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좌파 사진3 - 신문

먼 좌파 이웃 좌파 ⑭ 포데모스, 더 깊이 들여다보기

20호(2015년 5월) 먼 좌파 이웃 좌파 ⑭

포데모스, 더 깊이 들여다보기

 

장석준 _ 기관지위원

 

 

 

먼좌파 사진1 - 거리시위

포데모스의 거리 시위

스페인의 신생 정당 포데모스(PODEMOS)에 대한 관심이 날로 높아져 가는 중이다. 그럴 만도 하다. 포데모스는 창당한 지 1년도 안 돼 당원을 20만 명 넘게 늘렸고 여러 여론조사에서 지지율 1위를 기록했다. 기성 정당에서 갈라져 나온 정당도 아니고 완전히 기존 정치권 바깥에서 등장했다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놀라운 성과다. 스페인에서는 지난 몇 달간 포데모스의 이러한 급성장 자체가 전례 없는 ‘대중운동’이었다. 포르투갈 정치학자 보아벤투라 데 수사 산토스는 포데모스를 “운동-정당 아니 차라리 정당-운동”이라고 평하기도 했다.

관심이 늘어나는 만큼 의혹 또한 쌓여간다. 포데모스가 구세대 좌파 정치를 비판하면서 전에 없던 실험들을 감행하는 중이기에 이에 대한 찬사뿐만 아니라 우려 역시 적지 않다. 그래서 지난 1월호에서 포데모스를 이미 한 차례 소개했음에도 불구하고(《미래에서 온 편지》 제16호 <포데모스, 21세기형 정치조직의 등장인가?>), 다시 지면을 할애하고자 한다.

 

포데모스, ‘좌파’ 맞나?

 

그리스의 급진좌파연합(SYRIZA, 이하 시리자)이 ‘좌파’라는 데는 이견이 없다. 당명만 봐도 알 수 있다. 그런데 ‘스페인의 시리자’라는 포데모스에 대해서는 “정말 좌파 맞냐”는 의문이 따라다닌다. 이유는 이렇다. 포데모스는 ‘자본주의’나 ‘노동계급’을 이야기하지 않는다, 포데모스는 노동조합과 별 관계가 없다, 오바마 선거운동 구호에서 따온 듯한 포데모스(영어로 옮기면 ‘We Can’)란 이름부터가 도대체 뭔가…. 확실히 이 신진 정치조직에는 좌파 정치 전통에 잘 들어맞지 않는 구석들이 많다.

하지만 포데모스의 창당 주역들과 등장 과정을 살펴보면, 그 뿌리가 분명 스페인 좌파 운동에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우선 창당 발기인들 중 소수파인 ‘반자본주의 좌파’ 그룹은 제4인터내셔널 통합서기국(USFI) 계열의 트로츠키주의 정파다. 그리고 다수파인 콤풀텐세 대학의 교수, 강사들도 이전에 좌파 정당이나 조직에 참여한 전력이 있는 인물들이다.

먼좌파 사진2 - 파블로 이글레시아스

포데모스의 대표, 파블로 이글레시아스

당의 얼굴인 파블로 이글레시아스만 해도 그렇다. 그는 그리스 시리자 정부의 알렉시스 치프라스 총리와 마찬가지로 10대 시절부터 공산당 청년 조직에 가입해 활동했다. 그는 대학 강사가 된 뒤에도 ‘대항 권력’이라는 명칭의 독자 좌파 그룹을 만들어 이끌었다.

실은 ‘파블로 이글레시아스’라는 이름 자체가 스페인 좌파 역사와 뗄 수 없는 관계다. 지금은 반민중적 긴축 정책의 충실한 집행자로 전락했지만, 그래도 오랫동안 스페인 좌파를 대표해온 정당 ‘사회주의노동자당(PSOE)’을 1879년에 창당하는 데 앞장선 인물이 다름 아닌 파블로 이글레시아스다. 이글레시아스의 부모가 처음 만난 자리가 이 역사적 지도자를 기념하는 행사였고, 그래서 아들에게 이런 이름을 지어줬다고 한다.

좌파 운동의 일원이었던 포데모스 창당 주역들은 처음에는 ‘연합좌파(IU)’를 정치 활동의 발판으로 삼고자 했다. 연합좌파는 그리스의 시리자와 비슷하게 스페인 공산당(PCE)과 여러 좌파 정파들이 함께 만든 정당연합이다. 작년 유럽의회 선거 직전에도 포데모스 발기인들은 연합좌파가 오픈 프라이머리 방식으로 유럽의원 후보들을 결정한다면 여기에 개인 자격으로 참여하겠다는 입장이었다. 그러나 연합좌파 측이 오픈 프라이머리를 거부하자 이들은 결국 독자 정당, 즉 포데모스 창당을 선택했다.

 

그렇소, 우리는 ‘좌파 포퓰리스트’요!

 

아무튼 스페인에서는 이런 저간의 사정이 잘 알려졌기에 포데모스가 ‘좌파’임이 당연시된다. 무엇보다도, 아래와 같은 정책 대안을 내놓는 세력을 ‘좌파’ 외에 달리 뭐라 분류하겠는가. 다음은 작년 말에 포데모스가 발표한 경제 프로그램 <민중을 위한 경제 계획>을 그 작성자 중 한 사람인 경제학자 비센테 나바로(카탈루냐 출신이며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 교수)가 직접 요약한 것이다.

“위기의 핵심 원인은 불평등의 엄청난 확대이며, 이로부터 금융, 경제 및 정치 위기가 비롯됐다. 그 중심에는 자본(금융 자본의 헤게모니 아래 있는)과 노동 사이의 갈등이 있다. 이로 인해 임금이 하락하고 실업이 증가하며 사회보장 지출이 삭감됨으로써 내수가 급감한 것이다.

따라서 임금인상과 고용확대를 통해 내수를 증가시키고 사회보장 지출과 공공투자(특히 사회적 인프라스트럭처에 대한)를 확대함으로써 불평등의 확대를 역전시켜야 한다. 그리고 금융 공공성을 확대해서 가계와 중소기업에 신용을 제공해야 한다. 또한 노동시간을 주 35시간으로 단축하고 정년을 PP[현 여당인 우파 인민당-인용자]와 PSOE가 도입한 67세에서 65세로 되돌려야 한다. 이는 자본에 맞서 노동의 역량을 강화하는 결과를 낳을 것이다.

동시에 성별 불평등을 반드시 해소해야 하며, 이는 고용을 확대하는 중요한 수단이기도 하다. 이상의 정책을 실시하는 데 필요한 재원은 국가 예산 구조의 변경과 탈세 방지를 통해 마련한다.”

그런데도 스페인 바깥의 좌파 논평가들이 포데모스에 대해 의구심을 거두지 않는 이유는 이 조직(더 정확히는 포데모스 내 다수파인 콤풀텐세 대학 활동가 그룹)의 독특한 노선과 전략 때문이다. 이들은 고전 마르크스주의 계급 이론이 더 이상 현실 정치의 지침이 돼주지 못한다고 본다. ‘자본가’를 비난한다고 그게 곧 광범한 공감을 얻는 것도 아니고 ‘노동자’를 부르짖는다고 다 자기 이야기라고 생각하지도 않는다는 것이다.

포데모스와 파블로 이글레시아스를 비난하는 포스터

포데모스와 파블로 이글레시아스를 비난하는 포스터

대신 포데모스는 1970년대 민주화 이후 정치, 경제 권력을 독점해온 ‘부패’ 세력들(여기에는 우파인 PP뿐만 아니라 PSOE도 포함된다)을 ‘카스트’(우리말로는 ‘귀족’ 정도로 옮기는 게 적절할 테다)라 싸잡아 비판하고 이들이 이끌어온 ‘78년 체제’의 전복을 주창한다. 중간층부터 청년실업자, 비정규직까지 아우르는 ‘서민’이 직접 정치에 참여해 정치, 경제, 사회 전 영역에서 민주화를 다시 시작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스페인 주류 언론은 이런 주장에 ‘좌파 포퓰리즘’이라는 딱지를 붙인다. 한데 포데모스 지도자들은 이러한 손가락질에 오히려 맞장구를 치고 나선다. “21세기의 정치 구도는 우파 대 좌파가 아니라 우파 포퓰리즘 대 좌파 포퓰리즘이 될 것”이라는 벨기에 정치학자 샹탈 무페의 진단이 곧 포데모스의 전망이다. 그도 그럴 것이 이글레시아스를 비롯한 콤풀텐세 그룹에게 가장 커다란 영향을 끼친 저작이 바로 무페가 남편인 고(故) 에르네스토 라클라우와 함께 집필한 《사회주의와 헤게모니 전략》(국역본 : 이승원 옮김, 후마니타스, 2012)이다. ‘포스트 마르크스주의’의 효시로 불리는 이 책의 결론은 위에 요약한 포데모스 노선과 일치한다.

