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리자의 재집권(?)

[2015.11 제25호 먼 좌파 이웃 좌파]

시리자의 재집권(?)

 

안효상|편집위원

 

 

 

브레히트가 《갈릴레오의 생애》에서 쓴 “이성의 승리는 이성적 사람들의 승리이다”라는 말은 직설법 문장임에도 현실의 무자비한 힘을 고려할 때 두 가지 점에서 재검토되어야 한다. 과연 이성이 승리하는가? 그리고 이성적인 사람들은 누구인가?

 

환상으로 부서진 이성

 

올해 초 그리스 총선에서 시리자가 승리했을 때 그 기쁨을 떠받친 것은 ‘반긴축’이라는 분명한 대안이었다. 이는 당연하게도 2010년부터 시작된 구제금융이 낳은 반민중적 효과를 교정하려는 급진좌파의 ‘이성적인 결론’이었고, 이에 대중이 호응했던 것이다. 이렇게 해서 시리자는 이성적인 사람들로 등장했다. 그 이후 이 이성적인 사람들은 유로그룹과의 협상에서도 이성적인 태도로 임했다. 이들은 유로존에서 나가지 않으면서도 긴축기조를 제거함으로써 그리스 민중의 삶을 돌려놓으려 했다.

하지만 후일 바루파키스 전 재무장관 등이 밝힌 바에 따르면 이 협상 과정은 전혀 이성적이지 않았다. 그리스에 가혹한 구제금융 조건을 강요할 경우 민중의 삶은 완전히 파탄날 것이라는 인도주의적 호소, 또한 이를 막기 위해 불가피하게 그렉시트를 할 경우에는 유로존 자체가 위기가 빠질 것이라는 이성적인 예측에 기초한 설득 모두가 채권자들의 이해관계에 부딪혀 산산조각이 났고, 결국 시리자는 굴복했다.

물론 그리스 민중의 지지를 받아 권력의 자리에 오른 시리자가 그냥 굴복할 수는 없었다. 부채탕감은 없이 더 많은 긴축만이 있을 뿐인 채권자들의 요구를 받아들일지 말지를 두고 치프라스 총리는 국민투표라는 수단을 동원했다. 이때 그리스 민중은 다시 한 번 이성적인 선택을 했다. 제3차 구제금융 협상안에 반대하는 것은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나간다는 뜻이며, 더 나아가 유럽연합에서 탈퇴한다는 의미라는 유럽과 그리스 내 우파언론의 집중포화에도 불구하고 투표자의 61퍼센트가 반대(OXI)를 선택했고, 그럼으로써 이들은 인간의 존엄한 삶을 지키겠다고 뜻을 모았다. 이렇게 1월 25일은 7월 5일로 이어졌다.

사진1: 그리스 구제금융 국민투표를 앞두고 거리에 나란히 붙은 구제금융 협상안 찬성(NAI) / 반대(OXI) 홍보포스터

사진2: 7월 5일 시행한 구제금융 국민투표 결과. 전체 투표율 62.5퍼센트 중 투표자의 61퍼센트가 구제금융 협상안 반대에, 39퍼센트가 찬성에 투표했다.

그런데 치프라스 총리는 이런 국민투표를 한낱 에피소드로 만드는 데 한시도 주저하지 않았다. 제3차 구제금융 협상안을 받아들임으로써 이미 채권단에 굴복했던 치프라스는 국민투표의 결과에도 불구하고 자신만이 이성적인 사람인 체 했다. 유로존에서 나가는 것은 생각할 수 없는 일이며, 협상안을 받아들이는 것 이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는 것이 그의 이성이었다.

이에 대해 많은 사람들은 그가 이런 태도를 취한 이유가 (좌파) 유럽주의에 사로잡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빚을 갚기 위해서라도 그리스가 유로존에서 탈퇴하는 것이 현재로서는 적절한 방법이다. 사실 유로존이 출범할 때부터, 서로 다른 경제적 힘이 있는 나라들을 하나의 공통 통화로 묶을 경우 개별국가가 경제적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적절한 통화정책을 취할 수 없다는 우려가 제기되었다. 여기에 더해, 특히 독일의 요구로 엄격한 재정정책까지 요구되었기 때문에 개별국가는 경제운영과 관련해서 사실상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되어버렸다. 그리스는 이런 유로존의 문제점이 가장 분명하게 드러난 곳일 뿐이다.

물론 유럽연합으로 표현된 유럽통합은 전쟁을 억지하고 공동의 번영을 가져오겠다는 이상으로 추동되었다. 20세기 전반에 민족들 간의 경쟁에 따른 두 차례의 참혹한 전쟁을 겪은 유럽으로서는 어쩌면 다른 선택이 없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오늘날의 유럽연합과 유로존은 주로 신자유주의적 정책을 구현하는 제도로서 기능하고 있으며, 그 때문에 전쟁 억지와 공동 번영이 아니라 도리어 국내외의 갈등을 부추기고 있는 실정이다. 따라서 적극적인 의미에서의 그렉시트, 즉 개별국가가 경제와 통화 발행에 대한 주권을 회복하는 것이 겉보기에는 후퇴처럼 보이지만 지금의 난제를 해결하는 우회로가 될 수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늘어난 것이다.

이렇게 또 다른 이성이 있었고, 이를 주장하는 사람들이 많은 수는 아니지만 치프라스의 노선에 반대하여 시리자를 나갔다. 이로 인해 시리자-그리스독립당 연립정권은 재구성되어야 했고, 8월 20일 치프라스 총리가 사임하면서 조기 총선이 열리게 되었다.

 

환상 속의 이성

 

유로존을 탈퇴하겠다는 실질적인 계획이 없이는 구제금융을 둘러싼 협상조차 제대로 하기 어려운 것은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치프라스나 시리자 정부 내 유럽주의 온건파가 그런 상황이었고, 그 결과는 앞서도 말했듯이 굴복이었다.

하지만 당시에는 드러나지 않았거나 조심스럽게만 말해졌지만, 그런 계획이 없었던 것은 아니다. 대표적인 것이 시리자 내 좌파그룹인 ‘좌파 플랫폼’의 코스타스 라파비차스의 계획안이었다. 올봄에 라파비차스는 독일의 동료 경제학자인 하이너 플라스벡과 함께 <그리스를 위한 사회적·민족적 구조 프로그램>을 작성했다. 이 프로그램은 유럽통화동맹 내에서는 부채탕감, 긴축제거, 회원국 자격 유지 세 가지를 동시에 만족시킬 수 없다는 것을 기본 전제로 한다. 이른바 “불가능한 3요소”이다. 따라서 민중의 삶을 우선시하는 급진적인 정부라면 앞의 두 가지, 즉 부채탕감과 긴축제거를 선택해야 한다고 이 프로그램은 권고한다.

 

사진3: 코스타스 라파비차스 (Costas Lapavitsas)

 

이에 따라 통합된 방책들로는 “부채를 탕감하고, 균형예산을 거부하며, 은행을 국유화하고, 조세개혁을 통해 소득과 부를 재분배하고, 최저임금을 인상하며, 노동관계 법률을 회복하고, 공공투자를 늘리며, 사적영역과 공적영역의 관계를 재규정하는 것”을 든다. 또한 이러한 방책들은 유로존이라는 엄격한 틀 내에서는 채택할 수 없는 것이므로 국가통화를 재도입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그리고 유럽통화동맹에서 나오는 과정을 29단계로 나누어 설명한다.

그런데 당시에 이 프로그램은 공적토론이라는 연옥에조차 끼어들 수 없었다. 저마다 이유는 다르지만 좌우를 막론하고 그리스 정치계급 모두가 통화동맹에서 나간다는 것을 꿈조차 꾸지 못했기 때문이다. 또 치프라스 등 시리자 주류가 이성이라는 무기로 채권단을 설득하려 했기 때문이고, 아직 그리스 국민 다수가 이에 희망을 걸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6월말에 구제금융 협상안이 나왔을 때 환상은 깨졌고, ‘반대’라는 이성이 공적인 자리를 차지했다. 하지만 치프라스는 이를 다시 자신의 환상적인 이성으로 바꿔치기했다. 그리고 여기에 저항하는 또 다른 이성적인 사람들은 8월에 ‘민중연합’을 구성했다.

민중연합은 시리자 내 좌파 플랫폼 출신 사람들을 중심으로 해서 치프라스의 ‘투항’에 반발하는 사람들이 만든 정치연합이었다. 이들이 모인 구심점은 원래 시리자가 했던 약속, 즉 긴축정책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그리고 앞서 라파비차스의 프로그램에서 제시된 유로존 탈퇴 및 경제적 주권 회복이다.

