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재판소의 선거구 재획정 판결 뉴스 (사진: SBS 캡쳐)

밥그릇 싸움은 가라, 정치관계법 개혁 시작해야

[2014.12 제15호 정책포럼]

밥그릇 싸움은 가라, 정치관계법 개혁 시작해야

헌재, 선거구 재획정 결정 내려

 

윤현식|정책위원회 의장

 

 

 

지난 10월 30일 헌법재판소는 현행 공직선거법 중 국회의원 선거의 지역구 획정에 관하여 헌법 불합치 결정을 선고했다(2012헌마190, 192, 211, 325, 2013헌마781, 2014헌마53(병합)). 공직선거법 제25조 제2항은 국회의원 지역구의 명칭과 그 구역을 별표로 구분하여 규정하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 요지는 이 별표에 따른 지역구의 획정이 인구비례 3:1을 기준으로 하고 있는데, 이것이 투표의 비례성을 현저히 해치고 있다는 것이다. 즉 인구비례 3:1로 되어 있는 현행 선거구 획정의 인구기준은 위헌이라는 것이다.

예를 들어 (가)지역구의 인구가 (나)지역구 인구의 3배가 된다고 가정하자. 이때 (가)지역구에서 당선된 의원의 대표성은 (나)지역구 당선 의원의 3분의 1밖에 되지 않는 효과가 발생한다. 표의 등가성이 훼손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헌법재판소는 현행 기준이 선거에서의 평등원칙을 위배한다고 판단했다. 유권자의 한 표는 마땅히 동일한 가치를 인정받아야 한다는 원리를 재확인한 것이다. 표 가치의 평등은 국민주권의 원리나 민주주의의 원칙에 따라 가장 우선적으로 고려해야만 할 사항이다. 인구의 균형, 행정구역의 편차, 지세, 교통사정, 생활권, 역사적·전통적 일체감 등의 원인으로 인하여 비례평등을 위한 1:1의 원칙을 관철하기 어려운 현실적 고충이 있다. 그러나 헌법재판소가 밝히듯 “투표가치의 평등을 실현하여 민주주의의 발전을 위한 토양을 마련하는 것이 보다 중요”하다.

한편 헌법재판소는 헌법소원의 대상이 된 일부 지역에 대해서만 위헌성 여부를 판단할 수 없고 현행 선거구 획정체계 전반이 위헌일 수밖에 없음을 분명히 했다. 헌법재판소는 “선거구 구역표는 전체가 불가분의 일체를 이루는 것으로서 어느 한 부분에 위헌적인 요소가 있다면 선거구 구역표 전체가 위헌의 하자를 갖는 것”이라고 판단했다. 따라서 현행 선거구 구역표로 획정된 현재의 지역구 편재는 전면적인 재정리가 필요하게 되었다. 헌법재판소는 인구비례 최대 2:1을 기준으로 선거구 획정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결정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2015년 12월 31일까지 공직선거법이 개정되어야만 한다.

 

인구비례 최대 2:1 기준으로 선거구 획정 바뀐다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갑작스럽게 나온 것이 아니다. 헌법재판소는 이미 13년 전인 2001년의 결정(2001.10.25. 2000헌마92)에서 지속적인 제도개선을 통해 선거구간 인구편차가 2배 이상을 넘지 않도록 조정할 것을 주문하였다. 또한 향후 유사한 사례에 있어서는 인구비례 2:1 또는 그 미만의 기준에 따라 위헌여부가 판단될 것임을 예고한 바 있다. 무려 13년 전의 경고가 이번에 현실이 된 것은 그동안 제도정비에 관심을 두지 않은 국회에 책임이 있다. 헌재의 결정이 아니라고 할지라도 표의 등가성이 선거제도의 기본원칙임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는 국회는 합리적인 수준에서 공직선거법의 개정을 추진했어야 마땅하다. 그러나 그동안 국회는 투표가치의 평등성을 높이려는 노력을 제대로 하지 않았다. 1987년 현행 헌법체제 이래 지금까지 시대적 상황과 정치적 환경 및 국민들의 인식 변화 등에 따라 의원정수 및 선출 방식, 선거구 조정 등이 이루어져야 했음에도 이를 게을리 했다. 헌법재판소의 이번 결정이 국회의 게으름과 무능에 대한 신랄한 질책인 이유가 여기 있다.

1988년 제13대 총선에서부터 299명으로 한정되었던 의원정수는 2012년 총선에서 단 1명이 늘어난 300명으로 고정되어 있다. 전체 인구가 4천만 명 수준에 정해졌던 의원정수가 5천만 명이 넘는 지금까지 그대로인 것이다. 정당명부 비례대표제가 도입되었다고는 하나 1988년 당시 전국구를 75석 뽑던 것에 비해 현행 비례대표는 54명을 선출함으로써 오히려 줄어들었다. 국회의원의 지역 대표성을 이유로 특정지역의 의사가 과잉대표되는 것이 합리화될 수도 없다. 지방자치제도가 초기 도입될 당시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지방자치의 수준이 높아진 현실을 감안해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교통·통신 등 기술의 발전, 도농 간 교류의 확대 등으로 인해 낙후했던 과거만을 생각하고 지역 대표성을 운운할 근거는 사라졌다. 특히 중요한 것은 국회의원의 지역 대표성은 국가 전체의 이익을 대표하는 국회의원 본연의 임무 범위와 합치될 때만 당위를 인정받을 수 있다는 점이다.

이러한 의미들을 검토한다면 헌법재판소가 밝힌 기준은 표 가치의 불균등함을 개선하는 합리적 기준이 되기에는 아직도 보수적인 수준이라고 판단된다. 헌법재판소가 설정한 이 기준은 선거구별 인구편차가 0에 가깝도록 해야 한다는 미국 하원선거의 기준이나 원칙적으로 상하편차 15%를 규정하는 독일에 비하면 아직도 매우 부족하다 할 것이다. 헌법재판소의 기준은 일본이 1994년에 확인한 2:1 기준을 20년 후 한국에 적용하는 수준에 머물러 있다. 따라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과도한 것이라거나 향후 막대한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은 현실에 대한 판단을 결여한 것일 뿐이다.

 

헌법재판소의 선거구 재획정 판결 뉴스 (사진: SBS 캡쳐)

헌법재판소의 선거구 재획정 판결 뉴스 (사진: SBS 캡쳐)

 

헌재 결정에 요동치는 지역들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표의 등가성을 지키라는 원론적 수준에 머물러 있지만 그 파문은 요란하다. 선거구 획정 대상이 된 지역구 의원들의 경우는 발등에 불이 떨어진 상황이다. 특히 보수양당의 패권이 작동하고 있는 영호남의 지역구 의원들은 사태의 추이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지역별로 선거구 획정을 다시 할 경우 현재의 기준에 따르면 지역구 의석은 서울 1, 경기 16, 인천 5석이 늘어나게 된다. 대전, 충남, 충북을 합친 충청권은 변동이 없다. 이에 반해 영남은 4석이 줄어들고 호남은 4~5석이 줄어들게 된다. 강원도 일부 줄어들게 된다.

지역의 맹주를 자처하며 한반도 남녘의 동서를 분할하고 있는 새누리와 새정연은 골치 아픈 계산을 하게 되었다. 어차피 빗자루를 꽂아도 당의 이름만 붙여놓으면 당선된다는 영호남이지만 내막을 들여다보면 당내 인사들의 이해관계가 서로 충돌한다. 예를 들어 부산 영도구와 인접한 서구의 지역구 재획정이 이루어지면 둘 중 한 선거구는 사라지게 된다. 영도구는 새누리당 김무성 대표의 지역구이고 서구는 친박계 유기준 의원의 지역구다. 수도권 지역의 의석이 대폭 늘어나는 것도 보수양당에게는 골머리를 싸매게 하는 부분이다. 이렇게 되면 선거를 치루는 과정이 보다 복잡다단해지게 된다. 보수양당이 할거하고 있는 영호남과는 달리 수도권에서는 ‘우리가 남이가’라는 정서만으로 선거에서의 승리를 장담할 수 없다. 쉽게 이야기하자면 앉아서 거저먹는 것만으로도 본전치기를 할 수 있었던 봄날이 가버리는 거다.

