다. 일부 지역은 어느 정도 완료되어 지역공동체 색깔과 구성원이 빠르게 바뀌었다. 지역의 분위기를 만들었던 예술인들과 소소한 단골가게들이 사라지고 체인점이 즐비한 상업지구로 변모하고 있다. 이런 변화가 모두에게 즐거울 리 없다.

주민의 이해관계는 단일한가? 그렇지 않다. 중요한 지점은 내부에서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다. 사회적 조건에 따라 마을 내 구성원들 사이에도 이해관계가 달라진다. 이걸 인정하지 않고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넘어가면 나중에 활력을 잃는다. 구성원들이 원하는 것은 다양할 수 있다. 마을은 무조건 좋다는 수사는 우리만 사용하는 게 아니다. 기업이나 행정권력도 활용한다.

사회시스템 변화 없이 마을 그 자체만 해방구가 될 수는 없다. 결국 노동조건이 변해야 하고, 마을 만들기는 사회시스템을 변화시키려는 노력과 함께 가야 한다. 간단히 말해 지금처럼 노동시간이 길고 살기가 팍팍한 사회에서는 그 어떤 곳에도 에너지를 내어주기 힘들다. 진보정치는 지역의 약자와 싸우며 사회를 바꾸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하고, 우리가 생각하는 마을은 그 과정에서 형성되어야 한다.

 

상가임차인권리상담소에서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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참숯만난닭갈비 앞에 차린 상가임차인권리상담소에 함께하는 마포당원들. 참숯만난닭갈비는 현재 권리금을 약탈하려는 건물주의 횡포에 맞서 싸우는 중이다. (사진 : 나동혁)

서울시당은 작년부터 상가임차인권리상담소를 시작했다. 홍대 삼통치킨 앞에서 매주 진행했는데, 나는 한 번 찾아간 적이 있었을 뿐 그 의미를 깊이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저 우리 옆 동네에서 시작했으니 잘 되었으면 좋겠다, 가끔 커피라도 사드리자는 정도로 생각했을 뿐이다. 그런데 올해 지역활동을 새로 시작하는 입장에서 상담소는 모든 고민에 부합하는 아이템이었다.

우리가 만들려는 마을은 사회적 약자와 함께하는 과정에서 형성되어야 하며, 기본적으로 완고하게 형성되어 있는 소유관계에 일정하게 문제제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어떤 문제도 완벽하지 않다는 것은 잘 안다. 임차상인이라고 해서 모두가 동일한 이해관계에 놓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상을 이해하면 임차인 문제가 가진 사회적 위상은 명백하다. 노동시장 자체가 고용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정리해고, 비정규직, 때 이른 퇴직 등이 일반화되어 가는 사회에서 자영업은 또 다른 노동시장의 연장이다.

이 와중에 건물주에게만 유리하게 만들어진 법과 제도와 사회적 인식은 근본적으로 ‘소유’라는 개념과 연결되어 있다. 세 들어 살아본 사람은 잘 안다. 집 없는 서러움이 어떤 것인지를. 끊임없이 불안 속에 살아야 하는 삶이 어떻게 영혼을 갉아먹는지를. 수많은 임차상인은 정서적으로도 연결되어 있다.

마포당협에서는 여러 차례 토론과 합의를 거쳐 8월 말부터 상가임차인권리상담소를 시작했다. 상담소를 운영하도록 허락해준 홍대 참숯만난닭갈비는 맘상모(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 https://www.facebook.com/groups/mamsangmo) 회원 가게이면서, 현재는 권리금을 약탈하려는 건물주에 맞서 싸우는 곳이기도 하다. 명도소송이 모두 마무리되고 법적인 영업기간이 지나 강제집행 계고장이 날아온 상태다. 언제 강제집행을 당할지 모르는 임차상인들은 하루하루 긴장 속에 살아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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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포당협 당원모임 홍보웹자보. 마포당협은 건물주의 횡포에 맞서 싸우는 곳에서 당원모임을 가지며 꾸준히 연대 중이다. (웹자보 제작 : 이예반 마포당원)

마포당협에서는 강제집행을 막기 위한 지킴이 활동을 하면서, 목요일마다 가게 앞에 상담소를 연다. 간단하게 관련법을 공부하고 사례를 읽으며 논리를 다듬는다. 사람이 많을 때는 주변 상가에 홍보용 엽서를 배포한다. 상담을 하러 오는 사람은 별로 없다. 자기 문제로 터지기 전까지 임차상인들은 상담소를 찾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매우 우호적이며, 무엇보다 건물주와 싸우는 가게를 모두 지켜보고 있다.

건물주도 상담소 존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자신이 강제집행으로 남의 노동을 가로채려는 그 현장에 사람들이 드나들고, 세입자를 마음대로 쉽게 내쫓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안다. 건물주를 괴롭게 만드는 것도 과정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사례를 만들어야 한다. 서울시당이 상담소를 여는 삼통치킨과 마포당협이 상담소를 여는 참숯이 모두 강제집행 위기에 처해있다.

맘상모와 노동당의 연대와 신뢰도 강해졌고, 맘상모 회원인 임차상인이 노동당 당원으로 가입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지역당협은 현장에서 유대를 강화하고 서울시당에서는 사례를 모으고 분석하면서 법적대응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법률개정에 대한 의견을 낸다. 제도권 안팎을 넘나드는 정치라는 게 이런 것이 아닐까? 함께 저항하면서 그 에너지를 모아 현실적인 제도에까지 일정하게 영향을 미치고, 그러면서 모두가 체념하듯 받아들이는 ‘조물주 위에 건물주’가 있는 현실에 일정하게 균열을 낼 수 있다면 분명한 성과로 남으리라 생각한다. 부수적으로 상담소는 당원과 당원, 당원과 임차상인이 이야기를 나누는 만남의 장소가 되기도 하니 일석이조 정도가 아니라 일석삼조 이상의 성과다.