앞서 말한 “불가능한 3요소”를 고려하면 이성적인 선택이고, 적절한 대안이라 할 수 있다. 하지만 9월 20일 조기 총선의 결과는 또 다른 이성의 시간이 도래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이성과 환상의 교착

 

9월 20일에 있었던 선거 결과, 시리자는 35.5퍼센트를 득표해서 전체 300석 가운데 145석을 획득했다. 지난 번 정부에서 연정을 한 그리스독립당은 3.7퍼센트 득표로 10석을 얻었다. 두 당은 지난번과 마찬가지로 이번에도 연정을 구성했다.

하지만 이런 선거 결과만큼이나 눈에 띄는 것은 56.6퍼센트에 머무른 투표율이다. 이는 1974년 민주화 이래 가장 낮은 투표율이며, 지난 1월 총선의 63.6퍼센트와도 비교되는 수치이다. 이는 국민투표 결과가 손쉽게 뒤집히는 것을 눈앞에서 본 대중이 정치에 무관심해지는 탈정치화 혹은 비정치화의 결과라 할 수 있다.

신민당, 사회당, 공산당 등의 기존 정당은 비슷한 결과를 얻었지만, 새로이 반긴축을 내건 민중연합은 2.9퍼센트를 얻어 의회의 문턱을 넘지 못했다. 이는 절대적 시간 부족이라는 상황적 요인과 이른바 ‘플랜 B’를 분명하게 제시하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다시 말해 민중연합의 일부는 앞서 살펴본 프로그램을 분명하게 자기주장으로 삼고는 있지만 이를 대중적인 의제로 아직 구성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투표에 나선 그리스 국민은 최선은 물론 아니고 차선도 아닌 차악을 선택했다고 할 수 있다. 이때 기준은 누가 분명한 대안을 제시하느냐가 아니고 그저 현 상황을 누가 더 잘 관리할 수 있는가이다. 이렇게 시리자는 재집권했다. 이런 점에서 지금은 교착상태이다.

물론 시리자의 재집권을 정권의 연장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지난 1월 총선부터 8월말 치프라스가 사임할 때까지 시리자가 보여준 궤적은 글로벌 자본주의 시대이자 경제위기 시기의 ‘개혁주의’가 헤라클레스의 과제라는 것을 보여준다. 다시 말해 개별국가가 기존의 위치를 지키면서 어느 정도의 경제적 주권을 발휘해서 민중의 존엄한 삶을 지키려는 시도는 글로벌 자본주의의 방파제에 부딪혀 산산이 부서질 운명이라는 것이다.

 

사진4: 9월 20일 조기총선에서 시리자가 승리함으로써 총리로 재신임을 받은 치프라스

 

그렇다고 간단하게 국제주의를 주장한다고 될 일은 아닌데, 왜냐하면 그 구체적인 계기를 포착하는 것이 중요하지 공허한 슬로건을 말한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현재 그리스의 상황을 보면 그런 계기가 아주 멀 것 같지는 않다. 지난 5년 동안 그리스는 긴축정책으로 인해 대다수의 소득이 격감했고, 그 결과 전체 3분의 1 이상이 빈곤선 아래에서 말 그대로 연명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시리자-그리스독립당 연립정부는 10월 16일에 구제금융의 조건이 되는 첫 번째 긴축안을 의회에서 통과시켰다. 아마 어려운 상황이 지속될 것이다.

물론 집권 시리자는 조세개혁과 부패척결로 상황을 돌파하려고 한다. 하지만 부패와 낮은 세금이 그리스 상층 엘리트가 그동안 이윤을 확보해온 일상적 방식이라는 점을 염두에 두면 쉬운 과제가 아니다. 게다가 유로존 통합 이후 그리스에 투자한 유럽자본은 기존 체제에 끼어드는 방식으로 일을 벌였기 때문에 이런 개혁에 찬성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니 제3차 구제금융에 따른 긴축안이 효과를 발휘할 때 다시금 민중적 저항이 벌어질 수밖에 없을 테고, 여기에 누가 이성적인 대안을 제출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이다. 물론 이때의 대안은 무조건적인 유럽주의를 버리는 데에서 출발해야 한다. 그럴 때 나머지 유럽의 좌파가 어떻게 호응할지는 또 다른 문제로 남을 것이다.

120쪽 사진

제레미 코빈(Jeremy Corbyn)은 노동당을 바꿀 수 있는가?

[2015.09·10 제24호(합본호) 먼 좌파 이웃 좌파 ⑱]

제레미 코빈(Jeremy Corbyn)은 노동당을 바꿀 수 있는가?

 

안효상|편집위원

 

 

 

지난 9월 12일, 예상대로 그것도 59.5퍼센트 득표라는 압도적인 성적으로 제레미 코빈이 노동당 대표로 선출되었다. 여기서 “예상대로”라는 말은 《더 타임즈》가 여론조사기관에 의뢰해서 실시한 7월 중순의 여론조사에서 코빈이 당시 유력 후보였던 앤디 버넘(Andy Burnham)을 상당한 차이로 따돌린 이후의 상황을 말한다. 6월 3일, 코빈이 “분명한 반긴축 정책”을 내걸고 당 대표 선거에 나가겠다고 했을 때만 해도 그는 사실상 주변부 인물에 불과했다. 심지어 후보가 되기 위해 필요한 노동당 의원 35명의 추천을 받는 일조차 ‘강성 좌파’(hard left)라 불리는 그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청년층을 중심으로 수많은 지지자들이 몰려들고, 유나이트(Unite the Union)와 유니즌(Unison) 등 주요 노조가 그를 지지하기로 하면서, 다크호스에 불과했던 코빈은 말 그대로 태풍을 일으키기 시작했고, 결국 당 대표가 되었다.

코빈이 돌풍을 일으키며 당 대표가 될 ‘위험’이 보이자, 토니 블레어(Tony Blair) 전 총리를 비롯한 노동당의 우파와 중도파 지도자들은 그의 당선을 막기 위한 신성동맹이라도 결성한 듯 발언을 쏟아냈다. 블레어는 코빈을 겨냥해서 “노동당은 중도로 가야 승리할 수 있으며” “1980년대 좌파 공약으로 돌아간다면 앞으로 20년간 권력을 잡을 수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더 나아가 코빈이 당 대표가 되면 다음 선거에서 그냥 패배가 아니라 당이 “궤멸하고 소멸”할 것이라고 저주를 퍼부었다. 이런 식의 포격은 계속 이어져, 어떤 노동당 의원은 코빈의 당선을 “노동당의 자살”이라고까지 말했다.

 

전통

 

토니 블레어가 먼저 1980년대 운운하긴 했지만, 신드롬이라고까지 할 만한 제레미 코빈의 부상을 보며 많은 사람들은 토니 벤(Tony Benn)을 떠올렸다(당 대표라는 자리를 감안하면 1930년대에 대표를 했던 조지 랜스베리(George Lansbury)가 있다). 토니 벤은 한때 벤주의자(Bennites)라는 말까지 만들어낼 정도로 인기가 있었던 대표적인 노동당 내 좌파 정치가로서, “각료직을 맡고 난 후 더 왼쪽으로 간 몇 안 되는 영국 정치가 가운데 한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으며 1980년대 초반 노동당의 혁신과 좌경화를 주도했던 인물이다.

토니 벤

토니 벤

대처주의가 본격화되던 1980년 당 대회에서 토니 벤은 기조연설을 통해 노동당이 집권하면 산업 국유화, 자본 통제, 산업 민주주의를 실현해야 하며, 상원을 폐지하고, 당시 유럽공동체로부터 모든 권한을 가져와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을 실현하기 위해 토니 벤은 다음 해에 당 부대표에 출마했지만, 현직 부대표인 데니스 힐리(Denis Healey)에게 1퍼센트라는 근소한 차이로 패배했다. 이후 노동당은 점점 오른쪽으로 갔고, 결국 토니 블레어의 ‘제3의 길’이라는 수정주의로 전환했다. 덕분에 노동당은 웨스트민스터와 다우닝가 10번지로 돌아올 수 있었다.

실패하긴 했지만, 토니 벤의 시도는 노동당을 영국에 사회주의적 변화를 가져올 수 있는 동원의 매개로 변화시키려는 것이었다. 이때 노동당의 변화란, 당이 사회주의적 지향을 분명히 하고 당내 민주주의를 확대하는 것이었다. 이런 변화를 가로막은 것은 ‘의회주의’와 이미 기성의 일부로서 정치계급이 되어버린 의원단과 (우파와 중도파의) 지도부이다. 이런 시도는 대처 집권에 맞서 급조된 것이 아니다. 여기에는 더 오랜 기원이 있다. 바로 1960년대 신좌파, 베트남전쟁 반대 운동, 핵무기 폐지 운동, 여성 운동, 일반화된 참여민주주의의 이상 등이다.