이처럼 골 아픈 상황을 피하면서 동시에 기득권을 유지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것이 보수양당에게는 급선무가 되었다. 여기에는 전제가 있는데 바로 현재의 의석수를 재조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제도개선을 한다는 점이다. 즉 지역구 246석, 비례 54석, 총 300석 의석에 변동을 주지 않은 채 지역구 획정을 한다는 것이다. 이 경우 보수양당의 입장에서는 전체적으로 현재와 크게 달라질 것이 없다. 그러나 문제는 내부적으로 후보들 간 및 지역 간의 알력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앞서 보았듯이 영호남과 강원의 의석이 줄어들게 될 경우 이 지역을 배경으로 하는 보수양당의 정치인들이 감수해야 할 손실은 말 그대로 정계은퇴가 될 수도 있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라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확인한 인구비례 2:1로 조정해야 할 각 선거구를 보면 인구수 초과 선거구는 37개, 미달 선거구는 25개다. 인구 초과 선거구는 쪼개고 미달 선거구는 합쳐야 하는데, 이렇게 되면 미달 선거구를 지역구로 하는 의원들의 반발이 만만치 않다. 소선거구 단순다수대표제를 근간으로 하는 현행 제도 하에서 지역구 의원들의 반발을 누그러뜨릴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비례의석을 대폭 줄이고 지역구 의석을 늘리는 것이다.

노동당을 비롯한 군소정당들에게는 최악의 시나리오다. 과거 민주노동당이 헌법소원을 제기함으로써 만들어냈던 정당명부비례대표제는 유명무실한 제도로 전락하고, 군소정당의 원내진출의 길은 더욱 어려워지게 된다. 이제는 보수양당 내부의 문제가 아니라 정치제도 전반에 대한 사회적 문제로 전환된다. 보수양당의 입장에서 굳이 문제를 불거지게 만들어 대중들로부터 비난을 받을 이유는 없다. 그래서 제기되는 대안들이 중대선거구제, 석패율제, 도농복합선거구제와 같은 제도들이다. 하지만 이들 제도 역시 노동당 등 군소정당들에게 유리할 것이 없다. 중대선거구제는 현재 지방자치선거에 도입되어 일부지역에서 시행하고 있으나 지역의 맹주노릇을 하는 정당 소속 당선자들의 숫자만 불려주는데 그치고 있다. 도농복합선거구제는 무엇보다도 선거구 획정 자체가 어려워 도입될 가능성도 적지만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보수양당에게 손해가 될 여지도 거의 없다. 석패율제는 일본에서 시행되고 있는 제도로서 지역구에서 낙마한 후보를 비례로 부활시키는 제도이다. 마찬가지로 보수정당의 당선자를 늘리는데 도움은 될 수 있을지 몰라도 군소정당들에게는 동기부여를 하기 어려운 제도다.

 

국회의원정수, 비례대표 획기적으로 늘려야 하는데

 

현행 공직선거법의 한계 안에서 헌법재판소의 결정을 현실화하기 위해 가장 확실하게 제안될 수 있는 대안은 국회의원정수의 획기적인 증원이다. 단순계산만으로도 인구 4천만에 설정된 300명 의원정수를 5천만에 맞게 375명으로 늘릴 수 있다. 또는 인구 10만 명당 1명의 수준으로 의원을 설계해 500명으로 늘리는 것도 고려할 만하다. 어떤 방식으로든 국회의원의 정수가 상당수 늘어나야 할 필요가 있다. 그러나 기계적으로 의원정수를 늘리거나 지역구 조정을 하는 것만으로 표의 등가성을 높일 수는 없다. 헌법재판소의 결정에 따를 경우 현행 제도 하에서 서울·경기·인천의 수도권에서만 22석이 늘어나게 되는데, 이러한 결과는 수도권 지역이 과잉대표됨으로써 지역 대표성의 평등을 깨게 된다. 따라서 헌법재판소의 결정이 목적한 소기의 성과를 달성하는데 현행 공직선거법의 구조는 근본적인 한계로 작용한다.

무엇보다도 우선 검토해야 할 것은 현행 ‘소선거구 단순다수대표제’ 국회의원 선출방식을 유지할 것인가이다. 무수한 사표가 발생하고 표의 등가성을 현저하게 해치며 승자독식의 폐해를 보이고 있는 현행 제도는 그 자체를 손질해야만 한다. 이러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가장 바람직한 방식이 비례대표의 획기적인 증원이다. 이미 오래 전부터 독일식 정당명부제 도입 요청이 있었다. 지역구 의석을 유지하면서 비례대표를 확대하고 표의 등가성을 확보할 수 있는 좋은 방식이다. 여기서 좀 더 나아간 것이 바로 전면비례대표제의 도입이다. 노동당은 이미 2012년 총선 공약을 통해 ‘광역단위 전면비례대표제’를 제안한 바 있다. 우선 전국을 대권역으로 나누고 각 권역별 최소의석을 우선 할당한 후 인구비례에 따라 나머지 의석을 배분한다. 정당은 권역별로 각 당의 후보명부를 제출하고 유권자는 지지정당과 해당 정당명부 내 선호 후보자 1인을 선택하게 한다. 정당득표율로 당선자 수를 정하고 명부 내 각 후보의 득표율 순위로 당선자를 결정하는 것이다. 이 경우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지역 대표성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 또한 비례대표의 강화를 통해 국회의원의 직능 대표성 또한 강화되는 효과를 거둘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노동당의 제안이 제도정치권 안에 수용될 수 있는 가능성이 별로 없는 것이 현실이다. 보수양당 체제로 형성된 기득권을 마음껏 향유하고 있는 새누리와 새정연이 비례대표의 대폭적인 확대 혹은 전면비례대표제를 수용할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오히려 보수양당은 군소정당의 원내진출을 막기 위한 진입장벽을 더 높이 쌓는데 혈안이 되어 있다. 예컨대 19대 국회에 올라와 있는 공직선거법 개정안 중에는 대통령선거 방송토론회 참가 자격을 국회의원 10인 이상 소속 정당, 직전 선거에서 10% 이상 득표율을 가진 정당, 선거기간 개시 전 여론 지지율 10% 이상인 후보자에게만 주는 법안이 올라와 있을 정도다. 이 외에도 군소정당의 정치활동과 선거운동에 제약을 주게 될 각종 정치관계법 개정안이 발의되어 있다. 다 들여다 볼 것도 없이, 보수양당이 추구하는 정계구획의 상이 무엇인지는 설명의 필요가 없을 정도로 명확하다. 그들은 자신들만의 리그를 결코 개방할 생각이 없다.

 

참정권 회복 운동, 정치관계법 개정 의제화 해야

 

이 상황을 극복하기 위해 첫째, 시민사회가 당사자 운동으로서 참정권 회복 운동을 전개해야 한다. 둘째, 군소정당 특히 진보정당들과 녹색당이 결합해 정치관계법 개혁 의제를 공통의 사업으로 진행할 필요가 있다. 앞의 것은 보수양당이 현실적인 위기감을 느낄 수 있게 하기 위한 유일한 방법이 여론의 압력이라는 점에 착안한다. 운동의 주제와 내용은 말 그대로 무궁무진하다. 현행 정치관계법, 즉 정당법, 정치자금법, 공직선거법은 처음부터 끝까지 다 뜯어고치지 않으면 안 되는 수준이기 때문이다. 뒤의 방법론은 산개해 있는 진보진영이 공통사업을 통해 상호 신뢰를 회복하고 정치관계법 개혁운동을 보다 강도 높은 수준으로 전개할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내면의 한계에도 불구하고 이번 헌법재판소의 결정은 국회의원 선거와 관련된 근본적인 문제를 건드렸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또한 보다 정의롭고 효과적인 선거제도를 설계하는 계기를 마련했다는 점에서도 주목해야 한다. 문제는 이러한 의미와 기회를 살려갈 수 있는 역량이 우리에게 있는지, 수도 없이 기획해왔던 변화의 방향을 사회적인 호응과 지지 속에서 추진할 수 있을지다. 노동당의 안타까운 현실을 극복하기 위해서라도 정치관계법은 전면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부연의 필요 없이 이 문제는 당의 사활을 건 문제이기도 하다. 그러나 문제에 대응해 주체적으로 힘을 발휘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는 점은 현실적 부담이다. 이 부담을 던지고 사활을 건 문제에 사활을 걸고 대응하는 것이 지금의 과제다.

