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공산당 당사 벽면에 게시된 아카하타 신문

먼 좌파 이웃 좌파 ④ 동병상련? 이웃 나라 일본의 좌파 (2)

[2013.11 제3호 먼 좌파 이웃 좌파 ④]

동병상련? 이웃 나라 일본의 좌파 (2)

 

장석준|부대표

 

 

 

노동조합총평의회의 배타적 지지로 존립 유지돼

 

“5만 당원으로 천만 표를 모으는 불가사의한 당.” 한 정치학자는 일본 사회당을 이렇게 묘사한 바 있다. 실제로 사회당 당원 수는 원내에 다수 의석을 확보한 좌파 대중정당 치고는 너무나 적었다. 1969년 당원 재등록 기간 중에 확인된 당원 수는 고작 3만 명이었다. 이중 5천 명 가량이 국회의원과 지방의원이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사회당에는 간부만 있고 당원은 거의 없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런데도 사회당이 존립하고 또한 제1야당으로 버틸 수 있었던 요인은 단 하나, 바로 일본노동조합총평의회(총평, ‘일본의 민주노총’ 이라 할 수 있었다)의 배타적 지지였다. 총평은 선거 기간 중에 사회당의 자금과 조직 동원을 떠맡았다. 대신 사회당 국회의원 대부분은 총평 간부 출신이었다.

일본의 노총인 연합(렌고)의 실내 집회 모습

일본의 노총인 연합(렌고)의 실내 집회 모습

사실 좌파정당이 노동조합과 긴밀할 관계를 맺는 것 자체는 너무도 당연한 일이다. 다만 그 관계가 어떤 방식으로 이뤄지느냐가 문제다. 일본의 노동자들은 당에 대거 개별 입당하지도 않았고 그렇다고 사회당에 영국 노동당 식의 노동조합 집단입당제도가 존재한 것도 아니었다. 오직 총평 간부들만 사회당에 입당하고 당과 관계를 맺었다. 비록 총평 간부들이 급진적 성향을 지녔다고는 해도 이렇게 의원과 의원 지망자, 노조 간부들로만 이뤄진 좌파정당이 오래도록 건강하게 발전하기란 불가능했다.

더군다나 일본의 노조는 산별이 아닌 기업별이었다. 일본 노조 운동은 조직률이 50%를 넘던 전쟁 직후의 전성기에 산별로 전화하는 데 실패했다. 기업별 노조체제가 정착되었다. 그 결과, 중소기업 노동자들은 대기업 중심의 기업별 노조 체제 바깥에서 계속 미조직 상태로 머물고 말았다.

이런 노동조합운동의 한계는 고스란히 사회당의 한계로도 다가왔다. 대기업 노동조합은 점점 우경화했고, 그러면 그럴수록 사회당은 총평 산하 일부 전투적 공공부문 노동조합만의 노동자정당이 되어갔다. 그리고 대다수 미조직 노동자에게는 ‘남의 당’ 이었다. 이런 사회당을 국민들이 수권능력을 갖춘 당이라고 볼 리 만무했다. 사회당은 언제인가부터 자민당의 지나친 횡포를 견제할 순단일 뿐이었다.

 

총평 의존 정당이었던 일본 사회당

 

이런 상황에서 총평계 노동운동의 위기가 닥쳤다. 1980년 중의원 선거에서 압승을 거둔 자민당은 기존의 일본형 케인스주의를 시장지상주의적 긴축 재정으로 전환하면서 동시에 노동계를 손보기 시작했다. 대표적으로, 1987년에 ‘국철(國鐵) 개혁’ 이라는 구호 아래 철도 사유화를 단행했다. 총평의 핵심인 공공부문 노동조합을 깨기 위한 조치였다.

같은 해에 민간 대기업 노조의 우경화한 분위기를 대변하는 새로운 총연맹 렌고(連合, 일본노동조합연합)가 800만 조합원을 자랑하며 출범했다. 2년 뒤에는 총평이 결국 해산하고 렌고에 흡수 통합됐다. 렌고의 노선은 총평의 정반대라고 보면 된다. 노동조합에 의존해온 사회당으로서는 이제 렌고에 맞춰 자신도 오른쪽으로 향하지 않으면 안 되는 신세가 되었다. 노조운동의 우경화와 함께 노동자들의 사회당 지지율도 지속적으로 하락했다.