이런 흐름으로 볼 때 코빈은 분명 노동당 내 좌파의 적자라 할 수 있다. 블레어 시절 폐기된 노동당 당헌 4조(국유화 조항)의 부활 약속을 상징으로 하는 주요 산업 국유화, 대학등록금 폐지, 핵잠수함 현대화 반대 및 핵무기 폐지, 민중적 양적 완화 등 말 그대로 ‘사회주의적 지향’과 ‘반긴축’을 내걸었다는 점에서 그렇다. 또한 당내 민주주의의 확대 및 사회운동의 활성화를 또 다른 목표로 제시했다는 점에서도 그러하다.

 

인격

 

전통은 끊임없이 변주된다. 아니 그럴 때에만 전통을 형성할 수 있다고 할 때 제레미 코빈의 특유함은 주목할 만하다. 의회정치라는 기준으로 보면, 그는 평범한 백벤처(backbencher)이자 그림자 내각에도 들어간 적이 없는 노동당 의원이다. 그는 카리스마가 강한 연설가가 아니며, 자신을 잘 드러내지 않는 겸손한 인물이다. 또한 명문대 출신도 아니고 ‘전문가’도 아닌, 그러니까 오늘날 노동당 의원 다수와 지도부를 구성하는 인물들의 서클에서 벗어나 있는 사람이다. 이런 이유로 선거 초기에 대다수 언론은 그를 그리 눈여겨보지 않았다.

그런데 “평범한 삶을 살아왔다”고 말하는 그에게 수많은 젊은이들이 열광했다. 전임 당 대표인 에드 밀리반드(Ed Miliband)가 총선에서 끌어오겠다고 한 그 사람들이 에드보다 훨씬 나이가 많은 이 평범한 정치가에게 몰려든 것이다. 평범한 분석이지만, 이 평범한 사람의 진실함, 감수성, 열정에 끌렸을 것이다. 코빈은 1949년 생으로, 6.8세대라 할 수도 있고 포스트 6.8세대라고도 할 수 있다. 고등학교 졸업 후 2년간 해외 봉사활동을 하고, 공공노조와 섬유노조의 상근자로 사회활동을 시작한 코빈은 1974년에 런던 해링게이(Haringey) 지방의원으로 선출되면서 정치가가 되었다. 1981년에는 토니 벤을 지지했고, 런던 이즐링턴(Islington) 지역구 서기로 선출되었다. 이후 1983년에 런던 이즐링턴 노스(Islington North)에서 의원으로 당선된 이래로 지금까지 지역구를 지키고 있다.

제레미 코빈

제레미 코빈

의원으로서의 코빈은 ‘5백 번 이상’이나 당의 결정과 반대되는 표결을 한 것으로 유명하다. 물론 그는 이를 “양심에 따른” 것이라 말한다. 그의 양심과 감수성은 포스트6.8 혹은 포스트신좌파의 지향을 여러 모로 드러내는 그의 활동과 태도에서 더 잘 드러난다. 그는 1970년대 중반 아일랜드공화군(IRA)의 테러사건 용의자로 몰린 사람들을 위해 일했고, 남아프리카의 아파르트헤이트에 반대했으며, LTGB의 권리를 옹호했고, 아프가니스탄 전쟁과 이라크 전쟁에 항의했다. 개인적으로 그는 스무 살 때부터 채식주의자가 되었다고 하는데, 그건 돼지 농장에서 일한 경험에서 나온 판단이었다.

이렇게 평범하지만 우리 시대 좌파의 윤리적 기준에 부합하는 삶을 살아왔기 때문에 코빈은 수많은 젊은이들과 지지자들을 모을 수 있었다. 또한 그는 평범한 선거운동을 벌였다. 지난 30년간 영국의 선거운동은 이른바 선거 전문가들이 기획한 일종의 조작화된 활동이었다. 이른바 포커스 집단을 설정하고, 메시지 선정을 분명하게 하며, 상대방의 발언을 즉각 반박하는 팀을 운영하고, BBC 뉴스 시간에 맞추어 연설을 하는 등등 안무하듯 선거운동 판을 기획했다. 코빈은 이를 정반대로 뒤집었다. 그는 BBC 뉴스 시간을 무시하고 런던시민의 퇴근 시간에 맞추어 옥외유세를 벌였다. 내용적으로도 상대 후보에 대한 인격적 공격과 네거티브 공세는 전혀 하지 않고, 오직 자신의 정책과 계획을 알리는 데만 집중했다. 하지만 사람들은 그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고, 그를 위해 일하러 왔다. 선거운동 기간 동안 16,241명의 자원봉사자가 코빈을 도왔다.

 

상황

 

코빈에 대한 대중적 지지가 탄력을 받은 때는 7월 초에 주요 노조들이 그를 지지하기로 결정하면서부터이다. 그런데 이 일은 꼭 코빈이 잘해서 그런 것만은 아니었다. 초기에 노조들은 버넘을 대안으로 생각했다. 하지만 자신이 좌파 후보로 보이는 것을 두려워했던 버넘은 이들의 지지 제안을 거절했다. 그러자 노조의 지지가 코빈에게 간 것이다.

노동당 내 주류의 이런 감수성과 태도는 선거운동 기간 중에 있었던 의회 표결에서도 나타났다. 보수당 의원이자 노동과 연금부 장관인 이아인 던컨 스미스(Iain Duncan Smith)가 발의한 대표적인 긴축 법안인 ‘복지 개혁과 노동법’에 대해 노동당 지도부는 기권 지시를 내렸다. 하지만 코빈은 다른 47명의 노동당 의원과 함께 반대표를 냈다. 물론 버넘을 비롯하여 이번 노동당 대표 선거에 나선 다른 세 명은 지도부의 지시대로 기권을 했다.

59.5퍼센트 득표의 압도적인 비율로 당선된 제레미 코빈

 

이런 모습은 이후 노동당의 집권 전망과 관련해서 ‘중앙으로 가야 하는가, 아니면 왼쪽으로 가야 하는가?’라고 묻는 전통적인 질문과 연관되어 있다. 그리고 블레어 등은 전통적인 질문에 맞는 인습적인 대답을 한 셈이다. 하지만 이번 당 대표 선거가 있게 한 지난 총선 결과, 그리고 이런 결과를 낳은 상황은 좀 다른 그림을 그리게 한다.

 

지난 5월에 있었던 총선에서 노동당은 전체 650석 중에서 232석을 얻었고, 보수당은 330석을 얻어 예상과 달리 과반을 확보했다. 하지만 득표율을 보면 보수당 36.8퍼센트 대 노동당 30.5퍼센트이다(영국은 악명 높은 소선거구제이다). 이는 이전 총선에서 얻은 득표보다 각각 0.8퍼센트와 1.5퍼센트를 더 얻은 결과다. 득표율로만 따지면 어느 당도 이전보다 나아진 결과물을 얻지 못했다. 나머지 유권자는 스코틀랜드 국민당(4.7퍼센트), 자유민주당(7.9퍼센트), 영국독립당(12.7퍼센트), 녹색당(3.8퍼센트) 등에 표를 던졌다. 이런 결과는 영국이 여전히 강고한 양당체제를 유지하고 있지만, 스페인, 그리스, 이탈리아를 비롯한 유럽 여러 나라에서 나타나는 ‘새로운 정치’의 징후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그저 중앙으로 가는 것만으로 집권을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제레미 코빈이 부상한 이유는 그의 “분명한 반긴축 정책”이 사람들에게 호소력이 있었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2008년 이후 지속된 경제위기 속에서 진행된 긴축 정책에 대한 반감이 코빈이라는 인격 속에서 집중점을 발휘했다고 할 수 있다. 정치적 입장은 다르지만 로버트 스키델스키(Robert Skidelsky) 같은 학자도 코빈의 경제 정책을 긍정적으로 검토한다. 이에 비해 이번 당 대표 선거에 나섰던 나머지 세 후보나 토니 블레어 같은 인물은 밑에서 끓고 있던 이른바 민심을 전혀 다른 식으로 읽었다고 할 수 있다. 하기야 그들은 ‘제3의 길’의 성공과 엘리트 정치가에 대한 믿음으로 너무나 거만해져 있었으니까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하지만 누구나 알고 있듯이 코빈이 당 대표가 된 것은 시작에 불과하다. 토니 블레어가 한 말 중에 가장 그럴듯한 것이 “나라를 바꾸는 것보다 당을 바꾸는 게 더 어렵다”는 말이다. 이미 노동당 의원들을 중심으로 당 대표 코빈에 대한 일종의 보이콧 움직임이 있다. 물론 압도적인 지지로 당선되었기 때문에 당장 코빈의 지도력이 흔들리지는 않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목표가 자신의 말처럼 현재의 노동당으로 집권하는 것이 아니라 노동당을 사회운동으로 전환하는 것이라면, 가야 할 길이 멀고 험난하다. 이것이 노동당을 ‘복원’하는 것이건, ‘갱신’하는 것이건, 아니면 완전히 새로운 정당을 만드는 것이건 간에 새로운 사회운동적 기반이 필요하다면 거쳐야 할 연옥이다.

