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먼 좌파 이웃 좌파 ⑮ 유럽 신생 좌파 바람의 또 다른 줄기, 슬로베니아 연합좌파

21호(2015년 6월) 먼 좌파 이웃 좌파 ⑮

유럽 신생 좌파 바람의 또 다른 줄기, 슬로베니아 연합좌파

 

장석준 _ 기관지위원

 

 

 

[주] 요즘 유럽 좌파 정치의 총아는 단연 그리스의 급진좌파연합(SYRIZA), 스페인의 포데모스(PODEMOS)다. 한데 이들만이 아니다. 작년 슬로베니아 총선에서 바람을 일으킨 ‘연합좌파’(Združena levica) 또한 주목할 만한 신생 좌파 정치조직이다. 슬로베니아 연합좌파는 마치 초기 SYRIZA처럼 몇 개의 좌파정당들이 결성한 정당연합이다. 민주노동당(DSD), 슬로베니아의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당(TRS), 민주적 사회주의를 위한 행동(IDS)이 연합좌파에 참여하는 정당들이다. 연합좌파는 2014년 7월 총선에서 6.0%를 득표해 총 90석 중 6석을 확보했다. 처음으로 총선에 뛰어든 정치세력으로서는 괄목할 성과였다. 슬로베니아는 다름 아니라 구 유고슬라비아연방에서 갈라져 나온 국가들 중 하나이고, 저명한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의 모국이기도 하다. 과거 유고슬라비아에서 추진했던 노동자 자주경영 사회주의 실험은 1990년대 초 연방의 해체와 함께 급속한 시장 자본주의화, 참혹한 민족 간 내전으로 종료되고 말았다. 그러나 지금 그 계승 국가들(반 긴축 대중 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등)에서는 놀랍게도 새 세대의 좌파 정치가 부활하고 있다. 슬로베니아 연합좌파는 그 중에서도 가장 앞선 정치적 성과라 할 만하다. 이번 호에서는 이들의 지향과 생각을 살펴보기 위해 연합좌파의 구성 조직 중 하나인 ‘민주적 사회주의를 위한 행동(Initiative for Democratic Socialism, IDS)’의 강령을 소개한다.

 

‘민주적 사회주의를 위한 행동’ 선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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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베니아 연합좌파 로고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은 당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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슬로베니아 연합좌파 로고. 아래는 참여 조직들의 로고다.

자본주의만이 현실에서 유일하게 가능한 생산양식이라는 이데올로기의 지배는 이제 끝나가고 있다. 1970년대 후반에 ‘선진’국들에서 급속하고 안정적인 경제성장이 중단되자 자본 세력은 노동자들의 권리에 대한 공격을 강화했으며, 이 공세는 지금껏 계속되는 중이다. 이와 더불어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 지배를 뒷받침하던 토대는 허물어지기 시작했고, 이제는 자본주의 외에 다른 체제가 현존하지 않는다는 단순한 사실만이 자본주의의 존속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현실 사회주의와는 달리 자본주의는 붕괴하지 않았다는(비록 파시스트 깡패와 군부독재의 힘을 빌려야 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사실 덕분에 자본주의 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는 주장이, 따라서 자본축적이라는 이름 아래 희생을 감내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자본이 번영을 누리기 위해서는 불평등이 늘어나야 하고 전 세계 민중의 다수가 빈곤에 시달려야 하며 독재의 공포와 자연 파괴가 필요하다면, 당연히 그래야만 했던 것이다.

자본주의에서는 경제가 삶의 질 향상에 복무하는 게 아니라 정반대로 인간의 삶이 자본축적 확대에 복무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만 현재의 위기를 해결해나갈 수 있다. 현 위기는 자본주의 작동의 예외 국면이 아니다. 시장의 자기 조절이 잠시 교란된 것도 아니고, 기업가 정신이 부족하고 경쟁력이 떨어지는 게으르고 부패한 개인들이 갑자기 늘어난 탓도 아니다. 오히려 위기는 자본주의 경제가 인류와 자연에 대한 지배를 강화하는 수단이다.

우리가 극복해야 할 것은 경제위기가 아니다. 자본주의 경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 민주적 통제, 노동자 권리 그리고 공공서비스의 마지막 찌꺼기마저 이윤을 위해 제거되어야 하는 이 시대를 넘어서야 한다. 정치 엘리트들은 각 개인의 전면적 발전을 보장하고 사회적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 경제에 고삐를 채울 방도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는다. 아니, 이들은 자신들의 이해력과 통제를 넘어서는 자본의 힘에 따라 누가 다음 번 희생자가 될지를 놓고 주사위를 굴릴 뿐이다.