사회당은 나름의 자구 노력을 벌였다. 시민운동 출신의 여성 정치인 도이 다카코를 대표로 내세운 것도 그 일환이었다. 이러한 노력이 결실을 맺은 것인지 1989년 참의원(상원) 선거와 1990년 중의원 선거는 사회당이 오랜만에 약진하는 의외의 결과를 보여주었다. 사회당의 득표율이 다시 20%를 넘어섰다. 그러나 사회당의 약진은 오히려 당을 궁지에 몰아넣는 결과를 낳았다. 사회당에 표를 빼앗긴 소수 정당들(대표적으로 공명당)이 자민당과 유착하기 시작했고, 이에 따라 보수 세력 주도 정계개편에 시동이 걸렸던 것이다. 렌고는 이를 부채질하는 역할을 했다. 렌고는 “사회민주주의와 리버럴 세력의 총결집(이른바 ‘사민-리버럴 정당’론)”을 주장하며 노골적으로 좌파정당인 사회당을 해체하고 중도정당을 건설하라고 요구했다. 우리는 이 대목에서 2012년 한국 대선의 이른바 ‘빅 텐트’ 론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자민당에서 떨어져 나온 일본신당, 신생당 등 보수 계열 신당이 대거 선거에 참여한 93년 7월 중의원 선거는 사회당 붕괴의 신호탄이 되었다. 사회당의 의석은 136석에서 70석으로 절반이 줄었다. 당의 오른쪽에서나 왼쪽에서나 똑같이 대규모 이탈이 나타났다. 렌고 소속 노조 지도부는 사회당이 너무 왼쪽에 있다며 사회당이 아닌 보수 신당들을 지지하기로 결의했다. 반면 기존 사회당 지지자 중에서 38.9%만이 사회당을 지지하고 나머지는 대거 이탈했는데, 이 중에는 좌파 성향 유권자라고 할 수 있는 사람들이 다수를 차지했다. 사회당의 와해가 시작된 것이다.

총선 직후 렌고 지도부의 압력으로 일본신당의 호소카와 모리히로가 주도하는 최초의 비자민당 연립정부가 들어섰다. 이 연정에 사회당도 무라야마 토미이치 신임 위원장이 입각했고 한때 무라야마가 총리가 되기도 했다. 겉만 보면, ‘집권’ 이고 ‘성공’ 이었다. 하지만 공동 집권의 주역은 어디까지나 자민당에서 탈당한 보수 정파들이었다. 보수파와의 공동 집권은 사회당의 정체성 위기만 가중시켰다. 사회당의 영혼이 사라진 그 자리에서 더 이상 대중적 좌파 구심은 존재하지 않았다. 일본 사회의 총보수화가 시작된 것이다.

 

총보수화의 시작이 된 보수파-사회당 공동 집권

 

지금 일본의 좌파 정치 공간은 초토화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사회당은 1996년 1월 사회민주당(약칭 사민당)으로 당명을 바꿨다. 이때 좌파 일부는 탈당해 신사회당이라는 소규모 정당을 따로 차렸고(지방의원은 있으나 아직까지 원내 의석은 없다), 48명의 우파 의원은 렌고의 권유에 따라 신생 중도우파 정당인 민주당에 합류했다. 사회당의 전통은 사민당으로 이어졌지만, 사실상은 기존 사회당의 붕괴였다.

사민당은 소선거구-비례대표 병립제가 처음 실시된 96년 중의원 선거에서 16명의 당선자를 냈다. 비례대표 선거에서는 공산당이 13%를 얻는 데 반해 6%만을 얻었다. 사민당은 초기에도 그래도 도이 다카코 위원장의 인기에 의지해 근근이 버텼지만 도이가 물러난 뒤에는 계속 당세가 추락하고 있다. 작년 중의원(총480석)선거에서는 정당 투표 2.38% 득표로, 2개의 의석을 차지하는 데 그쳤다.

