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약1_오오극장

오오극장에 판타지는 없다

[2016.12 제26호 화요일의 약속]

오오극장에 판타지는 없다

한상훈 대구 민예총 사무처장

 

사진·글|현린 편집위원, 문화예술위원장

 

 

 

대구에 하나밖에 없다는 독립영화전용관 ‘오오극장’에서 나는 영화 대신 한 남자를 보았다. 그리고 가깝게는 그 날의 오오극장에 관하여, 멀게는 백 년 전 대구역에 관하여 세 시간 남짓 이야기를 나눴다. 그의 말대로라면 우리는 같은 공간에 살면서도 각자 다른 시간을 산다. 누군가는 타임라인을 따라 숨 가쁘게 달리고 있지만, 또 누군가는 백 년 전 어느 시간에 머물러 있다. 그 때문일 것이다. 어느 누구도 상대를 배신하지 않았는데 우리 모두가 서로에게 배신당했다고 느끼는 이유는. 실제로 우리를 배신한 것은 앞에 있는 그 상대가 아니라 자신의 속도가 만들어 낸 상대에 대한 ‘판타지’였을 뿐인데도 우리는 자신의 속도를 높이려고도 낮추려고도 하지 않고 다만 상대에게 배신자라는 딱지를 붙이기 바쁘다. 그를 만나고 돌아오는 고속열차 안에서 깜깜한 창밖을 내다보며 생각했다. 아무도 속도를 높이거나 낮추려고 하지 않을 때 서로를 다시 만나게 하는 방법은 무엇일까? 문득 떠오른 한 음절 단어에 나는 웃었다.

 

예술대학이 가장 많은 도시, 대구

 

미래에서 온 편지(이하 미) : 여기 오오극장이라는 곳은 언제 만들었나?

한상훈(이하 한) : 독립영화가 많이 만들어지고 있는데 대구에는 그 영화들을 보여줄 공간이 없었다. 서울에는 세 개 정도 있지만 서울 외 지역은 여기가 처음이다. 대구에서 가장 빨리 만들 수 있었던 이유는, 다른 지역은 지원을 받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하고 지원을 바라고 있었지만, 대구는 절대로 (지원이) 나오지 않을 것이라 생각해서 그냥 우리가 직접 만들었기 때문이다. 대구경북독립영화협회, 미디어핀다, 대구 민예총, 세 군데가 설립추진단체가 되어 영화관 의자 한 석을 50만 원씩에 팔고, 1만 원, 2만 원씩 후원금을 모았다.

큰 극장들이 판타지나 스펙터클을 보여준다면, 오오극장은 자기 이야기를 보여준다. 김성근 감독이 나오는 《파울볼》(2014) 같은 영화는 야구부에서 많이 보러 오고, 호스피스에 관한 영화를 상영하면 호스피스 할머니들이 30년 만에 영화를 보러 오는 식이다. 그래서 내년에는 보잘것없는 영화라도 자기 이야기를 할 수 있는 영화를 더 많이 상영할 계획이다. ‘내 인생의 영화’라는 타이틀로, 구두닦이 아저씨가 좋아했던 영화가 있으면 그 아저씨를 초대해서 토크쇼를 하고 상영을 하고 싶다.

 

화약2_오오극장 내부

오오극장 내부

 

미 : 대구는 인디문화도 활성화되었고, 문화적으로 풍요로워 보인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한 : 대구는 일제가 병참기지로 쓰기 위해 만든 계획도시였고, 부자들이 많았다. 대구가 한국 사진의 중심도시인 이유도 그 때문이다. 사진이 무척 비싼 예술 아닌가. 사진기가 집 한 채 값이었는데, 그런 사진기를 가진 사람이 많았다. 현대미술작품도 많이 거래될 만큼 경제적으로 풍요로웠고, 이를 기반으로 한국 현대미술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했다. 계명대부터 시작해서 예술 관련 대학들도 많다. 서울을 제외하고는 예술대학이 가장 많은 도시가 대구일 것이다.

사상적으로도 자유로운 지대였다. 한국전쟁 당시에도 다른 지역은 점령군에 따라 좌우로 왔다 갔다 하면서 학살도 벌어지고 했지만, 인민군이 대구까지 내려오지 않았기 때문에 이곳은 자유로울 수 있었다. 밖에서 보면 대구가 보수도시라고 생각하지만, 대구에서 진보단체들이 집회한다고 탄압하거나 하지 않는다.

민예총 전신으로 ‘예술마당 솔’이라는 단체가 있었는데, 대중강좌와 문화재 탐방 같은, 당시로서는 진보적이면서도 대중적인 사업을 워낙 잘 했다. 유홍준 선생의 《나의 문화 유산답사기》도 그 결과물이었다. 요즘 구도심 살리기, 골목투어 많이 하지 않나? 그걸 제일 먼저 했던 곳도 대구다. 거리문화시민연대의 권상구씨라고, 우리가 봤을 때 심각한 오타쿠인데, 이 양반이 20년 동안 골방에서 일본서적, 미국서적 들춰가며 대구근대사 연구를 했다. 그 양반이 하면서 이슈가 되고 전국으로 퍼져 나갔다.

 

이 삶 안에서, 이 시장 안에서 대안을 만드는 일이 중요하다

 

미 : 민예총에서는 언제, 어떻게 활동을 시작하게 되었는가?

한 : 민예총에는 2003~2004년 즈음에 들어왔다. 처음에는 민예총 소식지 내는 거 도와달라고 해서 편집간사로 들어왔다. 민예총 하기 전에 유시민 씨가 했던 개혁국민정당의 대구 실무자로 일했다. 대구지하철참사 대책위에서 활동했고 단병호, 심상정 씨가 의회로 진출한 선거에서는 민주노동당 선거운동을 했다. 그 후 대구 민예총 사무처장으로 일하기 시작했다. 한 10년은 된 거 같다.

미 : 학교 다닐 때부터 정치에 관심이 많았나?

한 : 대학 들어가기 전부터 정치에 관심이 많았다. 형 영향이 컸다. 형이 91학번인데 학생운동을 했다. 하지만 정작 대학 가서는 운동을 안 했다. 총장퇴진운동이 일어났는데, 선배들이 수업 거부하고 집회 나가라고 했다. 왜 나가야 하는지 설명을 요구했더니 화를 내고 욕을 하더라. 그 선배의 태도가 자기가 싸우겠다는 사람들의 그것과 너무 같다고 생각했다. 기본이 안 되어 있다고 생각해서 안 따라 나갔다. 그 뒤 내가 영화동아리 회장을 할 때 자신들이 인권영화제를 하겠다고 해서 프로그램 만들고 상영까지 해줬는데, 약속했던 비용을 떼먹더라. 당시 교내 운동권들은 문제가 있었고, 같이 어울리기 싫었다.

