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주민참여예산제 개선방안

[2015.11 제25호 정책포럼]

서울시 주민참여예산제 개선방안

 

김상철|서울시당 위원장

 

 
아래의 문서는 지난 4년 동안 서울시 참여예산지원협의회 위원으로 참여하면서, 매년 참여예산사업의 선정이 끝나고 차년도 제도개선안을 마련하기 위해 지원협의회 차원에서 제출하는 개선방안 의견서로 준비된 내용이다. 올해의 경우에는 대표집필을 김상철 서울시당 위원장이 하였기에, 그 내용을 《미래에서 온 편지》를 통해 소개한다. 서울시는 현재 해당 의견을 기초로 내년도 제도운영계획 개선방안을 마련 중이다. (2015. 10. 현재)

 

주민참여예산제에 대한 기대

 

○ 참여예산제는 단순히 법 개정에 따른 행정절차로만 볼 수 없는 특징이 있으며, 이에 따라 여타 참여제도보다 역동성과 갈등 가능성에 대해 개방적인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음

– 무엇보다 참여예산제에 함께하는 지원협의회 민간회원의 입장에서는 서울시의 참여예산제가 (1) 시민의 역량을 강화시키면서 (2) 시민과 행정이 함께 변화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한편 (3) 기존의 하향식 예산편성 관행을 극복하는 재정민주주의의 상징적 모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음

○ 따라서, 이번 논의가 참여예산제를 제대로 정립하고 새로운 행정 거버넌스, 참여민주주의와 시민주도형 도시정책을 모색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으면 함

 

주민참여예산제 4년 간 추진경과

 

○ 천만에 가까운 인구 수, 연간 20조 원이 넘는 재정을 운영하는 서울시에서 도입된 유래 없는 광역도시형 참여예산제의 실험

– 250명의 시민이 직접 참여하고 500억 원에 달하는 사업예산을 직접 결정하는 유형은 사례가 없음에도 4년차의 정착기에 접어들었음
– 초기에는 기존 참여제도(구 참여예산, 주민자치회, 각종 위원회 등) 경험자의 비중이 높았으나 점차 청년층을 비롯하여 처음 참여행정을 경험하는 대상이 늘어나는 추세임

○ 매년 제도 개선을 위한 광범위한 논의와 이를 적극 반영하는 제도의 탄력성이 중요한 장점

– 2013년 분과위원장의 남녀동수제, 자체 윤리규정 마련, 2014년 온예산위원 과정의 제도화, 시민참여단운영, 2015년 구/시사업의 분리, 시민전자투표 실시 등

○ 자치구 참여예산제도의 촉진보다는 사업 선정을 둘러싼 갈등이 격화되고 참여예산제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이 낮은 한계 역시 뚜렷하게 나타남

– 자치구별 위원선정 방식, 제안사업의 자치구 꼬리표에 따른 자치구 경쟁 격화와 담당부서를 제외한 기타 서울시 부서의 제도에 대한 참여와 지원이 저조

 

실태분석 및 문제점

 

○ 위원공모 및 예산학교

– 이제까지 참여예산위원은 7:1 정도의 경쟁률을 보일 정도로 높은 참여수준을 보이고 있으나, (1) 상대적으로 50대 이상의 경쟁률이 높고 (2) 7배수에 달하는 응모자에 대한 후속 사업이 전무하며 (3) 상시적인 위원 충원이 필요함에도 이에 대한 제도보완이 되지 않고 있는 점은 개선해야 될 부분임
– 예산학교는 참여예산위원의 위촉 전에 한 차례 이루어지며 총 9시간 이수가 필요한 과정임. 하지만 (1) 연임위원을 위한 별도의 심화 프로그램이 부재하고 (2) 실제 참여예산위원으로서 활동하면서 겪게 되는 실질적인 문제해결을 위한 보수교육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고 (3) 예산학교의 이수자만 참여예산위원이 될 수 있는 조건에서 예산학교의 이수자들이 상시적으로 충원할 수 있는 참여예산위원의 풀이라는 점을 정확하게 고려되고 있지 못함

○ 사업제안단계

– 올 해부터 자치구 사업과 광역 사업을 분리하여 사업제안을 실시하였으나 (1) 사업의 실질적인 내용을 보면 대부분 자치구 사업에 머무르고 있으며 (2) 매년 반복되는 사업(이를테면 하수관로 개선, CCTV설치 등)이 참여예산사업으로 제안되는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함
– 참여예산제의 특성상 생활권 사업의 비중이 높을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1) 신규사업에 대한 인큐베이팅 기능이 전무함에 따라 최종적으로 사업선정에서 배제되는 일(이를테면, 예산수준을 알 수 없어 사업비 0원이라 표기된 사업은 분과회의서 배제)이 잦고 (2) 사업을 사전에 심사하는 각 부서에서 정책사업의 수준에서 재편성하면서 신규사업이 이중적으로 배제되는 문제가 생기고 있음
– 이 과정에서 나타난 가장 심각한 문제는, 형식적으로 광역사업임에도 불구하고 의제별로 묶어 제시된 사업들이 ‘구별 사업의 모음’이었다는 것으로, 사실상 광역사업이라 보기 힘들다는 점임. 이는 현재 혁신적인 제도 변화에도 불구하고 이를 구체화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임

○ 사업심사단계

– 현행 참여예산제는 자치구 참여예산위원회를 지역회의로 하는 자치구 제안사업과 소관 부서별 사전검토를 거쳐 분과로 상정되는 광역 제안사업으로 이원화되어 있음. 이 과정에서 (1) 구 제안사업의 경우에는 사업의 우선순위가 아니라 사업을 결정하는 제도운영의 적절성을 평가해야 됨에도 이대로 진행되지 못했고 (2) 부서별 사전검토가 사실상 사전심사의 의미를 띠게 되면서 참여예산위원들의 심사가 제약을 받음
– 특히 (1) 사업의 타당성을 검증할 수 있는 현장방문과 제안자 설명 등의 절차가 축소되거나 생략됨에 따라 사업의 적절성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으며, (2) 최종적인 사업선정 과정에도 현장심사 절차가 소홀히 다뤄진다는 문제제기가 나옴
– [별첨]과 같이 참여예산위원 투표와 함께 시민전자투표를 도입한 것은 사업선정에 참여예산위원을 보충하는 역할을 적절히 한 것으로 보이며, 2013년과 2014년과 비교했을 때 선정사업의 비중 역시 건설 분야 사업이 줄어들고, 환경과 여성보육 사업이 늘어나는 변화가 나타남

○ 사후관리단계

– 선정된 사업의 모니터링 및 평가과정은 이후 사업심사 및 선정과정에 중요한 평가의 기준이 되어야 하나 (1) n년도 사업의 평가가 n+1년도 사업 심사에 반영될 수 있는 제도가 없어 형식적으로 진행되고 있고 (2) 미집행 사업에 대한 명확한 패널티가 없어서 ‘모니터링 무용론’에 대한 불신이 상당히 높은 수준임
– 무엇보다 효과적인 모니터링을 위해서는 적절한 권한과 책임이 부여되어야 하지만, 행정의 속성상 추가적인 행정비용의 발생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고 기 집행된 사업에 대한 평가에 호의적이지도 않은 한계가 있음