아일랜드 노동당의 가두 행진 모습. 깃발에 장미 문양이 선명하다.

먼 좌파 이웃 좌파 ⑧ 아일랜드 좌파정치 (1) , 만년 제3세력에서 벗어나려는 한 세기의 여정

[2014.03 제7호 먼 좌파 이웃 좌파 ⑧]

아일랜드 좌파정치 (1)

만년 제3세력에서 벗어나려는 한 세기의 여정

 

장석준|부대표

 

 

 

아일랜드, 우리에게 낯선 나라만은 아니다. 이 나라와 영국 사이의 오랜 악연은 한국과 일본의 관계를 연상시키는 데가 있다. 아일랜드의 반영 독립 투쟁을 다룬 영화 <마이클 콜린스><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을 보면, 우리의 항일 운동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실제로 한국 독립운동사에 이름을 남긴 아일랜드인도 있다. 무역선박회사 이륭양행을 경영하며 임시정부와 의열단을 지원한 조지 루이스 쇼가 그 사람이다.

최근에는 신자유주의의 최전성기이던 노무현 정부 시절에 이른바 ‘아일랜드 모델’이 한창 입에 오르내린 바 있다. 해외 자본을 끌어들여 급속한 경제 성장을 이룬 아일랜드를 따라 배워야 한다는 것이었다. 한데 정작 그 아일랜드는 2008년 공황의 직격탄을 맞아 지금 유럽의 가장 심각한 재정 위기 국가들 중 하나가 되어 있다. 재정 위기국들에 붙은 ‘PIGS’이라는 경멸적 호칭에서 ‘I’가 바로 아일랜드를 가리킨다.

그럼 아일랜드에서는 이런 위기에 맞서 좌파 정치 세력들이 어떠한 활동을 펼치고 있는가? 그 전에 아일랜드에는 어떤 좌파 정당들이 존재하는가? 서유럽 국가들 중에서는 흔치 않게 우리처럼 민족해방투쟁의 경험을 지닌 이 나라에서는 좌파 정치가 어떠한 역사적 궤적을 밟아왔는가?

1 아일랜드 독립 전쟁과 내전을 다룬 켄 로치의 영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의 포스터

아일랜드 독립 전쟁과 내전을 다룬 켄 로치의 영화 <보리밭을 흔드는 바람>

2 영화 마이클 콜린스 포스터 - 리암 니슨이 온건파 민족주의자 마이클 콜린스 역을 맡았다

리암 니슨이 온건파 민족주의자 마이클 콜린스 역을 맡은 영화 <마이클 콜린스>

 

아일랜드 노동당의 한 세기 민족주의 강온파 대립의 틈바구니에서

 

아일랜드에도 좌파 정당이 여럿이지만 그 중에서 이제껏 좌파의 대표자 역할을 해온 정당은 노동당(Labour Party)이다. 이 당은 영국 노동당과 마찬가지로 노동조합운동에 기반을 두고 탄생한 정당이다. 또한 사회주의인터내셔널(SI) 가입 정당으로서, 사회민주주의 정당이라 분류할 수 있다.

노동당은 1912년에 출범했는데, 이때는 아직 영국으로부터 독립하기 전이었다. 이 무렵 아일랜드에서는 반영 민족주의 운동이 치열하게 전개됐을 뿐만 아니라 노동운동도 급속히 성장하고 있었다. 걸출한 노동운동가 제임스 라킨이 이끌던 아일랜드 운수일반노동조합(ITGWU)이 그 선두에 섰다. ITGWU는 미숙련 노동자들까지 광범하게 조직하며 총파업도 불사하는 전투적 산업노조의 전형이었다.

 

Image Ref. No. 0510/053

아일랜드 노동당 창당의 주역이자 전설적인 노동운동가 제임스 라킨의 연설 모습

ITGWU가 주도해서 아일랜드 노동조합회의(ITUC)가 결의해 만든 당이 노동당이다. 아니, 노총인 ITUC가 독자 정치 세력임을 표방하며 정당을 겸하기로 했다는 게 더 맞겠다. 노총이 곧 노동당이고 노동당이 곧 노총이었다. 이런 성격을 유지하려고 처음에는 노동조합을 통한 집단 입당 외에 개별 입당은 허용하지 않았다. 노동조합과 정당의 일체화를 꾀한 독특한 시도였다. 나중에는 물론 개별 입당을 허용하게 되지만 말이다.

이렇듯 아일랜드 노동당은 영국 노동당과 마찬가지로 노동조합 정치세력화의 산물이었다. 그러나 이 당은 영국의 형제당과는 달리 처음부터 사회주의 이념을 분명히 내세웠다. 여기에는 전설적인 사회주의자 제임스 코널리의 영향이 컸다. 코널리는 보수적인 가톨릭 문화가 지배하던 아일랜드 노동자들 사이에 혁명적 사회주의를 확산시키는 데 앞장섰다. 그는 국제주의 원칙에 따라 북아일랜드에서 가톨릭 노동자들과 프로테스탄트 노동자들이 서로 연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것은 가톨릭/프로테스탄트의 종파적 대립을 강조하면서 전자를 중심으로 민족 공동체를 구성하려 한 민족주의자들과는 확연히 구별되는 태도였다.

그러면서도 코널리는 민족주의를 비판의 대상으로만 바라보지 않았다. 오히려 약소민족 민족주의의 진보적 역할에 주목했다. 그래서 민족주의와 사회주의 사이의 연대를 추진했다. 코널리는 독립 아일랜드 공화국을 건설하는 과정에서 노동계급이 주도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결론에 도달했다. 당시만 해도 민족 해방과 탈자본주의 사회 변혁을 결합한다는 것은 사회주의자들 사이에서는 그리 익숙하지 않은 주장이었다. 이 점에서 코널리는 독창적이고 선구적인 사상가였다.

이런 입장이 실천으로 나타난 게 저 유명한 1916년 부활절 봉기다. 반영 무장 투쟁의 도화선이 된 이 사건은 코널리가 이끌던 노동당 행동대 ‘아일랜드 시민군’과 민족주의 세력인 ‘아일랜드 의용군’의 합작품이었다. 이 무장 혁명 시도 자체는 일단 실패로 끝났다. 영화 <마이클 콜린스>는 봉기가 진압된 뒤 코널리가 영국군에 의해 총살당하는 장면으로 시작된다. 하지만 이런 희생 덕분에 노동당과 노동운동은 독립 아일랜드 공화국의 중요한 버팀목 중 하나로 인정받을 수 있었다.

 

5 -1916년 부활절 봉기로 파괴된 더블린 시내

1916년 부활절 봉기로 파괴된 더블린 시내

그러나 독립 투쟁 과정에서 노동당은 이후 한 세기 동안 지속될 숙명적인 한계에 빠지기도 했다. 아일랜드 민족주의자들은 본래 신페인당(Sin-Féin)을 중심으로 뭉쳐 있었다. ‘신페인’은 게일어로 ‘우리 스스로’라는 뜻이다. 2편에 소개하겠지만, 지금도 아일랜드 의회에는 신페인당이 있다. 그러나 세기 초의 신페인당이 그대로 이어진 것은 아니다. 아일랜드 민족주의-사회주의 운동에서 이 이름이 세대를 이어 계속 반복 사용된 것뿐이다. 아무튼 처음에는 신페인당이 민족주의 단일 정당이었는데, 1920년대에 민족주의 세력이 두 적대 진영으로 나뉘고 만다.