미 : 예총이 대학에서 예술을 전공했던 사람들 위주였다면, 민예총은 동아리 활동을 했던 사람들 위주였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때문에 민예총이 진보적 문화예술 활동을 많이 할 수 있었고. 그런데 지금은 예총과 구별이 안 될 정도로 민예총이 보수화되었다는 평가도 있다.

한 : 예총 입장에서 봤을 때 민예총은 아마추어였다. 하지만 예총에 기술자들이 많았다면, 민예총에는 기획자들이 많았다. 그래서 예총 행사 기획을 민예총에 맡기기도 했었다. 보수화 문제는, 민예총이 30년 됐다. 어떤 조직이든 30년 동안 한 조직을 유지한다는 것 자체가 보수 아닌가? 그리고 민예총의 ‘민족예술’ 주창한 사람이 김지하였다. 그걸 주창한 사람이 맛이 갔는데 이 단체가 맛이 안 가는 게 이상하지 않나?(웃음) 대구 민예총도 94년에 생겨서 20년 정도 됐다. 바꿔야 할 것이 많다.
저항예술제를 제안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였다. 민예총에서 민족예술제라는 축제를 매년 했는데, 자기위안용의 초라한 축제였다. 민예총 멤버들이 올드해졌으면, 본인들이 끼지는 않더라도 젊은 예술가들의 저항성을 보여줄 수 있는 판을 깔아주고 그걸 확장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했다.

 

화약3_저항예술제

2015년 8월에 열린 제1회 저항예술제

 

미 : 저항예술제가 과연 저항적이었는가라는 비판도 있었다. 특히 박근혜 패러디에 관해서는 과연 패러디인지 단순한 모방이었는지 알 수 없다는 지적이 있었다.

한 : 그런 평가가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대구에서 비슷한 행사를 했었는데, 실패해도 괜찮다는 개념으로 진행했다. 예술가들을 보면, 관객들 적게 와서 지원금 못 받으면 어쩌나, 이런 거 해보고 싶은데 망하면 어쩌나 걱정이 많다. 그런 걱정에서 벗어나서 자유롭게 실험하고, 그 안에서 서로 통하는 동류들을 만나 교류할 수 있는 장을 만들고 싶었다.

사실 민중미술이라는 게 중간에 길을 잃었다. 민중미술이 과거에는 사회주의 혁명 전선을 위해 복무한다고 생각했는데, 지금 민중미술가의 삶은 그렇지 않다. 그렇다면 이 삶 안에서, 이 시장 안에서 대안을 만드는 게 중요하다. 아직까지 혁명을 꿈꾸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렇더라도 과정으로서 운동을 고민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과거에 판화가들은 자기 판화에 에디션 번호를 매기지 않았다. 그걸로 돈을 버는 게 아니라 운동을 하는 거였고, (자신의 판화를) 저잣거리에 사람들이 걸길 바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은 번호를 매긴다. 팔아야 하니까. 신학철 선생님이 그린, 재벌 목 따는 그림 같은 걸 삼성이 1억 씩 주고 사 간다. 민중미술 화풍 안에서 제일 중요한 사람이니까, 나중에 10억 되고 100억 될 수 있기 때문이다. 민중미술 하던 선생님들도 시장에 다 편입됐단 얘기다.

이미 큰 싸움에는 졌다. 그 이후에 무엇을 할지가 문제다. 판화라는 게 많이 전파하기 위해서 선택한 매체였다는 점을 생각하면, 요즘의 카드뉴스가 민중미술에 더 가깝다고 생각한다. 조금 리버럴하지만 이철수 선생님 작업이 재미있는 게, 민중미술 화가 중에 유일하게 팬시샵에 작품을 전시한다. 그 안에 옅게나마 메시지들이 들어있다. 나머지 민중미술 화가들의 그림은 거의 다 소위 시민사회 내지 노동계 안에서만 유통된다. 이철수 선생님은 화랑을 거치지 않고 자신이 직접 판다.

예전에 이철수 선생님 전시를 준비하다가 꾸중을 들었다. 전시장에 큰 방과 작은 방이 있었는데, 비용을 아낀다고 작은 방에 에어컨을 안 틀었다. 그랬더니 그러시더라. “운동한다는 생각만 하지 말고 서비스업 한다는 생각도 가져라. 다른 사람은 서비스를 받으러 오는데 너는 운동하고 있잖아.” 전시장에 오는 사람들 대부분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그런 사람들을 문화예술운동에 젖어들게 하기 위해서 어떤 과정이 있어야 하는지 고민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예술’ 자체가 진보적인 활동 … 넓게 만드는 일도, 깊이 파는 일도 하면 된다

 

미 : 과거에는 문화재 탐방이라든가 도시탐방 같은 것을 진보적 활동이라고 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지금은 지역마다 지자체나 지역의 문화재단의 지원 아래, 많은 경우 경제적 득실 계산 아래 이런 활동들이 진행된다. 이런 상황에서는 지역의 문화예술사업도 정치적 입장을 보다 선명히 할 필요가 있지 않을까?

한 : 깊이와 넓이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번 전태일문화제의 경우, 선배들이 자문을 부탁했을 때 처음에는 하지 말자고 했다. 저쪽에서 이승복 내세우는 것처럼 이쪽에서 전태일을 내세우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대신에 더 대중적인 사업을 제안했다. 대구의 대표인물이라고 하면 이병철, 박근혜, 전두환, 노태우 같은 슈퍼히어로 권력자와 재벌 아닌가? 그래서 보통사람의 영웅으로서 전태일을 내세울 수 있겠다 싶었다. 운동권의 언어 ‘전태일 열사’ 이런 말보다는, 48년생이니까 ‘1948년 대구생 전태일’이라고 하고 48년생 대구사람들을 찾아서 그 시절의 이야기, 전태일의 이야기를 같이 하는 것이다.