○ 온예산과정

– 「지방재정법」 및 「서울특별시주민참여예산조례」에 의거하여, 참여예산의 범위는 직접제안사업의 선정과 함께 서울시 전체 편성예산 및 대규모 사업에 대한 의견제시도 포함되어 있음
– 2014년 운영계획상 온예산위원 과정을 제도화했으나, 현재까지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는데 (1) 기본적으로 부서별 예산편성 시점에 의견이 전달될 수 있어야 참여의 실효성이 확보될 수 있으나 해당 부서의 비협조로 실시된 바 없고 (2) 부서별 가예산 편성 후 예산총괄부서의 편성 방향에 대한 브리핑 등의 절차도 미비하며 (3) 최종적으로 확정된 편성예산안에 대한 의견이 실제 예산편성과정에 어떤 식으로 반영되었는지에 대한 피드백이 전무한 상태임
– 이에 따라 온예산위원 워크샵, 분과 워크샵 등을 거치며 상당 시간을 투여해 온예산과정에 참여한 시민위원들은 온예산위원 과정이 매우 중요함에도 소홀히 대해지고 있다는 불만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형편임

 

개선 및 건의사항

 

○ 연간운영계획 확정시기 조정

– 참여예산사업의 경우에는 500억 원의 사업비가 고정적인 점을 고려해서 전년도 12월까지 확정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음. 이를 통해서 차년도 사업추진 준비가 내실 있게 진행될 수 있으며, 무엇보다 제도운영에 대한 ‘예측가능성’을 높여 혼란을 막을 수 있음

○ 위원 공모 및 예산학교

– 위원의 공모와 예산학교는 ‘상시화’와 위원 구성의 ‘다양성’에 초점을 맞춰 개선이 필요함. 기존 1차례로 정례화된 예산학교를 월 1회(최소 격월 1회)로 상시화하는 한편, 찾아가는 예산학교와같은 사업을 통해서 참여가 낮은 계층을 적극적으로 발굴하는 사업이 병행될 필요가 있음

○ 사업제안

– 사업제안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존의 반복사업에 대한 배제(일반회계 사업화)를 통해서 새로운 사업에 대안 유인구조를 만드는 한편, 이를 위한 인큐베이팅 기능을 고민하는 것임
– 현재의 참여예산지원센터를 제도 운영의 실무부서가 아니라 사업공모 컨설팅 및 인큐베이팅을 담당하도록 하는 기능 분배가 필요함. 이 과정에서 사업제안자가 지속적으로 사업추진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면서, 제안자의 참여가 보장되도록 함
– 사업제안의 규모가 사실상 사업심사의 질과 이후 사업선정에 따른 사회적 효과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1) 직접 심사가 가능한 수준의 적정수를 고려해야 하고 (2) 새로운 사업의 발굴이 어려운 만큼 기존의 각 부서별 위원회 구조를 활용한 ‘시범사업’들을 광역사업으로 제안 받는 등의 거버넌스 활용에 대한 시도가 필요함

○ 사업심사단계
– 사업제안자 설명과 현장심사가 명확하게 제도화될 필요가 있으며, 심사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평가의 기준으로 보장되어야 함
– 현행 4.5:4.5:1의 투표방식은 기존의 선정결과에 비춰 나름의 긍정적인 보완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이나, 사업선정을 한 차례 한마당을 통해 집중하기 전에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예산사업을 알리는 과정(이를테면, 자치구별 거리투표, 한마당 일주일 전 참여예산버스를 운행하면서 현장투표 유도 등)을 진행할 필요가 있음
– 사업심사와 관련하여 가장 많은 분쟁이 발생하는 만큼, (1) 자치구 사업심사 및 광역 사업심사 과정에 대한 투명성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고(녹화 의무화 및 공개) (2) 제안자와 참여예산위원들이 상호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쌍방향 온라인 시스템으로 보완하며 (3) 시민전자투표시에 참여예산위원들의 현장심사결과 등이 주요하게 참조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필요함
– 덧붙여 매년 서울시의 주요 의제에 대한 우선순위를 먼저 정하고, 이에 따라 최종사업 선정 시 가점을 주는 방식의 의제 혹은 가치 주도적 사업선정방식에 대한 고민도 해볼 필요가 있음

○ 사후관리단계

– 모니터링 및 평가 결과가 차년도 예산학교 및 예산심의 과정에서 주요한 심사 가이드라인으로 제안될 수 있는 환류시스템을 만들 필요가 있으며, 무엇보다 참여예산사업에 대한 자의적인 불용에 대해서는 적어도 참여예산제도 내에서의 패널티가 정확하게 부여될 필요가 있음

○ 온예산과정

– 참여예산운영계획 상에서뿐만 아니라 각 부서에게 시달하는 ‘예산편성지침’을 통해서도, 참여예산과정에서 필요한 부서별 협조 의무를 명시하는 것이 필요함. 온예산 과정은 기존의 예산편성절차 내에서 제도화되지 않으면 형식적 운영이 불가피함. 특히 초기 제도화에는 시장의 각별한 관심이 반드시 수반될 필요가 있음
– 특히 기존 위원의 하중을 고려해서 임기가 종료된 참여예산위원을 대상으로 별도 온예산분과를 신설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음

 

[첨부]

2015년도 참여예산선정결과 주요 사항

 

(1) 심사주체별 사업의 우선순위

– 참여예산위원의 선정 우선순위가 시민전자투표의 결과를 비교하면 상위 10개 항목에서 7개가 겹치는 등 선정사업에는 크게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음
– 다만 시민전자투표에서 우선순위로 들어가는 사업들이 좀 더 일반적인 시설개선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반면, 참여예산위원의 선정사업에는 프로그램 사업도 높은 순위를 보이고 있음
– 반면, 상대적으로 선호도 조사의 결과는 대부분 최종선정 사업에서 후순위를 차지한 사업들이 높은 순위를 보여 관점의 차이가 크다는 것을 볼 수 있음

순위 참여위원 투표 시민 전자투표 선호도 조사
1 (2)노후불량하수관로 개선사업(16개) (1)도서관 확충 및 서비스개선 (3)생활체육시설 확충
2 (1)도서관 확충 및 서비스 개선(12개) (5)어르신 개방형 시설 지원(16개) (15)CCTV설치(12개)
3 (7)등산로(둘레길) 정비 및 개선(15개) (8)공원 내 시설물 유지보수(15개) (14)어르신 일자리 사업의 확대(19개)
4 (3)생활체육시설 확충(16개) (4)가로등, 보안등 설치 및 정비 (2)노후 불량 하수관로 개선사업
5 (6)자전거도로 안전시설 확충(14개) (3)생활체육시설 확충 (4)가로등, 보안등 설치 및 정비
6 (13)어린이 통학로 정비사업(15개) (6)자전거도로 안전시설 확충 (12)창업 및 취업 지원 사업
7 (9)여성이 안전한 마을 만들기 사업(15개) (2)노후 불량 하수관로 개선사업 (6)자전거도로 안전시설 확충
8 (10)청소년 보호 및 활동 프로그램 운영(15개) (7)등산로(둘레길) 정비 및 개선 (1)도서관 확충 및 서비스 개선
9 (4)가로등, 보안등 설치 및 정비(16개) (11)도로 포장 및 정비(17개) (18)공동주택 음식물 생쓰레기 퇴비화
10 공동주택 음식물 생쓰레기 퇴비화(14개) (9)여성이 안전한 마을 만들기 사업 (13)어린이 통학로 정비사업

* 사업명의 앞에 숫자는 최종선정사업의 순위이며, 사업명 뒤에 붙은 숫자는 해당 주제에 포괄되어 있는 구별 사업의 개수임

 

(2) 전년도와 사업선정 경향의 변화

– 자치구 사업과 광역사업의 분리, 시민 전자투표제의 도입, 개별 사업보다 의제별 묶음 사업을 선정하는 방식의 도입 등에 따라 최종 사업선정 결과에도 큰 변화가 나타남
– 사업개수의 측면과 사업비 편성의 측면에서 모두 기존의 건설 편향성이 완화되는 한편, 환경 및 여성보육 분야에 대한 비중이 높아졌음. 또 사업 개수(왼쪽)에 있어서 2014년에 비해 큰 폭으로 낮아진 것은 자치구 사업과의 분리 및 의제별 묶음 사업으로의 선정을 통해서 전체적인 사업개수가 통제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임

<분과별 사업개수와 사업비 편성 현황>

정책포럼 그래프1

정책포럼 그래프2

* 왼쪽의 사업비 편성 그래프의 경우에는, 2015년의 사업비 총액 변화(기존 500억 원 → 현재 375억 원)를 반영하기 위해 1.333을 곱해 보정한 것임

정책포럼 사진1_재개발예정지

무악제2구역 재개발로 살펴보는 도시이야기

[2015.08 제23호 정책포럼]

무악제2구역 재개발로 살펴보는 도시이야기

재개발과 문화유산, 정치와 역사 사이 ①

 

김한울|서울시당 사무처장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별 진척이 없다고 들었던 재개발 사업이 어느새 관리처분계획을 제출하기에 이르렀다는 소식을 접한 것이다. 종로구 무악동의 무악제2구역에 관한 이야기였다.