 

먼좌파 사진4_배지

미국 대선 ‘사회주의자’ 후보 버니 샌더스의 정책

23호(2015년 8월) 먼 좌파 이웃 좌파 ⑰

미국 대선 ‘사회주의자’ 후보 버니 샌더스의 정책

 

장석준|기관지위원

 

 

 

지금 미국에서는 2016년 대통령 선거의 예비경선이 한창 진행 중이다. 공화당은 후보가 10명 안팎으로 북적대지만, 민주당은 시작 전부터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의 독주 양상이었다. 그런데 싱겁게 끝날 것만 같던 민주당 경선에 난데없는 바람이 일었다.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이 민주당 경선에 뛰어들어 클린턴 후보를 맹추격하기 시작한 것이다.

1981년 벌링턴 시장에 당선된 뒤 환호하는 샌더스와 지지자들

1981년 벌링턴 시장에 당선된 뒤 환호하는 샌더스와 지지자들

샌더스 의원은 본래 민주당원이 아니라 무소속이다. 1941년생인 그는 동년배의 다른 많은 미국인들이 그랬던 것처럼 베트남 반전운동으로 정치에 처음 뛰어들었다. 1981년에 그는 버몬트 주 벌링턴 시에서 무소속으로 시장에 당선됐다. 지금도 그렇지만 이때도 그는 자칭 ‘민주적 사회주의자’였다. 이런 사람이 다른 시절도 아니고 한창 레이건 보수혁명이 시작되던 미국에서 자치단체장에 당선됐으니 화제가 되지 않을 수 없었다. 실제로 그는 택지 개발 사업을 서민을 위해 공공적 방식으로 추진하는 등 많은 인상적인 개혁 행정을 펼쳤고, 그래서 보수 언론은 ‘벌링턴 인민 공화국’이라 비아냥거리기도 했다. 버몬트 주에서는 이 성과를 바탕으로 버몬트 진보당이라는 진보정당이 등장했다. 그리고 샌더스는 연방 하원의원에 당선돼 중앙정치에 진출했다.

이후 하원의원을 거쳐 상원의원에까지 이르렀지만, 샌더스의 행보는 한결 같았다. 미국의 이라크 침략을 반대했고, 금융 위기 때는 긴축 정책을 성토했다. 특히 오바마 식 반쪽짜리 의료보험이 아니라 제대로 된 전 국민 의료보험 제도 도입을 위해 앞장서고 있다. 그런 그가 이번 민주당 대선 예비경선에 뛰어든 것이다.

민주당 대선 예비경선에 뛰어든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민주당 대선 예비경선에 뛰어든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무소속 진보파가 민주당 경선에 참여한 데 대해서는 물론 말들이 많다. 실망하고 비난하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양당 체제가 너무나 강력한 미국에서 진보정치가 좀 더 많은 대중에게 다가가기 위해 어쩔 수 없는 선택이라는 목소리도 만만치 않다. 샌더스 자신은 이번 경선을 오바마 정부에 대한 실망으로 의기소침해 있는 사회운동 진영에 다시 활기를 불어넣는 기회로 삼겠다고 밝혔다. 지금까지의 성과를 보면 이런 샌더스의 포부가 일정하게 실현되는 모양새다. 6월의 위스콘신 주 비공식 투표에서는 샌더스 후보가 클린턴 후보를 겨우 8% 차이로 바짝 추격하기까지 했다(41% 획득).

그럼 샌더스 후보는 어떠한 비전과 정책을 제시하고 있는가? 여기에 그의 기본 정책을 소개한다. 웬만한 요즘 유럽 사회민주주의 정당들(가령 영국 노동당)보다 훨씬 더 좌파적이고 공세적인 내용이다. 우리가 ‘샌더스 바람’에 주목해야 할 또 다른 이유다.

 

미국을 위한 의제

1. 우리의 무너지는 인프라스트럭처를 재건하자

우리의 중요한 투자 대상은 우리의 무너지는 인프라스트럭처, 즉 도로, 교량, 수도 시스템, 하수 처리장, 공항, 철도 그리고 학교를 재건하는 일이다. 우리가 결코 저지르지 말았어야 할 부시와 체니의 이라크 전쟁에 든 비용은 참전 용사들이 죽을 때까지 받을 복지 비용까지 다 합쳐서 총 3조 달러에 달한다. 반면 인프라스트럭처에 1조 달러만 투자해도 1300만 개의 괜찮은 임금 수준의 일자리를 창출할 수 있으며 이 나라를 보다 효율적이고 생산적으로 만들 수 있다. 우리는 전쟁이 아니라 인프라스트럭처에 투자해야 한다.

2. 기후 변화를 역전시키자

미국은 기후 변화 역전의 선도국이 되어야 하며, 이 행성이 우리의 자녀와 손자가 살만한 곳이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우리는 우리의 에너지 시스템을 화석 연료에서 에너지 효율성과 지속 가능 에너지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 수백만 가옥과 건물이 내후성(耐候性)을 갖추어야 하며, 우리의 교통 시스템은 에너지 효율성을 높여야 한다. 또한 우리는 풍력, 태양, 지열, 바이오매스 등등의 지속 가능 에너지에서 이미 확인하고 있는 진보를 한층 가속화해야 한다. 에너지 체제 전환은 단지 환경 보호만이 아니라 좋은 임금 수준의 일자리 창출로 이어질 것이다.

3. 노동자 협동조합을 만들자

우리는 일자리 창출과 생산성 향상을 위해 새로운 경제 모델을 발전시켜야 한다. 일자리를 중국과 여타 저임금 국가로 옮겨버리는 기업들에 대규모 법인세 감면을 베풀 게 아니라 노동자 소유 협동조합을 설립해 스스로 사업을 꾸려나가길 원하는 노동자들에게 재정 지원을 제공해야 한다. 노동자들이 자신이 일하는 기업의 소유에 참여할 경우에 생산성이 상승하고 결근이 줄어들며 직무 만족도도 높아진다는 것은 수많은 연구 결과들이 입증하는 바이다.

4. 노동조합운동을 성장시키자

단체교섭을 통해 임금 및 수당을 올릴 수 있는 조직 노동자들은 미조직 노동자들에 비해 소득 수준이 상당히 높다. 오늘날 노동조합 조직화에 저항하는 기업 때문에 노동자가 노동조합에 가입하는 게 무척 어려운 일이 되어버렸다. 노동자들이 쉽게 노동조합을 결성할 수 있도록 노동법을 바꿔야 한다.

버니 샌더스를 영화 백 투 더 퓨처 등장인물로 묘사한 선거운동용 티셔츠 도안

버니 샌더스를 영화 백 투 더 퓨처 등장인물로 묘사한 선거운동용 티셔츠 도안

5. 최저임금을 올리자

현재 시간당 7.25 달러인 연방 최저 임금은 기아 임금이다. 우리는 생활 수준에 맞춰 최저 임금을 인상해야 한다. 이 나라에서 일주일에 40시간 일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도 빈곤에 내몰리지 않아야 한다.

6. 여성 노동자에게 동일 임금을

오늘날 여성 노동자의 평균 소득은 남성 노동자의 78% 수준이다. 우리는 이 나라에 임금 평등을 실현해야 한다. 동일 노동 동일 임금 원칙을 관철하자.

7. 미국 노동자들에게 이익이 되는 무역 정책

2001년 이후 이 나라에서는 6만 개가 넘는 공장이 사라졌고, 490만 개가 넘는 괜찮은 제조업 일자리가 사라졌다. 우리는 미국 기업들이 국내 공장을 폐쇄하고 중국 및 여타 저임금 국가들로 떠날 수 있게 해주는 파괴적인 무역 정책들(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중미자유무역협정CAFTA, 중국에 대한 항구적 정상무역관계PNTR 협정[무역 상의 최혜국 지위 부여] 등)을 중단시켜야 한다. 우리는 바닥을 향한 경쟁을 중단시켜야 하며, 미국 기업들이 해외가 아니라 국내에 일자리를 창출하도록 요구하는 무역 정책들을 발전시켜야 한다.