물론 공산당이 버티고 있다. 일본 공산당은 현재 자민당보다 더 많은 지방의원을 보유하고 있다. 중의원 선거에서는 정당투표 6.17% 득표로 8석을 확보했다. 일단 선방이었다. 그러다가 올해 도쿄도(都) 지방선거에서는 의석을 8석에서 17석으로 늘리며 상승세를 보이기 시작했다. 7월의 참의원(총242석) 선거에서는 기존 의석 6석에서 5석을 더하는 결과를 얻었으며, 더 중요한 것은 지역구 당선자를 배출했다는 사실이다. 최근 여론조사에서는 비록 자민당과는 비교할 수 없는 수치이지만 6% 정도의 지지율을 보이며 유일 좌파 야당이자 제1야당의 위상을 인정받고 있다.

자유민주당의 헌법 96조 개정에 반대하는 일본 사회민주당과 공산당의 공동 시위

자유민주당의 헌법 96조 개정에 반대하는 일본 사회민주당과 공산당의 공동 시위

사회당이 붕괴하고 ‘사민-리버럴 정당’ 민주당마저 제 것으로 만들지 못한 공간을 공산당이 채워나가고 있는 셈이다. 공산당이 그나마 버티고 있으니 다행이다. 하지만 워낙 사회당, 공산당, 신좌파 사이의 분열과 대립이 심했던 터라 공산당이 과연 진보적 여론 전체의 새로운 대변자 역할을 할 수 있을지는 의문이다. (최근 일본 공산당의 정책에 대해서는, 시이 가즈오 위원장의 연설문들을 모은 『지금, 일본 공산당』[이매진, 2013]을 참고할 수 있다.)

아무튼 일본 좌파정당의 역사를 보면 볼수록 저들이 20세기 후반에 보인 여러 패착이 한국 진보정당운동에서 지난 2-3년 동안 집약적으로 반복된 것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두 나라의 진보좌파 모두 지금 그 폐허를 수습하고 새 출발을 모색해야 하는 처지다. 동변상련, 이것이 지금 두 나라 진보좌파를 가로지르는 열쇳말이다.

아직도 간혹 볼 수 있는 신좌파 집회

먼 좌파 이웃 좌파 ③ 이웃 나라 일본의 좌파 (1)

[2013.10 제2호 먼 좌파 이웃 좌파 ③]

이웃 나라 일본의 좌파 (1)

 

장석준|부대표

 

 

 

실종된 동아시아 국제연대의 전통

 

좌파 정치의 오랜 미덕 중 하나는 국민국가의 틀을 넘어서는 국제연대의 전통이다. 동아시아에도 20세기 전반에는 이런 전통이 살아 있었다. 우리 항일혁명운도사만 봐도 중국, 일본의 좌파와 연대하여 동아시아 전체의 변혁을 위해 싸운 선배들의 기록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그러나 지금은 그렇지 못하다. 좌파 정당들은 자국 정치의 맥락 안에 갇혀 있을뿐더러 교류도 활발하지 않다.

더구나 동아시아가 점점 더 지구 자본주의의 중심으로 부상하는 데 반해 이 지역의 좌파정치는 오히려 과거보다 쇠퇴하는 양상이다. 무엇보다 점점 더 우경화하는 일본 정치가 그런 인상을 던져준다.

 

오래된 일본의 좌파 정치의 역사

 

일본은 본래 뿌리 깊은 좌파 정치의 전통을 지니고 있다. 1920년대에 노동운동, 농민운동 등의 성장을 바탕으로 좌파 대중정당들(흔히 ‘혁신정당’ 이라 불렸다)이 활발하게 등장했다. 사회민중당, 일본사회당 그리고 노동자농민당이 그런 정당들이었다. 남성 보통선거제가 도입된 덕분에 이들 정당은 의회에 진출해 활동하기도 했다. 조지 O. 타튼의 『일본의 사회민주주의 운동』[한울, 1997]을 보면, 당시 이들의 활동상을 생생히 접할 수 있다. 다만 공산당만은 철저히 탄압 받았다. 천황제를 부정했기 때문이다.

패전 이후 한 동안은 좌파 정치의 전성기였다. 전쟁 전의 혁신정당 흐름들이 결집해 사회당을 창당했고, 공산당도 드디어 활동의 자유를 얻었다. 우파가 전쟁 책임을 지고 있었던데다가 패전 후 비약적으로 성장한 대중운동 덕분에 사회당, 공산당 모두 전에 없던 인기를 누렸다. 1947년에는 사회당의 가타야마 데쓰 총리가 이끄는 좌우연정이 들어서기도 했다.