마을과 도시는 매우 복합적인 공간이다. 그 공간을 만들어가는 것은 자본과 기업이 아니다. 그 곳에 살거나 경유하는 사람들, 그들이 만들어놓은 문화적 요소, 그리고 우리가 내는 세금이다. 그런데 왜 그 성과물은 항상 자본과 기업이 독차지해야 하는가? 다시 한 번 사람이 살기 좋은 도시, 사람이 살기 좋은 마을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져본다. 공공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공간을 공공의 몫으로 돌려주어야 한다. 우리가 원하는 마을을 위하여.

희망버스에 함께한 노동당원들. 하늘 위 노동자들을 땅으로 내릴 수 있는 정당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사진 : 박성훈 홍보실장)

열둘의 땅 노동자와 다섯의 하늘 노동자

[2015.09·10 제24호 지역에서 현장에서]

열둘의 땅 노동자와 다섯의 하늘 노동자

거제·부산 희망버스 1박 2일

 

강남규|편집위원

 

 

부산시청 앞. 무대 위로 한 사람이 오른다. 스타케미칼 공장의 45미터 굴뚝에서 408일간 고공농성을 한 노동자라고 스스로를 소개한다. 소개를 마치자 또 한 사람이 오른다. 한진중공업 35미터 타워크레인에서 309일간 농성했다고, 세계기록 보유자였는데 차광호에게 뺏겼다고 농을 던진다. 농이 끝나자 또 한 사람이 오른다. 유성기업 공장 앞 굴다리에서 151일간 농성했다고 소개한다. 다시 또 한 사람이 오른다. 그리고 또 한 사람, 또 한 사람, 또 한 사람…. 모두 언제 어디선가 각자의 하늘에 매달렸던 사람들이다.

무대를 발 디딜 틈 없이 채운 노동자들의 머릿수를 세니 12명이었다. 미처 오지 못한 사람들을 제외하고도 12명이다. 12개의 부조리, 12개의 착취, 12개의 삶, 12개의 투쟁, 12개의 처절함, 12개의 눈물, 12개의 웃음이 12개의 하늘에 걸려있었다. 이제는 땅으로 내려온 12명의 노동자들은 소개를 마치고 합창을 했다. “휘몰아치는 거센 바람에도 부딪쳐오는 거센 억압에도 우리는 반드시 모이었다. 마주보았다. 살을 에는 밤, 고통 받는 밤, 차디찬 새벽서리 맞으며 우린 맞섰다.” <동지가>였다. 살 에는 밤과 고통 받는 밤을 수백 날을 보내고, 높은 하늘에서 차디찬 새벽서리 맞으면서도 ‘반드시’ 모이고 마주본 노동자들의 노래였다.

그리고 여전히, 세 개의 하늘에 노동자들이 매달려 있다. 기아자동차 하청노동자 최정명·한규협, 대우조선해양 노동자 강병재, 생탁/택시노동자 송복남·심정보. 이번 희망버스는 그들을 만나는 여정이었다.노동당도 버스에 오르기로 결정했다. 출발 열흘 전부터 참가신청을 받아, 노동당 전용버스 한대를 마련했다. 버스의 이름은 ‘타요! 빨간버스!’ 희망버스 기획단은 센스 있게도 정말로 ‘빨간’ 버스를 노동당에 배정해줬다. 40석을 모두 채웠다. 버스 한 대를 단일조직으로 채운 곳은 노동당이 유일했다.

 ‘타요! 빨간버스!’에 오르는 노동당원들. 40석의 버스 한 대를 단일조직으로 채운 곳은 노동당이 유일했다. (사진 : 박성훈 홍보실장)

‘타요! 빨간버스!’에 오르는 노동당원들. 40석의 버스 한 대를 단일조직으로 채운 곳은 노동당이 유일했다. (사진 : 박성훈 홍보실장)

 

“누구도 다쳐선 안 된다” … 하늘 위 노동자들도

 

출발 집결지는 서울시 용산구 한남오거리, 현대차그룹 회장 정몽구의 집 앞. 경의선 한남역에서 내려 오거리 방면으로 향하니, 저쪽 너머에 줄지어 선 경찰버스들이 이정표처럼 희망버스 승객들을 안내하고 있었다. 아침 아홉시부터 경찰들은 승객들을 막았다. 그러나 아침부터 어딘가 다녀오는 무수한 자동차들은 막지 않았다. 경찰 방패 뒤로는 와이셔츠를 입은 중년 남성 몇몇이 팔짱을 끼고 서있었다. 이 장정들은 정몽구 캐리커쳐 스티커를 떼어내는 임무를 수행하려고 고용된 모양이었다.

정몽구를 뒤로 하고 희망버스가 출발했다. 5시간을 조금 넘게 달려 거제에 도착했다. 여기서도 처음으로 마주한 풍경은 경찰버스였다. 공장 너머 차도에 무대를 깔고 문화제를 열었다. 공장은 아득했다. 우리의 시선은 수변공원을 넘고 담벼락을 넘은 뒤에야 강병재가 오른 크레인에 닿았다. 60미터 높이라고 했다. 서울에서 출발한 버스들을 이어 붙이면 강병재의 손을 잡을 수 있다. 그렇게 멀고 높았다.

조금 전부터 간간이 내리던 비는 어느새 맹렬해져, 우리를 때리고 크레인을 때리고 강병재를 때렸다. 강병재는 크레인 조종실 바깥에 위태롭게 서있었다. 민중가수 지민주가 노래를 불렀다. <소나기>였다. 예정된 레퍼토리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강병재를 때리는 이 비가 한순간의 소나기이길 바라는 마음은 노래를 듣는 모두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저 너머에서 강병재가 노래에 맞춰 춤을 췄다. 우리는 풍선을 띄웠다. 헬륨가스를 머금은 풍선이 내리는 비를 뚫고 하늘로 날았다.

