희망버스에 함께한 노동당원들. 하늘 위 노동자들을 땅으로 내릴 수 있는 정당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사진 : 박성훈 홍보실장)

열둘의 땅 노동자와 다섯의 하늘 노동자

[2015.09·10 제24호 지역에서 현장에서]

열둘의 땅 노동자와 다섯의 하늘 노동자

거제·부산 희망버스 1박 2일

 

강남규|편집위원

 

 

부산시청 앞. 무대 위로 한 사람이 오른다. 스타케미칼 공장의 45미터 굴뚝에서 408일간 고공농성을 한 노동자라고 스스로를 소개한다. 소개를 마치자 또 한 사람이 오른다. 한진중공업 35미터 타워크레인에서 309일간 농성했다고, 세계기록 보유자였는데 차광호에게 뺏겼다고 농을 던진다. 농이 끝나자 또 한 사람이 오른다. 유성기업 공장 앞 굴다리에서 151일간 농성했다고 소개한다. 다시 또 한 사람이 오른다. 그리고 또 한 사람, 또 한 사람, 또 한 사람…. 모두 언제 어디선가 각자의 하늘에 매달렸던 사람들이다.

무대를 발 디딜 틈 없이 채운 노동자들의 머릿수를 세니 12명이었다. 미처 오지 못한 사람들을 제외하고도 12명이다. 12개의 부조리, 12개의 착취, 12개의 삶, 12개의 투쟁, 12개의 처절함, 12개의 눈물, 12개의 웃음이 12개의 하늘에 걸려있었다. 이제는 땅으로 내려온 12명의 노동자들은 소개를 마치고 합창을 했다. “휘몰아치는 거센 바람에도 부딪쳐오는 거센 억압에도 우리는 반드시 모이었다. 마주보았다. 살을 에는 밤, 고통 받는 밤, 차디찬 새벽서리 맞으며 우린 맞섰다.” <동지가>였다. 살 에는 밤과 고통 받는 밤을 수백 날을 보내고, 높은 하늘에서 차디찬 새벽서리 맞으면서도 ‘반드시’ 모이고 마주본 노동자들의 노래였다.

그리고 여전히, 세 개의 하늘에 노동자들이 매달려 있다. 기아자동차 하청노동자 최정명·한규협, 대우조선해양 노동자 강병재, 생탁/택시노동자 송복남·심정보. 이번 희망버스는 그들을 만나는 여정이었다.노동당도 버스에 오르기로 결정했다. 출발 열흘 전부터 참가신청을 받아, 노동당 전용버스 한대를 마련했다. 버스의 이름은 ‘타요! 빨간버스!’ 희망버스 기획단은 센스 있게도 정말로 ‘빨간’ 버스를 노동당에 배정해줬다. 40석을 모두 채웠다. 버스 한 대를 단일조직으로 채운 곳은 노동당이 유일했다.

 ‘타요! 빨간버스!’에 오르는 노동당원들. 40석의 버스 한 대를 단일조직으로 채운 곳은 노동당이 유일했다. (사진 : 박성훈 홍보실장)

‘타요! 빨간버스!’에 오르는 노동당원들. 40석의 버스 한 대를 단일조직으로 채운 곳은 노동당이 유일했다. (사진 : 박성훈 홍보실장)

 

“누구도 다쳐선 안 된다” … 하늘 위 노동자들도

 

출발 집결지는 서울시 용산구 한남오거리, 현대차그룹 회장 정몽구의 집 앞. 경의선 한남역에서 내려 오거리 방면으로 향하니, 저쪽 너머에 줄지어 선 경찰버스들이 이정표처럼 희망버스 승객들을 안내하고 있었다. 아침 아홉시부터 경찰들은 승객들을 막았다. 그러나 아침부터 어딘가 다녀오는 무수한 자동차들은 막지 않았다. 경찰 방패 뒤로는 와이셔츠를 입은 중년 남성 몇몇이 팔짱을 끼고 서있었다. 이 장정들은 정몽구 캐리커쳐 스티커를 떼어내는 임무를 수행하려고 고용된 모양이었다.

