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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대선 ‘사회주의자’ 후보 버니 샌더스의 정책

23호(2015년 8월) 먼 좌파 이웃 좌파 ⑰

미국 대선 ‘사회주의자’ 후보 버니 샌더스의 정책

 

장석준|기관지위원

 

 

 

지금 미국에서는 2016년 대통령 선거의 예비경선이 한창 진행 중이다. 공화당은 후보가 10명 안팎으로 북적대지만, 민주당은 시작 전부터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독주 양상이었다. 그런데 싱겁게 끝날 것만 같던 민주당 경선에 난데없는 바람이 일었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민주당 경선에 뛰어들어 클린턴 후보를 맹추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1981년 벌링턴 시장에 당선된 뒤 환호하는 샌더스와 지지자들

1981년 벌링턴 시장에 당선된 뒤 환호하는 샌더스와 지지자들

샌더스 의원은 본래 민주당원이 아니라 무소속이다. 1941년생인 그는 동년배의 다른 많은 미국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베트남 반전운동으로 정치에 처음 뛰어들었다. 1981년에 그는 버몬트 주 벌링턴 시에서 무소속으로 시장에 당선됐다. 지금도 그렇지만 이때도 그는 자칭 ‘민주적 사회주의자’였다. 이런 사람이 다른 시절도 아니고 한창 레이건 보수혁명이 시작되던 미국에서 자치단체장에 당선됐으니 화제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로 그는 택지 개발 사업을 서민을 위해 공공적 방식으로 추진하는 등 많은 인상적인 개혁 행정을 펼쳤고, 그래서 보수 언론은 ‘벌링턴 인민 공화국’이라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버몬트 주에서는 이 성과를 바탕으로 버몬트 진보당이라는 진보정당이 등장했다. 그리고 샌더스는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돼 중앙정치에 진출했다.

이후 하원의원을 거쳐 상원의원에까지 이르렀지만, 샌더스의 행보는 한결 같았다. 미국의 이라크 침략을 반대했고, 금융 위기 때는 긴축 정책을 성토했다. 특히 오바마 식 반쪽짜리 의료보험이 아니라 제대로 된 전 국민 의료보험 제도 도입을 위해 앞장서고 있다. 그런 그가 이번 민주당 대선 예비경선에 뛰어든 것이다.

민주당 대선 예비경선에 뛰어든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민주당 대선 예비경선에 뛰어든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무소속 진보파가 민주당 경선에 참여한 데 대해서는 물론 말들이 많다. 실망하고 비난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양당 체제가 너무나 강력한 미국에서 진보정치가 좀 더 많은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샌더스 자신은 이번 경선을 오바마 정부에 대한 실망으로 의기소침해 있는 사회운동 진영에 다시 활기를 불어넣는 기회로 삼겠다고 밝혔다. 지금까지의 성과를 보면 이런 샌더스의 포부가 일정하게 실현되는 모양새다. 6월의 위스콘신 주 비공식 투표에서는 샌더스 후보가 클린턴 후보를 겨우 8% 차이로 바짝 추격하기까지 했다(41% 획득).

그럼 샌더스 후보는 어떠한 비전과 정책을 제시하고 있는가? 여기에 그의 기본 정책을 소개한다. 웬만한 요즘 유럽 사회민주주의 정당들(가령 영국 노동당)보다 훨씬 더 좌파적이고 공세적인 내용이다. 우리가 ‘샌더스 바람’에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이유다.

 

미국을 위한 의제

1. 우리의 무너지는 인프라스트럭처를 재건하자

우리의 중요한 투자 대상은 우리의 무너지는 인프라스트럭처, 즉 도로, 교량, 수도 시스템, 하수 처리장, 공항, 철도 그리고 학교를 재건하는 일이다. 우리가 결코 저지르지 말았어야 할 부시와 체니의 이라크 전쟁에 든 비용은 참전 용사들이 죽을 때까지 받을 복지 비용까지 다 합쳐서 총 3조 달러에 달한다. 반면 인프라스트럭처에 1조 달러만 투자해도 1300만 개의 괜찮은 임금 수준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으며 이 나라를 보다 효율적이고 생산적으로 만들 수 있다. 우리는 전쟁이 아니라 인프라스트럭처에 투자해야 한다.

2. 기후 변화를 역전시키자

미국은 기후 변화 역전의 선도국이 되어야 하며, 이 행성이 우리의 자녀와 손자가 살만한 곳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에너지 시스템을 화석 연료에서 에너지 효율성과 지속 가능 에너지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 수백만 가옥과 건물이 내후성(耐候性)을 갖추어야 하며, 우리의 교통 시스템은 에너지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또한 우리는 풍력, 태양, 지열, 바이오매스 등등의 지속 가능 에너지에서 이미 확인하고 있는 진보를 한층 가속화해야 한다. 에너지 체제 전환은 단지 환경 보호만이 아니라 좋은 임금 수준의 일자리 창출로 이어질 것이다.