8. 누구나 돈 걱정 없이 교육 받을 수 있는 대학을 만들자

오늘날의 고도 경쟁 지구 경제에서 수백만 미국인들은 좋은 임금 수준의 일자리를 얻기 위해 필요한 고등 교육을 받을 여유가 없다. 또한 노동계급 가정의 대다수가 맞벌이 부부인 상황에서 돈 걱정 없이 자녀를 맡길 질 좋은 보육 시설을 찾기 힘들다. 미국에는 보육에서 고등 교육까지 누구나 돈 걱정 없이 받을 수 있는 질 좋은 교육이 필요하다. 이런 질 좋고 돈 걱정 없는 교육 시스템이 없다면, 우리는 지구 경제에서 버텨나갈 수 없고 우리의 생활수준은 계속 추락하기만 할 것이다.

먼좌파 사진5_선거운동

샌더스의 상원의원 선거운동

9. 월스트리트를 손보자

은행의 역할은 자본이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생산적 활동으로 흘러들어가도록 만드는 것이다. 금융 기관들은 고립된 섬처럼 실물 경제로부터 동떨어져 높은 이윤을 좇아선 안 된다. 오늘날 월스트리트의 6대 금융 기관들이 국내총생산의 61%에 해당하는(9조 8천억 달러가 넘는) 자산을 보유하고 있다. 이들 기관은 이 나라의 대출 담보 중 절반 이상 그리고 신용카드의 3분의 2 이상을 떠안고 있다. 이러한 월스트리트 주요 기업들의 탐욕과 몰염치 그리고 불법 행동이 이 나라를 1930년대 이후 최악의 금융 위기에 몰아넣었다. 이들은 개혁되기에는 너무도 막강하다. 해체해야만 한다.

10. 보건은 만인의 권리

미국은 보건이 만인의 권리이지 특권이 아니라는 것을 확인하며, [전 국민 의료보험 제도를 지닌-역자] 다른 산업국들의 대열에 합류해야 한다. 4천만이 넘는 미국인들이 의료보험이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1인당 의료 비용 지출은 다른 나라에 비해 거의 두 배에 달한다. 우리는 전 국민 의료보험 제도를 확립해야 한다.

11. 가장 취약한 계층을 보호하자

수백만 노령층이 빈곤 상태에 있고, 아동 빈곤율은 주요 국가 중 가장 높다. 우리는 사회안전망을 약화시킬 게 아니라 더욱 보강해야 한다. 사회 보장, 노령층 의료보장(Medicare), 빈곤층 의료보호(Medicaid), 급식 프로그램의 예산을 깎을 게 아니라 오히려 더욱 확대해야 한다.

12. 조세 제도를 제대로 개혁하자

부와 소득이 극도로 불평등한 이런 상황에서는 소득별 누진 조세 시스템을 도입해야만 한다. 높은 수익을 거두는 기업들이 연방 소득세를 전혀 내지 않으며 이 나라의 기업 CEO들이 자기 비서보다 더 적은 세금을 내는 경우가 많다는 사실은 용납될 수 없다. 기업과 부유층이 전 세계의 조세 도피처에 현금을 은닉하는 바람에 매년 1천억 달러 이상의 세수가 빈다는 것은 말도 안 된다. 제대로 된 조세 개혁을 더 이상 늦출 수 없다.

의사당 앞 집회에서 연설하는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의사당 앞 집회에서 연설하는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먼좌파 사진5_선거포스터

먼 좌파 이웃 좌파 ⑯ 보수와 석유의 장기 지배에 마침표를

22호(2015년 7월) 먼 좌파 이웃 좌파 ⑯

보수와 석유의 장기 지배에 마침표를

캐나다 앨버타 주 선거

 

장석준 _ 기관지위원

 

 

 

올해는 유독 여러 나라에 굵직굵직한 선거가 많다. 최근 몇 주만 봐도 그렇다. 5월 24일 스페인에서 지방선거가 있었다. 며칠 뒤인 6월 7일에는 터키가 총선을 치렀다. 스페인에서는 포데모스를 비롯한 여러 좌파 세력들이 결성한 선거연합이 양대 도시, 마드리드와 바르셀로나에서 집권에 성공했다. 터키에서는 피억압 소수민족 쿠르드인들과 좌파, 여성운동, 성소수자운동의 열렬한 지지를 받은 신생 좌파정당 인민민주당(HDP)이 단번에 10% 넘게 득표하며 주요 야당으로 부상했다. 지중해 서쪽 끝과 동쪽 끝에서 모두 거센 변화의 바람이 일었다.

이 두 선거 소식에 가려 잘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또 다른 대륙에서도 비슷한 돌풍이 불었다. 5월 5일에 캐나다의 앨버타 주는 주의회 선거를 실시했다. 캐나다는 중앙정부뿐만 아니라 지방자치단체도 내각책임제를 따른다. 주의회 다수당이 주정부를 구성하고, 다수당 대표가 주지사(정확히는 주총리) 역할을 맡는다. 이번 선거는, 미국식으로 표현하면 앨버타 주지사 선거였던 셈이다.

신민주당 로고

신민주당 로고

그런데 선거 결과가 놀라웠다. 앨버타에서는 지난 44년 동안 쭉 ‘앨버타 진보보수연합’(참 요상한 이름인데, 성격은 그냥 ‘보수당’이다)이 여당이었다. 그 전에도 이 주에서는 비슷한 성격의 보수정당들이 장기 집권했다. 그래서 앨버타는 캐나다에서 흔히 보수의 아성으로 통한다. 오죽 하면 ‘캐나다의 텍사스’라고 하겠는가. 하지만 이 역사는 올해로 끝나고 말았다. 사회민주주의 정당인 신민주당(New Democratic Party, NDP)이 40.57%를 득표하며 집권당이 됐기 때문이다(총 87석 중 54석 – 소선거구제라서 득표율과 의석이 비례하지 않는다).

더욱 놀라운 것은 신민주당이 지난 2012년 선거에서는 9.82%를 득표하며 4석을 차지하는 데 그쳤다는 점이다. 신민주당이 이미 집권한 바 있는 온타리오 주 등 캐나다의 다른 지역과는 달리 앨버타에서 이 당은 만년 소수정당에 불과했던 것이다. 한데 불과 3년만에 주의회에서 안정 다수를 확보한 강력한 집권당으로 도약했다. 어떻게 이런 약진이 가능했을까?

 

미국과는 다른 길을 걸은 캐나다 그리고 NDP

 

앨버타의 정치 격변을 살피기 전에 먼저 짚어볼 게 있다. 캐나다의 정치 지형과 신민주당의 역사다. 캐나다는 이웃 나라 미국과 마찬가지로 각급 선거의 선출 방식이 다 소선거구제다. 신생정당이 기존 거대정당들의 틈을 비집고 성장하기 쉽지 않은 조건이다. 따라서 캐나다의 정치 지형도 미국과 같은 양대 보수정당 독점 체제일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실제로 오랫동안 그래왔다. 보수당(앨버타의 지역정당인 진보보수연합과는 다른 정당이며 미국의 공화당에 가깝다)과 자유당(미국의 민주당 격)이 정치권을 양분해온 것이다.

그러나 미국과는 확연히 다른 게 있다. 미국은 양대 보수정당의 지배가 철옹성인 데 반해 캐나다는 그렇지 않다. 캐나다의 보수당-자유당 양당 체제는 수십 년 전부터 조금씩 균열을 보였다. 그 균열의 한 쪽 출발점은 퀘벡 주다. 프랑스어 사용 인구가 다수 거주하는 퀘벡 주에서는 1960년대부터 좌파 성향의 분리주의 세력이 급성장했다. 그래서 이제 퀘벡에서는 영어 사용 인구가 주도하는 중앙정치의 정당 구도가 먹히지 않는다.

균열의 또 다른 출발점은 전국적인 제3당 신민주당의 등장이다. 비록 당명은 우파인지 좌파인지 헷갈리지만, 신민주당은 영국 노동당처럼 노동조합운동의 조직적 지지에 바탕을 둔 사회민주주의 정당이다. 이 당이 등장하고 성장한 것이야말로 캐나다 현대사가 미국과는 다른 길을 걷게 된 결정적인 요인이다.