관리처분계획은 재개발 사업에 있어서 마지막 넘어가는 고갯마루 같은 것이다. 다음 단계는 이주와 철거다. 재개발 사업 자체가 중단되건 되돌려지는 게 사실상 거의 불가능해지게 되는 변곡점인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직접적인 구조요청이 온 것이다.

 

뉴타운, 재개발, 출구전략

 

이명박 시절의 뉴타운 재개발 남발이 원죄다. 서울을 통째로 아파트 공사장으로 갈아엎는 것이나 다름 없는 지구지정이 곳곳에 병증을 깊게 하고 있는 가운데, 박원순 서울시장이 보궐임기를 시작하며 재개발 패러다임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뉴타운 출구전략’으로 이름 붙여진 주거재생으로의 패러다임 전환 선언은 당장 기대를 받기도 했으나, 결국 지지부진함 역시 벗어나지 못한 채 사실상 공전하고 있었다.

 

무악제2구역 재개발예정지 선정에 대한 보도화면 (국민TV 뉴스, 2015년 7월 1일 방송화면)

무악제2구역 재개발예정지 선정에 대한 보도화면 (국민TV 뉴스, 2015년 7월 1일 방송화면)

 

서울시당은 이러한 상황에 대해 꾸준히 비판적인 입장을 취해왔다. 이러기도 저러기도 난감하기 마련인 재개발 사업에 대해 박원순 서울시장은 문제가 있는 곳은 단호하게 중단하고, 문제가 없는 곳은 행정적 지원을 통해 박차를 가하는 식으로 상황과 조건에 따른 맞춤형 해결책을 제시했지만 그게 말 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최근들어 어차피 진척이 되지 않고 있는 곳을 직권해제 하는 방식으로 상당 수의 구역이 해제되긴 했지만, 당장 기로에 서서 가장 첨예한 갈등을 겪고 있는 현장에 있어서는 수수방관이 서울시의 공식적인 입장이나 마찬가지였다.

재개발 사업은 물론 패러다임 전환을 시도하겠다는 ‘뉴타운 출구전략’ 역시 지지부진한 가운데 일침이 필요한 상황이기에 서울시당은 여건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 관여해서 서울시의 적극적인 개입을 유도하고 궁극적으로 서울시의 ‘뉴타운 출구전략’이 실제로 유효한 정책적 대안으로 작동할 수 있기를 바라왔다. 이러한 이유로 구조요청에 대한 응답의 근거는 충분했다.

 

미션 임파서블, 기자들이 많이 오는 기자회견

 

‘기자들이 많이 오는 기자회견이어야 한다’는 구체적인 조건이 붙었다. 기자들이 많이 오는 기자회견이라니, 사안도 사안이지만 붕어가 들어있는 붕어빵이 낯설 수 밖에 없듯 기자가 있는 기자회견이 낯설게 되어버린 상황을 다시 돌아보게 되는 ‘신선한’ 조건이었다.

서울시당에서는 바로 얼마 전, 서울시의 대중교통요금 인상을 저지하기 위해 (주민등록 기준의) 서울시민 6천명의 서명을 받았다. 주민번호 수집 금지 덕분에 생년월일만으로도 충분했지만, 이름과 주소, 생년월일을 요구하는 최소한의 청구인 서명 요건 조차 시민들에겐 선뜻 펜을 들게 하지 못하는 이유로 충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직과 무관한 당원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서울시 최초의 주민 공청회 청구 서명을 완성해서 제출한 것이다.

가장 중요한 대목은 언론의 무반응이었다. 당장 천만 서울시민과 천만 경기도민, 300만 인천시민이 직접적으로 경제적인 영향을 받게 되는 사안이었다. 전철 기준으로 매일 왕복 400원의 추가 부담이 일어나는 문제였다. 주말에는 꼼짝 않더라도 월 8,000원의 추가 부담이 생겨나고, 성인 4인 가족 기준으로 보면 32,000원이 된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인구가 수도권 인구의 절반이고 그 중 절반이 성인요금을 내고 대중교통을 매일 이용하는 사람들이라고 가정하고 단순계산 하더라도 매일 23억원의 흐름이 결정되는 문제였다. 월 환산하면 700억에 육박한다. 인상분만 해도 이정도라는 얘기다.

사례 차원에서도 의미가 있었다. 서울시 주민참여기본조례는 4년 동안 첫 울음 조차 터뜨리지 못한 채 제대로 그 존재감을 나타내 본 적이 없었다. 말 뿐인 ‘주민참여’가 서울시당의 ‘시민 공청회 청구’로 그 존재감을 과시할 첫 기회를 얻은 것이다. 시민의 시정 참여 역사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이 모든 이유에도 불구하고 서울시당의 서울시 대중교통요금 인상안 반대와, 시민 공청회 청구 서명 개시, 청구 서명 완성 및 제출, 서울시의 공청회 청구 무시, 일방적인 강행으로 인한 물가대책심의위원회 졸속 통과 중 그 어느 것도 이른바 주요 언론사는 물론 대개 진보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되는 언론사에서 조차 단 한 줄도 다루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기자들이 많이 오는 기자회견을 기획해야 한다니, 물 위를 걷는 기적이라도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 아닌가.

 

역사의 다른 이름은 정치의 흔적

 

불행인지 다행인지 재개발 문제로만 접근했을 때 보다 폭넓게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이슈가 있었다. 요행이라고 보기엔 필연적인 면도 없지 않았다.

현재 국내 3만제곱미터 이상의 모든 건설공사는 무조건 문화재지표조사를 거치도록 강제되고 있다. 여기서 예외가 되는 곳은 서울 사대문(흥인지문, 돈의문, 숭례문, 숙정문) 안쪽으로써, 단 한 평의 땅이라도 건물을 신축하려면 문화재지표조사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이는 600년 도읍의 문화유산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다. 다른 곳에 비해 매장유물이 집중되어 있을 수 밖에 없는 조건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단순 유물 매장 가능성으로만 치환되지 않는다. 매장된 유산은 아니어도 여러 역사문화 자원들 또한 도시에 집중되어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무악제2구역은 조선시대 청나라와 교류하기 위해 드나들던 의주로 길 언저리에 해당하던 곳으로 청나라 사신들이 ‘대국의 사신을 환영한다’는 의미의 영은문에 당도하기 직전에 지나쳤던 곳으로 당시에는 민가의 흔적 조차 확인하기 쉽지 않던 곳이었다. 길만 있었을 뿐 그 곁으로는 변변한 매장 유물의 분포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얘기다.