 

대구 오오극장 갤러리에서 열린 전태일 시전

대구 오오극장 갤러리에서 열린 전태일 시전 <울타리 밖의 전태일>

 

전태일을 가지고 지금의 노동현실에 관해 토론하는 일은 다른 사람이 하면 된다. 그런데 깊어져야 한다면서 넓어지면 안 된다고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 넓게 만드는 일도 하고 깊이 파는 일도 하면 된다. 골목투어도 지금 많이 넓어진 건데, 깊어지는 것도 만들면 된다. 하지만 저건 안 된다고 할 필요는 없다. 골목투어는 민중생활사적인 역사를 배우는 과정이다. 위인전기보다 훨씬 낫다. 이게 뾰족하게 보이지 않는다면 뾰족하게 보이는 사업을 하면 된다.

미 : 그런 뾰족한 사업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결국 당원들이 아닐까?

한 : 지금 노동당은 너무 슬로건중심 사업밖에 못 하고 있다. 권상구 같은 인물이 왜 중요하냐면, 그가 엄청난 성과를 내고 있는 데다 그 성과를 우파도 활용할 수 있고 좌파도 활용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노동당은 그 성과를 낳지는 못하고 활용만 하고 있다. 섹시한 슬로건들은 뽑아내지만 그것들이 빨리 휘발된다는 느낌이다. 지역에서 뿌리내리고 일하려면 어떤 한 영역에서 오랫동안 우물을 파듯이 깊게 파야 하는데, (노동당이 하는 사업은) 지금 우물을 파는 중인데 물을 바로 길어 가는 것과 같다. 골목투어도 ‘전태일 투어’라고 쉽게 이름 붙이고 할 수 있는 게 아니고, 그 메커니즘을 꾸준히 연구해야 한다. 대개 품이 많이 들어가고 전문적인 영역이다. 그런 일들을 노동당이 붙어서 할 수 있을까? 지금까지 하는 걸 봐서는 그러지 못할 것 같다.

미 : 민예총에서 활동하면서 정치적 노선으로 고민한 적은 없었나?

한 : 민예총의 정치적인 스펙트럼은 무척 넓다. 새누리당에 가까운 사람부터 사회당보다 더 좌파인 사람까지 다 있다. 그래서 한때는 우리가 전선조직으로서 정치적 정체성을 명확히 해야 하는 게 아닌가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런데 그 문제를 가지고 논쟁을 하면 큰 조직이 될 수 없겠더라. 예술인 네트워크로서, 적어도 새누리당은 아니라는 최소한의 지향 정도만 지키기로 했다. 한편으로는 ‘예술’ 자체가 진보적인 활동이라고 생각한다. 이미 그런 활동을 하는데, 당 색깔이나 이름을 드러내야만 할까 의문이다. 그렇게 하지 않아도 지역에서는 서로의 성향을 잘 안다.

그리고 별로 의미 없다고 생각되는 예술가들도 같이 계속 몸으로 부대끼면 바뀐다. 세월호 사안의 경우 그런 성향이 아닌데도 합류한 예술가들이 있었는데, 부대끼면서 신뢰를 쌓으니까 우리 쪽으로 들어오더라. 예술가라는 사람들이 자기 현실을 보면 결국 좌파가 될 수밖에 없다. 그런 사람들은 일반적이지 않고 돈을 많이 못 번다. 정부정책 자체가 불합리하다고 생각한다는 점에서 동질감도 느낀다. 그렇기 때문에 관계 맺기를 잘만 하면, 얼마든지 우리와 좋은 네트워크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한다. 부동산업자하고 뭘 하자고 하면 힘들다. 하지만 예술가하고는 그렇지 않다.

 

창작활동을 마음 놓고 할 수 있어야 ‘자립’이다

 

미 : 요즘 예술가들에 대한 중앙정부나 지방정부의 지원을 두고 말이 많다. 얼마 되지도 않는 지원금을 가지고 예술가들을 검열하고 통제한다는 비판도 있고, 지자체나 문화재단 좋은 일 하는 데 예술가들이 동원된다는 지적도 있다. 급기야 지원금을 거부하고 자립을 모색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한 : 자립은 판타지라고 생각한다. 진짜 능력 있는 1퍼센트는 자립이 가능하겠으나 나머지는 힘들다. 보통 자립하고 지원금 받지 말자는 분들은 이미 혼자 선 분들인데, 그 분들도 혼자 서기까지의 과정이 있었다. 지금 자립하지 못하고 겸업을 하는 예술가들이 지원금을 받지 않으면 아마 예술 비중을 줄이고 다른 일을 더 할 것이다. 그게 자립인가? 자기 인생에서 자립은 될 수 있겠으나 예술가로서의 자립은 아니다.

진짜 자립이란 정책적인 지원까지 포함한 것이라 생각한다. 관공서에서 돈을 안 받는다고 해서 자립이 아니다. 예술가들의 자립은 경제적으로 여유롭게 산다는 뜻이 아니라, 자기 창작활동을 마음 놓고 할 수 있는 때를 말한다. 그 환경을 만들어 주는 것은 예술행정가, 예술단체, 예술정책전문가들의 몫이다. 오오극장 만든 것도 악으로 깡으로 한 거다. 그런데 올해 50만 원 씩 낸 사람이 한 60명 되는데, 그 사람들한테 다음에 또 50만 원 내라고 할 수 있겠는가? 한계가 있다. 그 우물이라는 게 마를까봐 늘 걱정이다.

지금은 예술가를 지원하라고 나온 돈이 누구에게 가야 하는지, 제대로 갈 수 있게 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목소리를 내는 일이 중요하다. 지원금을 받지 않는 게 대안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지원을 받되 간섭은 받지 않는 체계를 만드는 게 중요하다. 권력의 들러리가 아니라 제대로 예술가를 지원할 수 있는 방식들, 예술가들이 이들의 눈치를 보지 않고 그 돈을 떳떳하게 받아 쓸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제일 좋은 방법은 거리공연을 하더라도 예술가에게 수당을 지급하는 것이다. 하지만 보편적 복지가 안 되는 현재 상황에서는 문화재단을 변화시켜야 한다. 예술가들이 시로부터 직접 지원 받을 때는, 아니꼽긴 했지만 절차가 간소했다. 지금은 시가 재단에 지원사업을 외주로 주고는 감사를 하니까 재단이 자율적으로 할 수 있는 일이 없다. 대구문화재단이 전국문화재단 평가 1위다. 서류를 너무 잘 만들어서 그렇다. 그런데 그럴수록 예술가는 힘들다. 재단에 민간 인력들이 더 들어가서 재단을 독립적으로 활동할 수 있도록 이끌어야 한다.

미 : 마지막으로, 앞으로 계획하고 있는 활동이 있다면 들려 달라.