1960년대 신좌파 학생들의 가두 투쟁 모습

1960년대 신좌파 학생들의 가두 투쟁 모습

이 시기를 다룬 책으로는 존 다우어의 『패배를 껴안고 : 제2차 세계 대전 후의 일본과 일본인』[최은석 옮김, 민음사, 2009]이 좋다.

이 짧은 전성기는 한국전쟁을 계기로 냉전 체제가 자리 잡으면서 곧 끝나버렸다. 하지만 이후에도 한동안 좌파는 일본 사회의 무시할 수 없는 주요 축이었다. 원내에서는 사회당이 늘 1/3 이상의 의석을 점하며 자유민주당의 냉전 드라이브를 막았다. 노동조합운동도 공공부문을 중심으로 전투적 기풍을 견지했다. 무엇보다 1950년대-60년대 내내 학생운동이 활발히 지속됐고 그래서 좌파 청년 세대가 끊임없이 배출됐다.

 

지나친 총평 의존 속에 조로한 일본 사회당

 

문제는 좌파 전반의 부족(部族)화에 있었다. 여기에는 주류 좌파의 책임도 있었고, 신좌파 세대의 문제도 있었다. 우선 사회당은 일본노동조합총평의회(약칭 총평)의 배타적 지지 방침에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었다. 그래서 선거 때마다 노동자들의 몰표를 받기는 해지만, 당 자체의 기반은 극히 취약했다. 제1야당임에도 불구하고 당원 수는 전성기이던 1960년대 말에 3만 명에 불과했다. 굳이 당원을 확대하지 않아도 총평이 조직과 재정을 책임져줬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 당 내 좌파, 그 중에서도 ‘사회주의협회’ 라는 정파가 당의 골간을 장악했는데, 그들은 낡은 교조적 마르크스주의를 추종했다. 사회주의협회의 노선은 일본 자본주의의 발전 상황과도 맞지 않았고 신좌파 청년들에게도 별로 매력이 없었다. 그래서 서유럽의 신좌파 세대가 1970년대를 거치며 주류 좌파 정당에 입당해 당 내 좌파 흐름을 강화한 것과 달리 일본에서는 사회당이 조로(早老)해 버리고 말았다. (사회당을 포함해 전후 일본 정치 전반에 대한 개론서로는, 야마구치 지로 외, 『일본 전후정치사』[박정진 옮김, 후마니타스, 2006]이 좋다.)

 

스탈린주의의 유산, 공산당의 자폐성과 신좌파의 정파주의

 

한편 공산당 역시 자폐적 성격이 강했다. 공산당은 한국전쟁 시기에 농촌 게릴라 전술을 추진해 일본사회에서 고립된 적도 있지만, 이후 ‘인민적 의회주의’ 라는 이름 아래 대중 정치의 길을 꾸준히 개척해왔다. 사회당과는 달리, 일간지 <아카하타(赤旗)>를 중심으로 독자적인 조직 기반을 확보하기 위해 노력하기도 했다. 하지만 공산당은 스탈린주의를 부정하기는 했지만 스탈린주의의 어떤 요소들, 가령 ‘무오류의 전위정당’ 신화를 버리지는 못했다. 그래서 과거 일본 공산당이 범한 여러 오류를 제대로 평가하지 않고 공산당 정통론을 고집하는 측면이 있다. 국내에도 DVD가 나온 오시마 나기사 감독의 영화 『일본의 밤과 안개』(1960년작)를 보면, 이런 분위기를 실감할 수 있다(한편 참고할만한 책으로는 고야마 히로타케의 <전후 일본의 공산당사 : 당내 투쟁의 역사>[최종길 옮김, 어문학사, 2012]가 있다.) 이런 태도가 공산당과 신좌파 사이의 균열과 대립을 낳았다. 나중에는 아예 서로 폭력을 행사하는 불구대천의 원수가 되었다. 이탈리아 공산당이 신좌파와 긴장을 빚으면서도 그 에너지를 흡수해 1970년대에 한때 집권 목전까지 갔던 것 과는 사뭇 다르다.

일본에도 1956년 소련 공산당 20차 당대회에서 스탈린의 죄상이 폭로되고 곧이어 헝가리 혁명이 일어나자 공산당에서 이탈한 젊은이들을 중심으로 신좌파가 형성됐다. 그 자신 신좌파운동 참여자였던 가라타니 고진은 대답집 『정치를 말하다』[조영일 옮김, 도서출판b, 2010]에서 당시 분위기를 실감나게 전한다. 숫자로만 따지면, 일본의 신좌파 세대도 프랑스나 이탈리아, 서독에 못지 않았다.