발단은 1922년의 영국-아일랜드 협상이었다. 이 협상으로 아일랜드는 독립과 함께 분단을 받아들여야 하는 신세가 됐다. 프로테스탄트 인구를 다수 포함한 북아일랜드는 영국령으로 남고 남부 지역만 아일랜드 자유국으로 독립한다는 것이었다. 이 협상 결과를 놓고 민족주의자들은 이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다는 온건-현실파와 이에 극력 반대하는 강경-원칙파로 나뉘었다. 이 대립은 급기야 내전으로까지 비화했다. 위에 소개한 두 영화, <마이클 콜린스><보리밭을 흔드는 바람>에 이 비극이 생생히 묘사돼 있다.

내전 자체는 양 쪽의 타협으로 1년만에 마무리됐다(1922-1923). 하지만 이때의 대립이 정당 구도로 남아 지금까지 아일랜드 정치를 지배하고 있다. 강경파 민족주의자들은 신당 ‘피애너 포일(Fianna Fáil, ‘아일랜드의 전사’라는 뜻)’을 창당했다. ‘공화당’이라고도 불리는 이 당은 독립 이후 대부분의 기간 동안 원내 제1당 지위를 유지하며 아일랜드 정치를 주도하게 된다. 한편 온건파 민족주의자들은 ‘피네 게일(Fine Gael, ‘아일랜드 겨레’라는 뜻)’이라는 정당으로 결집했다. 피네 게일은 이후 피애너 포일과 함께 양대 정당 구도를 이루며 권력을 주거니 받거니 했다. 사실 이 두 당은 북아일랜드 재통합에 대한 민족주의적 수사의 강도가 여전히 조금 다룰 뿐, 한국의 새누리당-민주당처럼 근본적인 이념 차이는 없다. 둘 다 보수 우파 정당이다.

한데 문제는 이러한 양대 우파 정당의 등장 때문에 노동당의 성장이 정체돼 버렸다는 것이다. 피애너 포일과 피네 게일의 대립이 정치권을 지배하게 되자 노동당은 무대의 중심에서 밀려나고 말았다. 여전히 중요한 정치 세력이기는 했다. 원내 제3당 지위는 줄곧 유지했다. 노동조합이라는 탄탄한 기반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아일랜드 정치는 공화당-민주당이 제도 정치를 독점한 미국과는 양상이 분명 달랐다. 그러나 노동당이 마침내 양대 정당 중 하나로 부상한 영국과도 또 달랐다. 아일랜드 노동당은 피애너 포일과 피네 게일 사이에 낀 캐스팅 보트일 뿐이었다. 지난 세기 내내, 혼자 힘으로 집권할 수 있는 정당으로는 성장하지 못했다.

이런 만년 제3당 신세 때문에 노동당의 좌파 이념도 많이 희석됐다. 노동당은 양대 보수 정당, 그 중에서도 자력으로 원내 과반수를 확보하기 힘든 처지였던 피네 게일과 좌우연립정부를 결성하곤 했다. 그러다 보니 노동당의 정책도 우파 정당 피네 게일과 조율할 수 있는 수준으로 하향 조정되기 일쑤였다.

 

노동당 바깥에서 불어온 좌파 혁신의 바람

 

노동당의 이런 정체 상태에는 아일랜드의 독특한 선거 제도도 한 몫 했다. 이 나라의 하원의원 선출 방식은 단기이양제(Single Transferable Vote)다. 이것은 여러 명의 당선자를 내는 대선거구를 전제로 한다. 유권자들은 한 명의 후보에게 표를 던지는 게 아니라 여러 명의 후보들에 대해 1순위 선호, 2순위 선호 등 선호도를 표시한다. 일정 수 이상의 득표를 한 복수의 후보가 당선자가 되는데, 1순위 선호 투표만으로 당선자 수를 다 채우지 못하면 2순위 그리고 그 아래 순위 선호 투표까지 개표해서 당선자를 채워간다.

 

아일랜드 노동당의 가두 행진 모습. 깃발에 장미 문양이 선명하다.

아일랜드 노동당의 가두 행진 모습. 깃발에 장미 문양이 선명하다.

이것은 일종의 비례대표제다. 그래서 미국이나 영국식 양당 구조는 피할 수 있다. 하지만 ‘정당명부’ 비례대표제는 아니다. 그래서 특정 지역구에 강력한 기반을 지닌 정당이 후보를 여럿 내서, 마치 일본식 중선거구제에서 자유민주당이 그랬던 것처럼, 당선자를 많이 낼 수도 있다. 소선거구제 요소가 상당히 가미된 비례대표제인 셈이다. 이러다 보니 지역조직이 가장 강한 피애너 포일이 원내에서 쭉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반면 노동당은 일정 수 이상으로 의석을 늘리는 데 애를 먹었다.

만년 캐스팅보트인 노동당은 좌파 정치의 대표자가 되기에는 너무 무력해보였다. 특히 젊은 세대에게 그랬다. 그래서 아일랜드에서는 노동당 바깥의 좌파 정치세력화 시도가 끊임없이 이어졌다. 그 때마다 새 세대는 미완으로 끝난 통일 독립 아일랜드 공화국의 꿈을 다시 추구하겠다고 천명하곤 했다. 위에서 이야기한 것처럼 ‘신페인당’이라는 이름이 수차례 부활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한데 흥미로운 것은 노동당 바깥의 이러한 시도들 덕분에 노동당 역시 새로운 피를 수혈해 주기적인 침체 상태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도 아일랜드 좌파 정치에서는 이런 일이 벌어지고 있다. 다음 호에서는 이에 대해 살펴보자.

 

 

 

스웨덴 사회민주당 당원들의 가두 행진 모습

먼 좌파 이웃 좌파 ② 스웨덴 사회민주노동당

[2013.09 창간호(1호) 먼 좌파 이웃 좌파 ②]

스웨덴 사회민주노동당

 

장석준|부대표

 

 

 

우리의 새 당명이 ‘노동당’이다 보니 전 세계 좌파정당 가운데 ‘노동’을 앞에 내세운 정당들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흔히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영국 노동당이다. 그런데 영국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영어권 나라들(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아일랜드 등)에서 좌파 제1정당의 명칭이 ‘노동당(Labour Party)’이다. 영어권 바깥에서는 노르웨이와 네덜란드가 눈에 들어온다. 이들 나라의 사회민주주의 정당 역시 이름이 ‘노동당’이다. 현재 브라질의 집권당인 노동자당(PT)도 ‘노동당’과 일맥상통하는 당명이라 하겠다.

 

스웨덴 사회민주노동당의 반자본주의 강령

 

흔히 복지국가의 모범이라 일컫는 스웨덴에도 ‘노동당’ 이 있다. 그리고 이 나라에서도 역시 노동당이 좌파의 대표 정당이다. 이것은 스웨덴 복지국가 건설의 주역이 사회민주당이라는 우리의 상식과 어긋난다. 어찌 된 일일까? 사실 ‘사회민주당’ 과 ‘노동당’ 은 같은 당이다. 사회민주당의 본래 명칭이 ‘사회민주노동당’ 이다. 평소에는 줄여서 ‘사회민주당’ 이라 하기도 하고 ‘노동(자)당’ 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념을 강조할 때는 주로 ‘사회민주당’ 이라 하고 핵심 지지 기반을 부각할 때는 ‘노동당’ 이라 즐겨 부르는 것이다. 이게 뿌리 깊은 관행이 되어 있다.