유럽산 포스트 마르크스주의만이 아니다. 라틴아메리카 좌파도 포데모스의 ‘좌파 포퓰리즘’에 큰 영향을 끼쳤다. 게릴라 출신으로서 볼리비아 좌파 정부의 부대통령을 역임한 정치이론가 알바로 가르시아 리네라는 좁은 의미의 노동계급을 넘어서 인디오 원주민, 농민을 포괄하는 plebes를 변혁주체로 제시한다. 번역하면 ‘평민’ 혹은 ‘서민’이다. 영락없이 ‘귀족 대 서민’이라는 포데모스의 담론 틀이다. 실은 이글레시아스와 동료들이 10년 전부터 집중 연구해온 주제가 다름 아니라 볼리비아와 베네수엘라, 에콰도르의 변혁과 사회운동 경험이다.

지난 세기 좌파 전통을 중심에 놓고 본다면 논쟁의 여지가 많은 입장이다. 그래서 “좌파 맞냐”는 이야기까지 나온다. 그러나 포데모스의 이러한 발상의 전환이 좌파에게 오랜만에 대중 정치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이다. PSOE나 연합좌파에서 이탈한 좌파 성향 유권자들만이 아니라 우파인 PP의 실망층도 포데모스 지지자의 상당수를 차지한다는 건 결코 예사로운 성취가 아니다. 소 정파 활동을 넘어서 진짜 대중 정치를 펼치길 바라는 좌파라면 이제 누구도 포데모스가 제시한 가설과 실험을 외면하거나 간과하기 어렵다.

 

포데모스의 우파 복사판, 시우다다노스의 도전

 

먼좌파 사진5 - 시우다다도스

벌거벗은 몸으로 깨끗한 정치를 표방하는 시우다다노스의 포스터

물론 방향 전환에는 항상 그에 따른 새로운 한계와 위험의 대두가 불가피하다. 포데모스의 ‘좌파 포퓰리즘’도 예외가 아니다. ‘좌파 포퓰리즘’의 성공은 그에 맞서는 ‘우파 포퓰리즘’의 등장과 성장을 부추긴다.

유럽의회 선거 직후 포데모스 바람이 막 일기 시작할 무렵, 스페인의 금융 재벌 중 한 명은 “우리에게도 일종의 우파 포데모스가 필요하다”고 부르짖었다. “우파 포데모스”는 얼마 안 지나 어렵지 않게 ‘발견’되었다. 그 주인공은 카탈루냐의 작은 지역정당 시우다다노스(Ciudadanos, ‘시민’이라는 뜻)다. 시우다다노스는 카탈루냐 분리 독립을 추진하는 좌파 민족주의에 맞서기 위해 결성된 우파 정당이다. 2006년에 창당했으니 이미 10년 가까이 된 ‘중견’ 정당이다. 하지만 카탈루냐 이외의 지역에서는 아직 낯선 정치 세력이다.

그런데 이 당이 작년 말부터 포데모스처럼 기성 정치권을 모두 부패 세력으로 몰아 공격하면서 또 다른 바람을 일으켰다. 카탈루냐를 넘어 스페인 곳곳에서 시우다다노스의 지지율이 급상승했다. 급기야 최근 몇 달 사이에는 여론조사에서 PP, PSOE, 포데모스 그리고 시우다다노스가 엇비슷한 지지율을 얻으며 각축을 벌이는 양상이 나타났다. 중요한 점은 시우다다노스의 지지율이 높아질수록 포데모스의 지지율은 정체되거나 하락한다는 점이다. 특히 포데모스 지지층 중 과거에 PP를 지지했던 이들이 시우다다노스로 이동한다고 나타난다.

포데모스에 비판적인 논평가들은 이것이 포데모스가 자초한 결과라고 진단한다. 포데모스가 ‘반부패’를 이슈화해 성장할 수 있었지만 이런 종류의 탈계급적 쟁점은 쉽게 시우다다노스 같은 우파 포퓰리즘 정당의 무기로 돌변할 수 있다는 말이다.

반면 포데모스 측은 여전히 자신감을 보인다. 똑같이 ‘반부패’를 외치더라도 시우다다노스는 신자유주의나 긴축 기조를 벗어날 경제 대안을 전혀 이야기하지 않기 때문에, 포데모스와의 차이가 조만간 분명히 드러나리라는 전망이다.

과연 어떠한 분석과 전망이 더 힘을 얻게 될까? ‘좌파 포퓰리즘’은 새로운 가능성과 위험 중 어느 쪽으로 더 주목을 받게 될까? 12월 스페인 총선까지는 아직 여덟 달이나 남았다. 이래저래 올해는 세계인의 눈길이 남유럽을 떠나지 못할 것 같다.

1 시리자의 2012년 총선 포스터 - 시리자의 로고를 연상시키는 유성이 기득권층이라는 공룡을 멸종시킨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먼 좌파 이웃 좌파 ⑬ 시리자 총선 공약 : 국가 재건 계획의 네 축

17호(2015년 2월) 먼 좌파 이웃 좌파 ⑬

시리자 총선 공약 : 국가 재건 계획의 네 축

 

장석준 _ 부대표

 

 

 

1 시리자의 2012년 총선 포스터 - 시리자의 로고를 연상시키는 유성이 기득권층이라는 공룡을 멸종시킨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시리자의 2012년 총선 포스터 – 시리자의 로고를 연상시키는 유성이 기득권층이라는 공룡을 멸종시킨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작년 9월에 그리스의 급진좌파연합(SYRIZA)은 테살로니카에서 국제 축제를 개최했다. 이 행사에서 당대표 알렉시스 치프라스가 조기 총선 실시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SYRIZA의 집권 프로그램을 내놓았다. 발표 장소를 따서 이 정책 패키지는 ‘테살로니카 프로그램’이라 불린다. 치프라스의 예상대로 그리스는 1월 25일에 조기 총선을 실시하게 됐다. 테살로니카 프로그램은 곧바로 SYRIZA의 핵심 선거 공약이 됐다. 유럽연합의 긴축 정책 기조에 맞선 SYRIZA의 대안이 무엇인지 좀 더 구체적으로 확인해보기 위해 ‘테살로니카 프로그램’을 우리말로 옮겨 소개한다. 가계 부채 거품을 안고 있는 한국 사회의 정책 대안을 고민하는 데에도 참고가 될 만한 내용들이다. <미래에서 온 편지>는 앞으로 포데모스 등 신생 좌파 정당들의 정책을 적극 소개할 계획이다.

 

첫째 축 : 인도적 위기의 해결

총 예상 비용 : 18억8,200만 유로[1유로 = 약 1290원]

 

인도적 위기에 대한 우리의 긴급 대책에는 약 20억 유로가 소요될 것이다. 이것은 포괄적인 비상 국가 개입으로서, 가장 취약한 사회 계층에게 보호막을 제공할 것이다.

① 현재 빈곤선 이하인 30만 가구에게 가구 당 월 300KW까지, 즉 연 3,600KWR까지 전력을 무상 제공한다. 예상 비용 : 5,940만 유로

② 소득 없는 30만 가구에 대한 식품 지원 프로그램. 공적 조정 기구를 통해 지방자치단체, 교회 그리고 연대 조직들과 협력해 실시한다. 예상 비용 : 7억5,600만 유로

③ 주거 보장 프로그램. 목표는 우선 30제곱미터 아파트부터(이후 50제곱미터, 70제곱미터로 단계별 확대) 제곱미터 당 3유로의 임대료를 지원하는 것이다. 예상 비용 : 5,400만 유로

④ 연금소득이 700유로 이하인 126만2,920명의 연금생활자에 대해 크리스마스 보너스 명목으로 매년 12개월에 더해 1개월치 연금을 추가로 지급하던 제도를 부활시킨다. 예상 비용 : 5억4,306만 유로

⑤ 사각지대에 놓인 실업자에게 무상 의료 및 약품을 제공한다. 예상 비용 : 3억5,000만 유로

⑥ 장기 실업자와 빈곤선 이하 소득자에게 특별 공공교통카드를 제공한다. 예상 비용 : 1억2,000만 유로

⑦ 난방 및 승용차용 경유에 대한 일률적 특별소비세를 폐지한다. 주거용 난방 연료의 최저가를 현행 리터 당 120유로에서 이전의 90유로로 되돌린다. 이에 따른 소득 증대 효과가 있을 것이다.

