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

우리가 원하는 마을을 위하여

[2015.11 제25호 지역에서 현장에서]

우리가 원하는 마을을 위하여

상가임차인권리상담소와 함께 ‘다시 시작하는’ 서울 마포당협

나동혁|서울 마포 당원

 

 

 

지역.

그래 지역이었다. 전국위원에 당선되고 마포당협 대의원이 된 후에 계획표를 짤 때 가장 중요한 기준으로 삼은 단어가 ‘지역’이었다. 지역에 누가 살고 있으며 그/녀들은 무엇을 원하는가. 누구와 함께 무엇을 바꿀 것인가? 당선 후 1년. 스스로 이 답을 얻으려고 달려온 시간이었다.

당원 수는 많지만 여러 우여곡절을 겪은 탓에 마포당협은 사실상 활동이 중지된 상태였다. 최소 2년 동안 마포에는 노동당 이름으로 현수막 한 장 걸리지 않았고 당원모임도 열리지 않았다. 일단은 마포당원들의 욕구부터 알아야 했고, 그러자면 당원들을 알아야 했다. 흩어져있는 욕구를 모아 다시 에너지를 생산하는 일이 시급했다.

정당에는 학교처럼 당원들이 모이는 특정한 오프라인 공간이 존재하지 않는다. 방법은 전화뿐. 지난 연말과 올해 초에 걸쳐 있었던 당직자 선거 기간 동안 쉴 새 없이 전화를 돌렸다. 어느 지역이나 그렇겠지만 당원들의 기운이 많이 빠져있었다. 냉소적인 반응이 돌아오기도 했다. 그래도 그냥 처음 목표한대로 투표독려 전화까지 최소 3번 이상씩, 500명에게 전화를 돌렸다. 그제야 한두 마디라도 말을 거는 사람이 생겼다.

그리고 당원모임을 다시 시작했다. 당원모임은 술자리가 아니라 지역과 관련된 주제를 선정해 공부하고 토론하는 자리로 만들었다. 최대한 많은 당원에게 행사를 알리고 싶었다. 문자로 일정을 공지하는 것으론 부족해 보여 텔레그램, 페이스북메시지 등 개인적으로 접촉할 수 있는 모든 공간을 활용했다. 그러다 말이라도 걸어오면 대화를 시도했다. 직접 만나기도 했다. 인터뷰 형식을 빌리기도 했다.

 

내가 몸으로 느끼는 지역

 

마포는 지역활동이 매우 활발한 곳이다. 진보정당 활동가들이 선구적으로 지역정치 모델을 선도했던 곳이고, 그 성과 또한 적지 않았다. 이런 성과를 봐왔기 때문에 나 역시 마포로 이사 오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골목골목에서 강정티셔츠를 입고 콜트콜텍 에코백을 맨 사람들을 만날 때면 이사 오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누군가 이런 말을 했다. 수시로 이사를 다녀야 하는 사람들 입장에서 “지역공동체라는 느낌은 막연하다. 그래도 이 동네에 있으면 밤길에도 마음 편히 걸어 다닐 수 있을 것 같은 편안함을 준다”고. 마을은 오랜 시간을 거쳐 복합적으로 형성되는 것이리라.

2

가수 싸이가 명도소송 중인 테이크아웃드로잉 카페를 강제철거하려 한 데 항의하는 집회에 함께한 김한울 부대표(왼쪽)와 박종만 마포당협 위원장 (사진 : 나동혁)

그런데 3년 반 전, 합정으로 이사 왔을 때부터 시작된 빌딩 공사들이 마무리되면서 지금 합정은 내가 이사 올 때와 완전히 다른 모습이 되었다. 길이 바뀌고 지나다니는 사람이 바뀌고 가게가 바뀌었다. 그냥 말 그대로 다른 동네가 되었다. 이 장소에 YG사옥이 있다는 사실은 하나의 상징이다. 불과 3년 만에 일어난 일이다.

결국 집값이 조금 싼 망원동으로 이사를 왔다. 지금 망원동은 골목마다 ‘맛집’들이 늘고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대형체인점들이 늘고 건물이 올라가고 주택을 개조한 가게들이 늘어나는 형국이다. 망원역 근처에는 WM엔터테인먼트라는 기획사 건물도 들어왔다. 망원정 사거리에는 한강으로 통하는 공원이 생겼다. 망원유수지 일대에는 한강시민공원으로 드나드는 자전거로 인해 자전거 문화가 복합된 공간이 형성되었다. 자주 자전거로 출퇴근을 하는 입장에서는 이 변화들이 당연히 반갑다.

그런데 동시에 불안하다. 동네가 살기 좋아지고 속된 말로 ‘힙해’질수록 집값이 올라갈 것은 뻔하다. 하루하루 늘어가는 맛집을 보며 행복하다가도 집값이 올라가면 여기서 언제까지 버틸 수 있을지 고민이 따라온다. 여기에 한층 더해 서울시는 신촌-홍대-합정을 잇는 일명 ‘신홍합 밸리’를 만들어 관광객을 유치하겠다는 정책을 발표했고, 한강공원 망원지구에는 외국인 관광객을 위한 공연무대를 설치하겠다고 발표했다. 건설자본과 기업이 들어온 이후 일어날 변화들은 자명하다. 동네가 살기 좋아진다는데 많은 이들은 미리부터 떠날 걱정을 한다.