3. 노동자 협동조합을 만들자

우리는 일자리 창출과 생산성 향상을 위해 새로운 경제 모델을 발전시켜야 한다. 일자리를 중국과 여타 저임금 국가로 옮겨버리는 기업들에 대규모 법인세 감면을 베풀 게 아니라 노동자 소유 협동조합을 설립해 스스로 사업을 꾸려나가길 원하는 노동자들에게 재정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 노동자들이 자신이 일하는 기업의 소유에 참여할 경우에 생산성이 상승하고 결근이 줄어들며 직무 만족도도 높아진다는 것은 수많은 연구 결과들이 입증하는 바이다.

4. 노동조합운동을 성장시키자

단체교섭을 통해 임금 및 수당을 올릴 수 있는 조직 노동자들은 미조직 노동자들에 비해 소득 수준이 상당히 높다. 오늘날 노동조합 조직화에 저항하는 기업 때문에 노동자가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게 무척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노동자들이 쉽게 노동조합을 결성할 수 있도록 노동법을 바꿔야 한다.

버니 샌더스를 영화 백 투 더 퓨처 등장인물로 묘사한 선거운동용 티셔츠 도안

버니 샌더스를 영화 백 투 더 퓨처 등장인물로 묘사한 선거운동용 티셔츠 도안

5. 최저임금을 올리자

현재 시간당 7.25 달러인 연방 최저 임금은 기아 임금이다. 우리는 생활 수준에 맞춰 최저 임금을 인상해야 한다. 이 나라에서 일주일에 40시간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빈곤에 내몰리지 않아야 한다.

6. 여성 노동자에게 동일 임금을

오늘날 여성 노동자의 평균 소득은 남성 노동자의 78% 수준이다. 우리는 이 나라에 임금 평등을 실현해야 한다. 동일 노동 동일 임금 원칙을 관철하자.

7. 미국 노동자들에게 이익이 되는 무역 정책

2001년 이후 이 나라에서는 6만 개가 넘는 공장이 사라졌고, 490만 개가 넘는 괜찮은 제조업 일자리가 사라졌다. 우리는 미국 기업들이 국내 공장을 폐쇄하고 중국 및 여타 저임금 국가들로 떠날 수 있게 해주는 파괴적인 무역 정책들(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중미자유무역협정CAFTA, 중국에 대한 항구적 정상무역관계PNTR 협정[무역 상의 최혜국 지위 부여] 등)을 중단시켜야 한다. 우리는 바닥을 향한 경쟁을 중단시켜야 하며, 미국 기업들이 해외가 아니라 국내에 일자리를 창출하도록 요구하는 무역 정책들을 발전시켜야 한다.

8. 누구나 돈 걱정 없이 교육 받을 수 있는 대학을 만들자

오늘날의 고도 경쟁 지구 경제에서 수백만 미국인들은 좋은 임금 수준의 일자리를 얻기 위해 필요한 고등 교육을 받을 여유가 없다. 또한 노동계급 가정의 대다수가 맞벌이 부부인 상황에서 돈 걱정 없이 자녀를 맡길 질 좋은 보육 시설을 찾기 힘들다. 미국에는 보육에서 고등 교육까지 누구나 돈 걱정 없이 받을 수 있는 질 좋은 교육이 필요하다. 이런 질 좋고 돈 걱정 없는 교육 시스템이 없다면, 우리는 지구 경제에서 버텨나갈 수 없고 우리의 생활수준은 계속 추락하기만 할 것이다.

먼좌파 사진5_선거운동

샌더스의 상원의원 선거운동

9. 월스트리트를 손보자

은행의 역할은 자본이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생산적 활동으로 흘러들어가도록 만드는 것이다. 금융 기관들은 고립된 섬처럼 실물 경제로부터 동떨어져 높은 이윤을 좇아선 안 된다. 오늘날 월스트리트의 6대 금융 기관들이 국내총생산의 61%에 해당하는(9조 8천억 달러가 넘는)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 기관은 이 나라의 대출 담보 중 절반 이상 그리고 신용카드의 3분의 2 이상을 떠안고 있다. 이러한 월스트리트 주요 기업들의 탐욕과 몰염치 그리고 불법 행동이 이 나라를 1930년대 이후 최악의 금융 위기에 몰아넣었다. 이들은 개혁되기에는 너무도 막강하다. 해체해야만 한다.