하지만 금융과 그 밖의 시장에 거하는 이런 신비로운 힘은 사회적 생산의 특정한 시스템 아래서 인간 노동으로부터 생명력을 얻을 뿐이다. 개인을 다른 개인뿐만 아니라 노동의 산물로부터 소외시키는 이러한 시스템의 특성으로 인해, 노동생산물은 독자적인 생명을 얻어서 이해하기도 길들이기도 어려운 낯선 힘으로 개인과 마주한다. 이것이 우리 시대에는 금융파생상품이나 정부발행채권의 이자수익이라는 유령으로 출몰하고 있는 것이다.

과학과 교육의 발전 덕분에 우리는 빈곤을 철폐하고 노동시간을 단축하며 지속가능한 발전을 달성할 기술적 가능성을 확보했다. 하지만 사회 세력들이 경쟁이라는 전투 속에서 교착 상태에 빠져 있고 이윤극대화의 눈 먼 독재에 복종하는 한, 이러한 기술적 가능성은 단지 순전한 가능성으로만 남고 말 것이다.

이제 다른 발전 경로의 밑그림을 그릴 때다. 이 새로운 발전의 길에서는 민주적으로 계획된 경제가 사회적 목표들을 달성할 수단 역할을 할 것이다. 또한 경쟁이 아니라 연대에 바탕을 둔 발전을 추구할 것이다.

 

민주적 사회주의란 무엇인가

 

민주적 사회주의를 위한 행동 지도자 아네이 코르시카

민주적 사회주의를 위한 행동 지도자 아네이 코르시카

민주적 사회주의란 무엇인가? 우리의 목표는 정치/경제 영역의 직접 민주주의와 민주적으로 계획된 생산에 바탕을 둔 사회-경제 시스템이다. 우리는 각 개인의 필요와 동시에 사회 전체의 필요에 부응하는, 그리고 자연환경의 재생 역량을 고려하는 생산 및 분배 시스템을 추구한다.

우리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먼 미래의 유토피아적 비전이 아니라 민주적 수단을 통한 자본주의 극복 과정으로 바라본다. 여기에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노동자, 농민, 여성 그리고 원주민의 유구한 해방투쟁 전통이다. 자본주의의 이러한 민주적 극복은 다음의 노력들을 통해 이뤄질 것이다.

정치 차원에서는 : 참여예산, 지역 수준의 직접 민주주의(시민총회와 공개모임) 등 공적문제에 대한 대중 참여의 여러 형태를 창조하고 실행한다. 정책 결정에서 명령적 위임 시스템[역주 – 소환제 등을 활용해 유권자에 대한 선출직 대표의 책임을 강화하는 방안] 등을 통해 대의제를 직접 참여로 대체한다.

미시경제 차원에서는 : 노동자 소유, 자치 및 자주 경영 그리고 협동조합 같은 경제민주주의의 여러 형태를 실시한다.

거시경제 차원에서는 : 자본주의의 항구적인 위기의 원인, 즉 시장과 경쟁이 사회적 [조절] 메커니즘이 되는 것을 폐지한다. 재화의 생산 및 분배의 대안적 조정 양식, 예컨대 생산 단위 사이의 경쟁이 아닌 협력, ‘눈먼’ 시장 생산이 아닌 민주적 계획을 구축한다.

자연환경과 관련해서는 : 자연환경의 재생 역량과 조화를 이루도록 생산규모를 계획한다. 이미 쌓인 부의 재분배에 바탕을 두면서 동시에 환경 친화적인 기술의 실현에 바탕을 둔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을 추구한다. 이와 병행해 전 지구적 수준에서는 좋은 삶을 가능케 할 필수요소인 식수, 농지 및 여타 천연자원을 각 개인이 평등하게 확보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계급 및 정체성 문제와 관련해서는 : 노동과 자본 사이의 계급분화를 철폐한다. 또한 여타의 모든 불평등 및 종속의 사회적 형태들, 특히 인종, 성별, 성적 지향, 출신 국적 혹은 민족 그리고 장애 유무에 바탕을 둔 차별을 철폐한다.

우리는 이러한 정책들이 한 민족국가 안에서만 홀로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국제주의의 대의에 헌신한다. 우리는 세계 자본주의의 폐지를 위해 노력하며, 이를 위해 전 세계 모든 해방 운동과 정당들의 투쟁에 연대한다. 우리의 투쟁은 유럽의 분노한 자들 운동(스페인의 ‘지금 당장 진짜 민주주의를!’ 운동), 그리스 시리자, 독일 좌파당, 프랑스 좌파전선, 스페인 연합좌파뿐만 아니라 라틴아메리카의 사파티스타와 볼리바리안 혁명가들, 이집트 노동조합운동, 중국 노동자운동 등이 벌이고 있는 전 지구적인 반자본주의 운동의 일부다.