한 : 대구에 필요한 단체는 민예총보다도 문화연대 같은 문화예술 관련 정책그룹이라고 생각한다. 민예총에는 생활예술에 대해 전국적인 노선이나 예술교육에 대한 전국적인 노선, 현장예술에 대한 전국적인 노선이 없다. 마을공동체 사업을 한다고 할 때 필요한 ABC를 개발해서 공유해야 한다. 지금은 실제 필요한 일을 못 하고 대선 어떻게 할 거냐, 박근혜 정부 어떻게 할 거냐, 세월호 연장전 어떻게 할 거냐 고민한다. 이런 일을 하는 것도 맞다. 하지만 기본적으로 일상적 탄탄함이 있어야 하는데 그걸 너무 간과하고 있다. 민예총은 이런 걸 하기에 너무 바쁘다. 집중적으로 할 수 있는 별도의 기관이 필요하다.

예술가의 네트워크로 민예총이 아닌 다른 형식을 고민하고 있기도 하다. ‘민족예술’이라고 얘기하기도 힘들고 편견들도 있어서 민예총에 가입하라고 하기 힘들다. 그리고 민예총이 국가에서 원하는 사단법인 체제 하에 있다. 이사장이 있고, 이사가 있고, 피라미드 조직으로 국가가 통솔하기 좋은 형태이다. 예술가하고는 안 맞는다. 예총하고 똑같은 형태로 예총 대응조직을 만들었는데, 하는 일마저 예총 같으면 안 된다. 예술가들이 더 자유롭게 작업할 수 있는 네트워크 조직을 고민 중이다.

키워드로 보는 2015년

[2015.12 제26호 기획]

키워드로 보는 2015년

 

 

늘 그렇듯 다사다난한 한 해였습니다. 얼마 남지 않은 한 해를 마무리하며, <미래에서 온 편지>가 몇 가지 키워드를 통해 지난 2015년을 돌아보았습니다. 가장 마지막에 자리한 ‘장기투쟁’에 대한 기사를 보며 의아해 하는 분들도 계시리라 생각합니다. 콜트콜텍이, 고공농성이, 밀양이, 강정이 어디 2015년만의 얘기인가요. 그래서 우리는 더욱 이곳의 이야기를 해야만 했습니다. 2015년 이전부터 있어왔고, 어쩌면 2015년 이후에도 사라지지 않을 ‘오늘’의 이야기입니다.

‘메르스’부터 ‘난민’에 이르기까지, 정치·사회·문화 전반에 걸쳐 한 해를 돌아보는 <기획> 기사 전체를 다 보면 ‘헬조선’의 ‘기운’이 느껴집니다만, 곧 다가올 2016년에는 “온 우주가 도움”으로 “혼이 정상”인 한국 사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그래서 2016년 12월에는 ‘장기투쟁’이랑 키워드가 사라진 기획 기사를 낼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시리자의 재집권(?)

[2015.11 제25호 먼 좌파 이웃 좌파]

시리자의 재집권(?)

 

안효상|편집위원

 

 

 

브레히트가 《갈릴레오의 생애》에서 쓴 “이성의 승리는 이성적 사람들의 승리이다”라는 말은 직설법 문장임에도 현실의 무자비한 힘을 고려할 때 두 가지 점에서 재검토되어야 한다. 과연 이성이 승리하는가? 그리고 이성적인 사람들은 누구인가?

 

환상으로 부서진 이성

 

올해 초 그리스 총선에서 시리자가 승리했을 때 그 기쁨을 떠받친 것은 ‘반긴축’이라는 분명한 대안이었다. 이는 당연하게도 2010년부터 시작된 구제금융이 낳은 반민중적 효과를 교정하려는 급진좌파의 ‘이성적인 결론’이었고, 이에 대중이 호응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시리자는 이성적인 사람들로 등장했다. 그 이후 이 이성적인 사람들은 유로그룹과의 협상에서도 이성적인 태도로 임했다. 이들은 유로존에서 나가지 않으면서도 긴축기조를 제거함으로써 그리스 민중의 삶을 돌려놓으려 했다.

하지만 후일 바루파키스 전 재무장관 등이 밝힌 바에 따르면 이 협상 과정은 전혀 이성적이지 않았다. 그리스에 가혹한 구제금융 조건을 강요할 경우 민중의 삶은 완전히 파탄날 것이라는 인도주의적 호소, 또한 이를 막기 위해 불가피하게 그렉시트를 할 경우에는 유로존 자체가 위기가 빠질 것이라는 이성적인 예측에 기초한 설득 모두가 채권자들의 이해관계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났고, 결국 시리자는 굴복했다.

물론 그리스 민중의 지지를 받아 권력의 자리에 오른 시리자가 그냥 굴복할 수는 없었다. 부채탕감은 없이 더 많은 긴축만이 있을 뿐인 채권자들의 요구를 받아들일지 말지를 두고 치프라스 총리는 국민투표라는 수단을 동원했다. 이때 그리스 민중은 다시 한 번 이성적인 선택을 했다. 제3차 구제금융 협상안에 반대하는 것은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나간다는 뜻이며, 더 나아가 유럽연합에서 탈퇴한다는 의미라는 유럽과 그리스 내 우파언론의 집중포화에도 불구하고 투표자의 61퍼센트가 반대(OXI)를 선택했고, 그럼으로써 이들은 인간의 존엄한 삶을 지키겠다고 뜻을 모았다. 이렇게 1월 25일은 7월 5일로 이어졌다.

사진1: 그리스 구제금융 국민투표를 앞두고 거리에 나란히 붙은 구제금융 협상안 찬성(NAI) / 반대(OXI) 홍보포스터

사진2: 7월 5일 시행한 구제금융 국민투표 결과. 전체 투표율 62.5퍼센트 중 투표자의 61퍼센트가 구제금융 협상안 반대에, 39퍼센트가 찬성에 투표했다.

그런데 치프라스 총리는 이런 국민투표를 한낱 에피소드로 만드는 데 한시도 주저하지 않았다. 제3차 구제금융 협상안을 받아들임으로써 이미 채권단에 굴복했던 치프라스는 국민투표의 결과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이 이성적인 사람인 체 했다. 유로존에서 나가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며, 협상안을 받아들이는 것 이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는 것이 그의 이성이었다.