10. 보건은 만인의 권리

미국은 보건이 만인의 권리이지 특권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며, [전 국민 의료보험 제도를 지닌-역자] 다른 산업국들의 대열에 합류해야 한다. 4천만이 넘는 미국인들이 의료보험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1인당 의료 비용 지출은 다른 나라에 비해 거의 두 배에 달한다. 우리는 전 국민 의료보험 제도를 확립해야 한다.

11. 가장 취약한 계층을 보호하자

수백만 노령층이 빈곤 상태에 있고, 아동 빈곤율은 주요 국가 중 가장 높다. 우리는 사회안전망을 약화시킬 게 아니라 더욱 보강해야 한다. 사회 보장, 노령층 의료보장(Medicare), 빈곤층 의료보호(Medicaid), 급식 프로그램의 예산을 깎을 게 아니라 오히려 더욱 확대해야 한다.

12. 조세 제도를 제대로 개혁하자

부와 소득이 극도로 불평등한 이런 상황에서는 소득별 누진 조세 시스템을 도입해야만 한다. 높은 수익을 거두는 기업들이 연방 소득세를 전혀 내지 않으며 이 나라의 기업 CEO들이 자기 비서보다 더 적은 세금을 내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은 용납될 수 없다. 기업과 부유층이 전 세계의 조세 도피처에 현금을 은닉하는 바람에 매년 1천억 달러 이상의 세수가 빈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제대로 된 조세 개혁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다.

의사당 앞 집회에서 연설하는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의사당 앞 집회에서 연설하는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월스트리트 점거 시위에 참여한 민주사회주의 그룹 청년 회원들

먼 좌파 이웃 좌파 ⑦ 미국에도 좌파 정당이 있냐고? (2)

[2014.02 제6호 먼 좌파 이웃 좌파 ⑦]

미국에도 좌파 정당이 있냐고? (2)

 

장석준|부대표

 

 

 

뉴욕 노동가족당 말고도 주 차원의 좌파 정당으로 주목할 만한 사례가 하나 더 있다. 캐나다와 인접한 북동부 버몬트 주의 진보당(Vermont Progressive Party)이다. 버몬트 진보당은 2010년 주 하원 선거에서 2.96%를 득표해 5명의 주의원을 배출했다. 3% 언저리 득표가 대단치 않게 보일 수도 있지만, 공화당도 민주당도 아닌 제3정당이 제도 정치에 진출했다는 것만으로도 미국 풍토에서는 예삿일은 아니다. 버몬트의 주요 도시인 벌링턴에서는 진보당 소속인 밥 키스가 2006년부터 계속 시장을 역임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버몬트는 뉴욕처럼 다른 주에 없는 독특한 선거 제도를 실시하지는 않는다. 버몬트 진보당이 성장한 것은 그런 제도의 도움 없이 순전히 지역 정치에 착실히 뿌리 내린 결과다. 발단은 레이건 보수 혁명이 한창 시작될 무렵인 1981년에 전국적인 관심을 불러일으킨 무소속 버너드 샌더스(‘버니’라는 애칭으로 더 유명하다) 후보의 벌링턴 시장 당선이었다. 샌더스는 반전운동가 출신으로 ‘민주적 사회주의자’라 자처하는 인물이었다. 이런 인물이 이때부터 시장 선거에 연이어 당선돼 6년간 벌링턴 시정을 이끌었다. 보수 언론은 “벌링턴 인민공화국” 등의 표현을 쓰며 색깔 공세를 퍼부었지만, 샌더스 시장은 의연하게 진보적인 조세, 주택, 노동 정책을 펼쳤다.

미국 진보파의 구심으로 떠오르고 있는 무소속 상원의원 버니 샌더스

미국 진보파의 구심으로 떠오르고 있는 무소속 상원의원 버니 샌더스

이 성과를 바탕으로 샌더스는 1991년에 하원의원으로 당선됐다. 2007년에는 버몬트 주를 대표해 연방 상원에 진출했다. 비록 100석의 상원에서 단 한 명뿐인 좌파 의원이지만, 샌더스의 활약은 눈부시다. 2011년도 예산안 심의 과정에서는 공화당과 민주당이 야합한 감세법안에 홀로 맞서기도 했다. 그가 택한 수단은 8시간 반에 걸친 필리버스터였다. 이때의 인상이 워낙 강렬해서 2012년 대선을 앞두고는 샌더스를 대통령 후보로 추대하자는 운동까지 벌어졌다. 샌더스 자신이 상원에서 할 일이 더 많다며 고사하기는 했지만 말이다. 

버몬트 진보당은 다름 아니라 벌링턴에서 샌더스와 함께 진보적 지역 정치를 개척하던 동지들이 1999년에 창당한 정당이다. 샌더스 자신은 당적을 갖지 않았지만, 버몬트 주민들에게 둘 사이의 연관 관계는 당연한 상식이다. 샌더스와 함께 일군 벌링턴 진보정치의 뿌리가 곧 버몬트 진보당의 튼튼한 기반이 되었다. 그래서 아직은 소수이지만 자력으로 주의회에 진출할 수도 있었던 것이다. 미국처럼 보수의 텃세가 심각한 사회일수록 지역 수준에서부터 좌파 정치의 토대를 착실히 쌓아올리는 게 중요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사례라 하겠다.