 

둘째 축 : 경제 회생과 조세 정의 촉진

총 예상 비용 : 65억 유로 / 총 예상 편익 : 30억 유로

 

3 높은 자살률의 그리스 현실을 규탄하는 시리자의 포스터

높은 자살률의 그리스 현실을 규탄하는 시리자의 포스터

둘째 축의 핵심은 경제 회생 조치들이다. 실물 경제에 대한 과세 경감, 시민들의 금융 부담 해소, 유동성 및 수요 확대에 우선순위를 둔다.

① 성실 납세자를 비롯한 중간 계급에 대한 과도한 과세 때문에 다수의 시민들이 고용 불안을 느끼거나 비록 얼마 안 되나마 재산 손실을 걱정하며 더 나아가서는 물리적 생존까지 위협받는 처지에 있다. 자살률의 전례 없는 증가가 그 증거다.

세금 및 사회보장기금 미납액을 84개월[7년] 할부로 해결한다. 예상 수익 : 30억 유로.

다음의 조치들을 통해 연간 세금 징수(미납분의 5%-15%)가 보다 원활히 이뤄질 것이다 :

– 은행 계좌, 실거주 주택, 봉급 등의 압류 및 법률 제재를 즉각 중지한다. 미납세액 해결 절차에 참여하는 모든 이들에게 세금 완납 증명서를 발급한다.

– 미납세액 해결 절차에 참여하는 이들뿐만 아니라 현재 소득이 제로인 채무자에 대해 12개월간 법률 제재 및 강제 집행을 보류한다.

– 세금 미납자를 현행범 취급하는 위헌적 조치를 폐지한다.

– 법원에 구제를 신청하는 전제조건으로 미납세액의 50%를 우선 의무 납부해야 한다는 규정을 철폐한다. 우선 지불 여부는 법원이 결정하며, 그 금액도 채무자의 재정 상황에 맞춰 약 10-20% 수준으로 조정한다.

② 현행 통합자산세(ENFIA)를 즉각 철폐한다. 대신 고액 자산에 대한 세금을 신설한다. 주택에 대한 제곱미터 당 세율을 즉각 하향 조정한다. 예상 비용 : 20억 유로.
신설 자산세는 누진세이며 면세 한도를 높게 잡는다. 실거주용 주택은 과세 대상에서 제외한다. 단, 호화 주택은 예외다. 또한 중소 규모 자산도 과세 대상에서 제외한다.

③ 소득세의 경우 연 1만2,000 유로의 면세 한도를 부활시킨다. 누진 과세 강화를 위해 소득 구간을 세분한다. 예상 비용 : 15억 유로

④ 상환 불능 상태인 개인 및 기업 대출의 구조조정을 통해 채무자를 구제한다. 이러한 새로운 구제 법안에는 다음의 조치들이 포함된다: 현재 빈곤선 이하인 사람의 부채를 사안별로 일부 탕감한다. 동시에 미지불 부채의 전반적인 재조정을 통해 은행, 국가 및 사회보장기금에 대한 이자 지불액이 채무자 소득의 1/3을 넘지 않게 한다.

⑤ 우리는 민간 부채 처리를 위해 공적 중개 기구를 설립할 것이다. 이것은 통상의 ‘배드 뱅크[부실 채권 전담 은행]’가 아니다. 연체된 은행 대부 일체를 관리하는 기구이며 사회적 합의에 바탕을 둔 부채 해결 과정을 추진하는 은행 통제 기구다.

⑥ SYRIZA는 조만간 실거주용 주택의 압류를 무기한 보류하는 새로운 법안을 제출할 것이다. 그 총가치는 30만 유로를 넘지 않는 것으로 추산된다. 이 법안은 비은행 금융 기구[제2, 제3 금융권]나 기업이 자신들의 이익을 지키기 위해 채권과 토지 임대권을 양도하거나 매각하는 행위도 금지할 것이다.

⑦ 특수 목적 은행과 공공 개발 은행을 설립한다. 초기 자본으로는 10억 유로가 필요하다.

⑧ 최저임금을 751유로로 되돌린다. 비용 : 제로

 

셋째 축 : 일자리 회복을 위한 국가 계획

첫 해 예상 비용 : 30억 유로

 

4 시리자 지지층의 이념 성향 분포를 보여주는 그래프

시리자 지지층의 이념 성향 분포를 보여주는 그래프

경제의 모든 부문(민간 부문, 공공 부문, 사회적 경제 부문)에 걸쳐 30만 개의 일자리를 순증가시킨다. 이것이 우리의 일자리 회복 2개년 계획의 목표다.

장기 실업자, 특히 청년 실업자를 비롯해 55세 이상 연령층을 흡수하지 않고서는 이 계획을 실현시킬 수 없다. 이들은 경제가 성장하더라도 대개 실업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우리의 계획이 실현된다면 실업급여 수급자 수가 줄어서 이에 필요한 사회보장기금 예산도 절감하게 될 것이다.

긴축 정책을 실시하던 전임 정부들에 의해 파괴됐던 노동권 보장 제도들을 원상회복시킨다.

트로이카[유럽연합-유럽중앙은행-국제통화기금]와의 합의로 인해 변질됐던 단체협상과 노사중재를 원상회복시킨다.

대규모 부당 정리해고와 파견근로제를 허용하는 모든 법조항을 철폐한다.

비용은 모두 제로.

 

넷째 축 : 민주주의의 심화를 위한 정치 제도 변형

총 예상 비용 : 제로

 

SYRIZA 정부는 집권 첫 해에 국가의 제도적, 민주적 재구성 과정에 착수할 것이다. 우리는 대의 민주주의 제도의 권한을 강화할 것이다. 또한 새로운 직접 민주주의 제도를 도입할 것이다.

– 지방 정부 재편: 기초, 광역 지방자치단체의 투명성과 경제적 자주성 그리고 효율성을 강화한다. 우리는 직접 민주주의 기구의 권한을 강화하고, 새로운 직접 민주주의 제도를 도입할 것이다.

– 시민의 민주적 참여 강화: 시민이 직접 법률안을 제출하고 비토권을 행사하며 국민투표를 요구하는 등의 새로운 제도를 도입한다.

– 의회 권한을 강화한다. 동시에 의원의 면책 특권을 축소하고, 의원 기소를 금지하는 특별 법제를 폐지한다.

– 라디오/텔레비전이 모든 법률 조건과 엄격한 재정, 납세, 사회보장 기준을 준수하도록 규제한다. ERT(공공 라디오 및 텔레비전)를 원점에서 재설립한다[전임 우파 정부가 사유화한 바 있다].

 

타협할 수 없는 즉각적 사회 재건 조치들의 비용

 

위에서 인도적 위기를 해결하기 위한 즉각적 프로그램의 총비용과 더불어 부조리한 조세 정책을 폐지하는 데 드는 재정 비용을 추산했다. 이 비용은 다음의 조치들을 통해 충당할 것이다.

– 첫 번째 조치는 미납세액 해결 및 청산 절차다. 우리는 7개년에 걸쳐 총 680억 유로의 미납세액 중 최소 200억 유로를 징수할 계획이다. 이를 통해 첫 해에만 30억 유로에 가까운 자금을 국고에 더하게 될 것이다.

– 두 번째 조치는 탈세 및 밀수(가령 연료와 담배 밀수)와의 결전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재벌들과 일전을 벌일 단호한 정치적 의지가 필요하다.

– 공공 금융 중개 기구의 초기 자본과 공공 개발 은행 설립 비용으로 총 30억 유로가 든다. 이 비용은 이른바 ‘안정제’라 불리는 대략 110억 유로의 은행 구제용 ‘그리스 금융안정기금[2010년에 설립된 유럽연합 내 은행 구제 기금인 ‘유럽 금융안정기금(EFSF)’의 그리스 지원분]’으로부터 충당할 것이다.

– 일자리 회복 계획의 총비용은 50억 유로다. 제1차 실행년도의 비용은 그 중 30억 유로다. 첫 해에 10억 유로는 ‘국가별 전략 평가 기준[유럽연합의 통합을 강화하기 위해 조성한 기금의 각 국가별 사용 계획]’의 2007-2013년 ‘후속 계획’ 예산으로부터 충당할 것이고, 15억 유로는 이 기금의 2014-2020년 예산으로부터, 5억 유로는 여타 유럽연합 고용 지원 지금으로부터 충당할 것이다.