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그가 이런 태도를 취한 이유가 (좌파) 유럽주의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빚을 갚기 위해서라도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탈퇴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적절한 방법이다. 사실 유로존이 출범할 때부터, 서로 다른 경제적 힘이 있는 나라들을 하나의 공통 통화로 묶을 경우 개별국가가 경제적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적절한 통화정책을 취할 수 없다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여기에 더해, 특히 독일의 요구로 엄격한 재정정책까지 요구되었기 때문에 개별국가는 경제운영과 관련해서 사실상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리스는 이런 유로존의 문제점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 곳일 뿐이다.

물론 유럽연합으로 표현된 유럽통합은 전쟁을 억지하고 공동의 번영을 가져오겠다는 이상으로 추동되었다. 20세기 전반에 민족들 간의 경쟁에 따른 두 차례의 참혹한 전쟁을 겪은 유럽으로서는 어쩌면 다른 선택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날의 유럽연합과 유로존은 주로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구현하는 제도로서 기능하고 있으며, 그 때문에 전쟁 억지와 공동 번영이 아니라 도리어 국내외의 갈등을 부추기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적극적인 의미에서의 그렉시트, 즉 개별국가가 경제와 통화 발행에 대한 주권을 회복하는 것이 겉보기에는 후퇴처럼 보이지만 지금의 난제를 해결하는 우회로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이다.

이렇게 또 다른 이성이 있었고, 이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은 수는 아니지만 치프라스의 노선에 반대하여 시리자를 나갔다. 이로 인해 시리자-그리스독립당 연립정권은 재구성되어야 했고, 8월 20일 치프라스 총리가 사임하면서 조기 총선이 열리게 되었다.

 

환상 속의 이성

 

유로존을 탈퇴하겠다는 실질적인 계획이 없이는 구제금융을 둘러싼 협상조차 제대로 하기 어려운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치프라스나 시리자 정부 내 유럽주의 온건파가 그런 상황이었고, 그 결과는 앞서도 말했듯이 굴복이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드러나지 않았거나 조심스럽게만 말해졌지만, 그런 계획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것이 시리자 내 좌파그룹인 ‘좌파 플랫폼’의 코스타스 라파비차스의 계획안이었다. 올봄에 라파비차스는 독일의 동료 경제학자인 하이너 플라스벡과 함께 <그리스를 위한 사회적·민족적 구조 프로그램>을 작성했다. 이 프로그램은 유럽통화동맹 내에서는 부채탕감, 긴축제거, 회원국 자격 유지 세 가지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을 기본 전제로 한다. 이른바 “불가능한 3요소”이다. 따라서 민중의 삶을 우선시하는 급진적인 정부라면 앞의 두 가지, 즉 부채탕감과 긴축제거를 선택해야 한다고 이 프로그램은 권고한다.

 

사진3: 코스타스 라파비차스 (Costas Lapavitsas)

 

이에 따라 통합된 방책들로는 “부채를 탕감하고, 균형예산을 거부하며, 은행을 국유화하고, 조세개혁을 통해 소득과 부를 재분배하고, 최저임금을 인상하며, 노동관계 법률을 회복하고, 공공투자를 늘리며, 사적영역과 공적영역의 관계를 재규정하는 것”을 든다. 또한 이러한 방책들은 유로존이라는 엄격한 틀 내에서는 채택할 수 없는 것이므로 국가통화를 재도입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유럽통화동맹에서 나오는 과정을 29단계로 나누어 설명한다.

그런데 당시에 이 프로그램은 공적토론이라는 연옥에조차 끼어들 수 없었다. 저마다 이유는 다르지만 좌우를 막론하고 그리스 정치계급 모두가 통화동맹에서 나간다는 것을 꿈조차 꾸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치프라스 등 시리자 주류가 이성이라는 무기로 채권단을 설득하려 했기 때문이고, 아직 그리스 국민 다수가 이에 희망을 걸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6월말에 구제금융 협상안이 나왔을 때 환상은 깨졌고, ‘반대’라는 이성이 공적인 자리를 차지했다. 하지만 치프라스는 이를 다시 자신의 환상적인 이성으로 바꿔치기했다. 그리고 여기에 저항하는 또 다른 이성적인 사람들은 8월에 ‘민중연합’을 구성했다.

민중연합은 시리자 내 좌파 플랫폼 출신 사람들을 중심으로 해서 치프라스의 ‘투항’에 반발하는 사람들이 만든 정치연합이었다. 이들이 모인 구심점은 원래 시리자가 했던 약속, 즉 긴축정책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앞서 라파비차스의 프로그램에서 제시된 유로존 탈퇴 및 경제적 주권 회복이다.

앞서 말한 “불가능한 3요소”를 고려하면 이성적인 선택이고, 적절한 대안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9월 20일 조기 총선의 결과는 또 다른 이성의 시간이 도래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이성과 환상의 교착

 

9월 20일에 있었던 선거 결과, 시리자는 35.5퍼센트를 득표해서 전체 300석 가운데 145석을 획득했다. 지난 번 정부에서 연정을 한 그리스독립당은 3.7퍼센트 득표로 10석을 얻었다. 두 당은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연정을 구성했다.

하지만 이런 선거 결과만큼이나 눈에 띄는 것은 56.6퍼센트에 머무른 투표율이다. 이는 1974년 민주화 이래 가장 낮은 투표율이며, 지난 1월 총선의 63.6퍼센트와도 비교되는 수치이다. 이는 국민투표 결과가 손쉽게 뒤집히는 것을 눈앞에서 본 대중이 정치에 무관심해지는 탈정치화 혹은 비정치화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신민당, 사회당, 공산당 등의 기존 정당은 비슷한 결과를 얻었지만, 새로이 반긴축을 내건 민중연합은 2.9퍼센트를 얻어 의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는 절대적 시간 부족이라는 상황적 요인과 이른바 ‘플랜 B’를 분명하게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민중연합의 일부는 앞서 살펴본 프로그램을 분명하게 자기주장으로 삼고는 있지만 이를 대중적인 의제로 아직 구성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투표에 나선 그리스 국민은 최선은 물론 아니고 차선도 아닌 차악을 선택했다고 할 수 있다. 이때 기준은 누가 분명한 대안을 제시하느냐가 아니고 그저 현 상황을 누가 더 잘 관리할 수 있는가이다. 이렇게 시리자는 재집권했다. 이런 점에서 지금은 교착상태이다.