 

사회당의 맥을 잇는 조직들 – 새 사회당(SPUSA)과 민주사회주의 그룹(DSA)

 

그렇다고 전국적인 좌파 정치 흐름이 없다는 것은 아니다. 사실 유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웬만한 좌파 조류는 미국에도 다 있다. 사회민주주의를 내건 조직도 있고, 사회당도 있고, 공산당도 있으며, 이러저런 마오주의나 트로츠키주의 조직들도 있다. 이들은 대통령선거에 독자 후보를 내기도 한다. 2012년 대선만 해도 평화자유당, 사회주의노동자당, 사회당, 사회주의평등당, 자유사회주의당 등 여러 좌파 정당들이 출사표를 던졌다. 그러나 후보를 냈다는 것뿐 어떤 조직도 유의미한 지지를 얻지는 못했다.

그나마 일정한 영향력을 갖춘 것은 과거 미국 사회당(SPA)의 전통을 이어받은 조직들이다. 지난 호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사회당은 노동조합운동이 민주당 지지로 입장을 정한 뒤부터는 당세가 계속 쇠락했다. 그럼에도 1970년대 초까지는 어떻게든 버텨나갔다. 그러다가 1972년 당대회에서 노선 전환을 단행했다. ‘사회주의’ 대신 ‘사회민주주의’를 내걸었고, 조직명에서 ‘정당’을 뗐다. 그래서 ‘미합중국 사회민주주의자들(Social Democrats USA, SDUSA)’이라는 정치조직이 됐다. 스스로 ‘정당’임을 부인한 것은 이후 민주당 안에서 분파로 활동할 것을 염두에 둔 선택이었다. 이로써 20세기 초 한때 미국에도 대중적인 사회주의운동이 등장하리라 기대하게 만들었던 미국 사회당은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말았다(SDUSA도 2005년 결국 해산했다.)

새 사회당의 로고

새 사회당의 로고

그러나 이것으로 끝은 아니었다. 다수파의 결정에 반발한 당원들이 SDUSA에 합류하지 않고 새 조직들을 건설했다. ‘사회당’이라는 이름을 그대로 되살린 미합중국 사회당(Socialist Party USA, SPUSA, 이하 새 사회당)도 그 중 하나다. 옛 사회당 소속으로 10년 넘게 밀워키(위스콘신 주) 시장을 역임한 프랭크 자이들러가 사회당 재건에 앞장섰다. 이렇게 다시 복원된 사회당은 미국 좌파 정당들 중 가장 유서 깊은 조직으로서 지금도 활발히 활동하고 있다. 비록 당원 수는 전국적으로 1천명밖에 안 되지만, 옛 사회당의 기억이 남아 있는 지역(주로 5대호 주변 주들)에서는 선거에서도 상당한 성과를 거두고 있다. 일례로, 작년 미네소타 주 플루드우드의 시장 선거에서 사회당 후보 트로이 톰슨은 27%의 득표를 기록했다.

새 사회당은 자본주의와 소련식 공산주의를 모두 반대하며, 그 대안으로 공공 소유와 노동자 자주 경영의 결합을 추구한다. 당면 과제로는 무상 공공 의료, 누진 소득세, 주택 임대료 통제, 대학 무상 교육 등을 제시한다. 하지만 그렇다고 사회주의의 목표를 복지국가 건설로 제한해선 안 된다는 입장이다. 새 사회당이 가장 고집스럽게 견지하는 원칙은 선거에 항상 독자 후보로 대응해야 한다는 것이다. 흥미롭게도 이 당의 당원 중에는 스웨덴 좌파당의 요나스 셰르스테트 대표도 있다. 그는 2000년대 후반에 미국에 체류하면서 새 사회당에 입당해 활동한 바 있다.

그런데 옛 사회당의 분열로 등장한 조직들 중 가장 규모가 큰 것은 새 사회당이 아니다. ‘미국 민주사회주의자들’(Democratic Socialists of America, DSA, 이하 민주사회주의 그룹)이다. 이 조직은 미국 좌파 전체를 통틀어도 ‘최대’라고 할 만하다. 1982년 처음 출범할 때부터 회원 수가 6천 명이었고, 지금도 이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저명한 좌파 지식인들이 다수 참여하고 있다. 대표적으로, 마르크스주의와 프래그머티즘(실용주의)의 종합을 추구하는 흑인 철학자 코넬 웨스트와 베스트셀러 저자인 사회주의-여성주의자 바버라 에런라이크가 있다. 국내에도 <노동의 배신>(최희봉 옮김, 부키), <긍정의 배신>(전미영 옮김, 부키), <희망의 배신>(전미영 옮김, 부키) 등으로 널리 알려진 그 에런라이크 말이다. 