-이에 더해 연금제도를 복구하기 위해 엄청난 노력이 필요하다. 우리 정부는 공공 자산을 매각하는 대신 그 일부를 사회보장기금에 양도할 것이다. 이는 공적 연금의 일부 사유화에 따른 파괴적인 결과를 되돌리고 연금 제도를 복원하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조치다.

‘테살로니카 프로그램’의 총 예상 비용 : 113억8,200만 유로
총 예상 수익 : 120억 유로

2 포데모스의 유럽의회 선거 포스터

먼 좌파 이웃 좌파 ⑫ 포데모스, 21세기형 정치조직의 등장인가?

[2015.01 제16호 먼 좌파 이웃 좌파 ⑫]

포데모스, 21세기형 정치조직의 등장인가?

 

장석준|부대표

 

 

 

최근 우리말로 번역된, 20세기 유럽 사회주의 역사를 다룬 대작 《사회주의 100년》(황소걸음)의 서문에서 저자인 영국 역사학자 도널드 서순은 이렇게 말한다. “좌파의 전망은 암울하다. 좌파 정당들은 수세에 몰린 채 새로운 비전을 거의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방어 전략은 일시적일 때만 통한다. 정치의 핵심은 이기는 것이지 가만히 서 있는 것이 아니다.”(《사회주의 100년》 상권, 32쪽) 그러나 지금 적어도 유럽의 두 나라만은 이 문장에 들어맞지 않는다. 그리스와 스페인이다.

금융 위기의 직격탄을 맞은 그리스에서는 급진좌파연합(SYRIZA, 이하 ‘시리자’)이 여론조사에서 계속 1위를 기록하고 있다. 조기 총선이 실시된다면, 집권당이 될 가능성이 높다. 외채 상환을 놓고 유럽 금융 세력과 재협상을 벌이겠다는 이 정당이 집권하면 어떤 역사적 국면이 열릴지 모두들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다.

그리고 또 한 나라가 있다. 그리스와 마찬가지로 금융 위기의 한복판에 있는 스페인이다. 지금 이 나라에서는 창당한 지 1년도 안된 신진 정치 세력이 기성 양대 정당을 누르며 지지율 1위 정당으로 떠오르는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고 있다. “우리는 할 수 있다”는 뜻의 ‘포데모스(PODEMOS, 뒷부분은 ‘데모스(민民)’를 연상시키려는 의도가 있다)’라는 낯선 이름의 정치조직이 그 주인공이다.

 

흔들리는 스페인 사회 – 포데모스 약진의 배경

 

유럽의회 선거 결과를 짚은 지난 7월호의 글(“자본주의 위기 – 대중운동 = 극우파 약진”)에서 포데모스의 약진을 간단히 소개한 바 있다. 한데 이들을 제대로 알려면, 우선 요즘 스페인 상황을 이해해야 한다. 스페인은 1970년대 말에 독재 체제에서 민주 국가로 이행했다. 이때부터 지금까지 스페인 정치를 지배해온 것은 좌우 양대 정당, 즉 인민당(PP)과 사회주의노동자당(PSOE, 사회민주주의 정당)이다. 이 두 정당이 유럽연합의 북쪽 부자 나라들에 값싼 하청노동을 제공하는 스페인 자본주의를 이끌어왔다. 공산당(PCE)이 정당연합인 ‘연합좌파(IU)’를 결성해 이러한 양당 구도에 도전하기도 했지만, 이제까지 그 결과는 신통치 않았다.

2 포데모스의 유럽의회 선거 포스터

포데모스의 유럽의회 선거 포스터

그러나 2008년에 금융 위기의 소용돌이에 휩싸이면서 이 단단한 구조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한때는 금융 산업의 모범처럼 칭송받던 스페인의 거대 은행들이 무너졌다. PP 소속 마리아노 라호이 총리가 이끄는 우파 정부는, 우리가 이미 외환 위기 때 경험했던 것과 똑같이, 공적 자금으로 은행들을 구제했다. 긴축 정책을 통해 그 부담을 서민들에게 전가하면서 말이다. 은행 대출을 갚지 못한다는 이유로 50만 명이 집을 잃었다. 공식 실업률은 25퍼센트로 치솟았고, 25세 미만의 젊은 세대에서는 아예 절반이 실업자다.

이것만으로도 분노가 끓어오르기에 충분한데, 여기에 기름을 붓는 사건까지 터졌다. 왕실과 PP 정치인들의 부정부패가 폭로된 것이다. 주로 대형 국책 사업이나 관급 계약 비리를 통한 공금 횡령이었다. 수백 명의 정치인들이 기소됐고, 가뜩이나 긴축 정책으로 인심을 잃던 라호이 정부의 지지율은 곤두박질쳤다. 한데 그렇다고 해서 제1야당인 PSOE가 반사 이익을 얻은 것은 아니었다. PSOE 역시 이 당을 지지하는 노총(UGT)과 함께 비리에 연루돼있음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기성 ‘정치’를 대변하는 두 당이 모두 불신의 대상이 되고 만 것이다.

물론 다른 유럽 국가에서도 요즘 비슷한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하지만 스페인이 유독 다른 점은 이런 기성 체제에 대한 분노가 극우파 지지가 아니라 좌파 성향의 사회운동으로 폭발했다는 것이다. 무엇보다도 2011년부터 수도 마드리드의 푸에르타 델 솔 광장을 점거하고 있는 청년들의 ‘분노한 자들 운동’(5월 15일에 점거가 시작됐기 때문에 ‘5월 15일 운동’이라고도 불린다)이 있다. 전 세계에 “지금 당장 진짜 민주주의를!”, “1퍼센트 대 99퍼센트” 등의 구호를 유행시킨 바로 그 운동이다.

이들만이 아니다. 복지 사각지대에 놓인 2백만 실업자에게 최저 소득을 보장하라는 운동도 있고, 보건, 교육 등 공공 서비스의 예산 삭감에 반대하는 운동도 있다. 또한 혈세를 통한 은행 구제에 반대하는 ‘존엄을 지키는 행진’도 전개되고 있다. 왕실 비리가 드러난 뒤에는 왕정을 폐지하고 공화국을 수립하자는 제헌의회 소집 운동도 시작됐다. 민주화 이후 처음인 이러한 대중운동의 르네상스 속에서 새로운 정치 실험이 태동한 것이다.

 

누가 ‘스페인의 시리자’가 될 것인가

 

처음에는 IU가 이러한 분위기의 수혜자가 될 것처럼 보였다. IU가 ‘스페인의 시리자’가 될 거라고들 했다. 실제로 이제껏 5퍼센트 안팎에 머물던 IU의 지지율이 유럽의회 선거를 앞두고 10퍼센트 중반대로 상승하기도 했다.

3 포데모스의 얼굴 파블로 이글레시아스

포데모스의 얼굴 파블로 이글레시아스

그러나 IU와 최근의 사회운동, 특히 분노한 자들 운동 사이에는 차이와 긴장도 존재한다. 새로 운동에 참여한 젊은 세대는 민주화 이후에 굳어진 IU의 정치 문화(우리로 치면 ‘운동권 문화’)를 낯설어 했다. 이들에게 IU는 비록 가두 시위나 점거 투쟁에 함께 하기는 하지만 양대 정당과 마찬가지인 ‘기성’ 정치세력으로 보였다. 특히 비리 정치인 명단에 몇몇 IU 소속 인사도 이름을 올린 게 결정적이었다.

이런 분위기 속에 올해 1월, 아예 새로운 정치조직을 만들자는 호소문(“한 걸음을 내딛자 : ‘분노’를 넘어 ‘정치의 변화’로”)이 발표됐다. 이 호소문을 주도한 것은 두 세력이다. 하나는 마드리드 콤풀텐세 대학의 좌파 교수들이다. 이들 중 상당수는 사회운동에 적극 참여했을 뿐만 아니라 중남미 좌파 정부의 정책 자문역으로 활동하면서 베네수엘라의 볼리바르 사회주의 혁명 등으로부터 큰 영향을 받기도 했다.

그중 한 명이 포데모스 후보 명부 제1번으로 유럽의원에 당선돼 당의 간판 역할을 하고 있는 파블로 이글레시아스다. 이글레시아스는 젊은 경제학 교수일 뿐만 아니라 유명 방송인이기도 하다. 그는 인터넷 방송이나 케이블 TV의 토론 프로그램에서 사회운동의 입장을 대변하다가 공중파에까지 진출해 일약 스타가 됐다.

호소문의 또 다른 한 축은 트로츠키주의 성향(제4인터내셔널 통합서기국 소속) 정파인 ‘반자본주의 좌파(IA)’다. IA는 IU가 지방선거 등에서 PSOE와 전술적 연대를 하는 것을 비판하며 그간 IU에 참여하지 않고 있었다. 이들은 IU와는 별도로 새로운 급진좌파정당을 건설해야 한다는 취지에서 호소문에 동참했다.