흔히 서유럽에 비해 일본 신좌파는 너무 커다란 패배를 겪어서 이후 지속적인 영향을 미치지 못했다고 하는데, 사실 패배한 걸로는 서독도 마찬가지였다. 결정적으로 다른 점은 서독 신좌파의 상당수는 1970년대 후반 녹색당 건설 운동에 합류해 대중 정치의 새 흐름을 만들었던 데 반해 일본은 그렇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럴 수밖에 없었던 가장 커다란 이유는 일본 신좌파 사이에 유독 심했던 정파주의였다. 어찌 보면 공산당의 스탈린주의 문화가 스탈린주의를 비판하며 등장한 신좌파 세대에게도 고스란히 반복된 셈이었다.

일본 신좌파 정파들 중 하나인 혁명적공산주의자동맹-혁마르파 집회

일본 신좌파 정파들 중 하나인 혁명적공산주의자동맹-혁마르파 집회

신좌파등 중에서도 가장 극단적인 사례이기는 하지만 연합적군파의 아사마 산장 사건을 분석한 퍼트리샤 스테인호프의 『적군파 : 내부폭력의 사회심리학』[임정은 옮김, 교양인 2013]에 그 충격적인 양상이 소개돼 있다. 신좌파 세대가 일본 사회에서 흔적도 없이 증발해버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파 간 폭력 사태로까지 치달은 병적인 정파주의(그에 비하면 한국 운동권의 정파주의는 아무 것도 아니다) 때문에 세력화에 실패하고 말았다. 그나마 진지하게 방향 전환을 모색한 이들도, 비록 생활협동조합이나 지역운동에 뿌리를 내리기는 했지만, 전국적 정치 흐름을 만들지는 못했다. (신좌파 일부가 생협운동 등으로 전환하는 과정은 요코다 카쓰미, 『어리석은 나라의 부드러우면서도 강한 시민 : 생활클럽 운동그룹과 풀뿌리 민주주의 운동의 모델 만들기』[나일경 옮김, 논형, 2004]에 잘 소개돼 있다.)

이런 상황에서 1980년대 말-1990년대 초에 일본 정치에는 우경화의 쓰나미가 밀려온다. 마치 우리의 지난 몇 년을 연상시키는 사태가 일본 좌파를 덮쳤고, 그 결과가 지금의 우경화한 일본 정치 지형이다.

성소수자 권리를 위한 시위를 벌이는 독일 좌파당 당원들

먼 좌파 이웃 좌파 ① 세상에는 어떤 좌파정당들 있나

[2013.07 창간준비호 먼 좌파 이웃 좌파 ①]

세상에는 어떤 좌파정당들 있나

 

장석준|부대표

 

 

 

사회민주당, 사회당, 노동당, 공산당, 녹색당… 좌파정당 하면 흔히 떠오르는 이름들이다. 간간히 외신에 이런 이름들이 오르내릴 때마다 먼 곳의 동지로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 정당의 과거 역정이 어떠했는지, 요즘은 어떻게 활동하고 있는지, 이들의 고민은 무엇이고 그것은 지금 우리의 고민과 어떻게 이어지는지에 대해 풍부한 이야기를 접하기한 쉽지 않다. 이 갈증을 풀기 위해 우선 세계 곳곳에 어떠한 좌파정당들이 존재하는지부터 짚어보자.

 