강병재가 오른 60미터의 크레인은 높았다. 크레인 조종실 바깥에 위태롭게 선 강병재를 향해 우리는 풍선을 띄웠다. (사진 : 박성훈 홍보실장)

강병재가 오른 60미터의 크레인은 높았다. 크레인 조종실 바깥에 위태롭게 선 강병재를 향해 우리는 풍선을 띄웠다. (사진 : 박성훈 홍보실장)

지역현장2 사진2_크레인

문화제를 마치고는 공장 입구로 가 퇴근하는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선전전을 펼쳤다. 주말인데도 노동자들의 행렬은 끝이 없었다. 저마다 자전거를 끌고 나오는 고단한 표정들. 정규직 노동자, 하청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외국인 노동자, 가끔 20대의 앳된 노동자들이 우리 앞을 지나갔다. 어떤 노동자들의 헬멧에는 “누구도 다쳐선 안 된다”고 적혀있었다. 누구도 다쳐선 안 된다. 강병재도, 다쳐선 안 된다. 무사히 내려와야 한다.

희망버스는 다시 바삐 부산으로 향해야 했다. 퇴근행렬이 끝남과 동시에 우리는 버스로 향했다. 떠나기 직전, 나양주 거제당협 위원장과 송미량 거제시의원이 우리에게 인사했다. 내년 총선, 우리는 그들을 응원하기 위해 기꺼이 다시 올 것이다.

 

부산시청 앞, 희망의 밤

 

거제와 부산을 잇는 거가대교를 지날 때 창문 너머로 노을이 아름답게 졌다. 부산 생탁 연산공장 앞에 도착한 때는 어둠이 짙게 깔린 즈음이었다. 또 다시, 경찰들이 먼저 맞이했다. 밤처럼 까만 옷과 까만 방패들이 버스에서 내리는 우리를 매섭게 노려봤다. 공장 진입로는 트럭 두 대로 막혔고, 채 막지 못한 곳은 직원 몇이 몸으로 막고 서있었다. 그 앞에서 우리는 집회를 열었다. 발언 중 누군가가 ‘생탁’은 ‘(생탁을 마시면) 생각이 탁 트인다’라는 뜻이라고 일러주었다.

결의를 다진 후 송복남과 심정보가 농성하는 부산시청으로 행진했다. 거리는 대체로 고요했다. 우리는 고요한 거리를 향해 호소했다. 이따금 욕지거리를 하는 행인들이 있었다. 우리는 그들을 향해서도 호소했다. 김무성에게 호소했고, 부산시장 서병수에게 호소했다. 저 멀리 부산시청이 보였다. 광고탑이 보이고, 송복남과 심정보가 보였다. 밀양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보였다. 입장하는 우리에게 밀양이 박수를 보냈다. 눈물이 핑 돌았다.

부산시청은 높았다. 토요일 밤인데도 사무실 곳곳에 불이 켜져 있었다. 중무장한 경찰들이 그 앞을 가로막았다. 그들을 넘어서 서병수에게 다가가기엔 우리는 너무 적고 약했다. 문화제가 시작됐다. 차광호가 사회를 봤다. 열둘의 노동자가 무대에 올랐고, 동지가를 불렀다. 송복남, 심정보와의 전화통화는 바로 옆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생생했다. 서울에서 농성하는 최정명, 한규협과의 전화통화도 이어졌다. 소리는 멀었다. 문화제는 자연스럽게 비(非)생탁 막걸리 축제로 이어졌다. 전국 각지의 막걸리들이 연대의 꽃을 피웠다. 빈병들은 수거해 대형 형상물을 만들었다. 쌍용차 해고자 고동민의 맛깔나는 사회와 함께 희망버스의 밤이 저물어갔다.

송복남과 심정보가 농성 중인 부산시청 앞에서의 문화제는 비(非)생탁 막걸리 축제로 이어졌다. 전국 각지의 막걸리들이 연대의 꽃을 피웠다. (사진 : 박성훈 홍보실장)

송복남과 심정보가 농성 중인 부산시청 앞에서의 문화제는 비(非)생탁 막걸리 축제로 이어졌다. 전국 각지의 막걸리들이 연대의 꽃을 피웠다. (사진 : 박성훈 홍보실장)

재즈뮤지션인 이효정 당원이 일군의 청년당원들에게 숙소를 제공했다. 우리는 거기서 또 먹고 마셨다. ‘자연의 신비’를 믿고. 다음 날 아침에는 이효정 당원이 해장으로 추어탕까지 내어주셨다. 이 지면을 빌려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저 노동자들을 땅으로 내리기 위해

 

마지막 일정은 부산 영도에 위치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의원실 앞에서 진행했다. 우리는 택시를 타고 영도로 넘어갔다. 김무성 의원실엔 무슨 일로 가냐는 택시기사님의 질문에 그냥 만날 사람이 있어 간다고 둘러대며 넘어가던 길, 창문 밖으로 한진중공업 공장이 보였다. 4년 전 이곳에서 희망버스가 시작됐다. 영도에 도착하자 또, 경찰들이 길을 안내했다. 건물은 봉쇄돼 있었다. ‘천하제일욕설대회’를 하고, 기자회견을 마지막으로 희망버스의 공식 일정은 마무리됐다. 서울에 올라와서는 대한문 앞에서 내렸다. 횡단보도 너머로 국가인권위원회 옥상에서 농성하는 최정명과 한규협이 보였다.

전반적으로 침착하고 차분한 희망버스였다. 내가 갔던 울산 희망버스나 밀양 희망버스에 비하면 특히 그랬다. 기획력 부족인가 싶다가도, 결국 그것 자체가 이 나라에서 노동자들이 얼마나 열악한 상황에 처했는지를 반영한다고 생각했다. 한 사람이 하늘 위에 걸려 몇 백일을 먹고 싸고 자는 위태로운 일이, 이 나라에서는 너무나 빈번하다. 그래서 한 농성장에 집중하지 못하고 세 곳을 연달아 방문하는 일정을 짤 수밖에 없고, 그래서 차분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노동당이다. 이 산발적인 투쟁들을 한데 모아내고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옳은 길을 가고자 하는 우리 노동당이 강해지는 것뿐이다. 이 마지막 문장을 적는 시점이 마침 당 대표단 선거 마지막 날이다. 누가 당선되든, 저 하늘 위 노동자들에게 믿음을 줄 수 있는 정당을 만들어가기를 간곡히 요청드린다. 최정명, 한규협, 강병재, 송복남, 심정보. 그들을 땅으로 내릴 수 있는 정당을 만들어가기를!

