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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악제2구역 재개발로 살펴보는 도시이야기

[2015.08 제23호 정책포럼]

무악제2구역 재개발로 살펴보는 도시이야기

재개발과 문화유산, 정치와 역사 사이 ①

 

김한울|서울시당 사무처장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별 진척이 없다고 들었던 재개발 사업이 어느새 관리처분계획을 제출하기에 이르렀다는 소식을 접한 것이다. 종로구 무악동의 무악제2구역에 관한 이야기였다.

관리처분계획은 재개발 사업에 있어서 마지막 넘어가는 고갯마루 같은 것이다. 다음 단계는 이주와 철거다. 재개발 사업 자체가 중단되건 되돌려지는 게 사실상 거의 불가능해지게 되는 변곡점인 것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직접적인 구조요청이 온 것이다.

 

뉴타운, 재개발, 출구전략

 

이명박 시절의 뉴타운 재개발 남발이 원죄다. 서울을 통째로 아파트 공사장으로 갈아엎는 것이나 다름 없는 지구지정이 곳곳에 병증을 깊게 하고 있는 가운데, 박원순 서울시장이 보궐임기를 시작하며 재개발 패러다임에서 벗어나겠다는 의지를 내비쳤다. ‘뉴타운 출구전략’으로 이름 붙여진 주거재생으로의 패러다임 전환 선언은 당장 기대를 받기도 했으나, 결국 지지부진함 역시 벗어나지 못한 채 사실상 공전하고 있었다.

 

무악제2구역 재개발예정지 선정에 대한 보도화면 (국민TV 뉴스, 2015년 7월 1일 방송화면)

무악제2구역 재개발예정지 선정에 대한 보도화면 (국민TV 뉴스, 2015년 7월 1일 방송화면)

 

서울시당은 이러한 상황에 대해 꾸준히 비판적인 입장을 취해왔다. 이러기도 저러기도 난감하기 마련인 재개발 사업에 대해 박원순 서울시장은 문제가 있는 곳은 단호하게 중단하고, 문제가 없는 곳은 행정적 지원을 통해 박차를 가하는 식으로 상황과 조건에 따른 맞춤형 해결책을 제시했지만 그게 말 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다. 최근들어 어차피 진척이 되지 않고 있는 곳을 직권해제 하는 방식으로 상당 수의 구역이 해제되긴 했지만, 당장 기로에 서서 가장 첨예한 갈등을 겪고 있는 현장에 있어서는 수수방관이 서울시의 공식적인 입장이나 마찬가지였다.

재개발 사업은 물론 패러다임 전환을 시도하겠다는 ‘뉴타운 출구전략’ 역시 지지부진한 가운데 일침이 필요한 상황이기에 서울시당은 여건이 허락하는 한 최대한 관여해서 서울시의 적극적인 개입을 유도하고 궁극적으로 서울시의 ‘뉴타운 출구전략’이 실제로 유효한 정책적 대안으로 작동할 수 있기를 바라왔다. 이러한 이유로 구조요청에 대한 응답의 근거는 충분했다.

 

미션 임파서블, 기자들이 많이 오는 기자회견

 

‘기자들이 많이 오는 기자회견이어야 한다’는 구체적인 조건이 붙었다. 기자들이 많이 오는 기자회견이라니, 사안도 사안이지만 붕어가 들어있는 붕어빵이 낯설 수 밖에 없듯 기자가 있는 기자회견이 낯설게 되어버린 상황을 다시 돌아보게 되는 ‘신선한’ 조건이었다.

서울시당에서는 바로 얼마 전, 서울시의 대중교통요금 인상을 저지하기 위해 (주민등록 기준의) 서울시민 6천명의 서명을 받았다. 주민번호 수집 금지 덕분에 생년월일만으로도 충분했지만, 이름과 주소, 생년월일을 요구하는 최소한의 청구인 서명 요건 조차 시민들에겐 선뜻 펜을 들게 하지 못하는 이유로 충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직과 무관한 당원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서울시 최초의 주민 공청회 청구 서명을 완성해서 제출한 것이다.

가장 중요한 대목은 언론의 무반응이었다. 당장 천만 서울시민과 천만 경기도민, 300만 인천시민이 직접적으로 경제적인 영향을 받게 되는 사안이었다. 전철 기준으로 매일 왕복 400원의 추가 부담이 일어나는 문제였다. 주말에는 꼼짝 않더라도 월 8,000원의 추가 부담이 생겨나고, 성인 4인 가족 기준으로 보면 32,000원이 된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인구가 수도권 인구의 절반이고 그 중 절반이 성인요금을 내고 대중교통을 매일 이용하는 사람들이라고 가정하고 단순계산 하더라도 매일 23억원의 흐름이 결정되는 문제였다. 월 환산하면 700억에 육박한다. 인상분만 해도 이정도라는 얘기다.

