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신을 돌아보다

[2015.12 제26호 특집]

유신을 돌아보다

 

 

근래에 들어와 ‘유신’이란 말이 정치적 공간에 심심찮게 불려나온다. 박정희의 생물학적 딸인 박근혜가 이 나라를 통치 중인데다, 그녀가 보이는 행보가 유신독재체제의 그것과 상당히 닮아 있어서일 테다. 누군가는 ‘이러다 한국 사회가 유신시대로 되돌아가는 거 아니냐’는 걱정을 하기도 한다. 과연 그럴까? 박정희의 죽음과 함께 끝이 난 듯 보였지만, ‘유신’은 우리 사회에서 완전히 사라진 적이 없다. 그림자처럼, 유령처럼 우리 사회의 정치·사회·문화 영역 곳곳에 지금도 들러붙어 있다. 우리에게 ‘유신’은 과거가 아니다. 우리는 ‘유신’을 완전히 떨쳐내고 지금의 체제를 넘어설 수 있을까? 다른 체제는 가능한가?

 

▲ 국제적으로 소외당할 수밖에 없는 북한은 연일 어떤 ‘강경한 자세’를 취하며 자신의 존재를 어필하려 할 것이다. 판문점에서의 대치는 그러한 표면적인 이미지를 대신하고 있다. (사진: 이상엽)

박근혜 새 정부 대북정책의 좌표, 어디쯤인가

[2013.03 온라인 창간준비1호]

박근혜 새 정부 대북정책의 좌표, 어디쯤인가

 

 

새로 들어선 박근혜 정부의 대북 정책 ・기조가 어디로 향할지 분석해봅니다. 진보신당 기관지 창간준비 첫 호 “공포를 키우는 정치, 공포를 이기는 정치” 두 번째 기획기고, 진보신당 김민하 정책위원의 글입니다.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의 틀은 어떤 방향으로 잡힐까? 많은 사람들이 그 방향을 궁금해 한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이명박 정부에서 보수층한테서도 문제가 있다는 지적을 받은 것이 바로 대북정책이기 때문이다. 과도하게 경직된 대북정책이 여러 폐단을 낳았다는 비판은 이제 식상한 얘기다.

박근혜 정부가 이명박 정부와 같은 수준에서 대북정책의 방향을 잡으리라고 기대하는 것은 합리적이지 않은 생각이다. 그렇지만 박근혜 정부가 김대중 정부에서 이어진 ‘햇볕정책’을 계승하리라고 상상하는 것도 쉬운 일은 아니다. 우리는 이런 딜레마를 ‘직관적으로’ 알 수 있다.

‘어쨌든 강경한 대북정책이 나오기는 할 테지만 이명박 정부하고는 뭔가 다른 맥락이 존재할 수도 있다’라는 것, 이 정도가 우리가 지금 상황에서 추측할 수 있는 정부의 모습이다. 그렇지만 이런 추측에 관한 근거를 얘기하는 것은 또 다른 문제다. 그리고 이런 고민의 출발점은 박근혜 정부에서 대북정책의 주요한 방향을 결정할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들이 어떤 성향을 갖고 있느냐를 따지는 것이라고 말할 수 있다.

 

박근혜의 사람들, 대북 강경파 일색?

 

박근혜 정부에서 대북정책의 주요한 방향을 결정할 수 있는 사람의 리스트를 뽑아보자. 우선 가장 중요한 키를 쥐고 있는 사람으로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을 꼽을 수 있다. 김장수 실장은 군인 출신으로 국방부 장관을 역임하고 정치에 입문한 경력이 있다. 언론에서는 김장수를 ‘매파’로 분류한다. 대북정책과 관련해 강경한 입장을 갖고 있다는 뜻이다.

윤병세 외교부 장관 역시 ‘매파’로 분류된다. 대북문제는 언제나 외교정책 일반하고도 관계가 있기 때문에 외교부 장관의 태도 역시 중요하다. 그런데 새 정부의 외교부 장관 역시 대북정책에 강경하다.

김병관 후보자의 사퇴로 유임된 김관진 국방부 장관 역시 대북문제에 관해서 강경파라는 평가를 두루 얻고 있다. 김관진 장관은 이명박 정부 시절에도 “북한이 도발을 해올 경우 허가 없이 발포해도 좋다”는 명령을 내린 것으로 알려져 대중적 인기를 얻었다. 병사들에게 “쏠까요, 말까요 묻지 말고 자동으로 응징한다. 언제까지? 적이 굴복할 때까지. 표적은 뭐다? 도발원점, 지원세력까지.” 라는 발언을 했다는 사실은 널리 알려져 있다. 군 사격 훈련 시 김정일과 김정은 등의 초상을 표적지로 사용하는 방법 등을 도입한 것도 김관진 장관의 지시에 따른 것으로 알려진 바 있다.