험하기로 유명했던 무악재와 바짝 붙어있는 인왕산 서쪽 기슭일 뿐이었던 이 곳은, 구한말에 그 역사가 달라지기 시작한다. 일제가 조선통감부를 설치하면서 신축했던, 현재의 서대문형무소가 들어선 것이다. 일제는 물론, 일제보다 더 긴 시간 동안 독재정권을 겪어내며 감방으로, 고문실로, 형장으로 끌려갔던 수많은 역사적 인물들의 자취가 집중되어 있을 수 밖에 없다.

 

무악제2구역 재개발예정지 선정에 대한 보도화면 (국민TV 뉴스, 2015년 7월 1일 방송화면)

무악제2구역 재개발예정지 선정에 대한 보도화면 (국민TV 뉴스, 2015년 7월 1일 방송화면)

 

또한 감옥에 갇힌 이가 있으면 이들을 뒷바라지 하는 이들도 있기 마련이다. 전자의 공간이 감옥이라면, 후자의 공간은 감옥 바깥 언저리 어딘가일 수 밖에 없었다. 기존의 왕조의 역사가 남성중심적이고 권력중심적인 역사였다면 그를 둘러싼 궁인과 중인들의 역사 또한 결코 가볍게 여겨질 수 없는 역사임에도 그림자로 숨어있었던 것과 같이, 유관순, 김구, 강우규와 같은 이들이 서대문형무소와 함께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있는 것에 반해 형무소 담장 바깥에서 이들과 함께 시대를 겪어냈던 이들의 역사 또한 그 언저리에 아직 비춰지지 않은 역사로 그 자취를 남기고 있다. 비단 일제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일제보다 더 긴 독재의 역사에서 더 가깝고도 많은 이들의 역사가 그 곳에서 시간을 견뎌왔다. (계속)

정책포럼 사진1

평창 동계올림픽, 분산개최가 정답이다

[2015.07 제22호 정책포럼]

평창 동계올림픽, 분산개최가 정답이다

산림보전 역사의 오점으로 남지 않으려면

 

이현정|녹색위원회(준) 위원장, (주)국토환경연구소 책임연구원

 

 

 

가리왕산 활강경기장 건설이 불러올 산림파편화

 

평창동계올림픽이 반환경올림픽으로 불리우며 수년간 논란을 이어 온 가장 주된 원인은 가리왕산 알파인 활강경기장 건설 때문이다. 우리나라는 산지가 국토의 3분의 2에 달하지만, 대부분 조림지로 자연림이 드물기 때문에 산림청과 지자체에서는 원시림, 희귀식물 자생지 등을 산림유전자원 보호구역으로 지정해 관리 중이다. 산림유전자원 보호구역은 일체의 개발이 불가능함은 물론 그 지역에서 나온 산물을 절취하는 것만으로도 산림보호법에 따라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할 수 있는 엄격한 규제를 받는 지역이다. 그런 의미에서 단 3일의 스키경기를 위해 유전자원 보호구역을 해제하고 500년 원시림을 파괴하는 결정을 내린 일은 우리나라의 산림보전 역사에서 매우 큰 사건이라 하겠다.

정책포럼 사진1

가리왕산 알파인 활강경기장 벌목공사 현장. 공사가 시작되기 불과 몇 달 전까지 이 지역은 나물을 채취하는 것만으로도 1년 이상 10년 이하의 징역에 처해질 수 있는 곳이었다. (사진 : 박용훈)

산림유전자원 보호구역은 모두 지정하는 데 각각의 이유가 있으며 그만큼 각자 중요성을 가지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알파인 활강경기장 건설 대상지에 포함된 보호구역은 보전의 필요성이 유독 높은 곳이다. 2012년 기준으로 지자체 지정 보호구역이 83개소, 산림청 지정 보호구역이 295개소로 총 378개소의 보호구역이 지정되었는데, 이 중 가리왕산의 알파인 활강경기장 예정지가 포함된 보호구역은 이 378개소 중 아홉 번째로 면적이 넓은 보호구역에 해당한다. 가리왕산보다 넓은 면적을 가진 보호구역은 고성, 양구, 인제, 철원, 화천, 홍천 등 대부분이 DMZ 일원에 분포하고 있으니, DMZ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의 보호구역들 중에는 한 손 안에 꼽힐 정도의 규모라 하겠다.

여기서 보호구역의 면적이 중요한 이유는 여러 이유로 발생하는 산림파편화(forest fragmentation)가 생물종다양성(biodiversity)에 가장 큰 위협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생물들이 살아가기 위해서는 일정 면적 이상의 숲이 훼손되지 않은 채 온전하게 보전될 필요가 있는데, 숲의 면적이 작아질수록 그 숲에서 서식할 수 있는 생물종의 수가 줄어든다는 말이다. 따라서 산림유전자원 보호구역의 해제는 해제된 면적이나 훼손되는 지역에만 영향을 주는 것이 아니라, 그 주변의 숲과 생태계 전체에 영향을 미친다.

 

보다 큰 문제는 토양과 수체계의 영구적인 변화

 

조직위는 대회 이후 산림생태를 전면 복원할 것이며, 이를 위해 가리왕산에 대한 엄격한 산림생태계 복원계획을 수립한 뒤 환경부의 검증을 받고 경기장을 착공하겠다고 약속했다. 그러나 약속과는 달리, 조직위는 복원계획의 수립 없이 공사를 강행했다. 게다가 조직위와 강원도는 ‘자연천이(natural succession)’라는 용어를 사용하며 사실상 복원계획을 수립하지 않고 있다. 자연천이는 산불과 같이 비구조적이거나 자연적인 교란이 발생했을 때, 자연의 회복 능력에 기대어 자연스럽게 복원되기를 기다리는 방식이다. 우리나라의 경우, 1996년 발생한 고성의 산불이 3762헥타르의 산림을 휩쓸고 난 후 국유림지역에 인공조림지와 자연복원지를 나누어 장기 모니터링을 하면서 자연천이의 효과를 검증한 바 있다. 인공조림지에 비해 자연복원지에 훨씬 다양한 식생이 자리 잡고, 복원 속도도 빠른 경향을 보인 것이다.

그러나 이러한 자연복원에는 전제가 필요하다. 비유가 아닌 단어 그대로의 ‘맹아’가 나올 수 있는 환경이 유지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식생을 키우는 땅과 물의 체계가 온전해야 한다. 산불의 경우는 땅 위에 있는 것들은 전부 태워 없앴지만 지하에는 깊게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 그러므로 땅에서 잠자고 있던 씨앗이나 뿌리로부터 새로운 싹을 틔우고, 타버린 잿더미로부터 충분한 양분을 얻을 수 있었다.

그러나 가리왕산 활강경기장 부지에 이러한 자연복원을 기대한다는 것은 사실상 방치하겠다는 말과 다름없다. 슬로프 조성과 리프트 건설을 위해 대규모의 절·성토 등 토목공사가 수반될 수밖에 없고, 90여 대의 제설기가 만들어낸 인공눈의 설질을 유지하기 위해 화학물질을 다량 살포하는 등 활강경기장 건설지역 뿐 아니라 주변 산지의 토양과 지하수 체계, 나아가 생태계에까지 돌이킬 수 없는 영향을 미칠 것이기 때문이다.

 

분산개최가 답이다

 

평창 동계올림픽 조직위는 매몰비용과 공정률을 무기삼아 환경적으로도, 경제적으로도 책임질 수 없는 사업을 강행 중이다. 벌목 공정률이 90%에 달했지만, 이러한 영구적인 변화를 막을 수 있는 기회가 아직 우리에게 남아 있다. 이미 투자된 비용은 향후 투자가 예정된 비용이나 추가적으로 발생할 수 있는 비용에 비하면 크다고 평가하기 어렵다. 이러한 상황에서 평창 동계올림픽의 분산개최는 국가재정 낭비, 지방재정 파탄과 대규모 환경파괴를 막을 가장 현실적인 대안이다. 이미 시민사회에서 다양한 분산개최 방안을 제시해왔고, 국민의 57%가 분산개최에 찬성한다는 여론조사 결과도 있다.