스웨덴의 노동당, 즉 사회민주당은 지난 세기에 거의 50년 가까이 연속 장기 집권하면서 전 세계에서 최초로 복지국가의 기틀을 놓은 것으로 유명하다. 국내에도 그 역사를 깊이 있게 소개하는 책들이 나와 있다. 대표적으로, 잉바르 카를손 외, <사회민주주의랑 무엇인가>(윤도형 옮김, 논형, 2009) / 홍기빈, <비그포르스, 복지국가와 잠정적 유토피아>(책세상, 2011) / 신정완, <복지자본주의냐 민주적 사회주의냐 : 임노동자기금논쟁과 스웨덴 사회민주주의>(사회평론, 2012) / 하수정, <올로프 팔메 : 스웨덴이 사랑한 정치인>(후마니타스, 2013) 등이 있다. 이 책들만 봐도 스웨덴 좌파 정치에 대해 풍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스웨덴 사회민주주의의 역사를 기리는 부조물(가운데의 팔을 치켜든 인물은 당의 초기 지도자 얄마르 브란팅)

스웨덴 사회민주주의의 역사를 기리는 부조물(가운데의 팔을 치켜든 인물은 당의 초기 지도자 얄마르 브란팅)

이 글에서는 다만 사회민주당의 강령과 최근 상황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2001년에 채택된 이 당의 현 강령은 사회민주주의 정당 강령치고는 꽤 선명한 어조로 현대 자본주의를 비판한다. 현대 사회의 수많은 모순들의 근저에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사이의 대립과 충돌이 있다고 강령은 주장한다. “이러한 모순들 속에는 민주주의의 힘과 자본의 힘 사이의 갈등, 민중의 이해와 자본의 이해 사이의 갈등이 선명한 형태로 존재한다.” 신자유주의가 자본의 힘으로 민주주의를 제압하려 한다면, 사회민주당의 지향은 그 반대다. 즉, 민중의 힘으로 자본을 제압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의 모든 권력은 사회를 함께 구성하는 사람들로부터 나와야만 한다. 경제적 이해는 민주주의를 제한할 권리를 지니지 못한다. 반면 민주주의는 언제나 경제에 조건을 부여하고 시장에 한계를 설정한 권리를 지닌다.”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는 구분돼야 한다”

 

그럼 이러한 ‘경제 민주화’는 어떤 구체적인 수단을 통해 가낭한가, 사회민주당 강령은 이 물음에 답하면서 독특한 철학을 제시한다. ‘시장’ 과 ‘자본주의’ 를 엄격히 구별하면서, 시장 경제는 인정하지만 자본주의는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본주의와 시장 경제는 구분되어야 한다. 시장 경제는 재화와 용역이 교환의 중재자인 화폐를 통해 소유자를 바꾸는 분배 체계다. 반면 자본주의는 자본이 최우선의 규범으로서 보상을 받는 권력 체계다.” ‘시장=자본주의’ 는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둘 사이의 분명한 연관 관계도 있다. 시장이 사회 및 경제의 다른 영역들을 지배하려 들 때 그것은 필연적으로 자본주의 지배 질서를 낳는다.

따라서 사회민주당의 경제 청잭은 무엇보다 이러한 시장의 확장을 제한하는 것이어야 한다. “사회민주당이 지향하는 경제에서 시장 경제는 경제 생활의 단지 일부일 뿐이다. 사적 이윤의 요구가 다른 모든 이해를 지배해서도 안 되며 사회 발전의 방향을 결정해서도 안 된다. 시장이 사회 공공재와 공동체의 규범으로 받아들여져서도 안 된다.” 흥미로운 입장이다. 논쟁의 여지도 많지만, 우리 노동당 강령이 주창하는 “자본주의 극복” 과 관련해 함께 토론해볼 만한 주장이다.

 

사회민주당의 위기와 전화위복

 

2010년 총선에서 패한 사회민주당의 대표 모나 살린

2010년 총선에서 패한 사회민주당의 대표 모나 살린

그런데 안타깝게도 최근 스웨덴 사회민주당이 보여준 모습은 이 당의 강령이 표방하는 단호한 입장과는 좀 거리가 멀다. 2010년 총선에서 사회민주당은 우파 연정으로부터 정권을 탈환하기 위해 여성 대표 모나 살린을 앞세워 야심차게 선거에 임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패배였다. 그래서 지금도 스웨덴에서는 온건당, 중도당, 자유인민당, 기독교민주당 등 우파 4당 연립정부가 집권하고 있다. 이 우파 연정의 복지 축소 기조 때문에 지난 5월에는 스톡홀름 인근에서 빈민층의 폭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한편 총선에서 패배한 사회민주당 안에서는 선거 평가를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특히 당 내 좌파가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당이 신자유주의에 흔들려 강령의 이념과 원칙으로부터 이탈한 것을 패인으로 지목했다. 이 분위기를 등에 업고 새 대표로 선출된 인물이 부대표이던 호칸 유홀트다. 그는 “시장 경제는 지지하지만 자본주의는 반대한다” 는 당 강령 내용을 새삼 강조하면서, 아동 빈곤 철폐, 청년 실업 축소, 공공부문 임금 인상, 노후 연금 인상, 사유화된 전력과 철도의 원상회복을 핵심 정책으로 제시했다. 모처럼 사회민주당이 활력을 되찾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이때 언론이 유홀트 대표의 배우자가 주거수당을 과다 청구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이 문제로 당이 다시 침체 상태에 빠지자 유홀트 대표는 결국 자진 사퇴했다. 자칫하면 당의 위기가 장기화할지 모를 상황이었다.

금속노조 위원장 출신인 스웨덴 사회민주당의 신임 대표 스테판 뢰프벤 (뒤의 배경은 사회민주당 로고)

금속노조 위원장 출신인 사회민주당의 신임 대표 스테판 뢰프벤 (뒤의 배경은 사회민주당 로고)

그러나 새 대표 뢰프벤의 등장이 전화위복이 되었다. 뢰프벤은 당 대표가 되기 전까지 12년간 금속노조 위원장을 맡았던 고참 노동운동가다. 사회민주당이 ‘노동당’ 이라는 별칭을 애호할 정도로 노동자 정당임을 강조하지만, 놀랍게도 124년 역사 동안 이 당에는 노동운동 출신 대표가 한 명도 없었다. 뢰프벤이 처음이다. 그렇다고 뢰프벤이 유홀트처럼 당 내 좌파인 것은 아니다. 그는 오히려 금속노조 시절부터 실용주의자로 유명했다. 심지어는 대재벌인 발렌베리 가문과도 막역한 사이다. 당 대표가 되고 나서도 이민 규제에 찬성하는 등 현실에 영합하는 행보를 보였다. 그럼에도 최초의 노동조합 출신 당 대표라는 사실이 던져주는 효과는 작지 않았다. 덕분에 당 지지율은 다시 30% 이상 수준으로 높아졌다.

뢰프벤은 국내 정책의 실용주의를 국제 정책의 새로운 비전으로 보완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는 노동조합 지도자의 경력을 살려, 전 지구적인 자본-노동 간 협약을 맺자는 제안을 내옿았다. 전 세계 노동자의 임금 및 노동 조건 기준을 정하자는 것이다. 이를 통해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의 지향을 지구화할 수 있으며 이민 문제도 근복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지난 세기 중반에 스웨덴 사회민주당이 마주했던 갈림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사회민주당의 두 가지 비전

 

1960년 대를 전후해 스웨덴의 국내 복지 체계가 완비되자 사회민주당 안에서는 다음 단계의 원대한 목표로 두 가지 비전이 등장했다. 하나는 소비 영역의 민주화라 할 수 있는 복지국가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생산 영역의 민주화를 추구하자는 것이었다. 즉, 노동자가 기업의 소유와 경영을 주도하는 체제로 전환하자는 것이었다

사회민주당 이론가 에른스트 비그포르스

사회민주당 이론가 에른스트 비그포르스

이 방향의 주창자는 당의 대표적 이론가 에른스트 비그포르스였고, 이게 정책으로 나타난 게 1970년대에 루돌프 메이드네르가 금속노조의 위촉을 받아 제출한 임금노동자기금 구상이었다(위에 소개한 신정완의 책과 함께, 장석준, <신자유주의의 탄생>[책세상, 2011]참고). 아쉽게도 이 구상은 자본의 거센 반발 때문에 불발로 끝나 버렸다.

다른 한 방향은 일국 차원의 복지국가를 이제는 전 세계로 확대하자는 것이었다. 이 입장의 대표자는 당의 또 다른 주요 이론가이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1974년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와 공동 수상)인 군나르 뮈르달이었다. 뮈르달은 1960년에 낸 “복지국가를 넘어서 : 경제 계획과 그 국제적 의미” 라는 인상적인 제목의 저서에서 이런 비전을 과감히 제시했다. 하지만 뮈르달의 구상 역시 임금노동자기금 구상과 마찬가지로 진지하게 추진되지 못했다. 실제 역사에서는 뮈르달이 염원한 복지국가의 지구화가 아니라 금융화된 자본의 지구화가 관철되었다. 하지만 이제 신자유주의의 황혼이 완연해지자 뢰프벤은 이 불발된 전망을 되살리려 하는 것이다.