시스템 변혁을 위해 투쟁하는 해방운동에는 크게 두 가지 조직 방식이 있다. 일부는 정치권력을 획득해 기존 시스템에 맞서는 정권을 수립하고자 정당을 조직한다. 다른 일부는 정치권력을 장악하려는 의사 없이 시스템 변혁을 위해 싸우는 운동을 조직한다. 우리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은 반드시 이 두 전략 유형을 다 활용해야 한다고 믿는다. 즉, 현존 사회 관계를 아래로부터 폐지하면서 동시에 정치시스템의 제도화된 장 안에서 정책을 위로부터 바꿔야 한다.

 

‘민주적 사회주의를 위한 행동’의 정책 프로그램

 

시위에 참여한 슬로베니아 연합좌파 당원

시위에 참여한 슬로베니아 연합좌파 당원

‘민주적 사회주의를 위한 행동’은 위에 제시한 목표들을 실현하기 위한 정치기획이다. 민주적 사회주의의 원칙들은 하룻밤에 실현할 수 없다. 점진적으로 발전시키고 실시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의 당면 요구는 개혁주의의 성격을 띤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우리는 우리의 궁극 목적이 자본주의를 철폐하고 연대, 관용, 지속 가능성에 바탕을 둔 새로운 시스템을 뿌리내리는 일임을 잊지 않는다. 우리의 요구는 완전무결한 사회를 좇는 유토피아적 계획의 일부가 아니라, 전체 노동계급, 즉 생존을 위해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야 하는 모든 사람들의 구체적이고 즉각적인 필요에 바탕을 둔 것이다.

이에 따른 우리의 단기 정책은 다음과 같다.

만인을 위한 공공서비스의 질을 더욱 발전시킨다. 의료, 교육, 사회보장, 공공교통, 문화재화, 법률지원 그리고 노령 및 장애 연금은 모두 비영리 공적조직을 통해 제공돼야 한다. 이들 서비스의 재원 역시 전액 공공기금이어야 한다.

심의 형태의 직접 정치 민주주의를 도입하고 발전시킨다. 이를 통해 공동의 사안에 대한 진중한 토의 및 결정 과정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심의 방식은 인권 및 사회정의에 바탕을 두어야 하며, 동시에 모든 정치적 대의기구와 복지 국가의 탈 관료화를 위해 노력해야 하다. 어떠한 기구든 보편적 참여가 보장될 때에만 실제 필요에 바탕을 둔 서비스를 수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역사회, 노동자 그리고 ‘이용자’가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경제민주주의를 수립한다. 기업을 자주 경영할 권리와 공동 소유할 권리는 노동자의 근본적인 민주적 권리다. 공공부문, 민간부문 가릴 것 없이 노동자는 결정 과정의 모든 수준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경제정책의 목표를 완전고용과 함께 생산의 사회적, 환경적 조건을 고려하는 사회적, 환경적 지속가능 발전에 둔다. 재생가능 에너지 자원, 에너지 효율성, 전략적 천연자원(나무, 물, 종자, 경작지 등) 그리고 식량자급을 발전시키는 것이 경제정책의 우선 목표가 되어야 한다. 동시에 누진적 녹색 조세정책을 도입해야 한다.

완전고용을 달성하고 노동시간을 단축한다. 생산성 향상과 생산 자동화로 인해 주 40시간 노동은 구시대의 유물이 됐다. 이는 현재 실업의 주된 원인 중 하나다. 우리는 완전고용을 실현할 수 있는 수준까지 노동시간을 단축할 것을 주창한다.

최저임금을 평균임금의 70%로 인상한다. 사회적 불평등의 계속된 증가를 뒤집어야만 하며, 따라서 최고소득과 최저소득 사이의 격차에 상한선을 두어야 한다.

공공교육 및 의료의 모델에 따라 은행이 공적서비스에 체계적으로 중점을 두도록 뜯어고친다. 은행은 사적 이해가 아니라 공공의 이해에 복무해야 한다.
위에 제시한 공공서비스의 질을 실현할 수 있도록 누진세를 확대한다. 법인수익에 대한 과세를 강화한다. 마찬가지로 금융 거래와 토지 및 여타 자산에 대해서도 과세를 강화한다. 이러한 정책은 소득이 일정 액수를 초과하는 모든 자산 소유주(종교 단체를 포함)에 대해 예외 없이 적용돼야 한다.

 

■ 바로잡습니다 ■

《미래에서 온 편지》 2015년 5월호 ‘먼 좌파 이웃 좌파’ <포데모스, 더 깊이 들여다보기>의 ‘시우다다도스(Ciudadados)’를 ‘시우다다노스(Ciudadanos)’로 바로잡습니다. 독자 여러분께 혼선을 드려 죄송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