민주사회주의 그룹 청년 회원들이 만든 선전용 티셔츠. 학비 부담으로 인한 학생들의 부채 탕감을 요구하고 있다.

민주사회주의 그룹 청년 회원들이 만든 선전용 티셔츠. 학비 부담으로 인한 학생들의 부채 탕감을 요구하고 있다.

민주사회주의 그룹은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의 국제조직인 ‘사회주의 인터내셔널’(SI)에 가입해 있다. 새 사회당과는 달리 유럽 사회민주주의 정당들과 긴밀히 교류하려 한다. 그러면서도 유럽 사회민주주의의 주류보다는 좀 더 급진적인 입장을 보인다. 이 조직의 창립자 마이클 해링턴(1898년에 작고)의 노선이 그러했다. 해링턴은 미국을 복지국가로 만들려는 노력에 더해 자본 권력을 사회에 환수하려는 끊임없는 시도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1970년대에 유럽 좌파 사이에 확산된 탈자본주의 구조개혁 노선에 공명했던 것이다.

민주사회주의 그룹은 지금까지도 이러한 해링턴 노선을 이어받고 있다. 그래서 ‘제3의 길’류의 흐름(미국에서는 민주당 내 클린턴주의로 나타났다)에는 한 번도 휩쓸린 적이 없다. 이것은 “스웨덴의 보편 복지, 캐나다의 국영 의료 체계, 프랑스의 아동 복지, 니카라과의 성인 교육” 등의 구체적인 교훈을 바탕으로 미국식 사회(민주)주의 모델을 만들어가겠다는 언명에서도 잘 드러난다. 

한데 이렇게 이념상으로는 좌파 사회민주주의 노선을 견지하지만 현실 정치에서는 그야말로 실용주의다. 굳이 독자 후보 전술을 고집하지 않으며, 필요하면 민주당 후보를 비판적으로 지지한다는 입장이다. 애초에 해링턴 등이 새 사회당에 함께 하지 않고 민주사회주의 그룹을 따로 만든 이유가 이러한 현실 정치 노선에 있었다.

실제로 민주사회주의 그룹은 버니 샌더스의 중앙정치 진출을 지원한 것 정도를 제외하면 선거 때마다 줄곧 민주당 후보를 지지해왔다. 그래서 민주당 안의 한 분파로 오해받기도 한다. 그러나 민주당 내 조직은 분명 아니다. 민주당 안팎에 걸쳐 있는 독특한 정치조직이다. 이것은 미국 정치 환경에 대한 지혜로운 적응일 수도 있지만, 달리 보면 미국 좌파의 ‘슬픈’ 현실이기도 하다.

민주사회주의 그룹의 시위 모습. 오바마가 아니라 우리가 사회주의자라는 펼침막 내용이 인상적이다.

민주사회주의 그룹의 시위 모습. 오바마가 아니라 우리가 사회주의자라는 펼침막 내용이 인상적이다.

 

녹색당의 가능성 그리고 2016년 대선

 

2000년 대선에서 녹색당 대통령 후보였던 랠프 네이더.

2000년 대선에서 녹색당 대통령 후보였던 랠프 네이더

이런 점에서 녹색당을 주목된다. 미합중국 녹색당(Green Party United States, GPUS)은 1991년 창당했다. 서독 녹색당이 신좌파 정치세력화의 산물이었던 것처럼, 미국 녹색당도 신좌파 세대가 미국 풍토에 맞는 정치세력화를 모색한 결과다. 그런데 미국 녹색당은 제도권 진출 이후 급속하게 중도화한 유럽 녹색당들과는 달리 여전히 좌파색이 강하다. 시민운동가 랠프 네이더가 공화당의 조지 W. 부시, 민주당의 앨 고어에 맞서 제3후보로 나와 상당한 바람을 일으켰던 2000년 대선을 기억해보자. 이때 네이더는 다름 아닌 녹색당 후보였다.

녹색당은 버몬트 진보당이 버몬트 주에서 펼치는 것과 같은 실험을 전국적 차원에서 꾸준히 지속하고 있다. 즉, 지역 수준에서부터 선거에 적극 대응하면서 공직자 수를 점차 확대해가고 있다. 이런 활동 덕분에 현재 30만에 가까운 당원을 보유하고 있으며, 공화당, 민주당 외의 제3당 중에서는 가장 대표적인 정당으로 부상했다.