가장 현실적으로 활강경기장의 대체지로 얘기되고 있는 곳은 무주리조트이다. 다음 [그림1]과 [그림2]는 가리왕산 건설대상지의 지형과 무주리조트의 지형을 보여준다.

정책포럼 그림1_가리왕산

[그림1] 가리왕산 활강경기장 건설대상지 (Google Earth)

[그림2] 무주리조트 슬로프 전경 (Google Earth)

[그림2] 무주리조트 슬로프 전경 (Google Earth)

 

무주스키장은 표고차가 809미터로 825미터인 가리왕산에 근접해, 기존 시설을 보완하면 국제스키연맹의 기준인 855미터에 맞출 수 있다.

IOC 또한 일본과의 분산개최를 제안한 바 있다. 아래 [그림3]은 1998년 나가노 동계올림픽에서 주 스키장으로 사용했던 하쿠바 핫포네 스키장의 모습이다. 이 스키장의 경우는 해발고도 3000미터에 근접하는 산줄기의 정상부위가 아니라 거주지와 가까운 산자락에 스키장을 건설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림3] 일본 나가노 올림픽 하쿠바 핫포네 스키장 슬로프 전경 (Google Earth)

[그림3] 일본 나가노 올림픽 하쿠바 핫포네 스키장 슬로프 전경 (Google Earth)

마지막으로, 최문순 도지사의 북한 공동개최 발언과 일부 단체의 언급으로 주목받은 바 있는 북한 마식령 스키장의 전경은 다음 [그림4]와 같다. 정확한 제원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고도와 슬로프 등을 보면 알파인 활강경기 적용이 불가능해 보이지는 않는다.

[그림4] 북한 마식령 스키장 전경(Google Earth)

[그림4] 북한 마식령 스키장 전경(Google Earth)

 

아직 기회는 있다

 

평창 동계올림픽을 유치하기 위해 강원도민들과 많은 관계자들이 해온 노력들 그 자체를 폄훼할 생각은 없다. 일본에 이어 아시아에서 동계올림픽을 유치하는 두 번째 국가가 된 것은 우리나라가 그만큼 경제적으로 성장해왔고, 국제사회에서 능력을 인정받은 결과일 것이다. 그러나, 또 하나의 중요한 이유가 있다. 자연환경 조건 면에서 동계올림픽 개최에 적합한 나라가 아시아 국가들 중에 그만큼 많지 않기 때문이다. 알프스 산맥 주변의 기존 개최국가들은 물론 일본 나가노와 비교해도 우리나라는 훨씬 많은 투자와 환경파괴가 수반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더 늦기 전에 나가노 등 기존 유치지역의 경제적인 어려움과 유럽 도시들의 유치의사 철회가 이어지는 상황을 냉정하게 평가하고, 보다 현명한 판단을 내려야 한다. 분산개최 없이 모든 건설 사업을 강행할 때에는 빚잔치와 함께 가리왕산의 환경도 영영 돌이킬 수 없는 상황이 될 것이다. 그 때 후회하지 않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를 잡을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 이 글은 필자가 지난 6월 18일 노동당 강원도당이 주최한 <2018 동계올림픽 분산개최를 촉구하는 강릉시민 토론회 – 동계올림픽과 삼시세끼>에서 발표한 토론문입니다. 토론회 전체 자료집은 노동당 홈페이지, 노동당 → 정책게시판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최저시급을 소재로 한 '알바몬'의 광고

최저임금과 공적연금 ‘슈퍼갑’ 재벌 · 대기업들이 더 부담해야

[2015.06 제21호 정책포럼]

최저임금과 공적연금 ‘슈퍼갑’ 재벌 · 대기업들이 더 부담해야

 

조동진|정책실장

 

 

 

대한민국 국격은 딱 260원 짜리, 최저임금 날치기는 원천무효다 (2011.7.13)
최저임금 4580원, 이명박 씨가 대한민국 대통령인 것보다 부끄럽다 (2012.6.26) 
2014년 최저임금 5210원 결정, 갈 길이 멀다 (2013.7.5)
2015년 최저임금 5580원, 노동배제적 인식의 한계 (2014.6.27)

340원 인상이 소득주도 성장인가

 

지난 몇 년 동안 최저임금 결정을 전후로 나온 당 논평의 제목이다. 2011년 7월 13일 새벽, 최저임금위원회는 2012년 최저임금을 전년보다 딱 ‘260원’ 오른 4580원으로 날치기 통과시켰다. 2013년 최저임금은 경영계가 4580원 ‘동결’을 주장하면서 결국 4860원으로 고작 ‘280원’ 인상됐다. 올해에도 최저임금 논의 흐름을 보면 아직도 ‘갈 길이 멀고’ 정부와 자본의 ‘노동배제적 인식’이 여전하다.

OECD는 지난해 12월 발표한 <소득불평등이 경제성장에 미친 영향 보고서>에서 상위 10%의 소득이 하위 10%의 소득의 9.5배에 달할 정도로 지난 30년 동안 소득불평등이 악화되었고, 이 소득불평등이 경제성장에도 부정적 영향을 미쳤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여러 나라 정부와 기업에서 최저임금과 임금인상 움직임이 일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최저임금 인상에 대한 사회적 관심이 그 어느 때보다 높다. 걸그룹 아이돌이 출연한 ‘알바몬’ 광고가 대중적 관심을 불러일으킨 이유도 있지만, 최경환 경제부총리가 소득주도 성장론을 일부 수용해 최저임금 인상의 불가피성을 주장하면서 기대치가 높아졌다. 하지만 최경한 부총리의 발언에도 불구하고 새누리당이 내놓은 최저임금 인상안은 6000원으로 ‘혹시나’ 했더니 ‘역시나’였다.

새누리당의 6000원 안은 박근혜 정부가 들어선 이후 2014년 7.2%, 2015년 7.1% 인상의 연장선상으로 하던 대로 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고작 7% 인상은 소득분배구조 개선은 물론 정부와 새누리당이 말하는 내수진작 효과도 기대하기 힘들다. 반면에 민주노총을 비롯한 노동계와 노동당은 ‘최저임금 1만원’을 주장하고 있다. 최저임금의 대폭 인상을 상징하는 1만원은 생활임금, 평등임금에 대한 요구이다. 최저임금 1만원 인상은 저임금 불안정 장시간 노동 사회를 해소하는 시작점이 될 수 있다.

 

최저임금 1만원은 왜 필요한가

 

통계청의 경제활동인구조사 부가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8월 기준 국내에서 최저임금(5210원) 미만의 급여를 받고 일하는 노동자는 227만 명에 달한다. 전체 임금노동자의 12.1%다. 10명 중 1명 이상이 최저임금도 받지 못하고 일하는 셈이다. 최저임금 미달 노동자는 근무형태와 직장규모를 가리지 않고 광범위하게 존재했다. 최저임금 미달자의 6.9%가 정규직이었고 1.9%는 300인 이상 대기업 노동자였다.

현재 최저임금 제도는 “근로자의 생계비, 유사 근로자의 임금, 노동생산성 및 소득분배율” 등을 고려하여 결정하도록 되어 있다. 하지만 1988년 도입된 최저임금은 다양한 근로자의 생계를 보장하지도 못하고, 유사근로자의 임금 수준을 반영하지도 않았다. 경제성장률과 물가상승률 그리고 소득분배 조정분을 충분히 고려한 것도 아니다.