 

4 유럽의회 선거운동 중인 포데모스와 이글레시아스

유럽의회 선거운동 중인 포데모스와 이글레시아스

호소문에 동의한 이들이 결성한 느슨한 전국적 네트워크가 바로 포데모스다. 유럽의회 선거 전에는 사실 아직 내부 조직 구조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였다. 그래서 IU와 선거연합을 맺을 가능성을 타진하기도 했다. 그러나 대중 참여 예비 경선(오픈 프라이머리)을 통해 후보를 선출하자는 포데모스의 제안을 IU가 반대하면서 선거연합은 무산됐다. 포데모스가 예비 경선을 대중 참여의 한 시도로 본 반면 IU는 “예비 경선은 미국의 발명품”(IU 사무총장 카요 라라)이라서 좌파정당에는 맞지 않다는 입장이었다. IU로 대표되는 구좌파와 새 세대 사회운동 사이의 시각 차이가 분명히 드러나는 대목이다.

아무튼 유럽의회 선거에서 IU는 10퍼센트를 득표해 6명의 당선자를 냈고 포데모스는 8퍼센트 가까이(125만 명) 득표해 5명을 당선시켰다. 이 결과만 놓고 보면 IU가 약간 앞선 셈이다. 그러나 이미 이때부터 세인의 이목은 온통 포데모스 쪽으로 향했다. 창당한 지 129일만에 주요 정치세력 중 하나로 우뚝 선 것은 누가 봐도 놀라운 일이었다. 그러나 진짜 파란은 오히려 이제부터 시작이었다. 포데모스 열풍은 선거 이후에 더 뜨겁게 달아올랐다.

 

‘좌파 대 우파’가 아닌 ‘민중 대 특권층’의 틀

 

5 포데모스 지역 서클의 시민 총회 (옥내)

포데모스 지역 서클의 시민 총회 (옥내)

포데모스의 실질적 창당은 유럽의회 선거 이후에 비로소 본격화됐다. 당원이 급증해서 현재 20만을 넘어섰다. 이는 PSOE 당원 수보다 더 많은 수치다. 이 중 절반이 인터넷(주로 페이스북)으로 가입한 당원이다. 또한 각 지역에 기존 정당의 지역조직에 해당하는 ‘서클’(베네수엘라의 볼리바르주의 서클에서 영향 받은)들이 조직돼서 현재는 900여 개에 달한다. 이들 서클은 별도의 대의 기구 없이 모든 당원이 참여하는 ‘시민 총회’를 통해 운영된다.

제2창당 작업은 10월에 마드리드에서 열린 ‘전국 시민 총회’(대회명은 “그래, 우리는 할 수 있다”였다)로 한 매듭을 지었다. 이 총회를 준비하기 위해 한 달 전인 9월에 포데모스의 정책 지향, 조직 구조, 행동 원칙에 대한 여러 입장이 문서로 제출됐다(제출자만 100여 팀). 온라인을 포함해 15만 명이 이들 문서에 대한 토론에 참여했고, 전국 시민 총회에는 8천여 명이 참석했다.

총회 토론 과정에서 이글레시아스를 중심으로 한 다수파(80퍼센트 넘는 압도적 지지)와 IA를 중심으로 한 소수파(12퍼센트의 지지) 사이의 격렬한 논쟁도 있었지만, 아무튼 이를 통해 중요한 정책 및 조직 원칙에도 합의하고 집행부도 꾸렸다. 이때 합의한 원칙 중에는 포데모스의 당직자, 공직자는 숙련 노동자 평균 임금만큼의 급여만 받는다는 것도 있고, 포데모스 당원은 최대 8년만 공직을 맡을 수 있으며 이후 10년간은 법인 이사나 감사를 맡을 수 없다는 것도 있다. 물론 공직자 소환제도 있다. 뜨거운 반부패 정치개혁 여론에 답하는 결정들이다.

전국 시민 총회 이후 실시된 여론조사에서 포데모스는 일약 최대 지지 정당으로 부상했다. 포데모스의 지지율이 27.7퍼센트에 이르러 PP, PSOE를 모두 제친 것이다. 분석에 따르면, 포데모스 지지자 중 가장 다수를 차지하는 것은 PSOE 지지에서 이동한 유권자들이라고 한다. 이와 비슷한 규모를 보이는 게 그간 선거에 불참했던 정치 실망층의 지지다. 물론 한때 10퍼센트가 넘어섰던 IU 지지층 중에서도 많은 수가 포데모스 지지로 돌아섰다.

이러한 믿기 힘든 돌풍을 낳은 요인은 도대체 무엇인가? 스페인 주류 언론은 주로 이글레시아스의 개인적 인기를 강조한다. 그러면서 이글레시아스가 중남미의 포퓰리즘을 유럽에 들여오려 한다고, ‘스페인판 차베스’가 되려 한다고 비난한다. 반면 IA를 비롯한 급진 좌파는 사회운동과 결합된 서클들의 역할에 주목한다. 포데모스 실험이 사회운동의 구조를 정치조직에 그대로 반영하는 ‘운동 정당’의 가능성을 보여준다는 것이다.

모두 나름 일리 있는 지적들이다. 그러나 이들 요소와 결합된 또 다른 중요한 요소가 있다. 그것은 포데모스가 기성 좌파에게 익숙한 틀을 넘어 정치적 대립과 동맹의 새로운 틀을 제시한다는 점이다. 포데모스는 ‘좌파 대 우파’ 대신 ‘낡은 정치 대 새 정치’, ‘민중 대 특권층’의 구도를 강조한다. 그러면서 ‘좌파 연합’이 아니라 ‘민중(서민) 연합’을 만들겠다고 천명한다. 덕분에 포데모스는 IU와는 달리 PSOE 왼쪽 정치 공간에 갇히지 않고 곧바로 스페인 정치의 중심을 새롭게 재편할 수 있었다.

이러한 접근법은 효과가 일시적일 수밖에 없다고 반론을 펼 수도 있다. 또한 창당한 지 몇 개월 안 된 정치 세력을 놓고 너무 커다란 의미 부여를 하는 것 아니냐고 의문을 표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데모스 현상이 미래 좌파 정치의 모색에 아주 중요한 참고 사례임을 부정할 수는 없다.

8 유럽의회 선거운동 중에 직접 현수막을 만드는 포데모스 당원들

유럽의회 선거운동 중에 직접 현수막을 만드는 포데모스 당원들

당장 이탈리아하고 비교해보자. 이탈리아에서는 기성 정치에 대한 불만이 코미디언 베페 그릴로가 이끄는 ‘5성 운동’의 모호한 선동 정치에 포획돼 있다. 아니, 이탈리아는 오히려 낫다. 요즘 많은 유럽 국가들(스웨덴까지도!)에서는 극우파가 이러한 정치 혐오를 부추겨 지지를 넓히고 있다. 그런데 스페인에서는 이런 대중 정서가 포데모스에 의해 변혁 정치의 갱생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게다가 포데모스의 ‘정치 혁명’은 먼 미래의 목표나 기대만은 아니다. 이들의 등장만으로 스페인 정치 전반이 바뀌고 있다. 예비 경선에 반대하던 IU는 뒤늦게 이 제도를 받아들였고 분노한 자들 운동을 통해 성장한 청년 세대(28세의 알베르토 가르손 의원이 그 대표적 인물) 중심으로 집행부를 교체하려 하고 있다. PSOE도 대중 참여 경선으로 젊은 사무총장(1972년생인 페드로 산체스)을 선출했다. 포데모스의 ‘정치 혁명’은 이미 현재진행형이다.

금속노조 조합원들의 파업 시위. EFF 지지 피켓도 보인다.

먼 좌파 이웃 좌파 ⑪ 남아공 금속노조, 새 좌파정당 창당에 나서다

[2014.08 제11호 먼 좌파 이웃 좌파 ⑪]

남아공 금속노조, 새 좌파정당 창당에 나서다

 

장석준|부대표

 

 

 

한국이 한창 세월호 참사의 충격에 휩싸여 있던 지난 5월 7일, 지구 반대편 남아프리카공화국에서는 총선이 있었다. 남아공은 대통령제이지만, 그 선출 방식이 독특하다. 마치 의원내각제처럼 의회가 대통령을 선출한다. 그래서 총선은 곧 대통령 선거의 성격도 띤다. 한편 의원은 완전 정당명부비례대표제로 선출된다.