사실 녹색당도 미국 정치 제도가 강요하는 딜레마에서 자유롭지는 못하다. 녹색당 안에서도 민주당과 연대하자는 흐름과 독자 후보로 대응하자는 흐름이 매번 대선을 앞두고 논쟁을 벌여왔다. 하지만 이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전국적 정당 조직을 유지하고 발전시켜왔다는 점이 중요하다. 

그래서 2016년 대선을 바라보면서 미국 진보좌파의 눈길은 온통 두 곳으로 쏠릴 수밖에 없다. 하나는 독자 후보 운동의 거의 유일한 조직적 토대인 녹색당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바로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다. 샌더스가 2016년 대선에 독자 후보로 출마한다면, 이 선택은 2000년의 네이더 선거운동 이상으로 좌파 정치세력화의 일대 계기가 될 것이다.

미국 좌파 정치가 비록 아직은 맹아 상태에 있다 해도 미래에 성장을 기대해볼 만한 역동성까지 없다고는 할 수 없는 것이다. 더구나 미국에서 시작된 신자유주의 체제가 흔들리는 요즘 상황에서는 더더욱 그렇다.

먼2.크샤마 스와트가 속한 정치조직 사회주의대안의 신문

먼 좌파 이웃 좌파 ⑥ 미국에도 좌파 정당이 있냐고? (1)

[2014.01 제5호 먼 좌파 이웃 좌파 ⑥]

미국에도 좌파 정당이 있냐고? (1)

 

장석준|부대표

 

 

 

지난 11월 15일 미국의 한 도시에서 벌어진 시의회 선거가 전 세계 외신 주요 기사로 떠올랐다. 아무리 세계 최강국이라는 미국이라지만 이 나라의 지방의회 선거까지 나라 밖의 이목을 끈다는 것은 유례없는 일이었다. 이런 예외적 관심의 이유는 당선자가 ‘사회주의자’라는 데 있었다. 그것도 트로츠키주의 계열의 혁명적 사회주의자였다. 

시애틀 시의원에 당선된 사회주의자 크샤마 사완트

시애틀 시의원에 당선된 사회주의자 크샤마 사완트

당선자의 이름은 크샤마 사완트.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인도 출신 이주민이고, 여성이다. 사완트가 속한 정당은 ‘사회주의 대안’이라는 이름의 트로츠키주의 정파다. 과거 영국 노동당에서 <밀리턴트>(‘투사’)라는 신문을 발간하며 활동하다 이후 탈당해 독자정당인 사회주의당(SP)을 창당한 트로츠키주의 경향(한국의 ‘다함께’와 연결되어 있는 사회주의노동자당[SWP] 혹은 ‘국제사회주의[IS]’ 경향과는 다르다)을 따르는 정치조직이다. 아무튼 이 ‘사회주의 대안’의 후보인 사완트가 북서부 해안의 주요 도시 시애틀의 시의원에 당선됐다. 독일 출신 사회주의자 A. W. 파이퍼가 1877년에 시의원에 당선된 이래 이 도시에서는 140여 년만에 처음으로 사회주의자가 시의회에 진출한 것이다.

미국은 물론이고 유럽에서도 작은 급진좌파 조직에 속한 후보가 선거에 당선되기는 쉽지 않은 일인데, 다름 아닌 미국에서 이런 일이 벌어졌다. 보는 눈에 따라서는 2008년 금융 위기 이후 미국 사회의 저류가 변화하는 조짐이라 할 수도 있는 사건이다. 그래서 국제적인 관심사가 된 것이다. 물론 사완트의 당선이 정말 이 나라의 심원한 변화를 예고하는 것인지 아니면 단순 해프닝에 불과한 것인지는 좀 더 두고 봐야 알 일이다. 하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한 가지 분명히 확인된 것은 미국에는 아예 싹조차 없을 것처럼 생각되던 좌파 정치가 나름대로 분투를 계속하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참에 그간 제대로 주목받지 못했던 미국 내의 여러 좌파 정치세력화 흐름을 살펴보는 것도 의미 있을 것이다.

 

“왜 미국에는 사회주의가 존재하지 않는가?” 

 

한때 마르크스주의에 경도되기도 했던 독일 사회과학자 베르너 좀바르트는 1906년에 “왜 미국에는 사회주의가 존재하지 않는가”라는 제목을 단 유명한 논문을 발표했다. 좀바르트가 던진 질문은 이때부터 지금에 이르기까지 현대 사회과학의 중요한 쟁점이다. 단순히 학자들의 소일거리만은 아니다. 이것은 인류 전체의 운명과 직결된 근본 문제다. 미국 안에 강력한 대중적 사회주의 세력이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는 단순한 사실이야말로 지구 자본주의의 수명이 지속되게 만드는 결정적인 요인 중 하나다. 적어도, 지구 자본주의가 지난 수십 년간 신자유주의라는 노골적인 반동적 형태를 취할 수 있게 한 최대의 원인 중 하나라는 것만은 분명하다.