 

희망버스에 함께한 노동당원들. 하늘 위 노동자들을 땅으로 내릴 수 있는 정당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사진 : 박성훈 홍보실장)

희망버스에 함께한 노동당원들. 하늘 위 노동자들을 땅으로 내릴 수 있는 정당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사진 : 박성훈 홍보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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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당 경남도당, <홍준표 도정 1주년 평가백서> 발행

[2015.09·10 제24호 지역에서 현장에서]

노동당 경남도당, <홍준표 도정 1주년 평가백서> 발행

 

안혜린|경남도당 홍준표 도정평가단 집행위원장

 

 

 

* 편집자의 말 :  노동당 경남도당이 지난 7월 27일 <홍준표 도정 1주년 평가백서>를 발행하였다. 기관지 발간 일정과 당대표단 선거특별호 발간 등으로 소개가 좀 뒤늦었지만, 진보정당 차원에서의 도정 평가백서 발행은 전국 최초인 바, 이는 지역 차원에서의 당의 중요한 성과 중 하나라고 생각되기에 이번 10월호에 백서 발행 과정과 백서의 주요 내용을 소개한다.

 

1. 백서 발행 과정

 

지난 7월 1일은 홍준표 도지사가 제36대 경남도지사로 취임한 지 1주년이 되는 날이었다. 취임한 지 겨우 1년, 2012년 말에 보궐선거로 당선된 때로부터 계산해도 2년 반밖에 되지 않은 시간 동안 정말 많은 일이 있었다. 진주의료원 강제 폐업과 재개원 거부, 전국 유일의 학교무상급식 중단 사태, 성완종 리스트에 기재된 1억 원 수수 의혹, 그 밖의 수많은 갈등과 사건사고 등으로 경남지역은 단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었다.

이에 노동당 경남도당은 취임 1주년인 7월 중에 ‘홍준표 도정 1주년 평가백서’를 발행하기로 하고, 이를 위한 도당 산하 특별위원회로 ‘홍준표 도정평가단’을 구성할 것을 지난 4월 운영위원회에서 결정하였다. 도정평가단장은 박홍진 경남도당 위원장이 맡고, 실무진행은 안혜린 도정평가단 집행위원장(경남도당 부위원장)과 이장규 도정평가단 정책기획위원장(경남도당 정책위원장)이 책임을 맡았다. 자료준비팀은 심인경, 양솔규, 허훈 경남도당 당원이 맡아서 백서에 들어갈 자료의 대부분을 준비했다.

5월 7일 도정평가단의 첫 기획회의가 열렸다. 이 회의에서 평가백서의 각 평가주제 및 주제별 자료준비팀과 평가책임자를 선정했다. 평가주제는 크게 네 가지 분야를 다루기로 하였다. 홍준표 도지사의 공약 실천과 관련된 검증, 학교무상급식 중단 사태, 진주의료원 폐업과 재개원운동, 1억 원 수수 의혹을 비롯한 홍준표 도지사의 각종 행적 논란 등이 그것이다. 평가책임자로는 장상환, 진헌극, 임석영, 여영국 당원을 선정하여 각 주제별로 평가 관련 자문을 받았다.

이후 6월 말까지 몇 차례의 기획회의 겸 자료준비팀 회의를 거치며 평가주제별 자료준비를 진행했고, 6월 말 이후에는 각 주제별 자료준비팀과 평가책임자 간의 소통을 통해 준비된 자료에 대한 평가가 이루어졌다. 7월 중순에 그간 준비된 자료와 평가 등을 모두 취합하고, 편집과 교정을 거쳐 인쇄에 들어가 7월 27일자로 《홍준표 도정 1주년 평가백서》가 발행되었다. 7월 29일에는 백서 발행과 관련된 기자회견을 하였는데, TV와 신문 등 지역언론에 많이 보도되었고 라디오 인터뷰도 이루어졌다.

노동당 경남도당이 7월 29일 오전 경남도청 프레스센터에서 《홍준표 도정 1주년 평가백서》 출간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 경남도민일보 제공)

노동당 경남도당이 7월 29일 오전 경남도청 프레스센터에서 《홍준표 도정 1주년 평가백서》 출간을 알리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사진 : 경남도민일보 제공)

평가백서는 총 250부를 발행하여, 도내 언론과 노동조합, 시민사회단체, 대학교, 주요 행정기관 등에 배포하였다. 노동당 중앙당과 각 시도당 및 경남도당 산하 각 지역당협에도 배포하였다. 발행부수가 많지 않아 단체별로 1부 정도밖에 배포하지 못한 것은 아쉬움으로 남는다. 혹시 평가백서의 내용이 궁금하신 분이 있다면, 경남도당 홈페이지에 평가백서 전체가 PDF파일로 올려져있으니 다운받아 보시길 바란다. (http://newjinbogn.org/zbxe/free1/283475)

 

 

2. 백서의 주요 내용

 

① 홍준표 도지사 공약 실천 관련 검증

홍준표 도지사는 경남도 채무감축을 가장 중요한 치적으로 내세운다. 홍준표의 경남도가 채무감축을 한 것은 맞다. 그러나 최소한 그 기준은 정확해야 한다. 2012년 12월 24일 보도자료에서 경남도는 2012년 12월 말 현재 경남도 부채액이 9488억 원이라 했으나, 2015년 3월 31일 보도자료에서는 2013년 1월 당시 1조 3488억 원의 채무가 있다고 주장했다. 홍준표 도지사 취임 직후 한 달 만에 4천억 원의 부채가 증가했다. 자신의 치적을 부풀리기 위해 부채액수를 늘린 것이 아닌지 의심되는 부분이다.