좌파정당의 고전적 두 흐름 – 사회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좌파정당들은 몇 개의 무리로 나눌 수 있다. 그 첫 번째 무리는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다. 독일 사회문주당, 프랑스 사회당, 영국 노동당, 스웨덴 사회민주노동당, 네덜란드 노동당, 스페인 사회노동당 등 유럽의 주요 좌파정당들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 정당은 대개 역사가 100년이 넘는다. 좌파정당의 첫세대라 할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150년도 더 전인 1860년대에 세계 최초의 좌파 대중정당인 독일 사회민주당이 등장한 게 그 출발점이었다. 그 후 유럽 여러 나라에서 ‘사회민주주의’, ‘사회주의’, ‘노동(자)’ 등의 이름을 내건 정당들이 등장했고, 2차 대전 이후에는 이들이 복지국가 건설을 주도했다. 유럽에서는 지금도 대체로 이들 정당이 여당이거나 제1야당이다. 현재 집권당으로는 프랑스 사회당, 덴마크 사회민주당, 노르웨이 노동당 등이 있다.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유럽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의 국제 조직인 ‘사회주의 인터내셔널'(SI)에는 많은 비유럽권 정당들이 가입해 있다. 그 중에는 유럽 사회민주주주의 정당들과 성격이 비슷한 오스트레일리아 노동당, 뉴질랜드 노동당, 캐나다 신민주당, 칠레 사회당 등도 있지만 제3세계의 좌파 민족주의 운동에서 출발한 정당들도 꽤 있다. 규모가 큰 것만 열거해도, 터키의 공화인민당, 멕시코의 민주혁명당,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프리카민족회의 등이 있다.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것은 멕시코 제도혁명당(위의 민주혁명당의 주적)처럼 좌파정당이라 보기 힘든 부패한 기득권 세력도 회원으로 가입해 있다는 사실이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의 사회민주당, 말레이시아의 민주행동당 등이 주요 회원이다.

남아공에서 열린 제24차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대회

남아공에서 열린 제24차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대회

신자유주의의 절정기이던 지난 20여 년 동안 사회민주주의 정당들 중 상당수는 ‘제3의 길’, ‘새로운 중도’ 등의 이름으로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였다. 영국 노동당과 독일 사회민주당이 대표적인 사례였다. 이 때문에 2008년 금융 위기를 거치며 이들 정당은 정권을 잃거나 지지율이 급락했다. 재정 위기에 휩싸인 그리스에서는 사회민주주의 정당인 범그리스사회주의운동(PASOK)이 그간 소수 정당에 머물던 급진좌파연합(SYRIZA)에 좌파의 대표 자리를 내주는 이변이 일어나기도 했다. 신자유주의의 대안이 아니라 그 공범으로 낙인찍힌 것이다. 그래서 최근 이들 정당 내부에서는 ‘제3의 길’ 노선을 청산하고 과거의 정통 사회민주주의를 새로운 상황에 맞게 되살리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작년 총선 당시의 그리스 급진좌파연합 대표 알렉시스 치프라스

작년 총선 당시의 그리스 급진좌파연합 대표 알렉시스 치프라스

본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 왼쪽에서는 공산주의 정당들이 좌파정당의 또 다른 큰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러시아 10월 혁명의 영향을 받아 혁명 노선을 주창하며 등장한 정당들이다. 제국주의로 인해 고통 받은 유럽 바깥 세계에서는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아니라 공산주의 정당이 사회에 깊게 뿌리내렸다. 유럽에서도 이탈리아나 프랑스 같은 나라에서는 한때 공산당이 좌파 제1정당 역할을 했다. 그러나 소련이 무너지고 중국이 지구 자본주의에 편입되면서 공산당은 대개 몰락 혹은 재편의 길에 접어들었다. 아직도 ‘공산당’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자본주의 국가 안에서 활동하는 정당으로는 인도의 공산당-마르크스주의파, 네팔의 공산당-마오주의파, 체코의 보헤미아 모라비아 공산당, 일본 공산당, 칠레 공산당 등이 주목할 만하다.

 

새 세대의 좌파정당 흐름들 – 녹색 정당, 좌파 재구성 정당

 

기후변화에 대한 시위를 벌이는 영국 녹색당 당원들

기후변화에 대한 시위를 벌이는 영국 녹색당 당원들

20세기 좌파정당의 두 큰 줄기였던 사회민주주의, 공산주의와는 또 다른 전혀 새로운 흐름들도 있다. 지난 세기 말에 등장한 좌파정당의 새 세대들이다. 그 첫 번째 무리로 들 수 있는 게 녹색 정당들이다. 흔히 녹색당은 좌우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녹색 정당의 첫 성공 사례인 독일 녹색당(정식 명칭은 ‘녹색당/동맹90’)은 분명 신좌파 정치세력화의 산물이었다. 비록 지금은 사회민주당보다 더 우경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말이다. 현실 정체에서 성공한 녹색 정당으로는 그 밖에도 오스트리아의 녹색당-녹색대안, 프랑스의 유럽 생태주의-녹색당, 네덜란드의 녹색좌파 등이 있다. 영국에서는 녹색당이 좌파 성향 유권자가 선거에서 노동당 대신 선택할 대안으로 떠오르기도 한다. 이들 정당에 대한 보다 상세한 소개로는 최백순 당원이 쓴 <미래가 있다면, 녹색>(이매진,2013)을 참고할 수 있다.