이렇게 보면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은 그야말로 강경파 일색일 것으로 생각되기도 한다. 그렇지만 달에 뒷면이 있듯이 이런 대북 강경파들한테서 또 다른 면을 발견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보아야 한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북정책에 관한 공약은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로 알려졌다. 이것은 3단계로 이루어져 있는데 1단계는 식량을 포함한 북한에 관한 인도적 지원을 재개하는 것이고, 2단계는 농업과 조림 등 낮은 수준의 남북 경제협력 사업을 벌이는 것이다. 3단계는 교통과 통신 등 대규모 인프라 투자를 실시하는 것인데 2단계까지는 비핵화 같은 조건을 걸지 않고 정치적 상황을 판단해 시행할 수 있다는 것이 알려진 공약 내용이었다. 박근혜 대통령은 북한이 3차 핵실험을 강행한 뒤에도 천안함 3주기 추모 연설 등을 통해 한반도 신뢰프로세스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입장을 밝혔다. 상당한 수준의 전향적 대북정책이 기대될 수 있다.

 

“류길재부터 남재준까지” 비둘기파와 매파 두루 포진, 균형추는?

 

물론 문제는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 인수위 시절 사퇴한 최대석 인수위원이 ‘합리적 보수’라는 평가를 받은 인물이라는 사실을 돌이켜 떠올려보면 그렇다. 최대석 인수위원과 류길재 통일부 장관 등은 새 정부에서 대표적인 ‘비둘기파’의 소임을 담당할 것으로 기대됐다. 그렇지만 최대석 인수위원이 석연치 않은 이유로 인수위원을 사퇴해 새 정부에서 역할을 맡지 않게 되자 균형추가 ‘매파’로 기울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힘을 얻었다.

여기에 김병관 국방부 장관 후보자가 낙마하게 됐다는 사실까지 고려하면 사건은 더욱 혼란스러워진다. 김병관 전 후보자는 물론 개인 비리 등이 문제가 돼 사퇴했지만 그 배후에는 김장수-박흥렬(청와대 경호실장) 라인하고 한 파워 게임이라는 맥락도 존재했다고 보는 시각이 있다. 김병관 후보자에 관한 소위 ‘제보’가 군 내부에서 제기됐다는 식의 보도가 이어진 이유다.

언론에서는 김병관 당시 후보자가 핸드폰 고리에 박정희와 육영수 사진을 넣고 다닐 정도로 안보관이 투철한 인물이라는 평가를 내렸는데, 김장수 실장이 과거 국방부 장관으로서 한미연합사 해체를 선두에서 이끈데 반해 김병관 전 후보자는 이것에 관해 부정적인 견해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이 사건 때문에 보수층 일각에서 김장수 당시 국방부 장관을 향한 비토여론이 형성되기도 했다. 김장수, 김관진, 박흥렬의 경우 참여정부 시절에 육군참모총장과 합참의장 등 군 고위직을 물려받은 사실이 있다는 점도 보수층 일각에 불안감을 안겨주고 있다. 결국 ‘노무현 정부 때 사람들’이 아니냐는 말이다.

남재준 신임 국정원장은 대북정책에 관해 가장 강경한 견해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그 역시 노무현 정부 시절 육군참모총장을 맡은 바 있으나 임기 내내 당시 청와대와 대립하면서 보수층한테서는 좋은 평가를 받았다. 남재준은 특히 김장수 노무현 정부 당시 국방부 장관에 줄을 댄 군인들에게 비판적 태도를 가진 것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런 인사들의 면면을 돌아보면 결국 박근혜 정부에서 대북정책과 관련한 체제의 인사들은 ‘류길재부터 남재준까지’로 표현할 수 있다. 비둘기파와 매파들이 두루 포진해있는 셈이다. 이런 측면을 반영하면 결국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은 이명박 정부와 노무현 정부 그 사이 어디쯤으로 수렴될 가능성이 다분하다고 평가할 수 있겠다.

 

더 큰 변수는 한반도 둘러싼 외교 지형

 

문제는 정부의 대북정책 방향이 오직 인적 구성의 문제로만 결정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대북정책은 결국 대외적 요소들로 크게 좌우될 수밖에 없다. 이 가운데 특히 6자회담의 당사자들인 미국, 일본, 러시아, 중국 등의 입장을 살펴보아야 할 필요가 있다.

최근 북한의 3차 핵실험으로 이 당사국들의 관계는 중대한 전기를 맞게 됐다. 중국이 북한의 핵실험에 부정적인 태도를 보인 것으로 알려지면서 중국과 러시아와 북한 대 미국과 일본과 남한의 전통적 관계가 헝클어질 가능성이 나타난 것이다.