사례 차원에서도 의미가 있었다. 서울시 주민참여기본조례는 4년 동안 첫 울음 조차 터뜨리지 못한 채 제대로 그 존재감을 나타내 본 적이 없었다. 말 뿐인 ‘주민참여’가 서울시당의 ‘시민 공청회 청구’로 그 존재감을 과시할 첫 기회를 얻은 것이다. 시민의 시정 참여 역사에 새로운 전기를 마련할 수 있는 좋은 기회였다.

이 모든 이유에도 불구하고 서울시당의 서울시 대중교통요금 인상안 반대와, 시민 공청회 청구 서명 개시, 청구 서명 완성 및 제출, 서울시의 공청회 청구 무시, 일방적인 강행으로 인한 물가대책심의위원회 졸속 통과 중 그 어느 것도 이른바 주요 언론사는 물론 대개 진보적인 성향을 가지고 있다고 이야기되는 언론사에서 조차 단 한 줄도 다루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 기자들이 많이 오는 기자회견을 기획해야 한다니, 물 위를 걷는 기적이라도 만들어내야 한다는 것이 아닌가.

 

역사의 다른 이름은 정치의 흔적

 

불행인지 다행인지 재개발 문제로만 접근했을 때 보다 폭넓게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는 이슈가 있었다. 요행이라고 보기엔 필연적인 면도 없지 않았다.

현재 국내 3만제곱미터 이상의 모든 건설공사는 무조건 문화재지표조사를 거치도록 강제되고 있다. 여기서 예외가 되는 곳은 서울 사대문(흥인지문, 돈의문, 숭례문, 숙정문) 안쪽으로써, 단 한 평의 땅이라도 건물을 신축하려면 문화재지표조사를 반드시 거쳐야 한다. 이는 600년 도읍의 문화유산을 보호하기 위한 조치다. 다른 곳에 비해 매장유물이 집중되어 있을 수 밖에 없는 조건을 반영하고 있는 것이다.

이는 단순 유물 매장 가능성으로만 치환되지 않는다. 매장된 유산은 아니어도 여러 역사문화 자원들 또한 도시에 집중되어 있음을 암시하는 것이다. 무악제2구역은 조선시대 청나라와 교류하기 위해 드나들던 의주로 길 언저리에 해당하던 곳으로 청나라 사신들이 ‘대국의 사신을 환영한다’는 의미의 영은문에 당도하기 직전에 지나쳤던 곳으로 당시에는 민가의 흔적 조차 확인하기 쉽지 않던 곳이었다. 길만 있었을 뿐 그 곁으로는 변변한 매장 유물의 분포 가능성은 희박하다는 얘기다.

험하기로 유명했던 무악재와 바짝 붙어있는 인왕산 서쪽 기슭일 뿐이었던 이 곳은, 구한말에 그 역사가 달라지기 시작한다. 일제가 조선통감부를 설치하면서 신축했던, 현재의 서대문형무소가 들어선 것이다. 일제는 물론, 일제보다 더 긴 시간 동안 독재정권을 겪어내며 감방으로, 고문실로, 형장으로 끌려갔던 수많은 역사적 인물들의 자취가 집중되어 있을 수 밖에 없다.

 

무악제2구역 재개발예정지 선정에 대한 보도화면 (국민TV 뉴스, 2015년 7월 1일 방송화면)

무악제2구역 재개발예정지 선정에 대한 보도화면 (국민TV 뉴스, 2015년 7월 1일 방송화면)

 

또한 감옥에 갇힌 이가 있으면 이들을 뒷바라지 하는 이들도 있기 마련이다. 전자의 공간이 감옥이라면, 후자의 공간은 감옥 바깥 언저리 어딘가일 수 밖에 없었다. 기존의 왕조의 역사가 남성중심적이고 권력중심적인 역사였다면 그를 둘러싼 궁인과 중인들의 역사 또한 결코 가볍게 여겨질 수 없는 역사임에도 그림자로 숨어있었던 것과 같이, 유관순, 김구, 강우규와 같은 이들이 서대문형무소와 함께 역사에 이름을 남기고 있는 것에 반해 형무소 담장 바깥에서 이들과 함께 시대를 겪어냈던 이들의 역사 또한 그 언저리에 아직 비춰지지 않은 역사로 그 자취를 남기고 있다. 비단 일제에 국한된 것이 아니다. 일제보다 더 긴 독재의 역사에서 더 가깝고도 많은 이들의 역사가 그 곳에서 시간을 견뎌왔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