 

다시, 왜 지역인가?

 

왜 지역이냐고 묻는다면 그 답은 아주 간단하다. 지역은 세상을 “어떻게”와 “어디서” 바꿀까 고민하는 정당이 내린 답 중에 가장 기본이 되는 한 축이었다. 더군다나 진보정치 토양이 가장 풍부한 지역 중 하나인 마포에서 지역을 고민하지 않는다는 것은 진보정치세력으로써 자신의 존재 이유를 포기하는 일과 같다. 시작할 이유는 이미 충분했다.

그 다음 답은 6월 4일 당원모임에서 얻었다. 행사 제목은 <마을/지역+노동당>이었는데, 두 명의 연사를 모셨다. 먼저 김상철 서울시당 위원장으로부터 ‘상가임차인권리상담소’ 운영사례를 들었다. 기본적으로 건물주-부동산-임차인으로 이루어진 생태계가 어떻게 유지되고, 그 안에서 발생하는 문제점이 무엇인지 밑그림을 그릴 수 있었다.

두 번째 연사는 정문식 마포당원이었다. 정문식 당원은 밴드 ‘여섯 개의 달’ 보컬이면서 동시에 ‘뮤지션 유니온’과 ‘홍우주 협동조합’ 활동을 지속적으로 해왔다. 지역과 예술을 접목시킨 여러 활동을 하면서 예술인도 노동자라는 관점을 일관되게 유지했다. 강연주제는 ‘우리가 원하는 마을이란 무엇인가’. 서울시가 추진하는 마을공동체사업과 도시재생사업의 현황을 설명하면서 그 안에 빠져있는 핵심적인 문제를 지적했는데, 이 강연이 내게는 아주 큰 도움이 되었다.

한마디로 지금의 지역사업에는 노동이 빠져있으며, 이 관점에 대해 숙고하지 않으면 결국 살기 좋은 마을이란 기업과 자본이 좋은 마을, 건물주가 좋은 마을이 된다는 내용이었다. 여기서 얻은 답은 자명했다. 마을이란 균질한 집단으로 이루어져있지 않다. ‘모두를 위한 마을’이라는 표어를 내걸어도 진정으로 누구를 위한 마을이 되어야 하는지 세심하게 고려해야 한다.

처음 이 행사를 기획할 때는 아는 게 너무 없었다. 궁금증을 꼭 해소하고 싶은 것이 있었으니, ‘젠트리피케이션’이란 단어의 의미를 정확히 알고 싶었다. 직역하자면 어떤 지역이 젠트리(영국 중산층을 이르는 말)화 되는 현상을 이르는데, 실질적인 의미로는 마을이 외부에 알려지고 상업지구가 형성되고 대형유통자본과 기업들이 들어오면서 부동산 가격이 상승하고 마을공동체가 붕괴되는 현상을 의미한다.

지금 마포 곳곳은 극심하게 젠트리피케이션이 진행 중이다. 일부 지역은 어느 정도 완료되어 지역공동체 색깔과 구성원이 빠르게 바뀌었다. 지역의 분위기를 만들었던 예술인들과 소소한 단골가게들이 사라지고 체인점이 즐비한 상업지구로 변모하고 있다. 이런 변화가 모두에게 즐거울 리 없다.

주민의 이해관계는 단일한가? 그렇지 않다. 중요한 지점은 내부에서 차이를 인정하는 것이다. 사회적 조건에 따라 마을 내 구성원들 사이에도 이해관계가 달라진다. 이걸 인정하지 않고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식으로 넘어가면 나중에 활력을 잃는다. 구성원들이 원하는 것은 다양할 수 있다. 마을은 무조건 좋다는 수사는 우리만 사용하는 게 아니다. 기업이나 행정권력도 활용한다.

사회시스템 변화 없이 마을 그 자체만 해방구가 될 수는 없다. 결국 노동조건이 변해야 하고, 마을 만들기는 사회시스템을 변화시키려는 노력과 함께 가야 한다. 간단히 말해 지금처럼 노동시간이 길고 살기가 팍팍한 사회에서는 그 어떤 곳에도 에너지를 내어주기 힘들다. 진보정치는 지역의 약자와 싸우며 사회를 바꾸려는 노력을 계속해야 하고, 우리가 생각하는 마을은 그 과정에서 형성되어야 한다.

 

상가임차인권리상담소에서 시작한다

 

1

참숯만난닭갈비 앞에 차린 상가임차인권리상담소에 함께하는 마포당원들. 참숯만난닭갈비는 현재 권리금을 약탈하려는 건물주의 횡포에 맞서 싸우는 중이다. (사진 : 나동혁)

서울시당은 작년부터 상가임차인권리상담소를 시작했다. 홍대 삼통치킨 앞에서 매주 진행했는데, 나는 한 번 찾아간 적이 있었을 뿐 그 의미를 깊이 이해하지는 못했다. 그저 우리 옆 동네에서 시작했으니 잘 되었으면 좋겠다, 가끔 커피라도 사드리자는 정도로 생각했을 뿐이다. 그런데 올해 지역활동을 새로 시작하는 입장에서 상담소는 모든 고민에 부합하는 아이템이었다.

