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웨덴 사회민주당 당원들의 가두 행진 모습

먼 좌파 이웃 좌파 ② 스웨덴 사회민주노동당

[2013.09 창간호(1호) 먼 좌파 이웃 좌파 ②]

스웨덴 사회민주노동당

 

장석준|부대표

 

 

 

우리의 새 당명이 ‘노동당’이다 보니 전 세계 좌파정당 가운데 ‘노동’을 앞에 내세운 정당들에 관심이 가지 않을 수 없다. 흔히 가장 먼저 떠올리는 것은 영국 노동당이다. 그런데 영국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영어권 나라들(오스트레일리아, 뉴질랜드, 아일랜드 등)에서 좌파 제1정당의 명칭이 ‘노동당(Labour Party)’이다. 영어권 바깥에서는 노르웨이와 네덜란드가 눈에 들어온다. 이들 나라의 사회민주주의 정당 역시 이름이 ‘노동당’이다. 현재 브라질의 집권당인 노동자당(PT)도 ‘노동당’과 일맥상통하는 당명이라 하겠다.

 

스웨덴 사회민주노동당의 반자본주의 강령

 

흔히 복지국가의 모범이라 일컫는 스웨덴에도 ‘노동당’ 이 있다. 그리고 이 나라에서도 역시 노동당이 좌파의 대표 정당이다. 이것은 스웨덴 복지국가 건설의 주역이 사회민주당이라는 우리의 상식과 어긋난다. 어찌 된 일일까? 사실 ‘사회민주당’ 과 ‘노동당’ 은 같은 당이다. 사회민주당의 본래 명칭이 ‘사회민주노동당’ 이다. 평소에는 줄여서 ‘사회민주당’ 이라 하기도 하고 ‘노동(자)당’ 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념을 강조할 때는 주로 ‘사회민주당’ 이라 하고 핵심 지지 기반을 부각할 때는 ‘노동당’ 이라 즐겨 부르는 것이다. 이게 뿌리 깊은 관행이 되어 있다.

스웨덴의 노동당, 즉 사회민주당은 지난 세기에 거의 50년 가까이 연속 장기 집권하면서 전 세계에서 최초로 복지국가의 기틀을 놓은 것으로 유명하다. 국내에도 그 역사를 깊이 있게 소개하는 책들이 나와 있다. 대표적으로, 잉바르 카를손 외, <사회민주주의랑 무엇인가>(윤도형 옮김, 논형, 2009) / 홍기빈, <비그포르스, 복지국가와 잠정적 유토피아>(책세상, 2011) / 신정완, <복지자본주의냐 민주적 사회주의냐 : 임노동자기금논쟁과 스웨덴 사회민주주의>(사회평론, 2012) / 하수정, <올로프 팔메 : 스웨덴이 사랑한 정치인>(후마니타스, 2013) 등이 있다. 이 책들만 봐도 스웨덴 좌파 정치에 대해 풍부한 지식을 얻을 수 있다.

스웨덴 사회민주주의의 역사를 기리는 부조물(가운데의 팔을 치켜든 인물은 당의 초기 지도자 얄마르 브란팅)

스웨덴 사회민주주의의 역사를 기리는 부조물(가운데의 팔을 치켜든 인물은 당의 초기 지도자 얄마르 브란팅)

이 글에서는 다만 사회민주당의 강령과 최근 상황에 대해 소개하고자 한다. 2001년에 채택된 이 당의 현 강령은 사회민주주의 정당 강령치고는 꽤 선명한 어조로 현대 자본주의를 비판한다. 현대 사회의 수많은 모순들의 근저에 자본주의와 민주주의 사이의 대립과 충돌이 있다고 강령은 주장한다. “이러한 모순들 속에는 민주주의의 힘과 자본의 힘 사이의 갈등, 민중의 이해와 자본의 이해 사이의 갈등이 선명한 형태로 존재한다.” 신자유주의가 자본의 힘으로 민주주의를 제압하려 한다면, 사회민주당의 지향은 그 반대다. 즉, 민중의 힘으로 자본을 제압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회의 모든 권력은 사회를 함께 구성하는 사람들로부터 나와야만 한다. 경제적 이해는 민주주의를 제한할 권리를 지니지 못한다. 반면 민주주의는 언제나 경제에 조건을 부여하고 시장에 한계를 설정한 권리를 지닌다.”