그런데 역설적인 것은 좀바르트가 위의 물음을 던질 무렵이 실은 미국에서 사회주의 운동이 가장 활발히 벌어지던 시기였다는 점이다. 당시 세계 최대 규모의 사회주의 정당과 노동운동을 자랑하던 좀바르트의 조국 독일에 견준다면 미국에 “사회주의가 없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었을지 모른다. 그러나 미국의 맥락만 놓고 보면 상당히 편향되거나 야박한 평가였다. 바로 이 시기에 미국 곳곳에서 사회당이 공화당-민주당 양당 구도에 맞선 도전자로서 착실하게 성장하고 있었다.

미국 사회당(SPA)은 1901년에 창당했다. 영국 노동당이 등장한 게 비슷한 시기라는 점을 감안하면, 그렇게 늦은 출발은 아니었다. 사회당은 절정기에 10만 당원을 확보했다. 유럽 각국에서 이주해온 노동자들을 위해 다양한 언어로 발간한 당 신문들은 그 독자 수가 100만 명에 이르렀다. 전국적으로 사회당 소속 시장만 70여명이었다. 당 조직이 가장 강력했던 오클라호마 주에는 100명 이상의 사회당 소속 공직자들이 있었다. 철도노동조합운동의 전설적 지도자 유진 뎁스는 1912년에 사회당 대통령 후보로 출마해 89만7천 표(6%)를 획득했다. ‘사회주의’를 내걸고 제3세력으로 우뚝 섰던 것이다. 1910년대에는 드디어 뉴욕과 밀워키에서 연방하원의원을 당선시키는 데 성공한다.

1904년 미국 대통령선거에 사회당 대통령 후보로 나선 유진 뎁스와 부통령 후보 벤 핸포드의 선전 포스터

1904년 미국 대통령선거에 사회당 대통령 후보로 나선 유진 뎁스와 부통령 후보 벤 핸포드의 선전 포스터

그런데 왕성했던 이 움직임이 어느 때부터인가 마치 사상누각처럼 힘없이 무너져 내렸다. 첫 번째 발단은 이른바 ‘빨갱이 탄압’이었다. 1913년 우드로 윌슨 대통령의 민주당 정부가 ‘개혁’을 내걸고 출범했다. 어찌 보면 사회당과 같은 세력이 성장하던 시대 배경을 발판 삼아 등장한 정권이었다. 그러나 다름 아닌 이 윌슨 정부가 좌파 세력의 성장을 꺾는 첫 번째 장애물 역할을 했다. 당시 1차 세계대전 참전을 추진하던 미국 정부에게는 반전 운동에 앞장선 사회당과 전투적 노동운동 세력이 눈엣가시였다. 정부는 이때부터 간첩 행위 방지 등의 갖은 명분을 내세워 좌파를 탄압하기 시작했다. 대통령 후보였던 뎁스조차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이후에도 주기적으로 반복된 이러한 좌파 탄압 말고 또 다른 중대한 장애물은 노동운동의 정치적 선택이었다. 19세기 말 이후 미국 노동운동 주류(미국노동총동맹, AFL)는 항상 백인 숙련 노동자들만을 대변했다. 정치적으로는 보수정당 중 상대적으로 개혁적인 민주당을 지지했다. 이 때문에 미국 사회당은 노동운동의 조직적 지지를 바탕으로 급성장한 유럽의 좌파 정당과는 다른 운명을 걸을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것이 결코 벗어날 수 없는 숙명이었던 것은 아니다. 노동자들 내부의 분열을 극복하려는 진지한 시도들이 간헐적으로 나타났고, 그 중에는 거의 성공의 문턱에 이르렀던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그 때마다 노동운동 내의 보수적 흐름이 역사의 새로운 가능성을 억압하고 나섰다.

가령 대공황과 실업대란으로 시작된 1930년대는 기존 노동운동 판을 뒤집을 결정적 호기였다. 이때 새로 등장한 산업별 노동조합들(산별조직회의[CIO]라는 새로운 총연맹으로 뭉쳤다)은 다양한 인종의 반(半)숙련, 미숙련 노동자들을 조직하기 시작했다. 정치적으로도 독자적인 노동자정당 창당을 진지하게 고민했다. 사회당이나 공산당 활동가들이 산별 노조 건설에 중요한 역할을 한 덕분이기도 했다.