우리가 만들려는 마을은 사회적 약자와 함께하는 과정에서 형성되어야 하며, 기본적으로 완고하게 형성되어 있는 소유관계에 일정하게 문제제기를 할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어떤 문제도 완벽하지 않다는 것은 잘 안다. 임차상인이라고 해서 모두가 동일한 이해관계에 놓인 것은 아니다. 그러나 현상을 이해하면 임차인 문제가 가진 사회적 위상은 명백하다. 노동시장 자체가 고용문제를 해결하지 못하고 정리해고, 비정규직, 때 이른 퇴직 등이 일반화되어 가는 사회에서 자영업은 또 다른 노동시장의 연장이다.

이 와중에 건물주에게만 유리하게 만들어진 법과 제도와 사회적 인식은 근본적으로 ‘소유’라는 개념과 연결되어 있다. 세 들어 살아본 사람은 잘 안다. 집 없는 서러움이 어떤 것인지를. 끊임없이 불안 속에 살아야 하는 삶이 어떻게 영혼을 갉아먹는지를. 수많은 임차상인은 정서적으로도 연결되어 있다.

마포당협에서는 여러 차례 토론과 합의를 거쳐 8월 말부터 상가임차인권리상담소를 시작했다. 상담소를 운영하도록 허락해준 홍대 참숯만난닭갈비는 맘상모(맘편히장사하고픈상인모임, https://www.facebook.com/groups/mamsangmo) 회원 가게이면서, 현재는 권리금을 약탈하려는 건물주에 맞서 싸우는 곳이기도 하다. 명도소송이 모두 마무리되고 법적인 영업기간이 지나 강제집행 계고장이 날아온 상태다. 언제 강제집행을 당할지 모르는 임차상인들은 하루하루 긴장 속에 살아간다.

3

마포당협 당원모임 홍보웹자보. 마포당협은 건물주의 횡포에 맞서 싸우는 곳에서 당원모임을 가지며 꾸준히 연대 중이다. (웹자보 제작 : 이예반 마포당원)

마포당협에서는 강제집행을 막기 위한 지킴이 활동을 하면서, 목요일마다 가게 앞에 상담소를 연다. 간단하게 관련법을 공부하고 사례를 읽으며 논리를 다듬는다. 사람이 많을 때는 주변 상가에 홍보용 엽서를 배포한다. 상담을 하러 오는 사람은 별로 없다. 자기 문제로 터지기 전까지 임차상인들은 상담소를 찾지 않는다. 그러나 이런 활동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사실에 매우 우호적이며, 무엇보다 건물주와 싸우는 가게를 모두 지켜보고 있다.

건물주도 상담소 존재를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 자신이 강제집행으로 남의 노동을 가로채려는 그 현장에 사람들이 드나들고, 세입자를 마음대로 쉽게 내쫓을 수는 없다는 사실을 안다. 건물주를 괴롭게 만드는 것도 과정이다. 끊임없이 새로운 사례를 만들어야 한다. 서울시당이 상담소를 여는 삼통치킨과 마포당협이 상담소를 여는 참숯이 모두 강제집행 위기에 처해있다.

맘상모와 노동당의 연대와 신뢰도 강해졌고, 맘상모 회원인 임차상인이 노동당 당원으로 가입하는 사례도 늘고 있다. 지역당협은 현장에서 유대를 강화하고 서울시당에서는 사례를 모으고 분석하면서 법적대응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 법률개정에 대한 의견을 낸다. 제도권 안팎을 넘나드는 정치라는 게 이런 것이 아닐까? 함께 저항하면서 그 에너지를 모아 현실적인 제도에까지 일정하게 영향을 미치고, 그러면서 모두가 체념하듯 받아들이는 ‘조물주 위에 건물주’가 있는 현실에 일정하게 균열을 낼 수 있다면 분명한 성과로 남으리라 생각한다. 부수적으로 상담소는 당원과 당원, 당원과 임차상인이 이야기를 나누는 만남의 장소가 되기도 하니 일석이조 정도가 아니라 일석삼조 이상의 성과다.

마을과 도시는 매우 복합적인 공간이다. 그 공간을 만들어가는 것은 자본과 기업이 아니다. 그 곳에 살거나 경유하는 사람들, 그들이 만들어놓은 문화적 요소, 그리고 우리가 내는 세금이다. 그런데 왜 그 성과물은 항상 자본과 기업이 독차지해야 하는가? 다시 한 번 사람이 살기 좋은 도시, 사람이 살기 좋은 마을이 무엇인지 질문을 던져본다. 공공의 노력으로 만들어진 공간을 공공의 몫으로 돌려주어야 한다. 우리가 원하는 마을을 위하여.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