우선, 최저임금법에 나와 있는 3대 요소 중 무엇보다 ‘생계비’가 최저임금 결정 기준의 핵심이 되어야 한다. 최저임금이 사실상 최고임금인 노동자들에게 먹고살 만한 생활임금으로서의 역할을 하려면, 임금이 노동자 본인뿐만 아니라 세대 전체의 생계를 책임지고 있는 현실을 고려해야 한다. 이미 유엔사회권위원회와 국제노동기구 등에서도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권고하는 사항이다.

이제까지 최저임금위원회는 ‘미혼 단신근로자의 생계비’를 기준으로 삼았는데, 최근 발표된 지난해 미혼 단신근로자의 생계비는 155만 3390원이다. 하루 8시간을 일한다고 가정했을 때 시간당 7430원으로 현재 최저임금 5580원보다는 높지만, ‘미혼 단신근로자’란 기준 자체가 문제다. 그래서 민주노총은 한국노동패널 자료를 바탕으로 최저임금 미만이나 최저임금 수준의 임금을 받는 노동자의 평균 가구원수(2.5명)를 고려하여 실태생계비를 산정했다.

둘째, 김유선의 연구에 따르면, 최저임금이 도입된 1989년부터 2014년까지 25년 동안 연평균 최저임금 인상률은 시급 기준으로 9.8%(월 환산액 기준 9.2%)다. 같은 기간 10인 이상 사업체 상용직의 명목임금 인상률은 시간당 임금 기준으로 9.5%(월 환산액 기준 8.8%)고, 경제성장률+물가성장률은 9.4%였다.

노동부의 사업체노동력 조사에서 10인 이상 사업체 사용직 임금통계와 비교한 결과, 2014년 평균임금 대비 최저임금 비율은 월정액급여의 39.5%, 시간당 통상임금의 25.3% 수준으로 나왔다. 지표에 따라 차이가 크게 나타났지만, 더 중요한 것은 1989년과 2014년의 평균임금 대비 최저임금 비율이 거의 같다는 점이다.

최저임금을 일반 노동자들의 임금 인상률과 비슷한 수준에서 결정한다면 저임금 노동자의 해소라는 본연의 역할을 하기 어렵다. 또한 경제성장률과 물가성장률을 합한 수준과 같다면 소득분배 조정분은 반영되지 않은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민주노총은 최저임금 산정 기준으로 2015년 경제성장률(3.4%), 물가상승률(1.9%)에 더해 소득분배 개선치(2.9%)를 반영했다.

 

최저임금, 왜 ‘을’끼리 싸워야 하나

 

신은종 단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최저임금 논의에 부쳐>란 시론(한국일보. 5월 13일자)에서 이렇게 지적했다.

“논쟁은 비민주적이다. 무언가를 토론에 부치는 것, 그래서 논쟁‘거리’로 만드는 것이야말로 대자본 혹은 권력의 효과적인 지배형식이 됐기 때문이다. 논쟁을 살펴보면, 우습게도 ‘사소한’ 사실들이 객관이란 탈을 쓰고 대립한다. 진실도, 보편도 아닌 일면적 사실들은 논쟁을 통해 스스로를 부풀리며 진리를 자처한다.”

정부와 자본의 지배전략은 최근 불거진 연금개혁 논란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5월 2일 <공적연금 강화 합의문>이 나오고 며칠 후 대통령이 나서서 국민적 합의를 내세워 국민연금 명목 소득대체율 50%를 논쟁‘거리’로 만들었다. ‘공적연금’이 존재하는 근본적인 목적이 무엇인가에 대한 성찰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건 ‘재정통계’뿐이었다.

모든 공적연금의 목적은 생애기간에 걸친 소득균등화와 사회보험 기능을 통해 노후빈곤을 방지하고 노후불평등을 해소하는데 있다. 공적연금의 윤리적 토대가 내가 낸 보험료에 더해 기업과 부자들이 더 부담하고 다음 세대가 일정하게 기여하는 방식이라면, 현실적 토대는 노인 빈곤율이 OECD 국가 평균 12.4%의 4배인 48.6%에 달하고 노인 자살률도 세계 최고 수준인 지금의 대한민국이다.

박근혜 정부와 새누리당은 처음에는 공무원들을 ‘세금 도둑’으로 몰더니, 그 다음은 국민연금 강화에 따른 보험료 인상을 ‘세대 간 도둑질’로 호도했다. 공적연금 강화냐, 사적연금 활성화냐가 아니라 공무원과 국민 간에, 현재 세대와 미래 세대 간에 ‘전선’이 그어졌다. 선진국에 비해 유난히 낮은 기업과 부자들의 사회보험 부담과 국민연금 사각지대를 낳은 불안정 저임금 노동시장 같은 핵심의제는 뒷전으로 밀려났다.

1973년 국민연금법의 전신인 국민복지연금법이 제정될 당시 직장가입자의 보험료 부담률은 사용자 4%, 노동자 3%였다. IMF 직후인 1998년 국민연금법을 만들면서 사용자와 노동자의 부담률이 1:1로 개악됐다. 2010년 기준 OECD 국가들의 GDP 대비 사회보장기여금은 고용주 5.3%, 피고용자 3.2%이다. 2013년 기준으로 공적연금에 대한 기업 부담은 핀란드는 노동자의 3배를, 스페인은 5배를 더 낸다.

 

최저임금, 이제는 국회에서 다루자

 

국민연금 논쟁에서의 ‘기금 고갈’, ‘세금 폭탄’이란 공포 마케팅과 은폐 마케팅은 최저임금 논쟁에서 ‘고용 감소’로 대체된다. 경영계는 최저임금 인상의 부작용으로 ‘임금 부담이 늘면 경쟁력이 떨어지고 고용은 더 줄어든다’는 소위 ‘임금 숙명론’을 내놓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이 고용에 영향을 미친다는 경영계의 주장은 곧장 ‘충격 흡수 여력이 없는 영세기업, 중소기업이 타격을 받는다’는 레퍼토리로 이어진다.

원인을 제대로 진단해야 제대로 된 대안이 나온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노동소득분배율은 1997년 75.8%에서 2011년 68.2%로 7.6% 포인트 하락했다. 1983~1997년 0.9% 포인트 하락한 것보다 8배 이상 높다. 한 나라의 전체 소득 중에서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몫을 나타내는 노동 소득분배율이 떨어진 것은 노동에 대한 보상이 줄고 그만큼을 기업이 가져갔다는 의미다.

경향신문이 2013년 9월 금융감독원 공시자료(2012년)를 토대로 조사한 결과 삼성전자·현대자동차를 포함한 20대 기업의 노동소득분배율은 49.9%였다. 국내 기업들의 평균 노동소득분배율(59.7%)보다 10% 가까이 밑돌았고, 500대 기업의 노동소득분배율 역시 53.7%로 전체 평균보다 낮다.

한국경제가 성장해도 노동자에게 돌아가는 이득이 적은 이유는 대기업 위주의 경제구조 때문이다. 대기업들이 자본집약적 투자를 하다 보니 일자리 창출 효과가 크지 않은데다가 골목상권마저 이들이 장악하면서 영세 자영업자들도 위기를 맞고 있다. 따라서 이를 무시한 채, 최저임금 논의를 비정규직과 영세자영업자 등 ‘을’끼리의 논쟁으로 몰아가는 것은 ‘수퍼갑’인 대기업을 보호하는 은폐 마케팅이다.

진정으로 중소사업장 노동자의 고용감소를 우려한다면, 대기업 중심 산업정책을 바꾸고 대기업의 ‘갑질’을 강력하게 규제해야 한다. 최저임금 사각지대가 걱정이라면 포괄임금제, 휴게시간 ‘꺾기’, 수습․장애인․특수고용직 적용제외 같은 제도적/행정적 허점부터 정비해야 한다. 현재 최저임금위원회 구조로는 최저임금 인상과 연동된 원․하청 경제구조의 근본적인 개혁이나 영세자영업자를 포함한 사회안전망 구축, 최저임금 사각지대를 낳는 노동시장 등의 문제를 풀기 어렵다.