또한 홍준표 도지사는 거가대교 재구조화를 통해 경남도의 재정 부담을 줄임으로써 자신이 취임 1년여 만에 경남의 오랜 숙원을 해결했다고 선거공보물에서 주장했다. 거가대교 재구조화는 2011년 이래 경남과 부산이 합심하여 자치단체의 재정 부담을 줄이기 위해 노력한 결과였다. 홍준표 도지사는 경남과 부산의 이전 단체장들이 해결을 위해 계속 노력했던 사업을 추인했을 뿐이지, 미해결 숙원사업을 해결한 것이 아니다.

홍준표 공약이 실천되는 실상은 산청의 한방항노화산업단지(이하 항노화산단)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경남도는 2014년 7월 보도자료를 통해서 항노화산단을 30만 6천 제곱미터 규모로 조성할 계획이며 34개 업체, 29만 3천 제곱미터의 입주의향서를 확보했다고 했다. 그러나 발표한 지 4개월도 지나지 않아 34개 업체가 6개 업체로 줄어들었다가 이듬해인 2015년 4월에는 산단 조성 면적마저 16만 7천 제곱미터로 축소되었다. 확정되지도 않은 일을 일단 부풀려서 발표했지만 준비 부족으로 실제 사업은 제대로 추진되지 않았다. 2013년에 개최된 산청세계전통의약엑스포 또한 선거공보물에서는 “경남의 꺼진 엔진에 시동을 걸었다”면서 성공사례로 홍보하더니, 2015년에는 “무분별한 국제행사”라면서 지원을 중단하겠다고 발표했다. 합천의 대장경세계문화축전 또한 마찬가지다.

서부청사 기공식의 홍보물. 항노화산단, 지리산 케이블카, 서부청사 건립 등을 함께 소개하며 ‘서부 대개발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서부청사 기공식의 홍보물. 항노화산단, 지리산 케이블카, 서부청사 건립 등을 함께 소개하며 ‘서부 대개발의 시작’을 알리고 있다.

서부청사와 관련해서도 서부청사로 이주할 기관들과 홍준표 도지사가 선거에서 약속한 공약들에 크게 차이가 있다. 서부청사에 농업 관련 부서들이 이전해옴에도 불구하고 홍준표 지사가 서부경남권역에 약속한 공약사업 중 농업 관련 공약은 총 21개 중 5개에 불과하다. 즉 서부경남을 어떻게 발전시킬지에 대한 전체적인 계획 하에서 서부청사 건립을 추진한 것이 아니라, 일단 만들어놓고 ‘만만한’ 농업 관련 부서들을 이전시킨 것이라고 의심할 수밖에 없다. 옮기는 공무원 또한 664명으로, 2010년에서 2013년 사이에 진주지역에서 줄어든 공공부문노동자 수(809명)에 못 미친다.

홍준표 도지사는 그의 선거공보에서 “천혜의 자연을 지켜갑니다”라고 말했다. 그럼에도 홍준표 도지사는 경남도민이 모두 반대했던 남강 물 부산 공급을 위한 댐건설을 공공연히 말하며 산청사람과 함양사람을 서로 싸우게 만들었다. 또한 지리산 난개발 프로젝트의 정점인 지리산 케이블카를 다시 추진 중이다.

 

② 학교무상급식 중단 사태

경남의 무상급식은 정치 논리로 시작된 것이 아니다. 서울이나 경기에서 무상급식 논란이 일기 이전인 2007년에 거창군에서 전국 최초로 시작되었고, 이후 2010년까지 서부경남의 군 지역을 중심으로 경남 11개 시군으로 확대되었다. 경남, 특히 서부경남의 군 단위 자치단체들은 2000년 이후 급속한 인구감소로 인하여 존립근거마저 위협받았다. 이에 인구감소를 막고 해당 지역 학생의 역외유출을 막기 위한 다양한 방도를 연구한 결과 나온 대책이 무상급식이었다. 이런 노력에 따라 무상급식이 확산됨으로써 2010년 8월 9일 경남도청과 교육청이 경남 전체에 대한 무상급식 확대 추진을 합의했고, 이와 함께 경남의 무상급식이 본격화되었다.

홍준표 도지사 취임 이후, 경남도청은 2013년부터 무상급식 식품비 분담비율을 도청과 교육청 각각 50(도비 및 시군비) 대 50(교육청 부담)으로 조정할 것을 요구했다. 2014년 무상급식 분담률은 지속적인 논의에도 불구하고 합의에 이르지 못하다가 개학을 2주 앞둔 2014년 2월 17일에야 겨우 도와 교육청이 합의하여 파국을 피할 수 있었다. 하지만 2014년 7월부터 시작된 2015년 무상급식 실시 계획 논의에서는 2013년과 마찬가지로 식품비 분담률에 대한 도와 교육청의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았다. 무상급식 식품비 분담률은 도와 교육청의 무상급식을 둘러싼 논쟁의 모든 것이었고, 날선 공방이 계속되었다.

급기야 경남도는 2014년 10월 15일, 2015년 무상급식 식품비 분담률을 50%(도비 및 시군비)로 축소하겠다고 교육청에 일방적으로 통보했다. 경남도의 감사 근거는 2013년 모니터링에서 문제가 되었던 “고등학교 급식재료 구매실태에 대한 관리 소홀”이었다. 도가 감사 근거로 제시한 사례는 2013년 모니터링 과정에서 발견된 사례로, 군 지역 고등학교에 지원하는 급식비 중 교육청에서 지원하는 식품비를 일부 학교에서 식품비가 아닌 운영비와 인건비로 전용한 일을 말한다. 그런데 도비와 시군비는 정확히 식품비로만 사용했고, 원래 교육청에서는 급식비 이외에도 운영비와 인건비를 지원한다. 일선 학교 입장에서는 어차피 교육청에서 지원하는 비용이니만큼 운영비와 인건비의 부족분을 식품비에서 전용하는 일에 큰 문제의식을 느끼지 않았을 수 있다. 물론 일종의 예산전용이므로 옳은 것은 아니지만 사정은 이해되는 측면이 있다. 게다가 경남도는 2014년에 실시한 모니터링 결과 총평에서 “교육청과 학교 현장에서 도청의 시정요청사항(식품비를 운영비와 인건비로 전용하지 말 것)을 지속적으로 개선하고 있음을 긍정적으로 지적”했다. 경남도는 잘 개선되어가고 있다고 스스로 인정한 문제를 다시 거론하며 감사를 요구한 것이다. 결국 경남도의 감사 요구는 감사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니라 이를 핑계로 식품비 분담률을 줄이고자 한 것이며, 이를 교육청이 받아들이지 않자 무상급식 지원을 아예 중단하는 초강수를 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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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동당 경남도당은 무상급식비 지원중단 철회와 서민자녀교육지원조례안 철회를 요구하는 투쟁을 꾸준히 진행해왔다. (사진 : 노동당 경남도당)