현재 스웨덴 사회민주당은 우파 연정의 인기 하락에 힘입어 내년 총선 승리의 꿈에 부풀어 있다. 2010년 총선에서 사회민주당과 함꼐 ‘적색-녹색 연합’ 을 결성했던 좌파당, 녹색당의 지지율을 사회민주당 지지율에 더하면 우파 연정 참여 정당들의 지지율 총합을 적게는 6%, 만게는 10% 차이로 앞서는 추세다. 이 상승세가 계속 유지돼 스웨덴에 다시 좌파 정부가 들어설 수 있을까? 새 좌파 정부는 뢰프벤의 전 지구적 케인스주의 구상을 과연 진지하게 추친할까? 1930년 대에 그랬던 것처럼, 스웨덴이 다시 한 번 사회민주주의 갱생의 진원지로 나서게 될까? 이런 물음들 때문에 우리는, 스웨던이 우리의 새 교과서는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에서 좀처럼 눈을 뗄 수 없는 것이다.

성소수자 권리를 위한 시위를 벌이는 독일 좌파당 당원들

먼 좌파 이웃 좌파 ① 세상에는 어떤 좌파정당들 있나

[2013.07 창간준비호 먼 좌파 이웃 좌파 ①]

세상에는 어떤 좌파정당들 있나

 

장석준|부대표

 

 

 

사회민주당, 사회당, 노동당, 공산당, 녹색당… 좌파정당 하면 흔히 떠오르는 이름들이다. 간간히 외신에 이런 이름들이 오르내릴 때마다 먼 곳의 동지로 느껴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들 정당의 과거 역정이 어떠했는지, 요즘은 어떻게 활동하고 있는지, 이들의 고민은 무엇이고 그것은 지금 우리의 고민과 어떻게 이어지는지에 대해 풍부한 이야기를 접하기한 쉽지 않다. 이 갈증을 풀기 위해 우선 세계 곳곳에 어떠한 좌파정당들이 존재하는지부터 짚어보자.

 

좌파정당의 고전적 두 흐름 – 사회민주주의와 공산주의

 

좌파정당들은 몇 개의 무리로 나눌 수 있다. 그 첫 번째 무리는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다. 독일 사회문주당, 프랑스 사회당, 영국 노동당, 스웨덴 사회민주노동당, 네덜란드 노동당, 스페인 사회노동당 등 유럽의 주요 좌파정당들이 여기에 속한다. 이들 정당은 대개 역사가 100년이 넘는다. 좌파정당의 첫세대라 할 수 있다. 지금으로부터 150년도 더 전인 1860년대에 세계 최초의 좌파 대중정당인 독일 사회민주당이 등장한 게 그 출발점이었다. 그 후 유럽 여러 나라에서 ‘사회민주주의’, ‘사회주의’, ‘노동(자)’ 등의 이름을 내건 정당들이 등장했고, 2차 대전 이후에는 이들이 복지국가 건설을 주도했다. 유럽에서는 지금도 대체로 이들 정당이 여당이거나 제1야당이다. 현재 집권당으로는 프랑스 사회당, 덴마크 사회민주당, 노르웨이 노동당 등이 있다.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유럽에만 있는 것은 아니다.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의 국제 조직인 ‘사회주의 인터내셔널'(SI)에는 많은 비유럽권 정당들이 가입해 있다. 그 중에는 유럽 사회민주주주의 정당들과 성격이 비슷한 오스트레일리아 노동당, 뉴질랜드 노동당, 캐나다 신민주당, 칠레 사회당 등도 있지만 제3세계의 좌파 민족주의 운동에서 출발한 정당들도 꽤 있다. 규모가 큰 것만 열거해도, 터키의 공화인민당, 멕시코의 민주혁명당, 니카라과의 산디니스타 민족해방전선,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아프리카민족회의 등이 있다. 눈살을 찌푸리게 만드는 것은 멕시코 제도혁명당(위의 민주혁명당의 주적)처럼 좌파정당이라 보기 힘든 부패한 기득권 세력도 회원으로 가입해 있다는 사실이다. 아시아에서는 일본의 사회민주당, 말레이시아의 민주행동당 등이 주요 회원이다.

남아공에서 열린 제24차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대회

남아공에서 열린 제24차 사회주의 인터내셔널 대회

신자유주의의 절정기이던 지난 20여 년 동안 사회민주주의 정당들 중 상당수는 ‘제3의 길’, ‘새로운 중도’ 등의 이름으로 신자유주의를 받아들였다. 영국 노동당과 독일 사회민주당이 대표적인 사례였다. 이 때문에 2008년 금융 위기를 거치며 이들 정당은 정권을 잃거나 지지율이 급락했다. 재정 위기에 휩싸인 그리스에서는 사회민주주의 정당인 범그리스사회주의운동(PASOK)이 그간 소수 정당에 머물던 급진좌파연합(SYRIZA)에 좌파의 대표 자리를 내주는 이변이 일어나기도 했다. 신자유주의의 대안이 아니라 그 공범으로 낙인찍힌 것이다. 그래서 최근 이들 정당 내부에서는 ‘제3의 길’ 노선을 청산하고 과거의 정통 사회민주주의를 새로운 상황에 맞게 되살리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작년 총선 당시의 그리스 급진좌파연합 대표 알렉시스 치프라스

작년 총선 당시의 그리스 급진좌파연합 대표 알렉시스 치프라스

본래 사회민주주의 정당들 왼쪽에서는 공산주의 정당들이 좌파정당의 또 다른 큰 무리를 이루고 있었다. 러시아 10월 혁명의 영향을 받아 혁명 노선을 주창하며 등장한 정당들이다. 제국주의로 인해 고통 받은 유럽 바깥 세계에서는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아니라 공산주의 정당이 사회에 깊게 뿌리내렸다. 유럽에서도 이탈리아나 프랑스 같은 나라에서는 한때 공산당이 좌파 제1정당 역할을 했다. 그러나 소련이 무너지고 중국이 지구 자본주의에 편입되면서 공산당은 대개 몰락 혹은 재편의 길에 접어들었다. 아직도 ‘공산당’이라는 이름을 내걸고 자본주의 국가 안에서 활동하는 정당으로는 인도의 공산당-마르크스주의파, 네팔의 공산당-마오주의파, 체코의 보헤미아 모라비아 공산당, 일본 공산당, 칠레 공산당 등이 주목할 만하다.

 

새 세대의 좌파정당 흐름들 – 녹색 정당, 좌파 재구성 정당

 

기후변화에 대한 시위를 벌이는 영국 녹색당 당원들

기후변화에 대한 시위를 벌이는 영국 녹색당 당원들

20세기 좌파정당의 두 큰 줄기였던 사회민주주의, 공산주의와는 또 다른 전혀 새로운 흐름들도 있다. 지난 세기 말에 등장한 좌파정당의 새 세대들이다. 그 첫 번째 무리로 들 수 있는 게 녹색 정당들이다. 흔히 녹색당은 좌우 어디에도 속하지 않는다고 한다. 하지만 녹색 정당의 첫 성공 사례인 독일 녹색당(정식 명칭은 ‘녹색당/동맹90’)은 분명 신좌파 정치세력화의 산물이었다. 비록 지금은 사회민주당보다 더 우경했다는 평가를 받기도 하지만 말이다. 현실 정체에서 성공한 녹색 정당으로는 그 밖에도 오스트리아의 녹색당-녹색대안, 프랑스의 유럽 생태주의-녹색당, 네덜란드의 녹색좌파 등이 있다. 영국에서는 녹색당이 좌파 성향 유권자가 선거에서 노동당 대신 선택할 대안으로 떠오르기도 한다. 이들 정당에 대한 보다 상세한 소개로는 최백순 당원이 쓴 <미래가 있다면, 녹색>(이매진,2013)을 참고할 수 있다.