이제 국회가 나서야 한다. 매년 반짝하는 최저임금 투쟁에 머물지 않고 하반기 국회와 내년 총선까지 저임금 불안정 장시간 노동 사회를 바꾸는 투쟁을 이어가자.

헌법재판소의 선거구 재획정 판결 뉴스 (사진: SBS 캡쳐)

밥그릇 싸움은 가라, 정치관계법 개혁 시작해야

[2014.12 제15호 정책포럼]

밥그릇 싸움은 가라, 정치관계법 개혁 시작해야

헌재, 선거구 재획정 결정 내려

 

윤현식|정책위원회 의장

 

 

 

지난 10월 30일 헌법재판소는 현행 공직선거법 중 국회의원 선거의 지역구 획정에 관하여 헌법 불합치 결정을 선고했다(2012헌마190, 192, 211, 325, 2013헌마781, 2014헌마53(병합)). 공직선거법 제25조 제2항은 국회의원 지역구의 명칭과 그 구역을 별표로 구분하여 규정하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 요지는 이 별표에 따른 지역구의 획정이 인구비례 3:1을 기준으로 하고 있는데, 이것이 투표의 비례성을 현저히 해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인구비례 3:1로 되어 있는 현행 선거구 획정의 인구기준은 위헌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가)지역구의 인구가 (나)지역구 인구의 3배가 된다고 가정하자. 이때 (가)지역구에서 당선된 의원의 대표성은 (나)지역구 당선 의원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는 효과가 발생한다. 표의 등가성이 훼손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현행 기준이 선거에서의 평등원칙을 위배한다고 판단했다. 유권자의 한 표는 마땅히 동일한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는 원리를 재확인한 것이다. 표 가치의 평등은 국민주권의 원리나 민주주의의 원칙에 따라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만 할 사항이다. 인구의 균형, 행정구역의 편차, 지세, 교통사정, 생활권, 역사적·전통적 일체감 등의 원인으로 인하여 비례평등을 위한 1:1의 원칙을 관철하기 어려운 현실적 고충이 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가 밝히듯 “투표가치의 평등을 실현하여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한 토양을 마련하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

한편 헌법재판소는 헌법소원의 대상이 된 일부 지역에 대해서만 위헌성 여부를 판단할 수 없고 현행 선거구 획정체계 전반이 위헌일 수밖에 없음을 분명히 했다. 헌법재판소는 “선거구 구역표는 전체가 불가분의 일체를 이루는 것으로서 어느 한 부분에 위헌적인 요소가 있다면 선거구 구역표 전체가 위헌의 하자를 갖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따라서 현행 선거구 구역표로 획정된 현재의 지역구 편재는 전면적인 재정리가 필요하게 되었다. 헌법재판소는 인구비례 최대 2:1을 기준으로 선거구 획정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결정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2015년 12월 31일까지 공직선거법이 개정되어야만 한다.

 

인구비례 최대 2:1 기준으로 선거구 획정 바뀐다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갑작스럽게 나온 것이 아니다. 헌법재판소는 이미 13년 전인 2001년의 결정(2001.10.25. 2000헌마92)에서 지속적인 제도개선을 통해 선거구간 인구편차가 2배 이상을 넘지 않도록 조정할 것을 주문하였다. 또한 향후 유사한 사례에 있어서는 인구비례 2:1 또는 그 미만의 기준에 따라 위헌여부가 판단될 것임을 예고한 바 있다. 무려 13년 전의 경고가 이번에 현실이 된 것은 그동안 제도정비에 관심을 두지 않은 국회에 책임이 있다. 헌재의 결정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표의 등가성이 선거제도의 기본원칙임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국회는 합리적인 수준에서 공직선거법의 개정을 추진했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동안 국회는 투표가치의 평등성을 높이려는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1987년 현행 헌법체제 이래 지금까지 시대적 상황과 정치적 환경 및 국민들의 인식 변화 등에 따라 의원정수 및 선출 방식, 선거구 조정 등이 이루어져야 했음에도 이를 게을리 했다. 헌법재판소의 이번 결정이 국회의 게으름과 무능에 대한 신랄한 질책인 이유가 여기 있다.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부터 299명으로 한정되었던 의원정수는 2012년 총선에서 단 1명이 늘어난 300명으로 고정되어 있다. 전체 인구가 4천만 명 수준에 정해졌던 의원정수가 5천만 명이 넘는 지금까지 그대로인 것이다. 정당명부 비례대표제가 도입되었다고는 하나 1988년 당시 전국구를 75석 뽑던 것에 비해 현행 비례대표는 54명을 선출함으로써 오히려 줄어들었다. 국회의원의 지역 대표성을 이유로 특정지역의 의사가 과잉대표되는 것이 합리화될 수도 없다. 지방자치제도가 초기 도입될 당시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지방자치의 수준이 높아진 현실을 감안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교통·통신 등 기술의 발전, 도농 간 교류의 확대 등으로 인해 낙후했던 과거만을 생각하고 지역 대표성을 운운할 근거는 사라졌다. 특히 중요한 것은 국회의원의 지역 대표성은 국가 전체의 이익을 대표하는 국회의원 본연의 임무 범위와 합치될 때만 당위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의미들을 검토한다면 헌법재판소가 밝힌 기준은 표 가치의 불균등함을 개선하는 합리적 기준이 되기에는 아직도 보수적인 수준이라고 판단된다. 헌법재판소가 설정한 이 기준은 선거구별 인구편차가 0에 가깝도록 해야 한다는 미국 하원선거의 기준이나 원칙적으로 상하편차 15%를 규정하는 독일에 비하면 아직도 매우 부족하다 할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기준은 일본이 1994년에 확인한 2:1 기준을 20년 후 한국에 적용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따라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과도한 것이라거나 향후 막대한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은 현실에 대한 판단을 결여한 것일 뿐이다.

 

헌법재판소의 선거구 재획정 판결 뉴스 (사진: SBS 캡쳐)

헌법재판소의 선거구 재획정 판결 뉴스 (사진: SBS 캡쳐)

 

헌재 결정에 요동치는 지역들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표의 등가성을 지키라는 원론적 수준에 머물러 있지만 그 파문은 요란하다. 선거구 획정 대상이 된 지역구 의원들의 경우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다. 특히 보수양당의 패권이 작동하고 있는 영호남의 지역구 의원들은 사태의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역별로 선거구 획정을 다시 할 경우 현재의 기준에 따르면 지역구 의석은 서울 1, 경기 16, 인천 5석이 늘어나게 된다. 대전, 충남, 충북을 합친 충청권은 변동이 없다. 이에 반해 영남은 4석이 줄어들고 호남은 4~5석이 줄어들게 된다. 강원도 일부 줄어들게 된다.

지역의 맹주를 자처하며 한반도 남녘의 동서를 분할하고 있는 새누리와 새정연은 골치 아픈 계산을 하게 되었다. 어차피 빗자루를 꽂아도 당의 이름만 붙여놓으면 당선된다는 영호남이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당내 인사들의 이해관계가 서로 충돌한다. 예를 들어 부산 영도구와 인접한 서구의 지역구 재획정이 이루어지면 둘 중 한 선거구는 사라지게 된다. 영도구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지역구이고 서구는 친박계 유기준 의원의 지역구다. 수도권 지역의 의석이 대폭 늘어나는 것도 보수양당에게는 골머리를 싸매게 하는 부분이다. 이렇게 되면 선거를 치루는 과정이 보다 복잡다단해지게 된다. 보수양당이 할거하고 있는 영호남과는 달리 수도권에서는 ‘우리가 남이가’라는 정서만으로 선거에서의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앉아서 거저먹는 것만으로도 본전치기를 할 수 있었던 봄날이 가버리는 거다.