미국 산별노조운동의 분수령이 된 1936-37년 플린트의 GM 점거파업

미국 산별노조운동의 분수령이 된 1936-37년 플린트의 GM 점거파업

그러나 모처럼의 기회는 오히려 최악의 위기로 돌변했다. CIO 내의 독자 정치세력화 흐름은 뉴딜을 추진하는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민주당 정부를 지지하자는 흐름에 압도되고 말았다. 게다가 CIO 우파는 1950년대에 결국 AFL 노선에 다시 투항하고 말았다. 두 조직이 재통합해 현재의 미국 제1노총 AFL-CIO가 등장했다. 이런 노동운동의 우경적 재편과 2차 대전 후의 반공 매카시즘 열풍이 서로 맞물려 미국 좌파는 또 한 번 도약의 기회를 상실하고 말았다. 미국 노동조합운동은 이후 줄곧 민주당의 하위 파트너 역할을 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과정을 잘 정리한 책이 마이크 데이비스의 『미국의 꿈에 갇힌 사람들: 미국 노동계급사의 정치경제학』(김영희, 한기욱 옮김, 창비, 1994)이다. 그런데 아쉽게도 이 책은 요즘 서점에서 구하기 힘들다. 대신 참고할만한 책은 하워드 진의 『미국 민중사』 1, 2(유강은 옮김, 이후, 2008)다. 이 책은 1권의 뒷부분과 2권의 앞부분에서 미국 사회주의 운동과 노동운동의 우여곡절을 다루고 있다.

 

주(州) 차원의 진보 정당들 – 뉴욕 노동가족당의 사례

 

한데 좌파정당의 성장을 가로막는 또 다른 중대한 요인이 있다. 정치 제도다. 미국은 시의회부터 주 상하원, 연방 상하원에 이르기까지 각급 대의기구 선거가 다 소선거구제로 실시된다. 우리도 잘 아는 사실이지만, 이미 오랜 세월 동안 지역사회에 뿌리내려온 양대 정당, 공화당과 민주당을 제치고 제3세력이 지역구 1위 당선자를 배출하기란 너무도 어려운 일이다.

게다가 이것만이 아니다. 18세기 엘리트주의의 전통을 고스란히 잇고 있는 연방 정치는 신생 정치 세력에게는 발을 내딛기조차 힘든 늪이나 마찬가지다. 가장 중요한 선거가 대통령 선거인데, 이것은 직선도 아니고 1인 1표제도 아니다! 주에서 1위를 한 정당이 그 주의 대통령 선거인단을 다 차지하고 이 선거인단이 전국적으로 모여 대통령을 선출하는 요상한 방식이다. 공화당과 민주당이라는 두 선거 기계 말고 새로운 세력이 의미 있는 성과를 얻기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다. 20세기 초의 사회당이나 2차 대전 직후의 진보당처럼 가장 의욕에 넘쳤던 좌파 정당 건설 시도도 결국은 대선에서 현실의 벽을 절감한 후에는 성장 동력을 상실하고 말았다.

아마도 그래서일 것이다. 전국 정치 수준에서는 좌파의 정치적 존재를 찾아보기 힘들지만 각 주(州)를 들여다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특정 주 안에서만 활동하는 좌파 정당들이 있다. 이들 중 일부는 해당 주에서 중요한 정치적 변수 역할을 하기도 한다.

예를 들어, 뉴욕 주에는 노동가족당(Working Families Party, WFP, 여기에서 ‘노동 가족’은 우리 말 ‘서민’과 비슷한 어감이라 할 수 있다)이 있다. 1998년에 뉴욕 주의 노동조합, 지역 시민운동 단체, 좌파 정당 건설을 벌여오던 활동가들이 함께 모여 만든 정당이다. 노동권 보장과 사회복지 확대를 주로 주장하면서 서비스노동자국제조합(SEIU) 뉴욕 지부 등 노동조합운동과 긴밀히 연대해 활발한 활동을 벌이고 있다.

유독 뉴욕 주에서 이런 주 차원의 좌파 정당이 활동력을 갖게 된 것은 이 주의 독특한 정치 제도 때문이다. 뉴욕 주는 공직 후보가 여러 정당들로부터 중복 공천을 받을 수 있도록 허용하고 있다. 즉, 민주당과 노동가족당으로부터 동시에 공천을 받고 출마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노동가족당은 독자정당으로 존재하면서도 자당 후보가 민주당으로부터도 공천을 받아 공화당 후보와 1 대 1로 겨루게 만들 수 있다.

때로는 민주당을 압박하기 위해 노동가족당이 공화당 후보를 자당 후보로 공천하는 일까지 있다고 한다. 우리에게는 참으로 낯선 정치 행태이지만, 이런 제도적 가능성 덕분에 그나마 뉴욕 주에서 제3정당이 현실 정치 세력으로 존립할 수 있다. 좌파 정치 세력화의 성패에 제도 요인이 얼마나 중요한지 새삼 실감하게 만드는 사례가 아닐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