아파르트헤이트 체제(흑백 인종 분리제)가 무너지고 보통선거가 처음 실시된 1994년 이후 선거 때마다 항상 압도적인 의석을 차지한 것은 반아파르트헤이트 투쟁의 역사적 구심 ‘아프리카민족회의’(ANC, 사회주의 인터내셔널에 가입해 있다)였다. 그래서 아프리카민족회의가 대통령 후보를 선출하면 이 후보가 곧바로 대통령이 됐다. 이번 선거에서도 늘 그랬듯이 ANC가 과반수를 점해 ANC 소속인 전임 제이콥 주마 대통령이 재집권했다.

이렇게만 말하면 별다를 게 없는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렇지 않다. ANC가 여전히 60% 이상을 득표했지만, 득표율은 계속 줄어드는 추세다. 2004년 총선에서는 69.7%였던 것이 2009년에는 65.9%가 됐고, 이번에는 62.2%가 나왔다.

 

제이콥 주마 현 대통령. 뒤로 보이는 것이 ANC 깃발이다.

제이콥 주마 현 대통령. 뒤로 보이는 것이 ANC 깃발이다.

ANC의 득표율이 낮아지는 만큼 그 표는 ANC 이탈 세력이 만든 새로운 흑인 중심 정당으로 향했다. 2009년 선거에서는 그 대상이 ANC 우파가 탈당해 창당한 ‘민중회의’(COPE)였다면, 올해 선거에서는 그 좌파가 떨어져 나와 건설한 ‘경제자유전사들’(EFF)이었다. EFF는 이번에 6.35%를 득표했다. 선거 이전 여론조사에서 10% 대 지지율을 보였던 데 비하면 좀 낮은 수치이지만, 처음 선거에 뛰어든 정치세력으로서는 분명 놀라운 결과였다.

한데 변화의 조짐은 이것만이 아니다. ‘남아공노동조합회의’(COSATU, 이하 코사투) 소속인 ‘전국금속노동조합’(NUMSA)은 선거가 끝나자마자 오히려 더 분주히 움직이고 있다. 다음 선거에서는 새로운 노동자정당을 창당해 대응하겠다며 준비에 착수한 것이다. 남아공의 민주노총 격인 코사투는 그간 ANC를 적극 지지해왔었다. 그런데 그 핵심 노조가 ANC와의 결별을 선언한 것이다. 도대체 지금 남아공에서는 무슨 일들이 벌어지고 있는 것인가?

 

삼각 동맹 내 좌파인 주마 동맹의 등장과 와해

 

민주화 이후 남아공의 집권 세력을 흔히 ‘삼각 동맹’이라고 한다. ANC-COSATU-SACP의 동맹이다. 이 중 마지막의 SACP는 ‘남아공 공산당’을 뜻한다. 공산당은 반아파르트헤이트 투쟁에서 ANC의 중요한 동반자였다. 그래서 당 조직을 따로 하면서도 선거에는 공산당 후보가 ANC의 공천을 받아 출마한다. 우리에게는 아주 낯선 관행이다. 아무튼 이 삼각 동맹이 남아공의 ‘정통 민주 진보’ 세력이다.

민주화 직후만 하더라도 삼각 동맹은 ‘민족민주혁명(NDR)’이라는 이름 아래 대안적인 발전을 추진하고 이를 기반으로 다음 단계, 즉 사회주의로 나아가겠다고 기염을 토했었다. 그러나 막상 집권하고 나서는 당시의 전 세계적 대세였던 신자유주의를 그대로 따랐다. 단지 기득권 집단 안에 백인뿐만 아니라 신흥 흑인 부르주아가 참여하기 시작한 게 변화라면 변화였다. 이 점에서 ANC의 첫 흑인 대통령 넬슨 만델라의 행보는 한국의 김대중과 아주 유사했다.

삼각 동맹을 이루는 세 조직의 로고. 왼쪽부터 코사투, 공산당, ANC.

삼각 동맹을 이루는 세 조직의 로고. 왼쪽부터 코사투, 공산당, ANC.

흑백 간의 불평등은 조금 완화된 듯 보였지만, 사회 전체를 가로지른 불평등은 오히려 민주화 이전보다 더 심각해졌다. 상위 10%가 국부의 절반 이상을 쥐고 있는 데 반해 하위 10%는 불과 1.2%를 벌어들일 뿐이다. 당연히 유색인 ‧ 노동자 대중의 분노가 끓어오를 수밖에 없다. 만델라의 뒤를 이어 보다 강력하게 신자유주의 정책을 펼친 타보 음베키 대통령이 이 분노의 첫 번째 타깃이 됐다.

2007년 12월 ANC 당대회는 예년과 달리 격렬한 정치 투쟁의 장이 됐다. ANC 청년동맹(ANCYL)과 코사투, 공산당이 음베키 정부의 경제 사회 정책을 비판하며 반대 연합을 구축했다. 이들의 구심 역할을 한 것은 ANC 안에서 음베키 대통령의 최대 정적이었던 제이콥 주마였다.

‘주마 연합’의 위력은 막강했다. 이들은 당대표 선거에서 현직 대통령 음베키를 물리치고 주마를 대표에 앉혔다. 당이 대통령을 버린 것이다. 음베키는 결국 차기 총선을 9개월 앞둔 2008년 9월에 대통령직에서 스스로 물러난다. 이후 음베키 지지 세력은 ANC에서 집단 탈당해 위에 소개한 COPE(이념은 일종의 ‘제3의 길’ 지향)를 창당하게 된다.

이때만 해도 삼각 동맹의 새 흐름에 대해 상당한 기대가 있었다. 주마 연합의 지도자들은 삼각 동맹이 애초의 민족민주혁명 강령을 되살려 탈신자유주의 방향으로 나아갈 것이라고 호언했다. 마침 남아공 밖의 세계는 미국 발 금융 위기로 휘청대고 있었다. 2009년 선거로 드디어 주마가 대통령이 되자 남아공은 다시 세계인의 눈길을 모았다.

그러나 현실은 정반대로 치달았다. 2012년 8월, 전 세계는 남아공에서 들려온 끔찍한 소식에 커다란 충격을 받았다. 초국적 기업 론민이 소유한 마리카나 광산에서 경찰이 파업 노동자들에게 발포해 38명이 살해당했다. 아파르트헤이트도 끝났고 혁명 투사들이 집권했다는데, 노동자 학살이 벌어졌다. 이 사건과 함께 민주화 이후 남아공의 실상, 또한 뭔가 전환을 추진하는 듯 보였던 주마 연합의 실상이 만천하에 드러났다.

주마 연합 쪽의 ANC 지도자들도 실은 신흥 흑인 엘리트층의 일원이었다. 누구보다 주마 자신이 그런 인물이었다. 일단 경쟁 분파(음베키 세력)를 몰아내고 나자 이들 역시 만델라-음베키 정부의 정책 기조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 대해 주마 연합의 다른 구성원들은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EFF를 새로 창당한 줄리어스 말레마. 차베스를 연상시키는 베레모를 썼다.

EFF를 새로 창당한 줄리어스 말레마. 차베스를 연상시키는 베레모를 썼다.

우선 공산당은 주마 정부를 끼고 돌았다. 공산당은 주마의 집권과 함께 주요 장관 자리를 차지했다. 과거에는 삼각 동맹 내 하위 파트너에 불과했다면 이제는 삼각 동맹의 주도 세력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공산당은 모처럼의 권력을 손에서 놓고 싶지 않은 듯 보인다. 그래서 마리카나 광산 사태에 대해서도 경찰과 파업 노동자들을 놓고 양비론적 태도를 보였다.

이와 상반되는 대응은 ANCYL 쪽에서 나왔다. 이 조직의 카리스마적 지도자 줄리어스 말레마(1981년생)사 주마 대통령으로부터 돌아섰다. 주마 연합 그리고 더 나아가서는 ANC 전체가 집권 전의 대의를 저버렸다고 공공연히 비판하고 나섰다. 마리카나 사태 때는 주요 정치가 중 유일하게 현장을 방문해 ‘광산 국유화’ 구호를 외쳤다. 결국 그는 ANC를 뛰쳐나와 EFF를 창당했고, 이 당이 이번 선거에서 유력한 신진 정치 세력으로 부상한 것이다.

 

금속노조, 새로운 노동자 정치세력화를 향해 나서다

 

그럼 이제 남아공의 희망은 말레마와 EEF에 있는가? 그렇다고 말하기에는 미심쩍은 대목이 많다. 말레마는 젊은 시절의 주마를 연상시키는 선동 정치인이다. 그가 신자유주의에 반대하는 것은 맞지만, 그 출발점은 흑인 민족주의다. 그것도 모든 인종의 공존을 추구하던 ANC의 민족주의보다 오히려 후퇴한 ‘배타적’ 흑인 민족주의다. 말레마의 이런 면모는 그가 장기 독재를 위해 백인 반대 선동을 이용하는 짐바브웨의 무가베 정권을 지지하는 데서 잘 드러난다.