정몽구를 뒤로 하고 희망버스가 출발했다. 5시간을 조금 넘게 달려 거제에 도착했다. 여기서도 처음으로 마주한 풍경은 경찰버스였다. 공장 너머 차도에 무대를 깔고 문화제를 열었다. 공장은 아득했다. 우리의 시선은 수변공원을 넘고 담벼락을 넘은 뒤에야 강병재가 오른 크레인에 닿았다. 60미터 높이라고 했다. 서울에서 출발한 버스들을 이어 붙이면 강병재의 손을 잡을 수 있다. 그렇게 멀고 높았다.

조금 전부터 간간이 내리던 비는 어느새 맹렬해져, 우리를 때리고 크레인을 때리고 강병재를 때렸다. 강병재는 크레인 조종실 바깥에 위태롭게 서있었다. 민중가수 지민주가 노래를 불렀다. <소나기>였다. 예정된 레퍼토리였는지는 알 수 없지만, 강병재를 때리는 이 비가 한순간의 소나기이길 바라는 마음은 노래를 듣는 모두의 마음이었을 것이다. 저 너머에서 강병재가 노래에 맞춰 춤을 췄다. 우리는 풍선을 띄웠다. 헬륨가스를 머금은 풍선이 내리는 비를 뚫고 하늘로 날았다.

강병재가 오른 60미터의 크레인은 높았다. 크레인 조종실 바깥에 위태롭게 선 강병재를 향해 우리는 풍선을 띄웠다. (사진 : 박성훈 홍보실장)

강병재가 오른 60미터의 크레인은 높았다. 크레인 조종실 바깥에 위태롭게 선 강병재를 향해 우리는 풍선을 띄웠다. (사진 : 박성훈 홍보실장)

지역현장2 사진2_크레인

문화제를 마치고는 공장 입구로 가 퇴근하는 노동자들을 대상으로 선전전을 펼쳤다. 주말인데도 노동자들의 행렬은 끝이 없었다. 저마다 자전거를 끌고 나오는 고단한 표정들. 정규직 노동자, 하청노동자, 비정규직 노동자, 외국인 노동자, 가끔 20대의 앳된 노동자들이 우리 앞을 지나갔다. 어떤 노동자들의 헬멧에는 “누구도 다쳐선 안 된다”고 적혀있었다. 누구도 다쳐선 안 된다. 강병재도, 다쳐선 안 된다. 무사히 내려와야 한다.

희망버스는 다시 바삐 부산으로 향해야 했다. 퇴근행렬이 끝남과 동시에 우리는 버스로 향했다. 떠나기 직전, 나양주 거제당협 위원장과 송미량 거제시의원이 우리에게 인사했다. 내년 총선, 우리는 그들을 응원하기 위해 기꺼이 다시 올 것이다.

 

부산시청 앞, 희망의 밤

 

거제와 부산을 잇는 거가대교를 지날 때 창문 너머로 노을이 아름답게 졌다. 부산 생탁 연산공장 앞에 도착한 때는 어둠이 짙게 깔린 즈음이었다. 또 다시, 경찰들이 먼저 맞이했다. 밤처럼 까만 옷과 까만 방패들이 버스에서 내리는 우리를 매섭게 노려봤다. 공장 진입로는 트럭 두 대로 막혔고, 채 막지 못한 곳은 직원 몇이 몸으로 막고 서있었다. 그 앞에서 우리는 집회를 열었다. 발언 중 누군가가 ‘생탁’은 ‘(생탁을 마시면) 생각이 탁 트인다’라는 뜻이라고 일러주었다.

결의를 다진 후 송복남과 심정보가 농성하는 부산시청으로 행진했다. 거리는 대체로 고요했다. 우리는 고요한 거리를 향해 호소했다. 이따금 욕지거리를 하는 행인들이 있었다. 우리는 그들을 향해서도 호소했다. 김무성에게 호소했고, 부산시장 서병수에게 호소했다. 저 멀리 부산시청이 보였다. 광고탑이 보이고, 송복남과 심정보가 보였다. 밀양의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보였다. 입장하는 우리에게 밀양이 박수를 보냈다. 눈물이 핑 돌았다.