이처럼 골 아픈 상황을 피하면서 동시에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 보수양당에게는 급선무가 되었다. 여기에는 전제가 있는데 바로 현재의 의석수를 재조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제도개선을 한다는 점이다. 즉 지역구 246석, 비례 54석, 총 300석 의석에 변동을 주지 않은 채 지역구 획정을 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보수양당의 입장에서는 전체적으로 현재와 크게 달라질 것이 없다. 그러나 문제는 내부적으로 후보들 간 및 지역 간의 알력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앞서 보았듯이 영호남과 강원의 의석이 줄어들게 될 경우 이 지역을 배경으로 하는 보수양당의 정치인들이 감수해야 할 손실은 말 그대로 정계은퇴가 될 수도 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확인한 인구비례 2:1로 조정해야 할 각 선거구를 보면 인구수 초과 선거구는 37개, 미달 선거구는 25개다. 인구 초과 선거구는 쪼개고 미달 선거구는 합쳐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미달 선거구를 지역구로 하는 의원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소선거구 단순다수대표제를 근간으로 하는 현행 제도 하에서 지역구 의원들의 반발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비례의석을 대폭 줄이고 지역구 의석을 늘리는 것이다.

노동당을 비롯한 군소정당들에게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과거 민주노동당이 헌법소원을 제기함으로써 만들어냈던 정당명부비례대표제는 유명무실한 제도로 전락하고, 군소정당의 원내진출의 길은 더욱 어려워지게 된다. 이제는 보수양당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제도 전반에 대한 사회적 문제로 전환된다. 보수양당의 입장에서 굳이 문제를 불거지게 만들어 대중들로부터 비난을 받을 이유는 없다. 그래서 제기되는 대안들이 중대선거구제, 석패율제, 도농복합선거구제와 같은 제도들이다. 하지만 이들 제도 역시 노동당 등 군소정당들에게 유리할 것이 없다. 중대선거구제는 현재 지방자치선거에 도입되어 일부지역에서 시행하고 있으나 지역의 맹주노릇을 하는 정당 소속 당선자들의 숫자만 불려주는데 그치고 있다. 도농복합선거구제는 무엇보다도 선거구 획정 자체가 어려워 도입될 가능성도 적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보수양당에게 손해가 될 여지도 거의 없다. 석패율제는 일본에서 시행되고 있는 제도로서 지역구에서 낙마한 후보를 비례로 부활시키는 제도이다. 마찬가지로 보수정당의 당선자를 늘리는데 도움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군소정당들에게는 동기부여를 하기 어려운 제도다.

 

국회의원정수, 비례대표 획기적으로 늘려야 하는데

 

현행 공직선거법의 한계 안에서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현실화하기 위해 가장 확실하게 제안될 수 있는 대안은 국회의원정수의 획기적인 증원이다. 단순계산만으로도 인구 4천만에 설정된 300명 의원정수를 5천만에 맞게 375명으로 늘릴 수 있다. 또는 인구 10만 명당 1명의 수준으로 의원을 설계해 500명으로 늘리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어떤 방식으로든 국회의원의 정수가 상당수 늘어나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기계적으로 의원정수를 늘리거나 지역구 조정을 하는 것만으로 표의 등가성을 높일 수는 없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를 경우 현행 제도 하에서 서울·경기·인천의 수도권에서만 22석이 늘어나게 되는데, 이러한 결과는 수도권 지역이 과잉대표됨으로써 지역 대표성의 평등을 깨게 된다. 따라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목적한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는데 현행 공직선거법의 구조는 근본적인 한계로 작용한다.

무엇보다도 우선 검토해야 할 것은 현행 ‘소선거구 단순다수대표제’ 국회의원 선출방식을 유지할 것인가이다. 무수한 사표가 발생하고 표의 등가성을 현저하게 해치며 승자독식의 폐해를 보이고 있는 현행 제도는 그 자체를 손질해야만 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바람직한 방식이 비례대표의 획기적인 증원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독일식 정당명부제 도입 요청이 있었다. 지역구 의석을 유지하면서 비례대표를 확대하고 표의 등가성을 확보할 수 있는 좋은 방식이다. 여기서 좀 더 나아간 것이 바로 전면비례대표제의 도입이다. 노동당은 이미 2012년 총선 공약을 통해 ‘광역단위 전면비례대표제’를 제안한 바 있다. 우선 전국을 대권역으로 나누고 각 권역별 최소의석을 우선 할당한 후 인구비례에 따라 나머지 의석을 배분한다. 정당은 권역별로 각 당의 후보명부를 제출하고 유권자는 지지정당과 해당 정당명부 내 선호 후보자 1인을 선택하게 한다. 정당득표율로 당선자 수를 정하고 명부 내 각 후보의 득표율 순위로 당선자를 결정하는 것이다. 이 경우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지역 대표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또한 비례대표의 강화를 통해 국회의원의 직능 대표성 또한 강화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노동당의 제안이 제도정치권 안에 수용될 수 있는 가능성이 별로 없는 것이 현실이다. 보수양당 체제로 형성된 기득권을 마음껏 향유하고 있는 새누리와 새정연이 비례대표의 대폭적인 확대 혹은 전면비례대표제를 수용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보수양당은 군소정당의 원내진출을 막기 위한 진입장벽을 더 높이 쌓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예컨대 19대 국회에 올라와 있는 공직선거법 개정안 중에는 대통령선거 방송토론회 참가 자격을 국회의원 10인 이상 소속 정당, 직전 선거에서 10% 이상 득표율을 가진 정당, 선거기간 개시 전 여론 지지율 10% 이상인 후보자에게만 주는 법안이 올라와 있을 정도다. 이 외에도 군소정당의 정치활동과 선거운동에 제약을 주게 될 각종 정치관계법 개정안이 발의되어 있다. 다 들여다 볼 것도 없이, 보수양당이 추구하는 정계구획의 상이 무엇인지는 설명의 필요가 없을 정도로 명확하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리그를 결코 개방할 생각이 없다.

 

참정권 회복 운동, 정치관계법 개정 의제화 해야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첫째, 시민사회가 당사자 운동으로서 참정권 회복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둘째, 군소정당 특히 진보정당들과 녹색당이 결합해 정치관계법 개혁 의제를 공통의 사업으로 진행할 필요가 있다. 앞의 것은 보수양당이 현실적인 위기감을 느낄 수 있게 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 여론의 압력이라는 점에 착안한다. 운동의 주제와 내용은 말 그대로 무궁무진하다. 현행 정치관계법, 즉 정당법, 정치자금법, 공직선거법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 뜯어고치지 않으면 안 되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뒤의 방법론은 산개해 있는 진보진영이 공통사업을 통해 상호 신뢰를 회복하고 정치관계법 개혁운동을 보다 강도 높은 수준으로 전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내면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국회의원 선거와 관련된 근본적인 문제를 건드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또한 보다 정의롭고 효과적인 선거제도를 설계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도 주목해야 한다. 문제는 이러한 의미와 기회를 살려갈 수 있는 역량이 우리에게 있는지, 수도 없이 기획해왔던 변화의 방향을 사회적인 호응과 지지 속에서 추진할 수 있을지다. 노동당의 안타까운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정치관계법은 전면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부연의 필요 없이 이 문제는 당의 사활을 건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문제에 대응해 주체적으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점은 현실적 부담이다. 이 부담을 던지고 사활을 건 문제에 사활을 걸고 대응하는 것이 지금의 과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