실은 그 전에도 캐나다에는 여러 좌파정당들이 있었다. ‘노동당’이라는 정당도 있었고, 진보적 성격의 농민정당도 있었다. 대공황 직후인 1932년에는 이들 정당이 ‘협동공화연맹[노동-농민-사회주의](Co-operative Commonwealth Federation[Farmer-Labour-Socialist], CCF)’라는 독특한 이름의 새 정당으로 통합했다. 비슷한 시기에 미국에서는 사회당과 공산당의 지지 기반이 뉴딜을 계기로 민주당에 흡수된 데 반해 캐나다에서는 협동공화연맹이 여러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좌파 독자정당 노선을 꿋꿋이 견지했다(1945년 총선에서 총 245석 중 28석을 획득한 게 최대 의석이었다).

신민주당의 전신인 협동공화연맹의 포스터

신민주당의 전신인 협동공화연맹의 포스터

이 협동공화연맹이 확대 재창당한 게 바로 지금의 신민주당이다. 1961년에 노총인 ‘캐나다 노동회의(Canadian Labour Congress, CLC)’가 정당운동에 동참하기로 결정하면서 협동공화연맹과 노동회의는 새 정당, 신민주당을 출범시켰다. 이렇게 노총이 적극 합세했음에도 불구하고 신민주당은 중앙정치 무대에서는 여전히 소수정당이었다. 협동공화연맹 시절과 마찬가지로 연방의회에서 수십 년 동안 전체 의석의 10% 수준을 맴돌았다.

먼좌파 사진3_토미 더글러스

신민주당 창당의 주역이자 캐나다 전 국민 의료보헙 도입의 선구자 토미 더글러스

하지만 신민주당은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특히 주정부 수준의 지역정치를 중요한 돌파구로 삼았다. 그 최초이자 대표적인 사례가 창당 주역 토미 더글러스(초대 대표)가 이끈 서스캐처원 주정부였다. 서스캐처원 주의 신민주당 정부는 1962년에 북아메리카에서 최초로 전 주민 의료보험을 도입했다. 이에 반대하며 의사 파업까지 벌어졌지만, 주정부는 공공의료보험제도를 당당히 관철시켰다. 이를 계기로 결국 1970년대에 캐나다 전체에 전 국민 의료보험이 실시됐다. 이것이 오늘날 미국과는 전혀 다른 캐나다 공공의료 체계의 탄생사다. 그리고 이 이야기의 영광스러운 주인공이 바로 신민주당이다. (마이클 무어의 다큐멘터리 《식코(Sicko)》에도 얼핏 이 내용이 나온다. 책으로는 데이브 마고쉬가 쓴 토미 더글러스의 전기인, 《또 다른 사회는 가능하다 : 토미 더글러스는 어떻게 자본과 권력을 넘어 무상 의료를 이루어 냈는가?》[김주연 옮김, 낮은산, 2012)]가 있다.)

 

먼좌파 사진4_의사 파업

신민주당 주정부의 전 주민 의료보험 도입에 반대한 의사 파업

이런 오랜 노력은 2011년 총선에서 드디어 결실을 맺었다. 2008년 금융 위기의 여파 속에 실시된 이 선거에서 신민주당은 총 308석 중 103석을 획득하며 자유당을 제치고 제2당으로 부상했다. 보수당-자유당의 양당 구도가 깨지는 역사적 순간이었다. 이후 자유당이 다시 지지율을 늘려 현재는 보수당, 자유당, 신민주당이 여론조사에서 각축을 벌이고 있기는 하다. 하지만 일부 여론조사에서는 신민주당이 1위를 기록하기도 하는 것을 보면, 이 당의 성장은 어느 정도 ‘돌이킬 수 없는’ 것이 아닌가 생각된다. 올해 10월에 있을 캐나다 총선 결과가 주목된다.

물론 다른 사회민주주의 정당들과 마찬가지로 신민주당도 요즘 많은 비판을 받는다. 신자유주의 공세에 대해 수세적 입장을 취해왔기 때문이다. 온타리오 주 등에서 집권했을 때는 이 당을 지지한 사회운동 세력에게 큰 실망을 안겨주기도 했다. 그러나 어쨌든 어려운 제도 여건 속에서도 반백년의 노력 끝에 보수정당 독점 체제를 보수 대 진보 구도로 바꿔낸 것은 놀라운 성취임에 분명하다. 비슷한 상황에 있는 우리에게는 더욱 그러하다.

 

앨버타 선거, 보수-석유 카르텔에 맞선 승리

 

다시 앨버타 선거로 돌아가자. 앨버타가 ‘캐나다의 텍사스’라 불린다고 했는데, 이는 단지 보수정당의 거점이어서만은 아니다. 앨버타는 텍사스처럼 석유 산지다. 더 정확히 말하면, 가스와 오일샌드(원유를 10% 이상 함유한 지질층으로서, 다량의 물을 분사해 석유를 추출한다)의 매장지다. 이들 천연자원을 채굴하는 에너지 기업들이 앨버타 경제를 좌우한다. 보수정당의 장기 집권과 석유기업들의 경제적 지배, 이것이 이제껏 앨버타 주를 이끌어온 두 기둥이라 할 수 있다.

지난 수십 년 동안은 “석유 경제의 성장 = 앨버타의 발전”이 대다수 주민들의 상식이었다. 덕분에 보수-석유 카르텔은 별 도전 없이 권좌를 유지할 수 있었다. 그런데 최근 이러한 상식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앨버타도 북아메리카의 다른 지역들처럼 2008년 금융 위기로 타격을 입었다. 금융 위기 이후에는 국제원유가가 하락했다. 석유산업에 의존해온 앨버타 경제로서는 엎친 데 덮친 격이었다. 더구나 그간 석유기업들의 비위를 맞추느라 앨버타 주는 캐나다에서 법인세가 가장 낮았다. 가뜩이나 세원이 제한되어 있는데 석유산업 경기마저 추락하니 당장 재정 위기가 닥쳤다. 2009년 주정부는 수십 년만에 처음으로 50억 달러의 재정 적자를 기록했다.

유가 하락과 함께 앨버타 주민들의 ‘석유 경제 신화’도 붕괴했다. 석유 덕분에 잘 사는 게 아니라 (제3세계 산유국들과 마찬가지로) 이로 인해 앨버타의 경제와 사람들의 삶이 왜곡돼왔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오일샌드에서 원유를 추출하기 위해 토양과 수질을 엄청나게 오염시키고 있다는 사실도 직시하게 됐다. 그런데도 진보보수연합은 이제껏 해오던 대로 석유기업들의 눈치만 봤다. 사람들은 대안을 찾기 시작했다.

앨버타 주 총리로 당선된 신민주당의 레이첼 노틀리

앨버타 주 총리로 당선된 신민주당의 레이첼 노틀리

앨버타 주에서 만년 소수정당이던 신민주당이 감히 그 대안의 역할을 떠맡고 나섰다. 사실 1961년에 신민주당 창당대회가 열린 곳은 앨버타에 속한 도시 캘거리다. 하지만 보수정당의 텃세 때문에 앨버타는 한동안 신민주당의 성장과는 인연이 먼 곳이었다. 그러던 것이 작년에 새로운 인물이 주당(州黨) 대표로 선출되면서 급변하기 시작했다. 변호사 출신의 여성 정치인 레이첼 노틀리(1964년생)가 그 주인공이다. 앨버타에서 신민주당 조직을 처음 만드는 데 앞장선 고(故) 그랜트 노틀리의 딸인 레이첼은 70%의 압도적 지지를 받으며 주당 내 세대교체를 성공시켰다. 신임 대표를 얼굴로 내세운 신민주당은 앨버타에 필요한 새 정치의 상징으로 급부상했다.

 

이번 선거에서 앨버트 주 신민주당은 보수-석유 카르텔을 정면 공격하는 정책들을 핵심 공약으로 내세웠다. 석유산업과 그 수혜자들로부터 세금을 거둬들여 복지를 확대하고, 석유기업들을 규제해 기후변화 대응에 힘을 쏟겠다는 것이다.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법인세를 10%에서 12%로 인상한다.
– 고소득자와 부유층에 누진세를 부과한다.
– 석유 및 천연가스 기업들의 유전 사용료 인상을 검토한다.
– 2018년까지 최저임금을 시간당 15달러로 인상한다.
– 미국과 연결된 천연가스 수송관의 증설에 반대한다.
– 오일샌드의 원유 추출로 인한 환경오염을 중단하고 원상회복시킨다.
– 기후변화에 대응하기 위해 온실가스 배출을 규제한다.
– 공공운수에 적용할 이산화탄소 포집 기술 개발을 지원한다.
– 보건, 교육, 사회복지 지출을 늘린다.