경남의 군들에게 무상급식은 이념의 문제가 아니라 지역존속의 문제였다. 교육에 투자함으로써 젊은 층을 지역에 남겨두기 위한 고민의 결과였다. 이렇듯 경남에서 무상급식이 시작된 원인은 지역을 존속시키는 데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에 대해 무지한 홍준표 도지사는 서울 등에서 벌어졌던 무상급식을 둘러싼 정치투쟁을 경남에서 재현하며 이를 정략적으로 이용했다.

 

③ 진주의료원 폐업 사태와 재개원운동

진주의료원은 3개월 반 정도의 짧은 기간에 모든 폐업 과정이 이루어졌다. 급속하게 폐업이 진행됨에 따라 절차상 많은 무리가 있었다. 해산조례안이 상정조차 되지 않은 상태에서 폐업 방침이 발표되었고, 폐업신고 또한 해산조례안이 아직 통과되지 않았을 때 이루어졌다. 지역주민들의 여론이나 보건복지부의 입장은 물론이고 새누리당의 의견조차 철저히 무시되었다. 또한 폐업 과정에서 환자의 건강권이 심각하게 침해되었다. 한국의 공공의료 비중이 기형적으로 낮은 상태에서, 공공의료기관인 진주의료원을 폐업했다는 것 또한 문제이다. 메르스 등 신종 감염병에 대한 대응, 의료취약지역의 의료수요 대응, 의료보호환자 등 저소득층에 대한 의료안전망 역할 수행 등을 위해서는 공공의료기관이 필수적임에도 일방적으로 폐업해 버렸다.

진주의료원을 폐업하면서 경남도가 내세운 핵심적인 논리는 부채와 적자 문제였다. 도는 진주의료원의 부채규모가 279억 원으로 크고, 매년 40억~60억 원의 적자를 보고 있기 때문에 폐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안정성을 판단하는 일차적인 지표는 부채의 절대액이 아니라 부채비율이다. 2012년 결산 기준으로 진주의료원의 부채비율은 84.3%로 그리 나쁘지 않았다. 게다가 이는 자산재평가를 하지 않은 것으로서, 급상승한 땅값 등을 고려하면 진주의료원의 실제 자산가치는 최소 1,000억 원 이상이다. 이를 감안하면 부채비율이 30%에도 못 미치므로, 부채가 과도하다는 주장은 사실이 아니다. 적자가 과도하다는 주장 역시 부풀려진 것이다. 장부상으로는 60억 원대의 막대한 적자가 났지만, 감가상각비 등 장부상의 손실을 제외한 진주의료원의 실제 현금 흐름상의 손실은 연평균 10억 원 가량에 지나지 않았다. 또한 타 지방자치단체에 비해 경남도의 지방의료원에 대한 지원은 극히 미흡했다. 그럼에도 적자나 혈세 지원을 이유로 폐업하겠다는 논리는 아무런 설득력이 없다.

진주의료원 강제폐업발표 2년을 맞아 진주의료원 주민투표추진 경남운동본부가 경남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 중이다. (사진 : 노동당 경남도당)

진주의료원 강제폐업발표 2년을 맞아 진주의료원 주민투표추진 경남운동본부가 경남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 중이다. (사진 : 노동당 경남도당)

그럼에도 진주의료원을 절차도 무시한 채 폐업시킨 진정한 이유는 홍준표 도지사의 핵심공약이었던 서부청사 건립 때문이었다. 홍준표 도지사가 서부청사 건립과 부채규모 축소라는 모순된 목표를 동시에 달성하기 위해서는 진주의료원을 희생양으로 삼을 수밖에 없었다. 실제로 이후의 진행 과정은 폐업된 진주의료원을 리모델링해서 서부청사를 건립하는 것으로 귀결되었다. 결국 홍준표 도지사 개인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공공의료를 포기했다고 평가할 수밖에 없다.

폐업 이후에도 경남도와 홍준표 도지사는 불통과 거부로 일관했다. 보건복지부의 해산조례 재의 요구도 거부하고, 국회의 국정조사에 대해서도 기관보고나 증인출석을 위한 동행명령을 거부했다. 진주의료원 재개원을 위한 주민투표에 대해서도 홍준표 도지사는 청구인 대표자 불교부로 대응하고, 소송에서 패소해도 계속 항소를 거듭했다. 결국 대법원에서 “거부처분은 위법하다”고 판결하자 마지못해 대표자 증명서를 교부했지만, 주민투표 청구를 하더라도 실제 투표를 실시하지는 않을 거라고 으름장을 놓고 있다. 2015년 여름을 강타한 메르스 사태는 진주의료원으로 상징되는 공공의료의 필요성과 중요성을 다시 환기시켰다. 하지만 홍준표 도지사와 경남도는 반성을 하기는커녕, 고소고발로 대응하는 등 공공의료에 대한 어떤 인식변화도 없이 이전의 잘못을 되풀이하고 있다.

 

④ 홍준표 도지사의 각종 행적 논란

올해 4월 9일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경남기업 성완종 회장이 죽기 전 경향신문과의 인터뷰에서 홍준표 도지사에게 정치자금 1억 원을 전달했다고 증언했다. 이와 관련해 검찰은 7월 2일 홍준표 지사를 불구속 기소했다. 측근의 증거인멸 시도 등이 있었음에도 불구속 기소한 것은 검찰수사의 관례에 어긋난다. 수사 과정 중에도 많은 논란이 있었다. 홍준표 도지사는 성완종의 메모가 반대신문을 할 수 없으므로 증거로 채택될 수 없다고 주장하지만, 자신이 검사로 근무하던 당시 ‘슬롯머신’ 수사에서는 반대신문을 할 수 없는 상태(도주)에서도 증언을 증거로 채택한 바 있다.