 

“자본주의와 시장경제는 구분돼야 한다”

 

그럼 이러한 ‘경제 민주화’는 어떤 구체적인 수단을 통해 가낭한가, 사회민주당 강령은 이 물음에 답하면서 독특한 철학을 제시한다. ‘시장’ 과 ‘자본주의’ 를 엄격히 구별하면서, 시장 경제는 인정하지만 자본주의는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자본주의와 시장 경제는 구분되어야 한다. 시장 경제는 재화와 용역이 교환의 중재자인 화폐를 통해 소유자를 바꾸는 분배 체계다. 반면 자본주의는 자본이 최우선의 규범으로서 보상을 받는 권력 체계다.” ‘시장=자본주의’ 는 아니라는 것이다. 하지만 둘 사이의 분명한 연관 관계도 있다. 시장이 사회 및 경제의 다른 영역들을 지배하려 들 때 그것은 필연적으로 자본주의 지배 질서를 낳는다.

따라서 사회민주당의 경제 청잭은 무엇보다 이러한 시장의 확장을 제한하는 것이어야 한다. “사회민주당이 지향하는 경제에서 시장 경제는 경제 생활의 단지 일부일 뿐이다. 사적 이윤의 요구가 다른 모든 이해를 지배해서도 안 되며 사회 발전의 방향을 결정해서도 안 된다. 시장이 사회 공공재와 공동체의 규범으로 받아들여져서도 안 된다.” 흥미로운 입장이다. 논쟁의 여지도 많지만, 우리 노동당 강령이 주창하는 “자본주의 극복” 과 관련해 함께 토론해볼 만한 주장이다.

 

사회민주당의 위기와 전화위복

 

2010년 총선에서 패한 사회민주당의 대표 모나 살린

2010년 총선에서 패한 사회민주당의 대표 모나 살린

그런데 안타깝게도 최근 스웨덴 사회민주당이 보여준 모습은 이 당의 강령이 표방하는 단호한 입장과는 좀 거리가 멀다. 2010년 총선에서 사회민주당은 우파 연정으로부터 정권을 탈환하기 위해 여성 대표 모나 살린을 앞세워 야심차게 선거에 임했다. 하지만 그 결과는 패배였다. 그래서 지금도 스웨덴에서는 온건당, 중도당, 자유인민당, 기독교민주당 등 우파 4당 연립정부가 집권하고 있다. 이 우파 연정의 복지 축소 기조 때문에 지난 5월에는 스톡홀름 인근에서 빈민층의 폭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한편 총선에서 패배한 사회민주당 안에서는 선거 평가를 둘러싸고 치열한 논쟁이 벌어졌다. 특히 당 내 좌파가 목소리를 높였다. 이들은 당이 신자유주의에 흔들려 강령의 이념과 원칙으로부터 이탈한 것을 패인으로 지목했다. 이 분위기를 등에 업고 새 대표로 선출된 인물이 부대표이던 호칸 유홀트다. 그는 “시장 경제는 지지하지만 자본주의는 반대한다” 는 당 강령 내용을 새삼 강조하면서, 아동 빈곤 철폐, 청년 실업 축소, 공공부문 임금 인상, 노후 연금 인상, 사유화된 전력과 철도의 원상회복을 핵심 정책으로 제시했다. 모처럼 사회민주당이 활력을 되찾는 것만 같았다. 그런데 이때 언론이 유홀트 대표의 배우자가 주거수당을 과다 청구했다는 사실을 폭로했다. 이 문제로 당이 다시 침체 상태에 빠지자 유홀트 대표는 결국 자진 사퇴했다. 자칫하면 당의 위기가 장기화할지 모를 상황이었다.