녹색 정당은 한때 사회민주주의 정당의 유력한 경쟁자로 부상했고 지금도 몇몇 나라에서는 그렇다. 그런데 도전자는 이들만이 아니었다. 현실사회주의권이 몰락하고 나자 구 공산주의 정당들이 스스로를 재편하기 시작했다. 이것은 사회민주당 왼쪽의 정치 세력 전반이 재편되는 계기가 되었다. 오랫동안 소주 정파 활동에 머물러 있던 트로츠키주의나 마오주의 세력도 새롭게 대중정당 건설에 나섰다. 이들을 한데 아울러 좌파 재구성(left recomposition) 정당들이라 할 수 있겠다.

그 선구적 사례는 1980년대 초에 등장한 스페인의 연합좌파다. 이 조직은 공산당과 여타 좌파 정치조직들이 모인 정당연합이다. 그러면서도 마치 하나의 정당처럼 활동하기도 한다. 이후에 이와 비슷한 형태의 조직으로서, 덴마크의 적록연합, 핀란드의 좌파연합, 포르투갈의 좌파블록, 위에서 언급한 그리스의 SYRIZA 등이 등장했다. 최근에는 프랑스의 좌파당과 공산당이 ‘좌파전선’이라는 이름으로 비슷한 실험에 나섰다. 이와 달리, 여러 정파들이 모이기는 했지만 처음부터 하나의 정당으로 출범한 사례도 있다. 독일의 좌파당, 네덜란드의 사회당(별칭 ‘토마토당’), 이탈리아의 좌파생태자유, 아이슬란드의 좌파녹색운동 등이 그런 경우다.

좌파 재구성 정당들은 처음에는 사회민주당 왼쪽에서 주류 좌파를 비판하는 소수파 역할에 머물렀다. 지지율도 5% 안팎에 그쳤다. 하지만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노골적으로 신자유주의에 투항하는 모습을 보이자 점차 양상이 바뀌었다. 그리고 2008년 미국 금융 위기와 함께 신자유주의의 전성기가 끝나고 동요의 시대가 시작되자 기회가 왔다. 이미 이야기한 그리스 사례를 비롯해 현재 프랑스, 덴마크, 포르투갈 등지에서 좌파 재구성 정당들은 기존에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차지하던 좌파의 대표자 위치를 넘보고 있다.

노동자당 후보의 상파울루 시장 당선을 축하하는 브라질 노동자당 당원들

노동자당 후보의 상파울루 시장 당선을 축하하는 브라질 노동자당 당원들

이게 유럽만의 양상은 아니다. 2000년대에 라틴아메리카에서 좌파 붐을 일으킨 중남미 좌파 정당들은 좌파 재구성 정당의 아메리카판이라 할 수 있는 세력들이다. 브라질의 노동자당, 우루과이의 확대전선, 베네수엘라의 통합사회당, 볼리비아의 사회주의 운동, 이들 모두는 SI와 거리를 두고 있다. 남미에서 SI 회원들은 오히려 각 나라에서 구체제의 버킴목 역할을 하던 정당들(콜롬비아의 자유당이나 베네수엘라의 민주행동당, 볼리비아의 혁명좌파운동)이다. SI에 속한 유럽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이 미국의 이라크 침략에 동조할 때 남미 좌파 세력들은 ‘온건’ 노선이라는 브라질 룰라 정부든 ‘강경’ 노선이라는 베네수엘라 차베스 정부든 모두 전쟁에 반대하고 나섰다. 이들 중남미 신흥 좌파는 ‘상파울루 포럼’이라는 라틴아메리카 좌파만의 독자적인 국제 조직에 모여 있다.

우리 당은 이러한 세계 좌파정당의 여러 흐름들 중 어느 쪽에 가깝다고 할 수 있을까? 지금 우리 상황에서 보다 풍부한 교훈을 얻을 수 있는 사례는 무엇인가? 이 물음의 답을 찾기 위해 이제부터 위의 무리들 그리고 그에 속한 각 정당을 하나하나 살펴보자.

▲ 당내 명망가들과 유명정치인들이 떠난 2011년 11월 당시 진보신당에서 열린 '당원 힐링캠프' (사진: 진보신당)

진보정치 재건, 두 마리 토끼 잡아야 할 때

[2013.05 온라인 창간준비2호]

진보정치 재건, 두 마리 토끼 잡아야 할 때

 

박권일|칼럼니스트

 

 

진보신당 기관지준비팀은 당 오프라인 기관지 창간을 위해 지난 4월부터 커버스토리 준비호를 <정치신문 R>을 통해 선보이고 있습니다. 창간준비 2호 “2013 대한민국, 정치를 찾습니다”에서는 우리 주위의 정치지형을 살피고 진보신당의 과제를 짚어봅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당원’이 된 게 2002년이었다. 그때 20대 중반의 ‘언론고시생’이었는데 그 해 연말, 남한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지닌 진보언론이 참으로 오랜만의 공채를 실시했다. 나는 운명처럼 그 매체의 기자가 되었다. 민주노동당은 나의 첫 번째 당이었고, 첫 번째 출입정당이 됐다. ‘여의도 한양빌딩 시절’ 내내 나는 중앙당을 가장 가까운 곳에서 지켜본 기자 중 한 명이었다. 지금이 2013년이니까 당원이 된 지도 10년이 훌쩍 넘어갔다.

그 세월 동안 변하지 않는 건 드물다. 대통령만 무려 세 명 째다. 노무현 대통령에서 이명박 대통령으로, 다시 박근혜 대통령으로. 물론 나의 신상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다. 그동안 민주노동당은 ‘부침’이란 말로는 부족한, 그야말로 ‘격랑’에 휘말리며 사분오열했다. 소위 ‘패권주의적 정파들’과 ‘당내 명망가’들이 전부 빠져나간 지금, 여전히 진보정당에 대한 희망을 놓지 않은 이들이 다시 뭉쳐 자유주의 정치세력과 구별되는 진보좌파정치의 깃발을 지키고 있다.

그 사이 우리는 진보정치의 여정에서 결정적 역할을 했던 걸출한 동지 이재영 마저 영원히 떠나보내야 했다. 어딜 둘러봐도 어려운 형국이다. ‘진보정치 재건’이라는 난제, 어떻게 풀어갈 것인가?

 

주체의 ‘재활’에 신경 써야

 

현실정치에서의 전략·전술은 내가 굳이 이야기할 필요도 없거니와 나보다 훨씬 더 잘 기획하고 논의할 수 있는 사람들이 많다. 조금 다른 측면에서 진보정치의 재구성을 이야기해보려 한다. 진보신당이 대중정당으로서의 정체성을 결코 포기할 수 없다고 전제했을 때, 현실적으로 외연확대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은 그리 많지 않다. 결국 대중과의 접점을 늘려가는 수밖에 없는데, 그것은 전부 자본과 인력의 문제로 번역된다.

언제나 자원은 한정되어 있고 할 일은 태산이다. 가장 심각한 문제는 당 상근자를 포함한 당원들의 사기가 너무나 떨어져 있다는 것이다. 당이 일을 열심히 하고 대중의 지지를 확보하기 시작하면 사기는 다시 올라갈 수 있겠지만 현 상태로는 최소한의 집단적 동력조차 모으기 쉽지 않아 보인다. 어떤 형태로든 다들 소진되었고, 겉으로 표현하지 않았을 뿐 무력감에 사로잡혀 있다. 이 피로감은 1, 2년 된 것이 아니라 10년이 넘게 쌓여온 것이다. 페이퍼 당원이나 다름없는 나조차 그럴진대 중앙당 및 지역당 상근자, 열심히 활동했던 당원들은 말해 무엇 하랴.