물론 시리자의 재집권을 정권의 연장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지난 1월 총선부터 8월말 치프라스가 사임할 때까지 시리자가 보여준 궤적은 글로벌 자본주의 시대이자 경제위기 시기의 ‘개혁주의’가 헤라클레스의 과제라는 것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개별국가가 기존의 위치를 지키면서 어느 정도의 경제적 주권을 발휘해서 민중의 존엄한 삶을 지키려는 시도는 글로벌 자본주의의 방파제에 부딪혀 산산이 부서질 운명이라는 것이다.

 

사진4: 9월 20일 조기총선에서 시리자가 승리함으로써 총리로 재신임을 받은 치프라스

 

그렇다고 간단하게 국제주의를 주장한다고 될 일은 아닌데, 왜냐하면 그 구체적인 계기를 포착하는 것이 중요하지 공허한 슬로건을 말한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현재 그리스의 상황을 보면 그런 계기가 아주 멀 것 같지는 않다. 지난 5년 동안 그리스는 긴축정책으로 인해 대다수의 소득이 격감했고, 그 결과 전체 3분의 1 이상이 빈곤선 아래에서 말 그대로 연명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시리자-그리스독립당 연립정부는 10월 16일에 구제금융의 조건이 되는 첫 번째 긴축안을 의회에서 통과시켰다. 아마 어려운 상황이 지속될 것이다.

물론 집권 시리자는 조세개혁과 부패척결로 상황을 돌파하려고 한다. 하지만 부패와 낮은 세금이 그리스 상층 엘리트가 그동안 이윤을 확보해온 일상적 방식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면 쉬운 과제가 아니다. 게다가 유로존 통합 이후 그리스에 투자한 유럽자본은 기존 체제에 끼어드는 방식으로 일을 벌였기 때문에 이런 개혁에 찬성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제3차 구제금융에 따른 긴축안이 효과를 발휘할 때 다시금 민중적 저항이 벌어질 수밖에 없을 테고, 여기에 누가 이성적인 대안을 제출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 물론 이때의 대안은 무조건적인 유럽주의를 버리는 데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럴 때 나머지 유럽의 좌파가 어떻게 호응할지는 또 다른 문제로 남을 것이다.

서울시 주민참여예산제 개선방안

[2015.11 제25호 정책포럼]

서울시 주민참여예산제 개선방안

 

김상철|서울시당 위원장

 

 
아래의 문서는 지난 4년 동안 서울시 참여예산지원협의회 위원으로 참여하면서, 매년 참여예산사업의 선정이 끝나고 차년도 제도개선안을 마련하기 위해 지원협의회 차원에서 제출하는 개선방안 의견서로 준비된 내용이다. 올해의 경우에는 대표집필을 김상철 서울시당 위원장이 하였기에, 그 내용을 《미래에서 온 편지》를 통해 소개한다. 서울시는 현재 해당 의견을 기초로 내년도 제도운영계획 개선방안을 마련 중이다. (2015. 10. 현재)

 

주민참여예산제에 대한 기대

 

○ 참여예산제는 단순히 법 개정에 따른 행정절차로만 볼 수 없는 특징이 있으며, 이에 따라 여타 참여제도보다 역동성과 갈등 가능성에 대해 개방적인 모습을 보일 필요가 있음

– 무엇보다 참여예산제에 함께하는 지원협의회 민간회원의 입장에서는 서울시의 참여예산제가 (1) 시민의 역량을 강화시키면서 (2) 시민과 행정이 함께 변화하는 계기를 마련하는 한편 (3) 기존의 하향식 예산편성 관행을 극복하는 재정민주주의의 상징적 모델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음

○ 따라서, 이번 논의가 참여예산제를 제대로 정립하고 새로운 행정 거버넌스, 참여민주주의와 시민주도형 도시정책을 모색하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으면 함

 

주민참여예산제 4년 간 추진경과

 

○ 천만에 가까운 인구 수, 연간 20조 원이 넘는 재정을 운영하는 서울시에서 도입된 유래 없는 광역도시형 참여예산제의 실험

– 250명의 시민이 직접 참여하고 500억 원에 달하는 사업예산을 직접 결정하는 유형은 사례가 없음에도 4년차의 정착기에 접어들었음
– 초기에는 기존 참여제도(구 참여예산, 주민자치회, 각종 위원회 등) 경험자의 비중이 높았으나 점차 청년층을 비롯하여 처음 참여행정을 경험하는 대상이 늘어나는 추세임

○ 매년 제도 개선을 위한 광범위한 논의와 이를 적극 반영하는 제도의 탄력성이 중요한 장점

– 2013년 분과위원장의 남녀동수제, 자체 윤리규정 마련, 2014년 온예산위원 과정의 제도화, 시민참여단운영, 2015년 구/시사업의 분리, 시민전자투표 실시 등

○ 자치구 참여예산제도의 촉진보다는 사업 선정을 둘러싼 갈등이 격화되고 참여예산제에 대한 전반적인 인식이 낮은 한계 역시 뚜렷하게 나타남

– 자치구별 위원선정 방식, 제안사업의 자치구 꼬리표에 따른 자치구 경쟁 격화와 담당부서를 제외한 기타 서울시 부서의 제도에 대한 참여와 지원이 저조

 

실태분석 및 문제점

 

○ 위원공모 및 예산학교

– 이제까지 참여예산위원은 7:1 정도의 경쟁률을 보일 정도로 높은 참여수준을 보이고 있으나, (1) 상대적으로 50대 이상의 경쟁률이 높고 (2) 7배수에 달하는 응모자에 대한 후속 사업이 전무하며 (3) 상시적인 위원 충원이 필요함에도 이에 대한 제도보완이 되지 않고 있는 점은 개선해야 될 부분임
– 예산학교는 참여예산위원의 위촉 전에 한 차례 이루어지며 총 9시간 이수가 필요한 과정임. 하지만 (1) 연임위원을 위한 별도의 심화 프로그램이 부재하고 (2) 실제 참여예산위원으로서 활동하면서 겪게 되는 실질적인 문제해결을 위한 보수교육에 대한 필요성이 제기되고 있고 (3) 예산학교의 이수자만 참여예산위원이 될 수 있는 조건에서 예산학교의 이수자들이 상시적으로 충원할 수 있는 참여예산위원의 풀이라는 점을 정확하게 고려되고 있지 못함