또한 수사 중 검찰이 2011년 한나라당 대표 경선 기탁금 1억 2000만 원의 출처가 불확실하다고 추궁하자 홍 지사는 아내의 비자금이라고 해명했다. 변호사 때의 수입과 국회운영위원장 당시의 ‘국회대책비’를 모았다는 것이다. 하지만 변호사 때의 수입을 비자금으로 관리했다면 ‘재산신고 누락’으로, 공직자윤리법 위반이다. 국회대책비를 부인에게 준 일은 더 큰 문제이다. 국회대책비는 국회운영위원장 활동에 쓰라는 공금이지 개인적으로 쓰라는 돈이 아니므로 일종의 공금횡령이 된다. 해명이 또 다른 범죄혐의를 초래한 셈이다.

그 외의 행적에서도 홍준표 도지사는 ‘갈등 유발 정치’의 1인자라 할 수 있다. 도지사 취임 이후 끊임없는 갈등으로 단 하루도 조용한 날이 없을 정도였다. 박완수 전 창원시장과의 갈등, 도내 국회의원과의 갈등, 언론과 관련된 여러 가지 갈등, 도교육청과 교육장과의 갈등, 노동당 여영국 도의원 등 야당 도의원과의 갈등 등이 쉴 새 없이 벌어졌다. 최근에는 안상수 창원시장과도 갈등을 벌이고 있다. 문제는 이것이 그냥 갈등으로 끝나지 않고, 각종 고소고발이나 진행 중인 사업 중단 등 일종의 ‘보복’으로 이어진다는 것이다. 대화와 소통을 통해 갈등을 해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주장만을 독선적으로 고집하면서 갈등의 상대방에 대해 고소고발이나 사업 중단으로 보복하는 것이 홍준표 스타일의 특징이다. 한 마디로 정치가나 행정가라기보다 ‘싸움꾼’ 내지 ‘전직 검사’라고 할 만하다.

그 밖에도 인사 문제, 관사와 관용차 문제, 막말 논란, 경남FC 문제, 해외출장 중 평일 골프 문제 등등 온갖 논란이 끊이지 않았다. 도지사가 되기 이전에도 이른바 ‘저격수’로 유명했다. 한 마디로, 갈등을 더 키우면서 자신의 정치적 입지를 다지는 스타일이다. 하지만 그 갈등의 피해는 결국 경남도민들이 입고 있다. 갈등을 통해 지지세력을 결집시키려는 자신의 정치적 목적을 위해 상식적인 과정을 무시하는 ‘독선적 일방 행정의 표본’이라는 것이 홍준표 도정에 대한 최종적인 평가의 결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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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의 선택, 최저임금 1만원

[2015.08 제23호 지역에서 현장에서]

국민의 선택, 최저임금 1만원

 

구교현|최저임금1만원 모든 노동자 권리보장 운동본부 본부장, 아르바이트노동조합 위원장

 

 

 

저임금 일자리라는 암세포, 최저임금 1만원으로 고칠 수 있다

 

우리사회에는 저임금 비정규 불안정 노동자들이 넘쳐난다. 일자리를 가지지 못한 사람들부터, 낮은 임금으로 생계를 꾸려가기 어려운 직장인들, 퇴직 후에도 여전히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장년층까지, 수많은 국민들이 가장 임금이 낮고 불안정한 일자리에서 노동을 하며 살아간다. 최저임금 문제는 최소 100만, 최대 300만으로 추정되는 아르바이트 노동자들에게도 생존이 달린 문제이다.

한편, 저임금 일자리의 확대는 수많은 자영업자들을 양산했다. 이 좁은 나라의 치킨집 수는 3만 2천여 개. 전 세계 맥도날드 매장 수 3만 6천여 개에 가까운 수준이다. 이 같은 과도한 경쟁도 모자라 자영업자들은 높은 임대료와 금융수수료 수탈, 프랜차이즈의 경우 가맹본사의 수탈까지 각종 다양한 수탈에 시달려야 한다. 그나마 유통업을 중심으로 대기업의 시장점유율이 높아지면서 자영업자들의 설자리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저임금 일자리의 확대가 수탈당하는 자영업자들의 탈출구를 완전히 틀어막은 상태인 것이다.

또한 저임금 일자리의 확대는 수많은 청년실업자를 양산했다. 청년실업은 일자리의 절대량이 부족해 발생하는 문제가 아니라, 청년들이 원하는 양질의 일자리, 다시 말해 임금이 높고 고용이 안정된 일자리가 부족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문제다. 기업들은 중소기업 대기업 할 것 없이 신규채용을 줄이며 채용감소규모를 매년 갱신하고 있고, 청년 실업률은 꾸준히 늘어나 이제 10%를 육박했다. 서울시의 실질 청년실업률은 31.8% 수준이라는 충격적인 연구결과도 있다. 청년 10명중 6명이 가장 극단적인 저임금 불안정 노동인 아르바이트를 하며 살아가고, 10명 중 7명은 “미래가 불안하다”고 말한다. 심화되는 청년실업은 우리사회의 미래마저 불투명하게 만들고 있다.

더불어 저임금 일자리의 확대는 OECD 최장의 노동시간, OECD 최고의 임금격차, OECD 하위권의 노동소득분배율을 초래했다. 대한민국 노동자들은 세계적으로 가장 길게 일하면서도, 가장 가난한 노동자들이다. 역설적인 이 상황의 결정적 원인은 기가 막히게 낮은 대한민국의 최저임금이다.