금속노조 위원장 출신인 스웨덴 사회민주당의 신임 대표 스테판 뢰프벤 (뒤의 배경은 사회민주당 로고)

금속노조 위원장 출신인 사회민주당의 신임 대표 스테판 뢰프벤 (뒤의 배경은 사회민주당 로고)

그러나 새 대표 뢰프벤의 등장이 전화위복이 되었다. 뢰프벤은 당 대표가 되기 전까지 12년간 금속노조 위원장을 맡았던 고참 노동운동가다. 사회민주당이 ‘노동당’ 이라는 별칭을 애호할 정도로 노동자 정당임을 강조하지만, 놀랍게도 124년 역사 동안 이 당에는 노동운동 출신 대표가 한 명도 없었다. 뢰프벤이 처음이다. 그렇다고 뢰프벤이 유홀트처럼 당 내 좌파인 것은 아니다. 그는 오히려 금속노조 시절부터 실용주의자로 유명했다. 심지어는 대재벌인 발렌베리 가문과도 막역한 사이다. 당 대표가 되고 나서도 이민 규제에 찬성하는 등 현실에 영합하는 행보를 보였다. 그럼에도 최초의 노동조합 출신 당 대표라는 사실이 던져주는 효과는 작지 않았다. 덕분에 당 지지율은 다시 30% 이상 수준으로 높아졌다.

뢰프벤은 국내 정책의 실용주의를 국제 정책의 새로운 비전으로 보완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는 노동조합 지도자의 경력을 살려, 전 지구적인 자본-노동 간 협약을 맺자는 제안을 내옿았다. 전 세계 노동자의 임금 및 노동 조건 기준을 정하자는 것이다. 이를 통해 사회민주주의 복지국가의 지향을 지구화할 수 있으며 이민 문제도 근복적으로 해결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대목에서 지난 세기 중반에 스웨덴 사회민주당이 마주했던 갈림길을 떠올리지 않을 수 없다.

 

사회민주당의 두 가지 비전

 

1960년 대를 전후해 스웨덴의 국내 복지 체계가 완비되자 사회민주당 안에서는 다음 단계의 원대한 목표로 두 가지 비전이 등장했다. 하나는 소비 영역의 민주화라 할 수 있는 복지국가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생산 영역의 민주화를 추구하자는 것이었다. 즉, 노동자가 기업의 소유와 경영을 주도하는 체제로 전환하자는 것이었다

사회민주당 이론가 에른스트 비그포르스

사회민주당 이론가 에른스트 비그포르스

이 방향의 주창자는 당의 대표적 이론가 에른스트 비그포르스였고, 이게 정책으로 나타난 게 1970년대에 루돌프 메이드네르가 금속노조의 위촉을 받아 제출한 임금노동자기금 구상이었다(위에 소개한 신정완의 책과 함께, 장석준, <신자유주의의 탄생>[책세상, 2011]참고). 아쉽게도 이 구상은 자본의 거센 반발 때문에 불발로 끝나 버렸다.

다른 한 방향은 일국 차원의 복지국가를 이제는 전 세계로 확대하자는 것이었다. 이 입장의 대표자는 당의 또 다른 주요 이론가이자 노벨경제학상 수상자(1974년 프리드리히 하이에크와 공동 수상)인 군나르 뮈르달이었다. 뮈르달은 1960년에 낸 “복지국가를 넘어서 : 경제 계획과 그 국제적 의미” 라는 인상적인 제목의 저서에서 이런 비전을 과감히 제시했다. 하지만 뮈르달의 구상 역시 임금노동자기금 구상과 마찬가지로 진지하게 추진되지 못했다. 실제 역사에서는 뮈르달이 염원한 복지국가의 지구화가 아니라 금융화된 자본의 지구화가 관철되었다. 하지만 이제 신자유주의의 황혼이 완연해지자 뢰프벤은 이 불발된 전망을 되살리려 하는 것이다.

현재 스웨덴 사회민주당은 우파 연정의 인기 하락에 힘입어 내년 총선 승리의 꿈에 부풀어 있다. 2010년 총선에서 사회민주당과 함꼐 ‘적색-녹색 연합’ 을 결성했던 좌파당, 녹색당의 지지율을 사회민주당 지지율에 더하면 우파 연정 참여 정당들의 지지율 총합을 적게는 6%, 만게는 10% 차이로 앞서는 추세다. 이 상승세가 계속 유지돼 스웨덴에 다시 좌파 정부가 들어설 수 있을까? 새 좌파 정부는 뢰프벤의 전 지구적 케인스주의 구상을 과연 진지하게 추친할까? 1930년 대에 그랬던 것처럼, 스웨덴이 다시 한 번 사회민주주의 갱생의 진원지로 나서게 될까? 이런 물음들 때문에 우리는, 스웨던이 우리의 새 교과서는 아님에도 불구하고, 이 나라에서 좀처럼 눈을 뗄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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