○ 사업제안단계

– 올 해부터 자치구 사업과 광역 사업을 분리하여 사업제안을 실시하였으나 (1) 사업의 실질적인 내용을 보면 대부분 자치구 사업에 머무르고 있으며 (2) 매년 반복되는 사업(이를테면 하수관로 개선, CCTV설치 등)이 참여예산사업으로 제안되는 문제가 지속적으로 발생함
– 참여예산제의 특성상 생활권 사업의 비중이 높을 수밖에 없음에도 불구하고 (1) 신규사업에 대한 인큐베이팅 기능이 전무함에 따라 최종적으로 사업선정에서 배제되는 일(이를테면, 예산수준을 알 수 없어 사업비 0원이라 표기된 사업은 분과회의서 배제)이 잦고 (2) 사업을 사전에 심사하는 각 부서에서 정책사업의 수준에서 재편성하면서 신규사업이 이중적으로 배제되는 문제가 생기고 있음
– 이 과정에서 나타난 가장 심각한 문제는, 형식적으로 광역사업임에도 불구하고 의제별로 묶어 제시된 사업들이 ‘구별 사업의 모음’이었다는 것으로, 사실상 광역사업이라 보기 힘들다는 점임. 이는 현재 혁신적인 제도 변화에도 불구하고 이를 구체화하지 못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임

○ 사업심사단계

– 현행 참여예산제는 자치구 참여예산위원회를 지역회의로 하는 자치구 제안사업과 소관 부서별 사전검토를 거쳐 분과로 상정되는 광역 제안사업으로 이원화되어 있음. 이 과정에서 (1) 구 제안사업의 경우에는 사업의 우선순위가 아니라 사업을 결정하는 제도운영의 적절성을 평가해야 됨에도 이대로 진행되지 못했고 (2) 부서별 사전검토가 사실상 사전심사의 의미를 띠게 되면서 참여예산위원들의 심사가 제약을 받음
– 특히 (1) 사업의 타당성을 검증할 수 있는 현장방문과 제안자 설명 등의 절차가 축소되거나 생략됨에 따라 사업의 적절성에 대한 평가가 제대로 이루어지지 못했으며, (2) 최종적인 사업선정 과정에도 현장심사 절차가 소홀히 다뤄진다는 문제제기가 나옴
– [별첨]과 같이 참여예산위원 투표와 함께 시민전자투표를 도입한 것은 사업선정에 참여예산위원을 보충하는 역할을 적절히 한 것으로 보이며, 2013년과 2014년과 비교했을 때 선정사업의 비중 역시 건설 분야 사업이 줄어들고, 환경과 여성보육 사업이 늘어나는 변화가 나타남

○ 사후관리단계

– 선정된 사업의 모니터링 및 평가과정은 이후 사업심사 및 선정과정에 중요한 평가의 기준이 되어야 하나 (1) n년도 사업의 평가가 n+1년도 사업 심사에 반영될 수 있는 제도가 없어 형식적으로 진행되고 있고 (2) 미집행 사업에 대한 명확한 패널티가 없어서 ‘모니터링 무용론’에 대한 불신이 상당히 높은 수준임
– 무엇보다 효과적인 모니터링을 위해서는 적절한 권한과 책임이 부여되어야 하지만, 행정의 속성상 추가적인 행정비용의 발생으로 접근하는 경우가 많고 기 집행된 사업에 대한 평가에 호의적이지도 않은 한계가 있음

○ 온예산과정

– 「지방재정법」 및 「서울특별시주민참여예산조례」에 의거하여, 참여예산의 범위는 직접제안사업의 선정과 함께 서울시 전체 편성예산 및 대규모 사업에 대한 의견제시도 포함되어 있음
– 2014년 운영계획상 온예산위원 과정을 제도화했으나, 현재까지 제대로 진행되지 못하고 있는데 (1) 기본적으로 부서별 예산편성 시점에 의견이 전달될 수 있어야 참여의 실효성이 확보될 수 있으나 해당 부서의 비협조로 실시된 바 없고 (2) 부서별 가예산 편성 후 예산총괄부서의 편성 방향에 대한 브리핑 등의 절차도 미비하며 (3) 최종적으로 확정된 편성예산안에 대한 의견이 실제 예산편성과정에 어떤 식으로 반영되었는지에 대한 피드백이 전무한 상태임
– 이에 따라 온예산위원 워크샵, 분과 워크샵 등을 거치며 상당 시간을 투여해 온예산과정에 참여한 시민위원들은 온예산위원 과정이 매우 중요함에도 소홀히 대해지고 있다는 불만이 지속적으로 제기되고 있는 형편임

 

개선 및 건의사항

 

○ 연간운영계획 확정시기 조정

– 참여예산사업의 경우에는 500억 원의 사업비가 고정적인 점을 고려해서 전년도 12월까지 확정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음. 이를 통해서 차년도 사업추진 준비가 내실 있게 진행될 수 있으며, 무엇보다 제도운영에 대한 ‘예측가능성’을 높여 혼란을 막을 수 있음

○ 위원 공모 및 예산학교

– 위원의 공모와 예산학교는 ‘상시화’와 위원 구성의 ‘다양성’에 초점을 맞춰 개선이 필요함. 기존 1차례로 정례화된 예산학교를 월 1회(최소 격월 1회)로 상시화하는 한편, 찾아가는 예산학교와같은 사업을 통해서 참여가 낮은 계층을 적극적으로 발굴하는 사업이 병행될 필요가 있음

○ 사업제안

– 사업제안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기존의 반복사업에 대한 배제(일반회계 사업화)를 통해서 새로운 사업에 대안 유인구조를 만드는 한편, 이를 위한 인큐베이팅 기능을 고민하는 것임
– 현재의 참여예산지원센터를 제도 운영의 실무부서가 아니라 사업공모 컨설팅 및 인큐베이팅을 담당하도록 하는 기능 분배가 필요함. 이 과정에서 사업제안자가 지속적으로 사업추진과정에 참여할 수 있도록 하면서, 제안자의 참여가 보장되도록 함
– 사업제안의 규모가 사실상 사업심사의 질과 이후 사업선정에 따른 사회적 효과에 영향을 미치는 만큼 (1) 직접 심사가 가능한 수준의 적정수를 고려해야 하고 (2) 새로운 사업의 발굴이 어려운 만큼 기존의 각 부서별 위원회 구조를 활용한 ‘시범사업’들을 광역사업으로 제안 받는 등의 거버넌스 활용에 대한 시도가 필요함