코사투 대의원대회 모습.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바비 사무총장이다.

코사투 대의원대회 모습.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이 바비 사무총장이다.

우리가 더 주목해야 할 것은 주마 연합의 또 다른 한 축, 즉 코사투다. 주마 정권 출마 이후에 코사투는 공산당과 달리 정권을 비판하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이런 비판에 앞장선 것이 사무총장 즈웰린지마 바비(광산노조 출신)다. ANC, 공산당에게는 이런 바비가 눈엣가시였다. 이런 갈등이 마침내 2013년 대의원대회에서 폭발했다. 반바비파가 바비의 성폭행 혐의를 폭로하며 사무총장 자격을 정지시켰다.

바비의 혐의는 현재 재판 중이다. 유무죄는 아직 결론 나지 않았다. 하지만 코사투 내의 9개 노조는 이 논란이 애당초 주마 정권의 정치적 의도에 의해 불거진 것이라며 처음부터 반발하고 나섰다. 그 중에서도 선봉에 선 것이 바로 NUMSA, 즉 금속노조였다. NUMSA는 내친 김에 주마 정권에 맞선 총공세에 나섰다. 2013년 12월의 NUMSA 대의원대회는 ANC와 공산당에 대한 정치자금 기부 중단을 결의했다. 삼각 동맹에서 탈퇴한 것이다. 그리고 2014년 3월에는 정부 정책에 반대하는 총파업을 벌였다.

금속노조 조합원들의 파업 시위. EFF 지지 피켓도 보인다.

금속노조 조합원들의 파업 시위. EFF 지지 피켓도 보인다.

비록 직접 발단은 코사투 상층 활동가들 사이의 알력이었지만, 일단 풀어헤쳐진 실타래는 그런 제한된 수준을 넘어선다. NUMSA가 차지하는 위상 자체가 만만치 않다. NUMSA(현 사무총장 짐 어빈)는 조합원 34만 명으로, 코사투 내 최대 노조다. 또한 반아파르트헤이트 투쟁 때부터 코사투 내에서도 가장 전투적이고 좌파적인 노조로 유명했다. 그래서 공산당으로부터 ‘노동자주의 편향’이라는 비판을 받기도 했다. 삼각 동맹 비판과 탈퇴가 결코 돌발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이야기다.

NUMSA는 이미 선거 전부터 ANC, 공산당을 넘어서는 새로운 정치세력화를 추진하겠다는 결의를 분명히 했다. 다만 준비가 부족해 이번 선거에 직접 뛰어들지는 않았고, 당장은 당이 아니라 연합전선 형태로 세력을 모으겠다는 입장이다. NUMSA는 이를 위해 조만간 ‘사회주의 대회’를 소집하기로 결정했다. 이 자리에서 새 노동자정당 창당의 방향과 일정을 잡겠다는 것이다. NUMSA는 이미 민주화 시기(1994년)에도 ‘사회주의 대회’를 열어 조합원들의 참여 아래 민주화 이후의 사회 변혁 전망을 토론한 경험이 있다.

NUMSA가 새 노동자정당 창당의 참고 사례로 언급하는 것은 ‘브라질, 베네수엘라, 볼리비아, 그리스’다. 이 목록을 보면 이들의 지향이 어떠한 것인지 대략 감을 잡을 수 있다. 무엇보다도 삼각 동맹의 역사적 과오 및 한계와 단절해 남아공 좌파 정치의 제2기를 새로 열려는 의지를 확인할 수 있다. 지금 남아공에서는 만델라의 죽음과 함께 한 시대가 저물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렇게 새 시대의 미명이 서서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2 유럽의회 선거 승리에 환호하는 프랑스 국민전선 대표 마린 르펜

먼 좌파 이웃 좌파 ⑩ 자본주의 위기 – 대중운동 = 극우파 약진

[2014.07 제10호 먼좌파 이웃좌파 ⑩]

자본주의 위기 대중운동 = 극우파 약진

유럽의회 선거 결과, 어떻게 볼 것인가

 

장석준|부대표 

 

 

 

한국에서 지방선거 기간이던 5월 25일에 유럽 여러 나라에서는 유럽의회 선거가 있었다. 이미 국내 언론을 통해서도 많이 알려진 바대로, 선거 결과는 가히 충격적이었다. 한 마디로 “극우파 대약진”이었다.

유럽의회 선거 승리에 환호하는 프랑스 국민전선 대표 마린 르펜

유럽의회 선거 승리에 환호하는 프랑스 국민전선 대표 마린 르펜

대표적인 나라가 프랑스다. 이 나라에서는 인종주의 정당인 국민전선(FN)이 26%를 획득하며 최대 득표 정당이 됐다. 투표자 네 명 중 한 명이 명백히 파시즘에 뿌리를 둔 정당을 선택한 것이다. 프랑스만 그런 게 아니었다. 영국에서도 극우 배외주의 입장에서 유럽 통합에 반대하는 영국독립당(UKIP)이 26% 이상을 득표하며 1위에 등극했다. 근대 민주주의의 발상지라고 자부하는 이 두 나라에서 극우파는 지금 역사상 최대의 세력을 과시하고 있다.

영국과 프랑스는 예외가 아니라 대표 사례다. 거의 모든 유럽 국가에서 이번 선거의 최대 승자 혹은 화제의 대상은 극우 정당이었다. 덴마크에서 1위를 기록한 것은 극우 인민당이고, 오스트리아에서도 프랑스 국민전선과 마찬가지로 파시즘에서 발원한 자유당이 20%에 가까운 지지를 얻으며 기염을 토했다. 벨기에와 네덜란드에서도 선거 내내 무슬림 이주민에 대한 공포를 선동한 정당들이 10% 이상의 지지층을 모으며 약진했다.

대놓고 나치식 경례를 하는 그리스 황금새벽 당원들

대놓고 나치식 경례를 하는 그리스 황금새벽 당원들

이러한 성공 대열에는 아예 공공연히 파시즘/나치즘을 내세우는 정당들도 있다. 대표적으로, 암살 등 폭력 행위로 불법화 위험에 놓인 그리스의 네오 나치 정당 ‘황금 새벽’은 이번에 당당히 9.38%를 득표했다. 2009년 유럽의회 선거에서 고작 0.46%의 득표율을 보였던 데 비하면, 놀라운 성장이다. 나치즘의 본고장 독일에서도 네오 나치 세력에 뿌리를 둔 민족민주당(NDP)이 당선자를 배출했다.

 

그리스 급진좌파연합 그리고 스페인 좌파의 약진

 

그렇다고 해서 범좌파가 패배했냐면, 그것은 아니다. 사회민주주의 정당들의 유럽의회 교섭단체인 ‘사회주의 ‧ 민주주의 진보 연합(S&D)’, 녹색당과 지역분리주의 정당들의 교섭단체 ‘녹색-유럽자유연합(Green-EFA)’ 그리고 급진좌파 정당들의 교섭단체 ‘유럽 연합좌파-북유럽 녹색좌파(GUE-NGL)’의 의석수를 모두 합치면 의석 점유율이 이전의 37.6%에서 38.5%로 도리어 늘어났다. 득표율과 의석수가 현저히 줄어든 것은 이주민 반대 선동에서 극우파와 경쟁 관계에 있는 보수우파 정당들이다.

범좌파의 지분이 줄어들기보다는 조금이나마 늘어난 것은 특히 급진좌파 정당들의 선전 덕분이었다. 그 가장 상징적인 결과가 그리스 급진좌파연합(SYRIZA, 이하 시리자)의 승리다. 시리자는 26.6%를 얻어 현 집권 우파 신민주당(ND)을 3% 차이로 따돌리며 자국 내 제1당의 지위를 다졌다. 2012년 두 번의 총선에서와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그리스의 제1좌파 정당은 사회민주주의 정당 ‘범그리스사회주의운동(PASOK)’이 아니라 시리자임이 확인됐다. 재정 위기와 긴축 정책에 맞서 대중운동과 긴밀히 결합하며 대안을 제시하려 한 노력의 결실이다.