중국은 한·미·일 동맹이 어떤 형태로든 강화되는 것이 달갑지 않을 수밖에 없다. 러시아와 북한하고 맺은 관계는 중국이 쉽게 통제하기는 어려운 것이기 때문이다. 한·미·일 동맹이 강화되면 강화될수록 중국은 특히 북한과 관계를 강화할 수밖에 없는 ‘코너’에 몰리게 된다. 경제적인 측면에서 중국은 자국에 공격적 태도를 견지하는 미국에 대항할 수 있는 수단들을 갖춰야 하는 상황에 몰려있기 때문이다.

미국은 매우 적극적으로 중국에 견제 정책을 펼치고 있다. 최근 상징적으로 대두된 것은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rans-Pacific Partnership, TPP)이다. 이것은 아시아·태평양 지역 경제의 통합을 목표로 2005년에 체결된 다자간 자유무역협정인데 애초에는 뉴질랜드, 싱가포르, 칠레, 브루나이의 4개국 체제로 출범했으나 2008년 2월 미국이 참여를 선언하면서 협정의 위상이 달라졌다. 미국이 TPP를 통해 자국을 중심으로 아시아 국가 사이의 외교 질서와 경제 질서를 재편하고 이것을 지렛대삼아 중국을 견제하리라는 전망이 대두된 것이다.

미국의 이런 의도가 제대로 작동하려면 TPP에 한국과 일본이 참여하는 것이 필수적이다. 그간 한국 정부는 TPP보다는 한·중·일 FTA를 추진해 동아시아 경제 체제에서 중심적 기능을 하는 구상을 고수해왔고 일본은 농업 등 자국 산업의 타격에 관한 우려로 TPP 가입에 신중한 태도를 취해왔지만 최근 자민당 정부가 TPP 가입 의사를 천명하면서 상황이 급변하고 있다. TPP를 지렛대로 하여 ‘아베노믹스’로 요약되는 양적 완화 정책과 평화 헌법 개정 등의 우경화 조치에 미국의 양해를 받아내려는 의도다.

▲ 국제적으로 소외당할 수밖에 없는 북한은 연일 어떤 ‘강경한 자세’를 취하며 자신의 존재를 어필하려 할 것이다. 판문점에서의 대치는 그러한 표면적인 이미지를 대신하고 있다. (사진: 이상엽)

▲ 국제적으로 소외당할 수밖에 없는 북한은 연일 어떤 ‘강경한 자세’를 취하며 자신의 존재를 어필하려 할 것이다. 판문점에서의 대치는 그러한 표면적인 이미지를 대신하고 있다. (사진: 이상엽)

북한의 핵실험 직후 개최된 유엔 안전 보장 이사회에서 대북 제재 결의안 2094호 표결에 중국과 러시아 등이 모두 참가해 찬성표를 던진 상황은 북한의 전통적 우방국들이 외교적으로 매우 곤란한 처지에 몰려있다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준다. 중국 내부에서 이례적으로 북한과 관계를 단절해야 한다는 강경론이 불거지는 결코 예사롭지 않은 상황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다.

결국 중국의 이런 외교적 곤란은 경제적 측면에서 미국에 관한 약간의 양보와 북한과 맺은 관계에 관한 재고, 영토 분쟁에서 정치적 손실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이 과정에서 국제적으로 소외당할 수밖에 없는 북한은 연일 어떤 ‘강경한 자세’를 취하며 자신의 존재를 어필하려 할 것이다. 결국 이런 상황의 열쇠를 쥔 미국이다. 북한이 바라는 것은 결국 미국과 직접 대화하는 것 내지는 협상하는 것이다. 왜냐하면 이것이 실현될 가능성이 있다면 중국과 맺은 관계 등도 재고할 수 있기 때문이다.

 

미국과 북한의 관계에 좌우되겠지만… MB만 할까

 

이런 상황을 고려하면 결국 미국과 북한의 관계가 어떻게 재정립되느냐에 따라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 기조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는 결론을 내릴 수밖에 없다. 동아시아 질서의 재편에 따라 미군의 교리(doctrine) ‘전략적 유연성’의 하위 범주인 전시작전통제권 환수 등의 논의에 불이 붙는 등의 상황이 벌어질 수 있고, 이런 논의는 국내 보수층의 여론을 자극해 대북정책의 우경화를 불러일으키는 등의 시나리오도 상정할 수 있다. 미국 측이 최근 한일군사정보보호협정의 조속한 재추진을 새 정부에 주문하였다는 소식도 쉽게 보아 넘길 수 없는 사례다.

결국 박근혜 정부의 대북정책의 향방은 미국과 북한의 관계에 좌우될 가능성이 크나 그렇다 하더라도 이명박 정부 식의 일방주의에 가까운 형태로 나타나지는 않으리라고 전망하는 것이 가장 합리적인 추측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