부산시청은 높았다. 토요일 밤인데도 사무실 곳곳에 불이 켜져 있었다. 중무장한 경찰들이 그 앞을 가로막았다. 그들을 넘어서 서병수에게 다가가기엔 우리는 너무 적고 약했다. 문화제가 시작됐다. 차광호가 사회를 봤다. 열둘의 노동자가 무대에 올랐고, 동지가를 불렀다. 송복남, 심정보와의 전화통화는 바로 옆에서 얘기하는 것처럼 생생했다. 서울에서 농성하는 최정명, 한규협과의 전화통화도 이어졌다. 소리는 멀었다. 문화제는 자연스럽게 비(非)생탁 막걸리 축제로 이어졌다. 전국 각지의 막걸리들이 연대의 꽃을 피웠다. 빈병들은 수거해 대형 형상물을 만들었다. 쌍용차 해고자 고동민의 맛깔나는 사회와 함께 희망버스의 밤이 저물어갔다.

송복남과 심정보가 농성 중인 부산시청 앞에서의 문화제는 비(非)생탁 막걸리 축제로 이어졌다. 전국 각지의 막걸리들이 연대의 꽃을 피웠다. (사진 : 박성훈 홍보실장)

송복남과 심정보가 농성 중인 부산시청 앞에서의 문화제는 비(非)생탁 막걸리 축제로 이어졌다. 전국 각지의 막걸리들이 연대의 꽃을 피웠다. (사진 : 박성훈 홍보실장)

재즈뮤지션인 이효정 당원이 일군의 청년당원들에게 숙소를 제공했다. 우리는 거기서 또 먹고 마셨다. ‘자연의 신비’를 믿고. 다음 날 아침에는 이효정 당원이 해장으로 추어탕까지 내어주셨다. 이 지면을 빌려 감사의 말씀을 전한다.

 

저 노동자들을 땅으로 내리기 위해

 

마지막 일정은 부산 영도에 위치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의원실 앞에서 진행했다. 우리는 택시를 타고 영도로 넘어갔다. 김무성 의원실엔 무슨 일로 가냐는 택시기사님의 질문에 그냥 만날 사람이 있어 간다고 둘러대며 넘어가던 길, 창문 밖으로 한진중공업 공장이 보였다. 4년 전 이곳에서 희망버스가 시작됐다. 영도에 도착하자 또, 경찰들이 길을 안내했다. 건물은 봉쇄돼 있었다. ‘천하제일욕설대회’를 하고, 기자회견을 마지막으로 희망버스의 공식 일정은 마무리됐다. 서울에 올라와서는 대한문 앞에서 내렸다. 횡단보도 너머로 국가인권위원회 옥상에서 농성하는 최정명과 한규협이 보였다.

전반적으로 침착하고 차분한 희망버스였다. 내가 갔던 울산 희망버스나 밀양 희망버스에 비하면 특히 그랬다. 기획력 부족인가 싶다가도, 결국 그것 자체가 이 나라에서 노동자들이 얼마나 열악한 상황에 처했는지를 반영한다고 생각했다. 한 사람이 하늘 위에 걸려 몇 백일을 먹고 싸고 자는 위태로운 일이, 이 나라에서는 너무나 빈번하다. 그래서 한 농성장에 집중하지 못하고 세 곳을 연달아 방문하는 일정을 짤 수밖에 없고, 그래서 차분해질 수밖에 없다.

그래서 노동당이다. 이 산발적인 투쟁들을 한데 모아내고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은, 옳은 길을 가고자 하는 우리 노동당이 강해지는 것뿐이다. 이 마지막 문장을 적는 시점이 마침 당 대표단 선거 마지막 날이다. 누가 당선되든, 저 하늘 위 노동자들에게 믿음을 줄 수 있는 정당을 만들어가기를 간곡히 요청드린다. 최정명, 한규협, 강병재, 송복남, 심정보. 그들을 땅으로 내릴 수 있는 정당을 만들어가기를!

 

희망버스에 함께한 노동당원들. 하늘 위 노동자들을 땅으로 내릴 수 있는 정당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사진 : 박성훈 홍보실장)

희망버스에 함께한 노동당원들. 하늘 위 노동자들을 땅으로 내릴 수 있는 정당이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사진 : 박성훈 홍보실장)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