유럽의회 선거를 통해 제1당으로 부상한 것을 자축하는 시리자. 가운데가 알렉시스 치프라스

유럽의회 선거를 통해 제1당으로 부상한 것을 자축하는 시리자. 가운데가 알렉시스 치프라스

유럽의회 선거가 시작되기 전부터 이러한 시리자의 성공이 유럽 여러 나라 신진 좌파들에게 희망의 횃불이자 구심점 역할을 했다. 이번 유럽의회 선거에서는 처음으로 각 교섭단체가 유럽연합 집행위원장 후보를 사전에 지명해 이 후보를 전면에 내세우며 선거운동을 펼쳤다. 한데 GUE-NGL은 다름 아닌 시리자의 젊은 당대표 알렉시스 치프라스를 집행위원장 후보로 내세웠다. 이에 따라 각 나라 급진좌파 정당들의 선거운동은 곧 치프라스-시리자 지지 운동이 됐다. 시리자가 상징하는 정치적 미래가 그리스뿐만 아니라 유럽 전체의 쟁점으로 부상한 것이다.

그리스만큼이나 인상적인 결과를 보인 곳은 스페인이다. 스페인 역시 지난 몇 년간 재정 위기와 긴축 정책으로 고통 받은 나라다. 이 나라에서 시리자와 비슷한 위상과 성격을 지닌 정치세력은 ‘연합좌파(IU)’다. 시리자처럼 사회민주주의 왼쪽의 여러 좌파 정당들(대표적으로 공산당), 정파들이 모여 만든 독특한 정치조직이다. 이 ‘스페인판 시리자’가 이번 선거에서는 더 많은 세력들을 결집시켜서 ‘다원 좌파’라는 이름으로 나섰고, 10%(6석)를 득표했다. 지난 번 선거 결과가 3.7%(2석)였으니 상당한 약진이다.

그런데 스페인의 ‘시리자’는 하나가 아니라 둘이다. 수도 마드리드의 푸에르타 델 솔 광장을 점거하고 ‘분노한 자들’ 운동을 펼친 젊은이들 사이에서 최근 ‘우리는 할 수 있다(Podemos, 이하 ‘포데모스’)’라는 이름의 새 정치조직이 출범했다. 창립한 지 얼마 되지도 않은 이 조직이 이번 선거에서 돌풍을 일으켜 8%(5석)를 획득했다. 2011년을 후끈 달궜던 점거운동(Occupy Movement)의 정치세력화인 셈이다.

포데모스 창립대회 (사진 속 인물은 창당을 주도한 파블로 이글레시아스)

포데모스 창립대회 (사진 속 인물은 창당을 주도한 파블로 이글레시아스)

포데모스가 따로 조직된 것은 그만큼 젊은 세대가 좌우를 막론한 기성 정치를 혐오한다는 사실을 반영한다. 하지만 점거운동에서 비롯된 포데모스의 정치색은 역시 급진적 좌파다. 아직은 유럽의회 내 어느 교섭단체에도 속해 있지 않지만 결국 GUE-NGL을 선택할 것이라는 전망이다. 만약 연합좌파와 포데모스가 이후 긴밀한 협력 관계를 구축하게 된다면, 그리스에서처럼 이들이 기존 좌파 제1당인 사회주의노동자당(PSOE, 사회민주주의 정당)을 제치고 위기 이후의 대안으로 떠오를지 모른다.

 

좌파 정당의 분열을 우회한 이탈리아의 실험

 

또 다른 주목할 만한 성과는 이탈리아에서 3명의 좌파 유럽의회 의원이 당선된 것이다. 한때 유럽에서도 좌파 세가 가장 강했던 이 나라에서는 구 공산당의 맥을 이은 민주좌파당(PDS)이 몇 년 전 중도우파와 합당해 당명에서 ‘좌파’를 떼어낸 뒤(현 민주당) 제도 정치 안에서 ‘좌파’ 간판이 사라져버리고 말았다. 우리로 치면, 진보정당들이 새정치민주연합에 흡수된 격이다. 그나마 ‘좌파/생태/자유(SEL)’과 ‘공산주의재건당(PRC)’이 좌파의 명맥을 잇고 있지만, 원내 소수파이거나 원외 정당 신세다. 더구나 일련의 통합-분당 과정을 겪으면서 감정의 앙금이 쌓여 새로운 질서를 만들기도 쉽지 않다. 여러 모로 지구 반대편 또 다른 반도 국가의 진보 세력을 연상시킨다.

한데 이번 유럽의회 선거를 앞두고 새로운 조직 ‘다른 유럽-치프라스와 함께’가 만들어졌다. 또 다른 정당은 아니고 순전히 유럽의회 선거에 대응하기 위한 조직이다. 이탈리아에서는 이 조직이 치프라스 선거운동을 벌이면서 동시에 민주당 왼쪽의 단일 후보 명부를 제시했다. 내용적으로는 좌파/생태/자유와 공산주의재건당이 결합한 선거연합이라고도 볼 수 있지만, 철저히 개인 회원 가입을 원칙으로 했다. 정당 간 긴장을 최소화하려는 시도였는데, 상당히 성공했고, 덕분에 당이 아니라 사회운동이 주도하는 모양새가 나타났다. 아마도 이탈리아에서는 이번 성과가 좌파의 조직적 재구성에 중요한 계기가 될 것이다.

지금까지 언급한 나라들은 모두 유럽 경제 위기의 한복판에 있는 남유럽 국가들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좌파 내부의 중심 이동 경향이 이 지역에 제한된 것은 아니다. 남유럽은 아니지만 역시 재정 위기를 겪고 있는 아일랜드에서도 피네 게일(중도우파)-노동당(사회민주주의) 연정의 긴축 정책에 정면으로 맞선 좌파 민족주의 정당 신페인당이 20% 가까이 득표하며 노동당을 제치고 좌파 제1당으로 부상했다.

경제 위기를 비껴난 스웨덴에서도 좌파 지지층 내의 미묘한 변화가 감지된다. 올해 가을 총선을 앞둔 스웨덴에서는 사회민주당+녹색당+좌파당의 좌파연합이 여론조사에서 계속 확고한 우위를 점하고 있어서 좌파로의 정권 교체가 예상된다. 그런데 좌파연합 내부를 들여다보면, 사회민주당 지지율은 정체 혹은 감소하는 반면 그만큼 녹색당(11%대), 좌파당(8-9%대) 지지층은 늘어나는 양상이다. 유럽의회 선거에도 이런 경향이 반영됐는데(사회민주주의 이외의 범좌파가 25% 이상 차지), 특히 좌파 여성주의를 표방한 원외 정당 ‘페미니스트 이니셔티브’가 5.3%를 얻어 한 명의 유럽의회 의원을 배출한 것이 특기할 만하다.

8 스웨덴 페미니스트 이니셔티브의 첫 유럽의회 의원 소라야 포스트

스웨덴 페미니스트 이니셔티브의 첫 유럽의회 의원 소라야 포스트

 

역사의 전진과 후퇴를 가르는 것은 대중운동

 

유럽의회 선거 결과를 보면, 확실히 1930년대의 악몽이 떠오른다. 한 세기 전 자본주의의 위기는 불행히도 파시즘의 (일시적) 승리로 이어졌다. 이번에도 유럽 대륙에서는 경제 위기가 인종주의와 배외주의 정서를 부추기고 있으며 이것이 정치적으로는 극우파의 약진으로 표출된다.

그러나 이것은 철의 법칙이 아니다. 전혀 다른 양상을 보이는 나라들도 있다. 그리스에서는 ‘황금 새벽’이 창궐하기도 하지만 그보다 더 빠른 속도로 시리자가 성장했다. 스페인에서는 극우 선동 정치의 조짐은 아직 보이지 않으며 반면에 급진좌파의 르네상스가 전개되는 중이다. 이 나라들이 다른 유럽 국가들과 다른 점은 단 하나다. 금융 ‧ 재정 위기에 맞서 일찍부터 대중운동이 활기차게 벌어졌다는 점이다. 특히 스페인에서는 젊은 세대의 ‘분노한 자들’ 운동이 노동자들의 반긴축 투쟁과 만나 화학 작용을 일으켰고, 이를 바탕으로 연합좌파나 포데모스가 급성장했다.

즉, ‘자본주의 위기 – 대중운동 = 극우파의 약진’이지만 ‘자본주의 위기 + 대중운동 = 대안 좌파의 성장’이다. 역사의 후퇴와 전진을 가르는 결정 요인은 위기 자체가 아니라 진보적 ‧ 민주적 대중운동인 것이다. 진부한 이야기처럼 들릴지도 모른다. 하지만 이것은 어쩌면 우리보다 조금 먼저 위기를 맞이한 것일 뿐인 유럽 사회가 지금 우리에게 전하는 다급하고 절실한 메시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