이렇듯 저임금 일자리는 우리사회의 암적인 존재다. 사회 곳곳으로 빠르게 확산되며 경제를 마비시키고, 노동자·자영업자 등 대다수 국민들의 생존을 위협한다. 암이 말기로 치닫기 전에, 우리사회가 돌이킬 수 없는 죽음을 맞이하기 전에 대대적인 수술이 필요하다. 저임금 일자리들을 깨끗이 도려내고 최저임금 1만원 일자리들을 투입해야 한다. 200~300원의 인상 수준이 아닌 1만원으로의 최저임금 대폭 인상은 기본급이 낮은 정규직 노동자를 포함한 모든 노동자의 임금을 높이고, 고임금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을 줄일 수 있게 만든다. 노동시간이 줄어들면 일자리도 늘릴 수 있다. 올해 사상 최대를 기록한 대기업의 주식배당, 대기업의 내부거래, 사내유보금을 풀면 최저임금 1만원 일자리는 충분히 가능하다.

 

국민이 선택한 최저임금 1만원

 

최저임금1만원 모든 노동자 권리보장 운동본부(이하 운동본부)는 상반기 최저임금 사업으로 국민투표를 구상했다. 최저임금이 2천만 명에 달하는 국민들의 임금기준선이 되고, 300만 명에 가까운 국민들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는데도, 최저임금 결정 과정에서 국민들의 의사를 물은 적은 단 한 번도 없었기 때문이다. 실제 최저임금 1만원에 대한 지지여론을 확보하기 위해서라도 국민들의 의사를 묻는 과정이 중요하다고 판단했다.

국민투표는 6월 한 달 간 진행되었으며 노동계의 주장 “최저임금 노동자와 가족의 생계를 위해선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인상해야 한다”와 경영계의 주장 “매년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기업 부담이 과도하므로 안정화해야 한다”에 대한 국민들의 선택을 묻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6월 2일 경총 앞에서 진행한 국민투표 제안 기자회견 (사진: 박성훈 홍보실장)

6월 2일 경총 앞에서 진행한 국민투표 제안 기자회견 (사진 : 박성훈 홍보실장)

5월31일, 최저임금 1만원을 가장 먼저 주장한 故 권문석 동지의 2주기 추모제에서 국민투표 개막행사를 열어 국민투표의 시작을 알렸다. 이후 6월 한 달 간, 노동계의 주장 “최저임금 노동자와 가족의 생계를 위해선 최저임금을 1만원으로 인상해야 한다”와 경영계의 주장 “매년 최저임금 인상에 따른 기업 부담이 과도하므로 안정화해야 한다” 중 국민들의 선택을 묻는 방식으로 국민투표를 진행했다. 6월2일에는 경총 앞에서 기자회견을 개최해, 최저임금위원회 사용자위원들을 대표하는 경총이 국민투표사업에 함께 할 것을 제안했다. 투표는 온․오프라인에서 활발히 진행되었고, 총 2만5천186명이 참여했다. 결과는 생각보다 압도적이었다. 투표에 참여한 국민들 중 95%가 노동계의 주장을 선택했다. 경영계의 주장이 매년 최저임금 결정에지대한 영향을 미쳐왔지만, 정작 그들의 주장을 지지하는 국민들은 별로 없다는 사실이 드러난 것이다.

이번에 진행된 최저임금 국민투표는 미디어의 주목이나 국민들의 높은 관심을 받지는 못했다. 당내 여러 상황 때문에 오프라인에서 적극적인 투표운동을 전개하지 못하고, 노동당 이외에 함께할 단위들을 발굴하지 못한 점이 한계로 지적되었다. 홍보만화를 제작하기는 했지만, 최저임금에 대한 더 다양한 홍보 컨텐츠를 개발하지 못한 것도 아쉬운 점이다. 하지만 별다른 광고가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SNS 등에서 꾸준히 회자되며, 최저임금에 대해 할 말이 있는 사람이나 자기의사를 표현하고 싶은 사람들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실시 기간의 차이는 있지만, 이 시기에 있었던 최저임금을 주제로 한 국민여론조사 중 가장 많은 응답자를 확보한 사업이기도 했다. 또한 국민투표 사업이 내년 총선을 앞두고 노동당의 주요 주장을 효과적으로 선전하고 사실상 노동당에 투표하라는 메시지를 전파할 수 있는 꽤 적절한 수단이라는 판단도 가능했다. 향후 더 다양한 의제들을 가지고 좀 더 적극적으로 국민투표 사업을 기획할 필요가 있다.

 

최저임금 1만원 사업,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7월 9일 새벽, 최저임금위원회가 내년도 최저임금을 6,030원으로 결정했다. 450원 인상. 국민들의 삶은 또 100원짜리 몇 개의 흥정으로 치환되었다. 이번에도 사용자위원들은 동결안을 고수했고, 막판에 10원짜리 인상안을 내놨다. 노동자위원들은 1만원에서 8,100원까지 요구안을 낮췄지만, 어림도 없는 공익위원안에 회의장을 박차고 나왔다. 이미 심의가 끝나기 전부터 예상된 상황이었고, 결정된 금액까지도 예상치를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의 과정과 결과 또한 충분히 예상 가능하다. 몇 백 원 수준의 인상으로 최저임금 노동자들은 사실상 말라죽어 가고 있다.

노동당은 이를 해결하기 위한 대안을 모색해야 한다. 당장 공익위원들에게 책임을 묻는 활동부터 시작해, 최저임금위원회 제도의 전면수정과 최저임금 1만원을 통한 우리사회 노동시장의 혁신까지 하나의 그림으로 제시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보다 많은 사람들의 참여해 영향력 있는 여론을 형성하기 위한, 업그레이드 된 국민투표사업을 기획해야 한다. 올해 처음 노동계의 요구로 최저임금 1만원이 채택되면서 국민들 사이에 1만원에 대한 우호적인 여론이 형성되고 있는 만큼, 최저임금 1만원을 주제로 한 사업을 보다 적극적으로 추진해야 할 것이다.

노동당이 최저임금 1만원과 같은 새로운 노동의제를 선도하는 정치세력이 될 수 있도록 많은 당원 동지들의 관심을 부탁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