 

보수-석유 지배 체제에 실망한 민심은 신민주당의 이런 공약에서 대안을 발견했다. 이것이 신민주당의 득표율이 네 배 이상 늘어난 가장 기본적인 이유였다. 선거 결과가 나오기 전에 혹자는 진보보수연합으로부터 이탈한 표심이 또 다른 우파 지역정당 들장미당(Wildrose Party)으로 향하리라 내다보기도(또는 기대하기도) 했었다. 들장미당은 실제로 2012년 선거에서 30% 넘게 득표한 저력을 지니고 있었다. 하지만 대중은 진보보수연합보다 더 보수적인 들장미당(미국의 티파티에 가깝다고 한다)이 아니라 신민주당을 선택했다. 이번 선거의 심판 대상은 단순히 진보보수연합만이 아니라 그 배후의 기존 경제-사회 패러다임이었던 것이다.

 

앨버타 선거가 보여준 것 – 변화는 가능하다

 

물론 지난 몇 달 동안 그리스에서 다시 확인한 것처럼, 선거 승리의 환희는 짧고 신임 좌파 정부의 책임은 무겁기만 하다. 이것은 역사상 처음으로 사회민주주의 정당이 집권한 앨버타 주도 마찬가지다. 벌써부터 보수 언론은 신민주당의 공약들을 하나하나 무력화시키려고 벼르고 있다. 그 배후에는 물론 석유자본이 있다. 레이첼 노틀리의 새 주정부는 과연 이러한 기득권 세력의 저항에 어떻게 맞설 것인가? 온타리오나 퀘벡의 좌파 주정부가 그랬듯이 결국 애초의 약속들을 포기하고 투항할 것인가, 아니면 세계인들이 지금 그리스나 스페인에 기대하는 것과 같은 사회 세력 관계의 변화에 나설 것인가?

결말은 아직 알 수 없다. 하지만 그 전에 일단 높이 평가하고 주목해야 할 게 있다. 다름 아니라 앨버타와 캐나다 전체에서 신민주당이 성공시킨 역사적 도전이다. 이들의 승리는 우리에게 가장 기본적이면서 가장 절실한 몇 가지 사실을 확인해준다.

첫째, 변하지 않을 것만 같은 어떠한 낡은 경제-사회 패러다임도 결국에는 변화한다는 것. 둘째, 신생 좌파정당이 보수 독점 정치체제를 바꾸는 게 결코 불가능한 일은 아니라는 것. 셋째, 위의 두 사실은 밀접히 연관된다는 것, 다시 말해 정당 정치의 변화는 기존 경제-사회 패러다임이 흔들리고 무너지면서 실현된다는 것. 이것이 앨버타의 드라마가 우리에게 전하는 첫 번째 메시지다.

 

먼좌파 사진2

먼 좌파 이웃 좌파 ⑮ 유럽 신생 좌파 바람의 또 다른 줄기, 슬로베니아 연합좌파

21호(2015년 6월) 먼 좌파 이웃 좌파 ⑮

유럽 신생 좌파 바람의 또 다른 줄기, 슬로베니아 연합좌파

 

장석준 _ 기관지위원

 

 

 

[주] 요즘 유럽 좌파 정치의 총아는 단연 그리스의 급진좌파연합(SYRIZA), 스페인의 포데모스(PODEMOS)다. 한데 이들만이 아니다. 작년 슬로베니아 총선에서 바람을 일으킨 ‘연합좌파’(Združena levica) 또한 주목할 만한 신생 좌파 정치조직이다. 슬로베니아 연합좌파는 마치 초기 SYRIZA처럼 몇 개의 좌파정당들이 결성한 정당연합이다. 민주노동당(DSD), 슬로베니아의 지속가능발전을 위한 당(TRS), 민주적 사회주의를 위한 행동(IDS)이 연합좌파에 참여하는 정당들이다. 연합좌파는 2014년 7월 총선에서 6.0%를 득표해 총 90석 중 6석을 확보했다. 처음으로 총선에 뛰어든 정치세력으로서는 괄목할 성과였다. 슬로베니아는 다름 아니라 구 유고슬라비아연방에서 갈라져 나온 국가들 중 하나이고, 저명한 철학자 슬라보예 지젝의 모국이기도 하다. 과거 유고슬라비아에서 추진했던 노동자 자주경영 사회주의 실험은 1990년대 초 연방의 해체와 함께 급속한 시장 자본주의화, 참혹한 민족 간 내전으로 종료되고 말았다. 그러나 지금 그 계승 국가들(반 긴축 대중 투쟁이 벌어지고 있는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 보스니아헤르체고비나 등)에서는 놀랍게도 새 세대의 좌파 정치가 부활하고 있다. 슬로베니아 연합좌파는 그 중에서도 가장 앞선 정치적 성과라 할 만하다. 이번 호에서는 이들의 지향과 생각을 살펴보기 위해 연합좌파의 구성 조직 중 하나인 ‘민주적 사회주의를 위한 행동(Initiative for Democratic Socialism, IDS)’의 강령을 소개한다.

 

‘민주적 사회주의를 위한 행동’ 선언

 

먼좌파 사진2

슬로베니아 연합좌파 로고가 그려진 티셔츠를 입은 당원들

먼좌파 사진1

슬로베니아 연합좌파 로고. 아래는 참여 조직들의 로고다.

자본주의만이 현실에서 유일하게 가능한 생산양식이라는 이데올로기의 지배는 이제 끝나가고 있다. 1970년대 후반에 ‘선진’국들에서 급속하고 안정적인 경제성장이 중단되자 자본 세력은 노동자들의 권리에 대한 공격을 강화했으며, 이 공세는 지금껏 계속되는 중이다. 이와 더불어 자본주의의 이데올로기 지배를 뒷받침하던 토대는 허물어지기 시작했고, 이제는 자본주의 외에 다른 체제가 현존하지 않는다는 단순한 사실만이 자본주의의 존속을 정당화하는 근거가 되고 있다.

현실 사회주의와는 달리 자본주의는 붕괴하지 않았다는(비록 파시스트 깡패와 군부독재의 힘을 빌려야 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사실 덕분에 자본주의 외에 다른 대안은 없다는 주장이, 따라서 자본축적이라는 이름 아래 희생을 감내해야 한다는 주장이 힘을 얻었다. 자본이 번영을 누리기 위해서는 불평등이 늘어나야 하고 전 세계 민중의 다수가 빈곤에 시달려야 하며 독재의 공포와 자연 파괴가 필요하다면, 당연히 그래야만 했던 것이다.

자본주의에서는 경제가 삶의 질 향상에 복무하는 게 아니라 정반대로 인간의 삶이 자본축적 확대에 복무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인식해야만 현재의 위기를 해결해나갈 수 있다. 현 위기는 자본주의 작동의 예외 국면이 아니다. 시장의 자기 조절이 잠시 교란된 것도 아니고, 기업가 정신이 부족하고 경쟁력이 떨어지는 게으르고 부패한 개인들이 갑자기 늘어난 탓도 아니다. 오히려 위기는 자본주의 경제가 인류와 자연에 대한 지배를 강화하는 수단이다.

우리가 극복해야 할 것은 경제위기가 아니다. 자본주의 경제가 정상적으로 작동하기 위해서 민주적 통제, 노동자 권리 그리고 공공서비스의 마지막 찌꺼기마저 이윤을 위해 제거되어야 하는 이 시대를 넘어서야 한다. 정치 엘리트들은 각 개인의 전면적 발전을 보장하고 사회적 필요를 충족하기 위해 경제에 고삐를 채울 방도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는다. 아니, 이들은 자신들의 이해력과 통제를 넘어서는 자본의 힘에 따라 누가 다음 번 희생자가 될지를 놓고 주사위를 굴릴 뿐이다.

하지만 금융과 그 밖의 시장에 거하는 이런 신비로운 힘은 사회적 생산의 특정한 시스템 아래서 인간 노동으로부터 생명력을 얻을 뿐이다. 개인을 다른 개인뿐만 아니라 노동의 산물로부터 소외시키는 이러한 시스템의 특성으로 인해, 노동생산물은 독자적인 생명을 얻어서 이해하기도 길들이기도 어려운 낯선 힘으로 개인과 마주한다. 이것이 우리 시대에는 금융파생상품이나 정부발행채권의 이자수익이라는 유령으로 출몰하고 있는 것이다.

과학과 교육의 발전 덕분에 우리는 빈곤을 철폐하고 노동시간을 단축하며 지속가능한 발전을 달성할 기술적 가능성을 확보했다. 하지만 사회 세력들이 경쟁이라는 전투 속에서 교착 상태에 빠져 있고 이윤극대화의 눈 먼 독재에 복종하는 한, 이러한 기술적 가능성은 단지 순전한 가능성으로만 남고 말 것이다.