녹색 정당은 한때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유력한 경쟁자로 부상했고 지금도 몇몇 나라에서는 그렇다. 그런데 도전자는 이들만이 아니었다. 현실사회주의권이 몰락하고 나자 구 공산주의 정당들이 스스로를 재편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사회민주당 왼쪽의 정치 세력 전반이 재편되는 계기가 되었다. 오랫동안 소주 정파 활동에 머물러 있던 트로츠키주의나 마오주의 세력도 새롭게 대중정당 건설에 나섰다. 이들을 한데 아울러 좌파 재구성(left recomposition) 정당들이라 할 수 있겠다.

그 선구적 사례는 1980년대 초에 등장한 스페인의 연합좌파다. 이 조직은 공산당과 여타 좌파 정치조직들이 모인 정당연합이다. 그러면서도 마치 하나의 정당처럼 활동하기도 한다. 이후에 이와 비슷한 형태의 조직으로서, 덴마크의 적록연합, 핀란드의 좌파연합, 포르투갈의 좌파블록, 위에서 언급한 그리스의 SYRIZA 등이 등장했다. 최근에는 프랑스의 좌파당과 공산당이 ‘좌파전선’이라는 이름으로 비슷한 실험에 나섰다. 이와 달리, 여러 정파들이 모이기는 했지만 처음부터 하나의 정당으로 출범한 사례도 있다. 독일의 좌파당, 네덜란드의 사회당(별칭 ‘토마토당’), 이탈리아의 좌파생태자유, 아이슬란드의 좌파녹색운동 등이 그런 경우다.

좌파 재구성 정당들은 처음에는 사회민주당 왼쪽에서 주류 좌파를 비판하는 소수파 역할에 머물렀다. 지지율도 5% 안팎에 그쳤다. 하지만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노골적으로 신자유주의에 투항하는 모습을 보이자 점차 양상이 바뀌었다. 그리고 2008년 미국 금융 위기와 함께 신자유주의의 전성기가 끝나고 동요의 시대가 시작되자 기회가 왔다. 이미 이야기한 그리스 사례를 비롯해 현재 프랑스, 덴마크, 포르투갈 등지에서 좌파 재구성 정당들은 기존에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차지하던 좌파의 대표자 위치를 넘보고 있다.

노동자당 후보의 상파울루 시장 당선을 축하하는 브라질 노동자당 당원들

노동자당 후보의 상파울루 시장 당선을 축하하는 브라질 노동자당 당원들

이게 유럽만의 양상은 아니다. 2000년대에 라틴아메리카에서 좌파 붐을 일으킨 중남미 좌파 정당들은 좌파 재구성 정당의 아메리카판이라 할 수 있는 세력들이다. 브라질의 노동자당, 우루과이의 확대전선, 베네수엘라의 통합사회당, 볼리비아의 사회주의 운동, 이들 모두는 SI와 거리를 두고 있다. 남미에서 SI 회원들은 오히려 각 나라에서 구체제의 버킴목 역할을 하던 정당들(콜롬비아의 자유당이나 베네수엘라의 민주행동당, 볼리비아의 혁명좌파운동)이다. SI에 속한 유럽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미국의 이라크 침략에 동조할 때 남미 좌파 세력들은 ‘온건’ 노선이라는 브라질 룰라 정부든 ‘강경’ 노선이라는 베네수엘라 차베스 정부든 모두 전쟁에 반대하고 나섰다. 이들 중남미 신흥 좌파는 ‘상파울루 포럼’이라는 라틴아메리카 좌파만의 독자적인 국제 조직에 모여 있다.

우리 당은 이러한 세계 좌파정당의 여러 흐름들 중 어느 쪽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까? 지금 우리 상황에서 보다 풍부한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사례는 무엇인가? 이 물음의 답을 찾기 위해 이제부터 위의 무리들 그리고 그에 속한 각 정당을 하나하나 살펴보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