○ 사업심사단계
– 사업제안자 설명과 현장심사가 명확하게 제도화될 필요가 있으며, 심사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평가의 기준으로 보장되어야 함
– 현행 4.5:4.5:1의 투표방식은 기존의 선정결과에 비춰 나름의 긍정적인 보완효과가 있는 것으로 보이나, 사업선정을 한 차례 한마당을 통해 집중하기 전에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예산사업을 알리는 과정(이를테면, 자치구별 거리투표, 한마당 일주일 전 참여예산버스를 운행하면서 현장투표 유도 등)을 진행할 필요가 있음
– 사업심사와 관련하여 가장 많은 분쟁이 발생하는 만큼, (1) 자치구 사업심사 및 광역 사업심사 과정에 대한 투명성을 강화할 수 있는 방안이 필요하고(녹화 의무화 및 공개) (2) 제안자와 참여예산위원들이 상호 의견을 교환할 수 있는 쌍방향 온라인 시스템으로 보완하며 (3) 시민전자투표시에 참여예산위원들의 현장심사결과 등이 주요하게 참조될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이 필요함
– 덧붙여 매년 서울시의 주요 의제에 대한 우선순위를 먼저 정하고, 이에 따라 최종사업 선정 시 가점을 주는 방식의 의제 혹은 가치 주도적 사업선정방식에 대한 고민도 해볼 필요가 있음

○ 사후관리단계

– 모니터링 및 평가 결과가 차년도 예산학교 및 예산심의 과정에서 주요한 심사 가이드라인으로 제안될 수 있는 환류시스템을 만들 필요가 있으며, 무엇보다 참여예산사업에 대한 자의적인 불용에 대해서는 적어도 참여예산제도 내에서의 패널티가 정확하게 부여될 필요가 있음

○ 온예산과정

– 참여예산운영계획 상에서뿐만 아니라 각 부서에게 시달하는 ‘예산편성지침’을 통해서도, 참여예산과정에서 필요한 부서별 협조 의무를 명시하는 것이 필요함. 온예산 과정은 기존의 예산편성절차 내에서 제도화되지 않으면 형식적 운영이 불가피함. 특히 초기 제도화에는 시장의 각별한 관심이 반드시 수반될 필요가 있음
– 특히 기존 위원의 하중을 고려해서 임기가 종료된 참여예산위원을 대상으로 별도 온예산분과를 신설하는 것을 적극적으로 검토할 필요가 있음

 

[첨부]

2015년도 참여예산선정결과 주요 사항

 

(1) 심사주체별 사업의 우선순위

– 참여예산위원의 선정 우선순위가 시민전자투표의 결과를 비교하면 상위 10개 항목에서 7개가 겹치는 등 선정사업에는 크게 차이가 나타나지 않았음
– 다만 시민전자투표에서 우선순위로 들어가는 사업들이 좀 더 일반적인 시설개선에 초점이 맞춰져 있는 반면, 참여예산위원의 선정사업에는 프로그램 사업도 높은 순위를 보이고 있음
– 반면, 상대적으로 선호도 조사의 결과는 대부분 최종선정 사업에서 후순위를 차지한 사업들이 높은 순위를 보여 관점의 차이가 크다는 것을 볼 수 있음

순위 참여위원 투표 시민 전자투표 선호도 조사
1 (2)노후불량하수관로 개선사업(16개) (1)도서관 확충 및 서비스개선 (3)생활체육시설 확충
2 (1)도서관 확충 및 서비스 개선(12개) (5)어르신 개방형 시설 지원(16개) (15)CCTV설치(12개)
3 (7)등산로(둘레길) 정비 및 개선(15개) (8)공원 내 시설물 유지보수(15개) (14)어르신 일자리 사업의 확대(19개)
4 (3)생활체육시설 확충(16개) (4)가로등, 보안등 설치 및 정비 (2)노후 불량 하수관로 개선사업
5 (6)자전거도로 안전시설 확충(14개) (3)생활체육시설 확충 (4)가로등, 보안등 설치 및 정비
6 (13)어린이 통학로 정비사업(15개) (6)자전거도로 안전시설 확충 (12)창업 및 취업 지원 사업
7 (9)여성이 안전한 마을 만들기 사업(15개) (2)노후 불량 하수관로 개선사업 (6)자전거도로 안전시설 확충
8 (10)청소년 보호 및 활동 프로그램 운영(15개) (7)등산로(둘레길) 정비 및 개선 (1)도서관 확충 및 서비스 개선
9 (4)가로등, 보안등 설치 및 정비(16개) (11)도로 포장 및 정비(17개) (18)공동주택 음식물 생쓰레기 퇴비화
10 공동주택 음식물 생쓰레기 퇴비화(14개) (9)여성이 안전한 마을 만들기 사업 (13)어린이 통학로 정비사업

* 사업명의 앞에 숫자는 최종선정사업의 순위이며, 사업명 뒤에 붙은 숫자는 해당 주제에 포괄되어 있는 구별 사업의 개수임

 

(2) 전년도와 사업선정 경향의 변화

– 자치구 사업과 광역사업의 분리, 시민 전자투표제의 도입, 개별 사업보다 의제별 묶음 사업을 선정하는 방식의 도입 등에 따라 최종 사업선정 결과에도 큰 변화가 나타남
– 사업개수의 측면과 사업비 편성의 측면에서 모두 기존의 건설 편향성이 완화되는 한편, 환경 및 여성보육 분야에 대한 비중이 높아졌음. 또 사업 개수(왼쪽)에 있어서 2014년에 비해 큰 폭으로 낮아진 것은 자치구 사업과의 분리 및 의제별 묶음 사업으로의 선정을 통해서 전체적인 사업개수가 통제되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임

<분과별 사업개수와 사업비 편성 현황>

정책포럼 그래프1

정책포럼 그래프2

* 왼쪽의 사업비 편성 그래프의 경우에는, 2015년의 사업비 총액 변화(기존 500억 원 → 현재 375억 원)를 반영하기 위해 1.333을 곱해 보정한 것임

10,000 won South Korean Bills

기본소득, 단순하지만 강력한 아이디어

[2015.11 제25호 기획]

기본소득, 단순하지만 강력한 아이디어

 

 

기본소득이 시대의 난제를 해결하는 의제로 떠오르고 있는 가운데 노동당도 지난 6월 당대회에서 기본소득 정책이 포함된 ‘2016년 총선 기본방침’을 채택했다. 하지만 한국사회 전반은 말할 것도 없고 노동당 내에서도 기본소득은 여전히 친숙한 아이디어가 아니다. 따라서 폭넓고 깊이 있는 토론을 위한 계기와 장이 마련될 필요가 있다. 이번 기획에서 싣는 두 편의 글은 이를 위한 시발점이며, 다양한 비판과 제언을 요청하는 호소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