 

▲ 당내 명망가들과 유명정치인들이 떠난 2011년 11월 당시 진보신당에서 열린 '당원 힐링캠프' (사진: 진보신당)

▲ 당내 명망가들과 유명정치인들이 떠난 2011년 11월 당시 진보신당에서 열린 ‘당원 힐링캠프’ (사진: 진보신당)

 

성실한 활동가일수록 그 내면은 매우 위태로운 상태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비유컨대 “생활세계의 식민화”가 오랫동안 진행된 상태이기 때문이다. 운동권들의 ‘멘탈’에 생긴 문제는 일상 속에서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튀어나온다. 문제가 불거졌을 때는 이미 그것을 수습하기 너무 늦은 때인 경우가 많다.

진보정당운동이란 것이 운동권들(그들의 배우자와 가족들까지 포함해)의 개인적 희생이나 열정 없이는 결코 유지될 수 없다는 것을 우리 모두는 잘 알고 있다. 하지만 그것을 당연시하거나 온전히 개인의 결단 문제로 돌려서는 점점 사람들이 지쳐서 떨어져나갈 뿐이다. 어떤 형태로든 당 핵심주체들을 다시 북돋울 수 있는 계기, 진보신당 버전의 ‘힐링 캠프’가 필요하다는 생각이다.

 

공격적·논쟁적 의제 제시

 

2012년 대선은 1987년의 동력이 완전히 고갈되었음을 선언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동력이 고갈되었다기보다 동력의 구심이 사라졌다는 의미다. “민주화세력 대 산업화세력” 내지 “민주주의 수호세력 대 수구꼴통 세력”이라는 딱지 붙이기, 정체성 게임으로는 더 이상 정권창출이 불가능해졌다는 게 명백해졌다. 사회적 적대의 지형이 바뀐 지 오래되었는데 여전히 1987년 식의 적대구도에 연연하다보니 번번이 큰 싸움에서 패배한다.

2007년 대선은 신자유주의의 정점에서 치러진 선거였고, 2012년 대선은 이른바 ‘신자유주의 이후’의 대선이었다. 극우보수 진영에서는 그들 나름대로의 ‘맞춤형 담론’으로 공세적으로 대응했다. 경제민주화론도 그 연장선이다. 그러나 민주당을 중심으로 한 범진보세력은 자신들의 의제를 적극적으로 제시하기보다는 상대편이 제시한 의제가 거짓말 또는 위선임을 보여주는데 더 열중하는 것처럼 보였다. 결과는 다들 아는 대로다.

 

▲ 안철수 현상은 새누리당과 민주당이라는 두 정치세력에 대한 염증과 피로감이 만들어낸 바람이기도 하다. 지난 4.24 재보궐 선거 당시 안철수 후보 선거운동원들의 모습. (사진: 이상엽)

▲ 안철수 현상은 새누리당과 민주당이라는 두 정치세력에 대한 염증과 피로감이 만들어낸 바람이기도 하다. 지난 4.24 재보궐 선거 당시 안철수 후보 선거운동원들의 모습. (사진: 이상엽)

 

안철수 현상은 김영삼 정권 이후 20년 가까이 진행된 가혹한 신자유주의 개혁의 반작용이다. 새누리당과 민주당이라는 두 정치세력에 대한 염증과 피로감이 만들어낸 바람이기도 하다. 그가 초기의 파괴력이 줄어든 상태로 국회에 입성함으로써 안철수 현상 역시 제2기에 들어섰다고 말할 수 있다. 향후 안철수를 중심으로 야권세력의 재편이 일어날 가능성도 있지만 그 재편을 통해 벌어질 사태를 지금 예측하는 것은 정확성을 떠나 큰 의미가 없어 보인다. 그 복잡다단한 경우의 수를 꼽아보는 것보다 훨씬 시급한 일은 진보좌파정치의 전열의 정비하는 것일 테다.

불안정노동, 생태주의, 여성주의, 지역정치 등 향후 집중해야할 영역에 대한 대강의 공감은 있는 상황이다. 문제는 지금 할 수 있는 일과 지금 당장은 할 수 없는 일의 순서를 냉정하게 직시하는 것이다. 소위 ‘TO DO LIST’를 짜야 한다. 물론 주요 부문에서 꾸준히 현장에서 시민들과 스킨십을 나누며 정치기반을 다져나가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만 담론투쟁의 영역에서는 선택과 집중을 통해 공격적이고 논쟁적인 의제를 끊임없이 던져야 한다. 그리고 그 의제들을 일종의 브랜드로 만들어야 한다.

 

두 마리 토끼: 테라피와 솔루션

 

‘박근혜 시대’를 박정희 시대로의 단순한 회귀로 파악해서는 곤란하다. 실제로 권위주의 시대와 유사한 분위기가 조성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이 우파 정권은 대중이 요구하는 것이 ‘복지’와 ‘안전’이라는 것을 명확히 깨닫고 있다.

“증세 없는 복지”“맞춤형 복지” 같은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어쨌든 복지예산을 확보하려 애를 쓰고 있다(물론 증세 없이 지하경제 양성화 등으로 애초 계획한 수준의 돈을 마련하긴 거의 불가능해 보이지만). 이미 출범초기부터 조짐을 보였지만 시간이 갈수록 박근혜 정부의 복지공약은 질적으로 후퇴할 것이다. 하지만 복지지출 자체를 대거 삭감할 가능성은 낮아 보인다.

 

▲시간이 갈수록 박근혜 정부의 복지공약은 질적으로 후퇴할 것이다. 치안국가화의 움직임도 갈수록 또렷해진다. 지난 4.24 재보궐선거 당시 새누리당의 선거유세 모습. (사진: 이상엽)

▲시간이 갈수록 박근혜 정부의 복지공약은 질적으로 후퇴할 것이다. 치안국가화의 움직임도 갈수록 또렷해진다. 지난 4.24 재보궐선거 당시 새누리당의 선거유세 모습. (사진: 이상엽)

 

치안국가화의 움직임도 갈수록 또렷해진다. “북풍” 같은 공안논리는 여전히 작동하고 있지만 과거와 같은 파괴력을 보여주진 못하는 반면, 일상 속 개인의 불안을 공략하는 치안의 논리는 갈수록 막강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 행정안전부가 안정행정부로 이름을 바꾼 상징적인 사건도 있었고, 실제로 정권 출범하자마자 각종 강력범죄의 형량이 눈에 띄게 올라갔다.

불황기의 대중은 사회문화적으로 보수화되거나 방어적 태도를 보인다는 속설이 있다.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에 대한 지지율은 정권 내내 바닥을 맴돌 가능성이 높지만 그것을 어느 정도라도 만화하기 위해서라도 엄벌주의를 강화하는 등 치안 이슈에 더욱 신경을 쓸 것이다.

한국의 진보좌파는 제도권에서 정당 활동을 하는 이상, 좋든 싫든 ‘백화점식 정당’이 될 수밖에 없다. 중간계급이 선호하는 이슈에도 대응해야 하고 프리캐리아트, 빈곤층의 문제에도 나서야 한다. 앞서 언급한 ‘복지’와 ‘안전’이라는 키워드에도 나름의 설득력 있는 대답이 준비되어 있어야 한다. 분명한 것은 기존의 진보·개혁세력이 내세우는 의제들과 언어들을 관성적으로 답습하는 한 진보정치의 입지는 더욱 좁아질 수밖에 없다는 점이다.

진보신당은 ‘테라피’와 ‘솔루션’을 동시에 추구해야 한다. 테라피는 글자 그대로 상처를 위로하고 치유하는 일이다. 사회적 모순에서 비롯된 개개인들의 상처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왜 사회의 문제인지를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같이 아픔을 나누는 일을 의미한다. 공감의 정치 없이 진보의 정치도, 좌파의 정치도 없다. 지금까지 진보정당에 가장 부족했던 것이 바로 이런 (레이코프 식으로 말하자면) “엄마 정당”으로서의 모습이었다. 당 내부에서부터 이런 모습을 추구해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솔루션’은 사회가 나아가야할 목표를 설정하고 그 목표에 도달할 방식을 개발하는 작업이다. 지금까지 해왔던 일이지만 앞으로도 가장 중심에 놓아야하는 진보정당의 본령이다. 두 마리 토끼를 동시에 잡지 않으면 미래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