이제 다른 발전 경로의 밑그림을 그릴 때다. 이 새로운 발전의 길에서는 민주적으로 계획된 경제가 사회적 목표들을 달성할 수단 역할을 할 것이다. 또한 경쟁이 아니라 연대에 바탕을 둔 발전을 추구할 것이다.

 

민주적 사회주의란 무엇인가

 

민주적 사회주의를 위한 행동 지도자 아네이 코르시카

민주적 사회주의를 위한 행동 지도자 아네이 코르시카

민주적 사회주의란 무엇인가? 우리의 목표는 정치/경제 영역의 직접 민주주의와 민주적으로 계획된 생산에 바탕을 둔 사회-경제 시스템이다. 우리는 각 개인의 필요와 동시에 사회 전체의 필요에 부응하는, 그리고 자연환경의 재생 역량을 고려하는 생산 및 분배 시스템을 추구한다.

우리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먼 미래의 유토피아적 비전이 아니라 민주적 수단을 통한 자본주의 극복 과정으로 바라본다. 여기에 방향을 제시하는 것은 노동자, 농민, 여성 그리고 원주민의 유구한 해방투쟁 전통이다. 자본주의의 이러한 민주적 극복은 다음의 노력들을 통해 이뤄질 것이다.

정치 차원에서는 : 참여예산, 지역 수준의 직접 민주주의(시민총회와 공개모임) 등 공적문제에 대한 대중 참여의 여러 형태를 창조하고 실행한다. 정책 결정에서 명령적 위임 시스템[역주 – 소환제 등을 활용해 유권자에 대한 선출직 대표의 책임을 강화하는 방안] 등을 통해 대의제를 직접 참여로 대체한다.

미시경제 차원에서는 : 노동자 소유, 자치 및 자주 경영 그리고 협동조합 같은 경제민주주의의 여러 형태를 실시한다.

거시경제 차원에서는 : 자본주의의 항구적인 위기의 원인, 즉 시장과 경쟁이 사회적 [조절] 메커니즘이 되는 것을 폐지한다. 재화의 생산 및 분배의 대안적 조정 양식, 예컨대 생산 단위 사이의 경쟁이 아닌 협력, ‘눈먼’ 시장 생산이 아닌 민주적 계획을 구축한다.

자연환경과 관련해서는 : 자연환경의 재생 역량과 조화를 이루도록 생산규모를 계획한다. 이미 쌓인 부의 재분배에 바탕을 두면서 동시에 환경 친화적인 기술의 실현에 바탕을 둔 지속가능한 경제성장을 추구한다. 이와 병행해 전 지구적 수준에서는 좋은 삶을 가능케 할 필수요소인 식수, 농지 및 여타 천연자원을 각 개인이 평등하게 확보할 수 있도록 보장해야 한다.

계급 및 정체성 문제와 관련해서는 : 노동과 자본 사이의 계급분화를 철폐한다. 또한 여타의 모든 불평등 및 종속의 사회적 형태들, 특히 인종, 성별, 성적 지향, 출신 국적 혹은 민족 그리고 장애 유무에 바탕을 둔 차별을 철폐한다.

우리는 이러한 정책들이 한 민족국가 안에서만 홀로 실현될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기에 국제주의의 대의에 헌신한다. 우리는 세계 자본주의의 폐지를 위해 노력하며, 이를 위해 전 세계 모든 해방 운동과 정당들의 투쟁에 연대한다. 우리의 투쟁은 유럽의 분노한 자들 운동(스페인의 ‘지금 당장 진짜 민주주의를!’ 운동), 그리스 시리자, 독일 좌파당, 프랑스 좌파전선, 스페인 연합좌파뿐만 아니라 라틴아메리카의 사파티스타와 볼리바리안 혁명가들, 이집트 노동조합운동, 중국 노동자운동 등이 벌이고 있는 전 지구적인 반자본주의 운동의 일부다.

시스템 변혁을 위해 투쟁하는 해방운동에는 크게 두 가지 조직 방식이 있다. 일부는 정치권력을 획득해 기존 시스템에 맞서는 정권을 수립하고자 정당을 조직한다. 다른 일부는 정치권력을 장악하려는 의사 없이 시스템 변혁을 위해 싸우는 운동을 조직한다. 우리는 민주적 사회주의를 위한 투쟁은 반드시 이 두 전략 유형을 다 활용해야 한다고 믿는다. 즉, 현존 사회 관계를 아래로부터 폐지하면서 동시에 정치시스템의 제도화된 장 안에서 정책을 위로부터 바꿔야 한다.

 

‘민주적 사회주의를 위한 행동’의 정책 프로그램

 

시위에 참여한 슬로베니아 연합좌파 당원

시위에 참여한 슬로베니아 연합좌파 당원

‘민주적 사회주의를 위한 행동’은 위에 제시한 목표들을 실현하기 위한 정치기획이다. 민주적 사회주의의 원칙들은 하룻밤에 실현할 수 없다. 점진적으로 발전시키고 실시해야 한다. 따라서 우리의 당면 요구는 개혁주의의 성격을 띤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우리는 우리의 궁극 목적이 자본주의를 철폐하고 연대, 관용, 지속 가능성에 바탕을 둔 새로운 시스템을 뿌리내리는 일임을 잊지 않는다. 우리의 요구는 완전무결한 사회를 좇는 유토피아적 계획의 일부가 아니라, 전체 노동계급, 즉 생존을 위해 자신의 노동력을 팔아야 하는 모든 사람들의 구체적이고 즉각적인 필요에 바탕을 둔 것이다.

이에 따른 우리의 단기 정책은 다음과 같다.

만인을 위한 공공서비스의 질을 더욱 발전시킨다. 의료, 교육, 사회보장, 공공교통, 문화재화, 법률지원 그리고 노령 및 장애 연금은 모두 비영리 공적조직을 통해 제공돼야 한다. 이들 서비스의 재원 역시 전액 공공기금이어야 한다.

심의 형태의 직접 정치 민주주의를 도입하고 발전시킨다. 이를 통해 공동의 사안에 대한 진중한 토의 및 결정 과정이 가능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심의 방식은 인권 및 사회정의에 바탕을 두어야 하며, 동시에 모든 정치적 대의기구와 복지 국가의 탈 관료화를 위해 노력해야 하다. 어떠한 기구든 보편적 참여가 보장될 때에만 실제 필요에 바탕을 둔 서비스를 수행할 수 있다는 점에서 지역사회, 노동자 그리고 ‘이용자’가 결정 과정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경제민주주의를 수립한다. 기업을 자주 경영할 권리와 공동 소유할 권리는 노동자의 근본적인 민주적 권리다. 공공부문, 민간부문 가릴 것 없이 노동자는 결정 과정의 모든 수준에 참여할 수 있어야 한다.

경제정책의 목표를 완전고용과 함께 생산의 사회적, 환경적 조건을 고려하는 사회적, 환경적 지속가능 발전에 둔다. 재생가능 에너지 자원, 에너지 효율성, 전략적 천연자원(나무, 물, 종자, 경작지 등) 그리고 식량자급을 발전시키는 것이 경제정책의 우선 목표가 되어야 한다. 동시에 누진적 녹색 조세정책을 도입해야 한다.

완전고용을 달성하고 노동시간을 단축한다. 생산성 향상과 생산 자동화로 인해 주 40시간 노동은 구시대의 유물이 됐다. 이는 현재 실업의 주된 원인 중 하나다. 우리는 완전고용을 실현할 수 있는 수준까지 노동시간을 단축할 것을 주창한다.

최저임금을 평균임금의 70%로 인상한다. 사회적 불평등의 계속된 증가를 뒤집어야만 하며, 따라서 최고소득과 최저소득 사이의 격차에 상한선을 두어야 한다.

공공교육 및 의료의 모델에 따라 은행이 공적서비스에 체계적으로 중점을 두도록 뜯어고친다. 은행은 사적 이해가 아니라 공공의 이해에 복무해야 한다.
위에 제시한 공공서비스의 질을 실현할 수 있도록 누진세를 확대한다. 법인수익에 대한 과세를 강화한다. 마찬가지로 금융 거래와 토지 및 여타 자산에 대해서도 과세를 강화한다. 이러한 정책은 소득이 일정 액수를 초과하는 모든 자산 소유주(종교 단체를 포함)에 대해 예외 없이 적용돼야 한다.

 

■ 바로잡습니다 ■

《미래에서 온 편지》 2015년 5월호 ‘먼 좌파 이웃 좌파’ <포데모스, 더 깊이 들여다보기>의 ‘시우다다도스(Ciudadados)’를 ‘시우다다노스(Ciudadanos)’로 바로잡습니다. 독자 여러분께 혼선을 드려 죄송합니다.